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끝, 혹은 오래된 시작(3)

 

그녀는 어린 시절 하늘을 찌를 듯이 높게 솟아 있는 대문을 가진 집에서 자라났다. 항상 그녀의 옆에는 부엌에서 맛있는 음식을 만들고 있는 엄마가 있었고, 그녀의 기억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도 바로 부엌이었다. 엄마가 요리를 만들면 그녀 또한 좋아라고 옆에서 콩나물의 꼭지를 딴다, 파를 씻는다 하며 도와주곤 했었다. 그 집에 살고 있는 사람의 수는 아주 많았기 때문에 그들이 하는 음식의 양도 엄청났다. 고깃국을 한 번 끓였다 하면 커다란 솥으로 한 솥을 다 끓여야 할 정도였다.

그녀의 기억에 물리적으로 남아있는 날이 있다. 그 날 엄마는 검은 비닐봉지에 손바닥만큼의 고기를 싸가지고 와서는 조그만 냄비에 그걸 끓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적은 양의 음식을 하는 것을 처음 보았기 때문에 그녀는 신기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엄마의 얼굴은 그 어느 때보다도, 한 솥 가득 고기를 담은 요리를 만들 때보다도 왠지 더 즐거워 보였다. 그리고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 무렵, 엄마의 얼굴까지 붉은 빛으로 익어가고 있었을 때, 그 아줌마가 부엌으로 들어왔다. 엄마는 깜짝 놀라하며 작은 냄비가 얹혀 있는 풍로를 조리대 옆에 감추었고, 그 아줌마는 부엌의 이곳 저곳을 훑어보면서 무슨 말인가를 한 참이나 중얼거리다 부엌을 나갔다. 그 아줌마는 한 번도 부엌에서 요리는 하는 적은 없지만 하루에 꼭 한 번씩은 들어와서 이런 저런 말을 하고 나가곤 했다. 그 아줌마가 나가자 마자 엄마는 풍로 위에 얹힌 작은 냄비의 뚜껑을 열었지만 이미 손바닥만하던 고깃점은 까맣게 재로 변해 냄비 바닥에 아교처럼 늘어붙어 있었다. 그녀가 냄새에 코를 쥐고 얼굴을 돌릴 때에도 그러나 그녀의 엄마의 얼굴과 시선은 그 냄비를 떠나지 않았다. 한 참을 그것만 쳐다보고 있던 어머니는 냄비를 내려놓지도 못한 채 눈물을 터뜨렸다. 우는 내내 엄마는 그녀의 손을 꼭 쥐고 있었다. 눈물로 범벅이 된 축축한 손의 느낌이 주는 슬픔을 그녀가 이해하기까지는 또 많은 시간이 걸려야 할 터였다.

그 많은 고깃국물들은 과연 누가 먹어치웠는 지, 왜 그 아줌마는 그리 좋은 옷을 입고 있는 지, 왜 엄마는 그렇게 항상 부엌에만 있었는 지도... 그리하여 그녀가 철들면서 배운 첫 번째의 감정은 속았다는 배신감, 깨달음에의 두려움이었다. 이 세상의 모든 단단한 것들은 결국 자신을 위해 준비된 것들이 아니라는 배신감, 눈물 젖은 어머니의 축축한 두 손만이 그녀에게 준비된 것의 전부였다는 사실을 그녀는 깨달았다. 단단하고 질 좋은 간판들, 자리들, 직위들은 그녀의 것이 아니었다. 그녀에게 무상으로 준비되어 있는 것은 축축한 낯선 남자의 혀, 그들의 축축한 페니스, 그들의 축축하고 끈질긴 시선이었다. 깨달음은 마치 통과 의례처럼 너무도 당연하게 찾아 왔다. 그녀가 자신이 지독한 곱슬머리를 타고났다는 것을 깨달은 것도 그 즈음이었다.

그녀가 만나는 남자는 그러나 그녀가 곱슬머리를 가졌다는 것을 몰랐다. 그 남자는 그녀의 머릿결을 만지는 것을 좋아하지만, 사실 그녀에게는 그 남자의 감정은 거짓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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