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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족


게시판에서 남자친구가 기사연하는 리플들을 줄줄이 달아서 짜증이 났다. 게시판 관리에 일말의 책임을 느끼는 자로써, 아니면 내개인의 취향이겠지만, 알다시피 난 리플 줄줄이를 겁나게 싫어한다. 게다가, 내 이름을 언급하면서라니!!!! 막 화가 나서 뭐라 그랬더니, '통신공간에서 글쓰기에 익숙하지 못한 인간들'이라고 해서 마음이 심란하다.

사실 익숙할려면 멀었다. 지난 금요일 밤에는 안 하던 웹서핑을 했는데, '익숙해지기는 힘들겠다'라고 단정하게 되었다.

많이들 이메일로 보고서를 제출하고, 통신모임이 활성화 되던 때에 변변한 아이디 가진 사람 하나 없는 우리가 웹진을 내게 된 건 순전히 우연이다.
참세상에 모임방을 만든 것도 별다른 구성요건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는데, 우린 먼저 방부터 만든다음 오프에서 아이디 개설하라고 계속 독촉했다. 그래도 오래 걸렸다.

다들, 운동지형은 어떻고, 우리의 미래는 어디이며, 인쇄 잡지는 가까운 미래의 운동수단으로 삼고, 조직은 어떻게 꾸리며, 후원회원, 상근자 등을 논의해댈때, 출처도 모르게 튀어나온 웹진이 중심이 된 것은 혼자서도 꿋꿋이 끝장을 보려던 질긴 년 '딸기'덕이다.

처음 웹진이 뜨고-0호 - 우리 밖에서 반응들이 보이기 시작할 때 많이 놀라고 신기해했다. 처음 인터넷이라는 미지의 공간에 발을 딛고, 그 가능성을 실감했나보다. 그 때 논쟁이 있었는데, 그건 우리의 정체성 때문이었다. 이런 저런 이유에서 처음 뜬 웹진이 글쓴이가 실명대신 통신 상의 아이디로 나갔는데, 이것이 '무책임한 게 아닐까?'라는 문제제기였다. '다른 정체성을 가지고 싶다'와 '자신의 발언에 책임져야 한다'사이에서, '통신공간의 정체성'과 '현실의 정체성'사이에서. 우리는 현실 속에서 자신에게 부여된 이름대신 스스로에게 이름붙이고 싶어했고, 그 새로운 이름들을 책임지기로 했다.

웹진 게시판의 반응들을 기쁘게 맞이하면서, 여러가지 알게 되었다. 자신의 성 정체성을 전면에 밝히지 않아도, 어떤 글 남성이 썼고 여성이 썼는지, 글로 판별할 수 있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보면 알겠는데, 단지 페미니스트의 주장을 옹호한다고 했서 '너의 정체를 밝혀라, 너는 여자임에 틀림없다'라고 공격하는 사람을 보면 웃었다. 여성과 남성의 글을 판별할 수 있게 되면서 이상했던 건, 거창하게 말하자면 '페미니스트 웹진'인데, 여성보다 남성의 글이 더 많은가였다.

'이게 그 원인이다'라고 맹세하라면 머뭇거리겠지만, 여성과 남성의 판단이 갈리는 부분이 있었다.

예전에 게시판에서 '언니'라는 호칭을 쓰던 사람이 '이 게시판은 너무 심심하네요'라고 해서 낯설어했다. 그런 평가를 하는 '여성'을 이전 게시물들에서 만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전의 그 가끔 들어온 여성들은 '너무 공격적이지 않은지'를 조심스럽게 지적했다. 그래서, 그 사람이 어색했는데 그리고 나의 판별력을 의심했는데, 그 다음 다음 글에서 그사람이 단지 '언니'를 사교적인 호칭으로 사용한 남자임이 밝혀졌다. 역시 그랬다고 날 기특해하면서, 확인하였다. '공격적'이라는 걸 판단하는 기준이 다르다는 걸. 그리고, 그 게 글쓰기를 가로막고 있을 수도 있다고. 남성에게 공격적이지 않은 수준 혹은 용인되는 공격성을 포함할 뿐인 댓글이 정작 당사자 아닌 여성에게 공격적이라고 읽힌다면, 당사자가 될 걸 감수해야 하는 글쓰기가 누구에게 더 쉬울까?

