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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진    
부피도 있고, 묵직한 무게도 있다. 그 위에는 쵸콜렛도 뿌려져 있고, 색색가지 설탕도 뿌려져 있다. 그리고, 가운데는 뻥 뚫려 있다.

'청소년 문제'라고 하는 논의는, 이렇게 생긴 도넛을 닮았다.
청소년 문제는 존재하고 무게감도 갖는다. 청소년의 문화는 어떠한지, 그들의 심리는 어떠한지, 그들의 건강상의 특징은 어떠한지, 생물학적 변화는 어떠한지 등에 대한 여러가지 설탕이 덧칠해져 있다. 청소년에 대한 논의가 '문제'로만 다루어진다는 점에서, 설탕이 도넛의 한쪽 면에만 뿌려져 있는 것과도 닮았다. 그럼에도 정작 청소년이 무엇이고 청소년문제가 무엇인지 알 수 없는 것은 한가운데가 텅 비어 있는 도넛과 많이 닮았다.
청소년학은 영어로 Youth Study라 한다고 한다. 청소년 심리학, 청소년 교육학, 청소년 가정학, 청소년 종교학, 청소년 사회학, 청소년 생물학 등 어떠한 학문이라도 청소년과 관련된 연구를 할 수 있지만, '청소년학'이라는 것이 뚜렷이 정립되지 않아서,Youthology라는 용어를 쓰자는 안이 동의를 얻지 못하였다고 한다.
텅 비어있는 구멍을 메울 재간은 없으니, 이 글 역시 이런 저런 설탕이나 건드려 볼 밖에.........
여성과 청소년도 닮았다. 아무 학문에나 하이픈을 긋고 페미니즘만 붙이면 말이 된다고 하여 '하이픈 페미니즘'이라는 말이 생겨난 것도 비슷하다. 여성 심리학, 여성 생태학, 여성 생물학, 여성 사회학......... 여성학 역시 독자적인 학문임을 드러내는 영어단어가 존재하지 않은채 Women's Study라 불리는 것도 닮았다. 여성과 청소년은 결핍, 부족, 미완성, 불안정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것도 비슷하다. 여성과 청소년은 '성인남성이 아닌 것'이다. 성인 남성들은, 그러니까 '어른'들은 자신의 영역을 감히 넘보려는 부족한 집단의 행동을 '교화'해야할 책임감을 느꼈다. 얌전한 청소년은 제약이 많은 시기를 잘 참아 넘기기만 하면 어른의 세계로 들어올 수 있다. 이들에게도 체계적으로 적용되는 불평등 같은 것은 논의의 대상이 아니다. 문제는 '비행'청소년이다. 비행청소년들은 어른들 마음에 안드는 아이들이다. 청소년 문제는 늘 사회적 병리현상으로만 인식되어, 비행청소년의 처리에 대한 문제에만 관심이 집중되었다. '좋은 청소년과 나쁜 청소년'의 이분법이 존재하는 것 또한 착한 여자와 나쁜 여자를 가르는 이분법과 닮았다.
어린이는 '새싹'이고 청소년은 '폭탄'이다. 어린이와 청소년 모두, 연령에 의하여 성인과는 구분되는 집단이다. 어른의 세계를 위협하지 못하는 어린이에게는 관대한 보호가, 어른의 세계를 위협하는 청소년에게는 통제와 규제가 생겨난다. 어른들에게 어린이는 그저 귀여워해주면 되는 꽃같은 것이지만, 청소년은 언제 어디로 튈지 모르는, 한시라도 감시하고 '가르치지' 않으면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모르는 불안한 존재들이다.

