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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ROUGH THE LOOKING GLASS
여성적 글쓰기는 어떻게 가능한가?
웹진 <달나라딸세포>는 처음부터 독자층을 '페미니즘에 호의적인 젊은 여성'
으로 한정지었다. 당시 인터넷 유저의 여성 비율을 생각하면 그것은 아주 얇
은 층이었어. 쵸코 쉬폰 케잌에 체리 크림을 바르는 것 보다도 얇은 층이야.
우리는 무슨무슨 동호회나 무슨무슨 팬클럽처럼 관심있는 사람들만을 위한
웹진을 생각했어. '여성'이라는 주제에 대해 관심있는 여성들의 작은 클럽.
배타적인 원리로 기획된 이 프로젝트에 대해 내가 열정적으로 흥미를 가졌던
부분은 이런 거야. "여성들이 여성독자를 상정하고 글을 쓸 때 그 글쓰기가
과연 달라질 것인가? " 글쓰기, 그리고 글읽기는 오랫동안 권력의 자장 안에
서 작동했고 그것은 남성적 영역에 머물렀다는 뜻이기도 하다. 어느날 우리
가 세상에 차고 넘치는 글들을 성별화해서 보려고 한다면, 기묘한 사실을 발
견하게 될 지도 몰라. 압도적인 비율의 글들이 남성에 의해서 쓰여지고 있고
(특정 영역을 지정하면 더더군다나) 그리고 그것이 상정하는 이상적인 독자
역시 남성이라는 것. 여성 독자인 내가 일차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전제와
수사, 동의할 수 없는 영역에 집중된 관심, 짐작할 수 없었던 방향으로 전개
되는 논리, 반발하게 만드는 비유와 어투 등, 여성을 배제하거나 차등화 하
는 장치들은 수없이 찾아낼 수 있다.
그것이 뒤집어지면 어떨까, 하고 생각했어. 공정하고 중성적인 글쓰기가 아
니라, 여성에 의한 여성을 위한 배타적인 글쓰기를 하려고 한다면 우리가 보
여줄 수 있는 세계가 달라질까? 그러나 그것은 어려운 일이다. 만약 당신이
남성적으로 배타적인 글을 쓰고 싶다면 그냥 그대로 쓰면 된다. 필요한 것은
'무신경함' 뿐. 그러나 기어코 우리가 여성적으로 배타적인 글을 쓰려고 한
다면, 우리는 우선 문자를 쓰거나 읽을 때 자동적으로 빌려입는 '남성의 몸'
으로부터 빠져나와야 한다. 그것은 자기에게 익숙한 살을 벗겨내는 것처럼
어렵고 아픈 일일 것이다. 이 과업에 성공한다고 해도, 자, 그리고는 어디로
갈까? '여성적'이라는 지명의 땅은 지도에는 표시되어 있지 않은 신대륙이
다. 어쩌면 아예 없는 건지도 모르지.
'여성적 글쓰기'를 하는 게 아니라 하려고 노력하면서 우리는 몇 가지 단서
에 주목했어.
여성인 우리에게 필요한 주제들. 그것은 이미 있기도 하고, 이미 있는 것의
다른 면을 보는 것이기도 하고, 무시되어 온 것을 개발하는 일이기도 했다;
남한에서의 제 2세대 여성운동, 페미니스트 포비아, 여러가지 종류의 성폭
력, 사이버 페미니즘 같은 페미니스트 이슈들/ 군가산점 문제, 청소년 문제,
여성적 시각의 문화비평 등/ 사적이고 작은 역사들, 일상에 대한 여성적 통
찰, 수다, 여성의 성욕 등
여성 독자만을 상상하는 것은 우리 글의 성격을 설득이나 주장보다는 공감에
호소하는 경우가 많게 한 것 같아. '사적이다', '솔직하다', '자유롭다', '
선정적이다' 라는 등의 독자들의 평가(설문결과 참고! )역시 이와 같은
설정에 영향을 받은 결과들이라고 생각해. 적대적이지 않고 나와 어느 정도
경험을 공유한 독자에게 글을 쓴다고 생각하면, 이제껏 해온 것보다 방어적
인 면을 많이 떨치게 되지. 또 처음부터 꼼꼼히 설명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
게 되면서 대신 한 발자국을 더 갈 수 있게 되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어려
운 단어나 개념을 별로 많이 구사하는 것이 아닐 때조차 '쓸데없이 어렵다'
고 지적을 받는 것은 아마 우리가 이런 식으로 글을 쓰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겠지.