잠깐, 그 공격성에 일조한 사람으로 변명을 좀 하고 싶다. 그냥 표정관리하면서 여자친구들 기다리기는 정말 불가능했다고 말이다. 게시판에 등장하는 남자들 글이란, 희박한 동조와 빈번한 '난 페미니즘은 모르지만, 너희 페미니스트는 이래서 안 돼'라는 훈계와 또 빈번한 다짜고짜 비난이라서 그냥 두어도, 마찬가지로 글쓰고 싶은 환경은 안 되었다.

현실에서 싸우고, 욕하고, 빈정대는 걸 배우지 못한 여성들은 사이버 상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현실에서와 같은 기준으로 조심스러워하고 있었다. 공격하거나 받길 겁내하면서. 남성보다 낮은 수준의 공격에도 심각하게 근심하면서 말이다. 사실, 나도 질문을 할 때는 멍청한 질문은 아닐까 근심, 싸우느라 정신없는데 수다는 떨어도 되는지 근심, 대꾸하려할 때는 공격당하지 않을까 근심 이런 저런 근심이 많다. 도대체, 누가 이렇게 나를 눈치준 거지?

사이버상에 여성과 남성의 정체성에 대해 아는 데에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게시판에서 오지 않는 여자친구들을 안타깝게 기다리면서, 고민은 기획이 되어 '앨리스 인 사이버 스페이스'가 되고 '메일링 리스트'가 되었다.

그렇지만, 진짜로 무언가 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든 건 맨 처음의 그 '무삭제원칙-상업광고 외에는'을 바꿔야 겠다는 생각이 든 건 99년 12월 군가산점 위헌판결다음이었다.

게시판에 대한 글을 쓰기로 하고 이전 게시판에서 글 수를 세어봤더니 게시판이 열린 98년 7월부터 99년 12월까지 2년 5개월동안의 글이 99년 12월부터 2000년 2월까지 두 달동안 글의 두배 밖에 되지 않는다. 여성들이 왜 글 쓰지 않을까라는 근심들이 무색하게도-악, 여기에는 글 쓸 수 없어!!!- 그 두달은 끔찍하였다.
온라인으로 휭행하는 협박성, 성폭력성 리플이 오토메일러로 그것도 익명의 게시자대신 관리자의 아이디로 게시판에 글쓴 여자친구에게 날라가서는, 관리자였던 딸기는 해명을 바라는 조심스러운 편지를 받아야 했고, 우리는 오토메일러 기능을 없애버리기로 했다.
끔찍한 두달이었다.

게시판을 열 때 꿈에 부풀어 '우리 반동적인 발언은 게시판에서 '따'시켜요, 호~호'라고 했던 나는, 그 건 이미 포기하고 '제발 여기가 달딸게시판이란 걸 잊지나 않도록'이라는 사명감만 남아있었나 보다. 그 와중에 '이소리'는 남자들에게 '군대'가 얼마나 '감성적'인 문제인지 깨닫고, '묘루'는 남자들의 폭력성은 뭔가 근원적인 게 아닐까 오래전 읽은 책을 소개하고, 우리는 모두 함께 게시판을 고민하였다.

'무삭제원칙'을 지킬 수 없다는 게 가슴아팠다. '원칙'이란 게 주는 단호함 때문이기도 했지만, 이게 일종의 퇴각으로 비칠까하는 것 때문에 침통한 기분마저 들었는데, 그대로 두자고 할 수가 없었다. 우리가 목빠지게 기다리는 여자친구들이 글을 쓸 수 있는 공간이 아니었다. 무슨 내용이 있는 논쟁대신 장악하기 위한 리플들이 내용없이 달렸고, '하하하, 난 이 게시판을 '먹어'버렸다'는 식의 글들이 계속되고 있었다. 읽기조차 불쾌한 공간에 쓰라고 기다리고만 있을 수가 없었다.

게시판을 나누고, 그런 글들을 화장실로 내려버렸다.
달딸게시판에서조차 여성들이 무시당할 이유가 없다!!!

웹진 0호가 나왔을 때 처음 서핑이란 걸 하면서 다른 곳의 '도배'된 게시판을 보고는 끔찍해져서 다시 돌아와 우리 게시판을 자랑스럽다고 생각했었다. 엊그제는 또 다른 게시판을 가서 보고는, 역시 나나 달딸 친구들은 '통신공간에서 글쓰기에 익숙 못한'거라고 생각했다. 너무 쉽게 상처받아서 또 타인에게 이렇게 조심스러운데, 어떻게 '익숙해질' 수가 있을까. '익숙해진 글쓰기'란 게, 먼저 진입한 남성 네티즌들에게 많은 부분 기대고 있을 텐데 말이다.

인터뷰에 앞서 호빵 인터뷰 유김은정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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