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끝, 혹은 오래된 시작(7)

 

그녀는 딱 한 번 친구의 집에서 밤을 보낸 적이 있었다. 침대가 없고 침실도 따로 없는 원룸 아파트였 기 때문에 그녀와 친구는 둘이 나란히 냉장고 앞에 머리를 두고 누웠다. 화장실에선 세탁기가 흐느끼고 있었다. 낮 동안 묻은 시선의 냄새를 지우려는 듯 힘차게 회전하고 있는 세탁기의 버거운 듯한 흐느낌이 밤새도록 그녀의 귀 에 울리는 듯 했다. 이윽고 삐익하는 짧은 기계음과 함께 미친년은 몸체와 연결된 작은 호스로 눈물을 짜냈다. 거 품을 물고 있는 그 눈물은 혼탁하다. 마지막 눈물 한 방을 까지를 모두 짜내기 위해 몸체를 돌려대는 미친년은 그 녀의 언젠가적 모습과 닮아 있었다. 언제나 필요보다는 좁은 화장실. 변기 앞에는 곧장 세탁기가 있다. 그 눈물의 유희가 발을 적시는 것이 싫어서 그녀는 결코 탈수중에는 똥을 누지 않았다.

친구들 중에는 돈을 잘 버는 남편과 결혼해 커다란 집에서 살고 있는 애들도 몇 명되었다. 그네들의 집 화장실에는 세탁기가 없었다. 다용도실이라는 버젓한 이름까지 붙은 방 하나가 온전히 세탁기만을 위해 존재하는 그 집이 그녀는 신기하고 부러웠다. 다용도실이라 하면, 말 그대로 용도가 많은 방일 터였다. 시끄러운 세탁기의 흐느낌에 제 자신의 것 또한 묻어버리고자 청바지는 강하게 빤다 던 세탁기에 청바지 5개쯤 같이 넣고 돌려도 좋 을 터였다. 시시한 밤자리에 식상한 부부들이 이불빨래도 된다는 대포물살 소리를 믿으며 맘껏 교성을 질러도 좋 을 터였다. 그러다 세상일 지겨워지면 세탁기에 계란도 삶아보고, 그 안에서 애기 목욕도 시켜주어도 좋을 터였다. 화장실에 전세사는 세탁기하고 다용도실을 차지하고 사는 세탁기는 그녀에게는 너무도 달라 보였다. 그리고 이것 이 그녀가 큰집을 가지고 싶어하는 유일한 이유였다.

하마터면 잊어버릴 뻔했다는 듯 냉장고의 모터 돌아가는 소리가 세탁기와 장단을 맞추고 있었다. 계속 적으로 나는 소리에는 누구든 금방 익숙해질 수 있다, 그러나 냉장고 소리는 그렇지 않았다. 위이잉 하는 소리가 났다가는 아무소리 없이 한 참을 가만있다가 또 어느 순간 위이잉 하며 기지개를 켠다. 그 소리에 잠을 깨면 그녀 는 생각했다. 냉장고 만드는 사람들은 참 똑똑하기도 하지... 혹여라도 여자들이 냉장고의 존재를 잊을 라 저렇게 밤 새 울려대다니...

달이 웃었다 울었다를 반복한다. 달은 초승달로 웃고, 보름달로 운다. 해와 달 중 어느 것이 더 좋으냐 는 질문에 라면 그려는 수백 번도 더 넘게 '달'이라고 대답할 터였다. 변화 없는 해 보다는 풍부한 변화를 지니고 있는 달을 더 사랑했던 것은 어쩌면 그녀 인생의 순탄치 않음의 복선이 되었을 지도 모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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