달딸에다 글을 쓰는 주체로서의 난다 역시, 안에서 여러가지 변화들이 일어
나는 것을 느꼈어. 아주아주 자잘한 것이고 의미심장하지 않은 것일 수도 있
지만, 난다에게는 아주 흥미롭고 신나는 일이었어. 내가 새로 즐기게 된 말
놀이들. 우선, 주어. 난다 글쓰기의 주어들은 언제나 고정되어 있지 않아. '
난다' 이기도 하고, '그녀' 이기도 하고, '나' 이기도 하고, '우리' 이기도
하고, 자주 주어를 빼버리기도 해. 예전부터 나는 글을 쓸 때마다 '나'라는
주어를 거추장스럽게 느꼈거든. 어떨 때 그것은 불필요하고, 내가 표현하려
고 하는 것보다 훨씬 고정적이고 폐쇄적인 느낌을 주었어. 또 한편, 글 쓰는
필자-느끼거나 생각하는 자아-묘사되는 객체로서의 나-등등 수많은 '나'들의
차이와 거리를 지워버리는 것이 늘 아쉬웠거든. 주어의 이러한 변화는 글에
서 드러나는 일인칭의 주체를 고정되어 있는 단단한 개체가 아니라 여기저기
편재하는 덩어리로 느끼게 한다. (전외디푸스적 주어 라고나 할까? ^^;;;)
또한 우리 말의 한정된 글쓰기의 문형에 얽매이지 않고 구어체로 글을 쓰게
되면서 글 쓰는게 더 쉽게 느껴졌어. 하나의 글이 완결시키려는 글의 형태에
서 나오는 동력보다 누군가가 내 이야기를 듣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훨씬
더 강한 힘을 주기 때문인 것 같아. 이렇게 글을 쓰게 되면서, 글이라는 것
이 글자들의 조합이 아니라 연속되는 목소리, 목소리의 다발이라는 느낌을
더 가지게 되었는데 이것은 글쓰기의 원천을 훨씬 더 육체적이고 구체적이고
부드러운 것에서 찾게 해. 또 한편 이건 내 바램에 더 가깝지만 구어체로 쓸
때는 필자와 독자와의 관계가 재설정된다는 느낌이 들어. 그렇지 않니? 필자
가 독자에게 뭔가 알려준다거나 널리 주장한다거나 뭐 그런 느낌보다 그냥
똑같은 높이에서 이야기한다는 기분-그렇지만, 반말로 쓰는 거라서 사실 독
자를 존중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면 어쩌지, 하는 약간의 저항감은 나도 가
지고 있어.
가장 즐거운 기회 중의 하나는 글쓰기의 형식을 다양하게 할 수 있었다는 건
데, 예컨대 이런 것들; 달딸에서는 '조각이불적 글쓰기' 라고 불리는 비연속
적인 글쓰기-<딸됨의 정치학을 위하여>,
<사이버공간에서조차 우리는
여성이어야 하는가?>등. 이것들은 내가 선형적으로 쓸 수 있다는 자신
이 없었기 때문에 이렇게 쓰여졌다. 글 쓰는 사람은 나지만 글에 들어갈 내
용들이 나로부터 나온다고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에, 서로 다른 스타일을 요
구한다고 느꼈기 때문에, 다성적 글쓰기를 담을 수 있는 형식을 원했었거든.
그리고 완전 왕수다 스타일-달딸 미팅,
흐흐 아가씨. 이거야 뭐 아주 재밌다
구. 여러분도 한번 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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