"청소년들을 민법이 행위무능력자로 정하여 한정치산자와 금치산자의 대열에 함께 두어, 건전육성을 위한 협조는 못할지언정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청소년들에 대한 인격유린에 까지 이르고 있음을 볼 때 민법상의 연령에 대한 불평등은 그 극치에 이르고 있고...."
한국 청소년 연구원에서 펴낸 <청소년의 권리와 사회적 불평등>에 지적된 내용이다.
우리사회에서는 연령별 불평등이라는 개념이 30대와 40대 사이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10대와 성인, 특히 10대 후반과 성인 사이에 크게 존재한다. '20'은 매우 과분한 의미부여를 받은 잘난 숫자다. 사실 20이라는 숫자를 전후하여 나타나는 제도적인 불평등은 엄청나다. '20'이 갖는 막강한 권력은 실상 매우 비합리적이다. 20을 중심으로 인간의 지각, 판단, 행위 능력에 질적인 전환이 일어나지는 않는다. 그러나 20을 중심으로 어떤 한 사람이 누리는 자유와 인권은 질적으로 전환한다.
한 사회를 한 시점에서 단면을 잘라보면, '청소년 집단'이 존재하고, 그 청소년 집단에 대한 특이한 규제와 불평등이 존재한다. 그런데 이 청소년 집단은 특정한 사람들에게 고정된 집단이 아니라, 누구나 거쳐가는 집단이다. 시계열적으로 누구나 지나가는 시기라는 점에서 청소년기의 불평등과 인권 침해는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데, 일생에서 몇 년간을 하고싶은 것을 참는 참을성 같은 것도 배우면서 '잘' 지내면 누구나 그러한 불평등이 해소되는 단계 -성인-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청소년의 나쁜짓'은 그러한 행동이 나쁜짓이어서 규제받는다기 보다는, 몇 년 후면 할수 있는 일들을 미리 하기 때문에 규제 받는다. 폭음을 하고 사람들에게 시비를 거는 것은 어른이 하더라도 '나쁜'일이다. 술마시는 청소년은 그가 어리기 때문에 어른들로부터 거의 폭력에 가까운 규제를 받는다.
'몇 년만 참으면 너도 다 할 수 있어'.
물론 이것도 그렇지 않다. 청소년 집단은 동질하지 않다. 청소년에 대한 불평등은 시계열적으로 누구나 지나가는, 그러한 동질적인 것이 아니다.
"청소년 들은 스스로를 규정하면서 성장하지만 동시에 사회적인 상황에 존재 구속적이다. 사회적 관계에 적응을 '잘'했거나 사회화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진 청소년들은 성취지향성, 원만한 인간관계, 직업 세계에서의 성공을 위한 준비 등의 가치규범을 성공적으로 소화해내고 사회의 긍정적 요인에 보다 많은 가치를 두고 행동하며 영향도 받는다. 그러나 사회의 부정적 요인에 보다 많은 영향을 받는 청소년들은 자신들을 피해자 또는 패배자로 규정하고 기존의 사회문화적 가치 사고방식 생활방식등에 반감을 가지고 일탈적 행동도 나타낸다............ 경쟁의 낙오자는 사회적 보상의 불평등과 차별적 사회관계를 강요당한다. 청소년들도 예외는 아니어서 학교 가정 사회에서 기존사회가 요구하는 기준에 맞지 않게 반응하는 청소년들에게 심한 차별, 불평등이 주어진다."
한국 청소년 연구원에서 펴낸 <청소년의 권리와 사회적 불평등>의 일부이다.
학교급별, 계열별, 능력별 (특히 이것은 인지적 학습능력을 말한다), 지역별, 빈부간, 행동 성향별 불평등이 청소년 집단 내부에 존재한다. 말잘듣는 얌전한 청소년은 공부해서, 대학을 간후 직업을 갖는 경로를 밟는다. 이들에게는 '몇 년만 참으면' 많은 것이 보장된다. 근로청소년에 대해서는 학생 청소년에 대해서보다, 술이나 담배 같은 것에 대하여 더욱 관대하다. 그들은 그냥 그렇게 살 것이니까......... 청소년기가 지난 이후의 삶이 보장 되지 않는 사람들에게 어느 정도 보상을 해주는 것이라고나 할까.........
어른들이 보기에 청소년기는 사람을 '사회적으로 바람직하게' 길들이거나, 그렇게 잘 길든 사람들을 걸러내는 시기이다. 청소년기는 모든 형태의 사회적 불평등이 학습되는 시기이다.

