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끝, 혹은 오래된 시작(1)

투덜이

그녀가 하루 중 가장 집중하는 시간은 아침에 얼굴을 깨끗이 씻고, 스킨 토너만을 바른 채, 본격적인 화장을 입기 전 작은 눈썹 가위를 들고, 밤새 자라난 눈썹의 잔가지들을 쳐내는 때이다. 그녀는 항상 자신이 화장을 입는다고 생각하는데, 사실 그녀가 화장을 '입는다'라는 표현을 쓰게 된 데에는 사연이 있다. 어학연수는 기본 안주라고 흔히 말해지던 대학시절 그녀는 캐나다로 약 5개월 반 정도의 어학연수라는 걸 갔다 온 적이 있었다. 새로운 상황에 처하면 일단 순응주의자가 되는 편이 좋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그녀는 영어 배우기에 누구보다도 열심이었다. 그러나 그녀가 정말로 익숙해지기 어려웠던 것들은 한국어로의 직역이 어색한 관용어구들이었다. 그 중에 특히 화장을 한다라는 표현이 힘든 것 중 하나였다. 그것은 그 표현이 영어로 하자면 'wear a make up'이 되어서, 그녀로서는, 옷을 입을 때나 쓰는 동사인 'wear'가 화장 앞에 붙는 다는 게 너무 어색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중 그녀와 같이 영어를 공부하던 한 친구가 한국의 연속극 비디오들을 빌려와 그것을 다른 외국인 친구와 같이 볼일이 생겼다.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아 그 외국인 친구가 놀람의 탄성을 지르며 저기 나온 여자들은 모두 화장을 정말 두껍게도 했네, 한국 여자들은 다 그러냐 라는 말을 던졌다.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게 화면을 보고 있었는데 그 친구의 말을 듣고 다시 보니 새삼 마음속 깊숙이 까지 저 여자들이 화장을 입었구나 하는 말에 대한 감이 왔다. 그 당시에는 이 일 이후로 화장을 한다는 말의 영어표현도 아무런 무리 없이 쓸 수 있게 되어 다행이라고만 생각했던 그녀는 그러나 한국에 돌아와서도 특히 회사에 출근하기 위해 화장을 할 때면 자신도 모르게 화장을 입는다는 말을 쓰게 되었다. 정장을 차려 입는 것과 똑같이.

그녀는 매일 화장을 입기 전에 눈썹을 자른다. 항상 똑같은 폼으로. 화장대 거울 앞에 얼굴을 한껏 내어 밀고 눈을 치켜 뜨면 두 눈동자와 그 눈동자 속에 비친 눈썹가위를 든 자신과 거울속의 눈동자 속에 든 또 다른 자신과 그 안의 무한히 반복되는 눈동자들 마다 에는 온통 생뚱맞게 자라난 눈썹들뿐이다. 그 상태에서 눈썹가위에 실수로 살을 베이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밤새 자라난, 채 일 미리도 안되는 쓸데없는 눈썹들을 잘라버리는 것이다. 사실 쓸데없는 눈썹들은 아니다. 다만 있지 않는 편이 좋았을 자리에 자라난 눈썹들일 뿐이다. 세상에서 가장 작은, 그러나 가장 날카로운 가위에 잘려진 눈썹들은 곧 어딘지 모를 곳으로 흩어져 버린다.

그녀의 집을 방문했던 한 남자친구가 화장대위에서 빛나는 눈썹가위를 보고선 이것도 가위냐 란 말을 내뱉으며 장난을 치다가 피가 숭숭 나게 찔렸던 적도 있는 그녀의 눈썹가위였다. 흘러내리는 피를 닦아내며 그 친구는 그녀에게 저 가위가 은장도의 가위버젼이냐는 질문을 심각하게 해왔고, 은장도 또한 대체로 크기가 작았음을 떠올리며 그녀는 잠시 은장도가 순결 논리의 파수꾼이라면 눈썹가위는 무엇의 파수꾼이 될 수 있을까를 생각했다.

체구가 작은 눈썹가위는 손가락을 넣는 구멍 또한 지름이 2센티도 채 되지 못할 정도로 작다. 남자들의 손가락이 그 안에 들어가 가위질을 한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할 정도이다. 그녀의 친구였던 그 남자도 무리하게 손가락을 끝까지 끼워 넣으려고 힘을 주다 가위가 빗나가면서 손가락을 찔린 것이다. 그러나 귀엽고 작은 손가락 구멍과는 달리 눈썹가위의 칼날은 마치 콧대 높은 여자의 상큼한 콧날을 상기시키듯 위로 날씬하게 뻗어 올라가 있다. 외씨버선마냥 날렵한 그 칼날의 사이에 앉은뱅이같이 피어나 있는 눈썹을 끼우고, 손가락에 조금만 힘을 주면 그것은 작게 갈라지면서 떨어져 내린다. 깔끔한 사람이라면 그 눈썹 조각들이 방안 아무 곳으로나 떨어져 앉는 것을 싫어했을 법도 하지만, 그녀는 언제나 그저 툭툭 털어 내려 버린다. 가끔씩 그녀는 자신이 잘라낸 눈썹 조각들이 방안에 둥둥 떠다니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녀가 상상이라고 규정하는 일이 그녀의 행동을 규제하는 일은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다.

그녀가 눈썹을 깎는 일처럼 규칙적으로, 그러나 그 보다는 좀 더 드문 간격으로 하는 일이 또 있다면 그것은 섹스와 스트레이트 파마이다. 그녀는 한 달에 29번 눈썹을 깎고, 4번의 섹스를 하며, 2번의 스트레이트 파마를 한다. 즉 그녀의 일상은 한달에 29번의 눈썹 깎기와 4번의 섹스와 2번의 스트레이트 파마로 이루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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