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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ROUGH THE LOOKING GLASS
여성적 글쓰기는 어떻게 가능한가?
달딸의 글쓰기가 독자들과 만나면서 우리는 몇 가지 사실을 새롭게 혹은 새
삼스럽게 발견했어.
'사적인 주제를 다루더라도 그것이 사회적인 주제가 된다'는 소수 집단 글쓰
기의 특징을 경험할 수 있었던 것. 그것을 처음부터 의도하지는 않았기 때문
에 즐거운 놀라움을 느낀 적도 많았어. <나의 무기>,
어머니>라는 특집에서
특히 그랬지. 우리가 불완전하거나 빈약하게 내어놓은 그 특집이 독자들에게
서 완성되는 모습은 아주 고맙고 기쁜 거였어.
여성 독자들의 글쓰기는 언제나 우리를 고무시켰는데, 그것으로부터 우리는
'글쓰기에 대한 여성의 욕망'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어. 그것은 아주 오래된
것이고 자주 비하되어왔지 (흔히는 수다라는 이름으로 불리우고). 글쓰기가
자아를 확인하는 과정인 동시에 자아를 확장시키는 과정이기도 하다는 것을
우리는 쭉 목격해왔어. 여성전용게시판이라는 시도는 그래서 더욱 소중하고.
최근에 나는 달딸이 내포하고 있는 혼란 중의 하나를 깨달았다. 여성이라는
주제와 여성이라는 주체의 혼란. 처음에 우리는 여성이라는 주제로 시작했는
데 이제는 점점 생물학적인 여성이라는 주체로 기울어져 간다는 느낌을 받는
다. 왜 이러한 경향이 생겨났을까? '여성적'이라고 하는 아직 존재하지 않는
무언가를 찾아가는 것보다 이미 존재하고 있는 생물학적 여성에 소구하는 것
이 더욱 손쉽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고, 처음에 우리가 막연히 개념적으로 생
각했던 것보다 여성이라는 조건에 대해 더 구체적인 태도를 갖게 되었기 때
문이기도 하고, 독자들의 존재가 달딸에서 더욱 커져가기 때문이기도 한 것
같아. 이 문제에 대해서는 계속 생각해봐야겠지만, 어쨌든 이 혼란은 그 자
체로 좋거나 나쁜 것은 아니고, 또 명쾌하게 분류되어야 하는 성질의 것도
아닌 것 같아. 다만 이런 종류의 긴장은 계속 품고 갈 수 있어야 하고, 매번
적절하게 조정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한 사람이 쓴 거 아니야?" 웹진을 내고 나서 가끔 들었던 말이야. 심지어
우리는 서로서로 비슷하게 생겼다는 말도 많이 듣는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
면 웃고 말지만, 사실 이것은우리가 가진 가장 심각한 한계 중의 하나야. 처
음부터, 우리가 또 내가, 인터넷의 바다에서 찾고 싶었던 것은, 그 무엇보다
도 '나와 비슷한 친구들'이었거든. 거울을 보려고 하는 자기 동일성의 욕망.
이것이 점점 더 굳어지고 타자성에 대해 닫혀가는 것을 우리는 염려스럽게
생각해. 동일성에 대한 이러한 열망은 우리가 사회적으로 불분명한 정체성을
가진 소수 집단이라는 조건으로부터 비롯되는 것이라는 걸 알고 있어. 자기
정체성과 사회적 인정에 대한 추구라는 것은 어떤 단계에서는 분명 필요한
것일거야. 그렇지만 우리가 하는 이 모든 일이 결국 어떤 변화를 위해서 시
작된 것인 이상 우리가 '타자'와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편안한 자기
동일성 안에 계속 머무르려고 하면 곤란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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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뿌려진 수많은 거울들. 나는 언제나 세계의 크기를 생각할 때마다
그 거울들이 비춰내는 다른 세계까지 포함시키곤 했다.
우리가 하는 일이 얼마나 작을까? 이 일이
세상을 변하게 하는데 도움이 될까?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 작은 매체가 하나의 거울이라면
이 거울이 좀 다른 세계를 비추게 함으로써 우리가
세계의 작은 조각을 변하게 하고 있다고 나는 믿는다.
내가 자꾸자꾸 들여다보곤 하는 작은 거울은 다른 것과 좀 달라서
거기에는 다른 것에서는 잘 볼 수 없었던 여자들이 많이 보이고
(앨리스에게 그랬던 것처럼) 가끔은 문처럼 열려서
내가 그곳에서 다른 여자들과 만나고,
쉬고, 웃고, 더 강해지고 그럴 수 있다. 그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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