'학교'라는 제도는 청소년들을 교육하고, 청소년의 자아계발을 위해 존재하는 제도이지만, 또한 학교는 불평등을 제도적으로 공고화, 구조화 시키는 역할을 할 뿐 아니라, 학교에서 청소년에게 가해지는 인권유린에 대해 문제제기 하기 힘든 특이한 공간의 역할도 한다.
보호와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이루어지는 인권유린과 폭력에 대하여, 한국 청소년 연구원은 표현의 자유에 관한 권리, 적법절차에 관한 권리(Due Process), 부당한 압수수색을 받지 않을 권리가 대표적으로 학교에서 심각하게 침해되는 인권이라고 지적했다.
80년대 전교조 운동이 일어나고, 청소년들이 좋아하는 선생님들이 마구잡이로 쫓겨날 때, 그에 대해 소박하게 항의하던 중고생들은 쫓겨 나지 않는 선생님들로부터 많이 맞았다. 하긴, 뭐 그런 큰 사건이 아니라고 할지라도, 선생님에 대한 건의나 문제제기는 '어린 것이 건방지게 말대답한다'는 무서운 반응만을 가져올 뿐이다. 이것은 악순환이다. 학생들이 선생님들에게 말하는 방식 또한 점차로 기형적이 된다. 마음 약한 선생님들을 학생들을 무서워하기도 한다. 대체로 선생님들이 권력의 절대우위를 지닌채로 교사와 학생간의 소통은 단절된다. "판단이 조작되거나 교화되어서는 안되며, 의견의 표현은 부당하게 제지 되어서는 안된다"는 표현의 자유는 학교안에서는 보류다.
적법절차에 대한 권리는 본래 개인자유의 임의적 박탈을 금지하는 것으로서 정부나 행정부의 일방적인 권익 침해를 막고 권익 침해시 이해관계 당사자에게 부당한 시도나 결정에 항변하여 의사결정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보장하는 권리이다. 따라서 학교에서는 학생이 징계나 처벌을 받을 경우 처벌을 결정하는 절차가 적법해야 한다. 미국의 판례에서는 적절한 통지와 청문의 기회제공, 공정한 위원회의 구성 등을 필요한 절차로 규정하고 있다. 교사의 기분에 의하여 좌우되는 기준없는 처벌은 한국의 학교에서는 일상적이다. 걸려서 맞으면, 학생은 '재수없어 걸렸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처벌이 아무런 긍정적 효과를 볼 수 없음은 물론이다. 교사가 자신을 학생들이 무서운 사람이라고 인식하게 해서 앞으로 면전에서는 학생들이 자신에게 '개기지' 못하게 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의도한 효과'를 볼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일주일에 한번씩 정기적인 소지품 검사를 하는 것도, 부당한 압수수색에 관한 권리의 명백한 침해이다. 미국의 판례를 보면, 학생의 소지품을 수색할 때는 그럴만한 충분한 이유나 증거가 있어야 하고 또 절차상에 학생의 연령, 성 등을 고려해야 한다고 함으로써 학교측의 처분에 학생의 이익과 권리가 신중히 배려되고 또 보호되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월요일 아침에 단체로' 소지품 검사를 하는 진풍경은 교사의 편의주의적 발상에서 비롯된 것이었지만, 대체로 문제제기 되지 않는다. 단체로 검사를 해서 담배나 만화책을 가진 학생이 하나라도 적발되면, 소지품 검사는 반드시 필요한 일로 쉽게 정당화된다.

이제 밑천이 동이 났다. 아마도 여기까지가 짧은 시간에 몇권의 책을 읽고 건드려 볼 수 있는 설탕인 것 같다. 이 글 또한 짧은 지식과 짧은 경험으로 만든 도넛의 한 구석에 먼지처럼 붙어있는 설탕가루일 뿐이다. 다만 이글을 쓰면서 내내, 지나온지 얼마 되지 않은 나의 학창시절에, 얼마나 많은 부당함들을 목격했는가와 더욱 놀랍게도 그때는 그것을 왜 대체로 당연하다고 생각했었는가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

한국은 틀림없이 청소년이 자기를 계발하고, 자율적인 자아를 육성하기에는 너무나 척박하고 열악하다. 그러한 속에서 개개인의 청소년마저 겉멋만 있고, 알맹이가 없거나, 공부만 잘했지 생각이 없거나, 후까시만 있고 자아가 없거나 하는 도넛이 되어 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청소년기의 나도, 나의 친구들도 다들 도넛이었다는 생각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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