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끝, 혹은 오래된 시작(6)

 

그녀의 친구는 막 코코아 팦스 한 그릇을 다 해치우고, 이제는 콘 푸로스트를 먹을까 하며 새로운 우유를 꺼내기 위해 냉장고 문을 여는 참이었다. 그러나 문을 너무 세게 연 탓에 냉동실 문 위에 붙어있던 동그란 자석이 달린 병따개가 밑으로 굴러 떨어지자, 친구는 "이런 미친년, 떨어지고 지랄이야."라고 궁시렁대며 그것을 집어다 냉동실 손잡이 옆에 딱 붙여놓고는 냉면 대접에 우유를 붓기 시작했다. 냉장고가 부엌 한 귀퉁이에 자리잡고 있는 여느 집들과는 달리, 친구의 집에는 현관에서 집으로 들어오자 마자 바로 보이는, 마루의 가장 목이 좋은 곳에 냉장고가 위풍당당하게도 버티고 서 있었다. 친구의 냉장고는 물론 혼자 사는 여자의 소유물인 만큼 특대형 패밀리 냉장고는 아니었다. 그러나 친구의 냉장고는 특별했다. 그녀가 친구의 집에 놀러를 가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고, 제일 먼저 열어 젖혀지는 것이었다. 언젠가 소중한 귀걸이의 한 짝을 잃어버린다면, 그것이 바로 그 안에 들어 있기라도 할 것 같은, 그런 냉장고였다. 원체 집 밖을 나오는 일이 별로 없었던 친구는 자신은 냉장고 하나만 있으면 대 만족이라는 말을 농담처럼 하곤 했다. 냉장고 문 열리는 소리, 그리고 모터 돌아가는 소리가 자신의 심장박동을 대신해 버렸노라고... 친구는 혹 자신이 밖에 나가 오랫동안 있은 채 돌아오지 않으면 자기의 심장 박동이 멈추어 버리지는 않을 지 불안해했다. 친구에게 보이는 세상은 모두 냉장고처럼 네모지고 모난 것들뿐이었다. 거리에 나서면 빌딩들이 모났고, 하늘도 빌딩에 잘려 모가 났고, 그 사이로 햇빛과 시선은 잘린 자국의 흉터에서 분수처럼 솟구치는 피마냥 불길했다. 어렸을 때부터 뼈가 컸던 친구는 항상 사람들의 시선에서 무서움을 읽었다. 그리고 그 무서움이 대인 공포로까지 번지게 된 것은, 친구가 사귀던 남자로부터 "너 요즘 불어터진 오뎅같아." 라는 말을 들은 후부터 였다. 친구는 모든 사람들의 콤콤한 시선을 냄새 맡았다. 다른 사람을 마주 쳐다보지도 않으면서, 땅을 향한 자신의 눈길과는 달리 언제나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코로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킁킁거렸다. 욕망을 미용실 안에만 가두어 두려는 시선을 냄새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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