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이 '남성'인 까닭?

이 소 리



군 가산점제에 대한 헌재의 위헌 판결 이후 각 통신사의 공개 게시판과 인터넷 상의 웬만한 토론 게시판에서는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글이 올라왔다. 그것들은 대부분 분노한 남성 네티즌들에 의한 것으로, 그 분노는 행자부 홈페이지를 해킹하고 헌재 사이트를 마비시키고 여러 여성 단체와 일부 여자 대학 사이트의 게시판을 폐쇄시킬 정도로 강력한 것이었다. 근 20일 이상 이러한 움직임을 지켜보면서 나는 남성과 여성이라는 주제에 대해 몇 가지를 느끼고 깨닫고 의문을 품게 되었다.

첫째, 군대란 남성들에게 대단히 정서적인 주제라는 것이다. 남성들은 비교적 감정적인 주제를 꺼리고 정서를 표현하는데 서투르다고 알려져 있지만 군대라는 주제에 관한 한 결코 그렇지 않다. 많은 남성들이 이러한 주제를 즐길 뿐 아니라 민감하고 풍부한 감정을 표현한다.

둘째, 남성들이 여성들에 대해 실제로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는가에 대한 것이다. 그것은 자주 폐쇄되기도 했던 일부 여자 대학 사이트와 여성 단체의 사이트에 올라오는 남성 네티즌들의 글을 통해 파악할 수 있었다. 어떤 종류의 욕설들과 비하적인 표현들이 많은 남성들에게서 자연스럽게 일치되고 반복되는 것을 보면, 이것이 얼마나 광범위하고 오랜 전통을 가졌는지 알 수 있다. 단지 그것을 여성들의 면전에서(유사시를 제외하고) 숨겨왔을 뿐이다. 예컨대 내가 오늘 아침 일 때문에 만났던 그 남자는 겉으로는 나에게 친절하지만 사실은 여자들이란 단지 비루하고 성적인 존재일 뿐이라고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셋째, 여성의 경우와 비교할 때 남성들에게는 자신의 성 자체에 대한 정체감이 매우 높게 형성되어 있다는 것. 그래서 그들에게는 어떤 종류의 해학의 감각이 부족하다. 서로 지독한 언어 폭력을 휘두르기도 하고 다른 모든 것에 대해 비아냥거릴 수 있으면서도 남성이라는 스스로의 자부심에 흠집을 내는 약간의 표현에 대해서도 발끈 한다. 반면 여성들은 자신들에 대한 비하감에 대한 역치가 매우 높다. 늘 들어왔기 때문이기도 하고 여성이라는 젠더 자체가 형성하는 정체감이라는 것이 긍정적이거나 뚜렷하게 존재하는 것이 아니어서 그럴 수도 있다. 한 여성이 '나는 여성이고 그래서 자랑스럽고 기쁘다'라는 의식을 갖고자 한다면 그녀는 스스로 노력해서 그것을 쟁취해야 한다. 그러나 한 남성이 '나는 남성이고 그래서 부끄럽고 슬프다'라는 의식을 갖으려면 역시 상당한 시간과 경험이 필요하다.

넷째, 여성들의 목소리가 어떻게 공적 영역에서 사라지는가 하는 것이다. 분노한 남성 네티즌 군대가 여성 게시판을 포함한 온갖 게시판을 휩쓰는 동안 여성들은 무엇을 했는가? 침묵했다. 수백통의 폭탄 메일과 욕설과 협박을 포함한 수백건의 반박 게시물을 경험한 처음 며칠 이후 여성 토론자는 거의 자취를 감추었다. 누구도 그 난리통에 나서서 벌집이 되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많은 남성 토론자들이 여성 게시판이 폐쇄되고 남성 토론자들의 글만으로 채워지는 사태에 대해 '스스로를 지키지 못한다면 당해도 할 수 없다'는 의견을 내었다. 그러나 남성이 숫적으로 압도적이고, 공격적인 토론 관행과 폭력적 언어를 전유하고 있는 상황에서 여성들은 '스스로 사라지는 것'이 차라리 나았다. 결국 이렇게 해서 여론은 '남성'이 되는 것이고 첨예한 공적 이슈에 관해 여성의 의견은 반영이 되지 못한다. 흔히 여성의 온라인 진입 장벽을 지적하지만 힘들게 사이버 스페이스에 진입하고 나서도 여성은 몇 겹의 장벽을 더 만나는 셈이다.

다섯째, 이건 정말 자다깨어 생각해도 모르겠는 일인데, 애초에 왜 이 문제가 이와 같은 남녀 대결 구도로 갔어야 했냐는 것이다. 처음에 이것은 군복무에 대한 보상의 문제였다. 쟁점은 현행 군 제도에 대한 혁신이 되어야 마땅했다. 그런데, 이것이 어째서 남성에 대한 (이미 사이버 스페이스에서는)존재하지도 않는 여성에 대한 공격의 양상으로 드러나야 했는가? 군가산점 폐지에 반대하는 사람들의 분노가 여성들에게로 향해면서 이익을 보는 건 결국 누구였을까? 이것은 사실 고도로 계산된 어떤 종류의 음모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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