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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탄실 김명순 최초의 여성작가인 김명순은 1897년 갑부인 아버지(김희경)와 기생인 어머니(안타깝게도 이름을 알 수 없다.)에게서 태어났다. 적자(赤子)는 아니지만 부자였던 고로, 그녀는 남산현 학교와 예수교학교를 거쳐 서울 진명여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다. 진명여학교를 졸업한 후에도 공부를 계속할 뜻으로 2차례의 동경유학을 가는데, 유학도중 관계했던 동경유학생친목회 와의 인연으로 「청춘」,「신여자」,「창조」등에 글을 기고하게 되었으며, 1917년 「청춘」이 내건 최초의 현상 문예모집에서 3등을 하면서 문단에서 주목받기 시작하였다. 탄실의 삶은 아버지의 죽음으로 급격하게 전환되었다. 서녀(庶女)로서의 출생에 대해 엄청난 컴플렉스를 가지고 있던 그녀는 악착같은 공부와 공부할 수 있는 배경이 되는 부(副)를 통해 이를 덮고자 했다. 하지만 적자인 오빠에게 아버지의 모든 유산을 빼앗긴 후, 그녀는 자신의 부(副)가 `아버지'의 사랑이 아닌 `후덕한 부자'의 배려에 불과하였다며 절망과 환멸을 가지게 된다. 그 후 일생동안 그녀는 `기생인 어머니와의 동일시를 거부'했으며, `가부장제에 대한 적대의식을 갖게 되었다'. 봉건제와 가부장제 하에서의 `여성의 위치'를 깨닫게 된 것이다. 나는 남만 못한 처지에서 나서 기생의 딸이니 첩년의 딸이니 하고 많은 업심여김을 받았다. … 지금의 한마디 욕, 한치의 미움이 장차 내 영광이 되도록 나는 내 모든 정력으로 배우고 생각해서 무엇보다도 듣기 싫은 `첩'이란 소리를 듣지 않을 정숙한 여자가 되어야 겠다. - [김탄실], 194쪽 이와 같은 한(恨)은 새로운 사랑과 연애에 대한 갈망으로 바뀌었다. 새로운 사랑만이 기존의 기형적인 부부관계를 떨치고, 개인의 자유를 구가시킬 수 있는 틀이라는 생각에서였다. 개인의 정체성을 완성시킬 수 있는 추상적인 사랑에 대한 집착은 엘렌케이의 사상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다. 엘렌케이는 `연애가 있는 결혼은 덕(德)이요, 연애가 없는 결혼은 부덕(不德)이다'라고 말하면서, 자유로운 근대적 주체인 두 남녀의 만남만이 올바른 것이라고 주장했다. 나혜석과 김원주 역시 엘렌케이 사상을 받아들이고 있다. 자유로운 연애가 곧 개인의 해방이요, 이를 깨달은 자가 신여성인 셈이다. 김명순은 자유연애를 극도로 부각시키기 위해서, 거의 모든 소설에 유부남-처녀, 유부녀-미혼남, 유부남-유부녀의 사랑관계를 등장시켰다. 탄실을 비롯한 그 당시 신여성들의 생각에 연애감정없는 결혼은 매음에 다름 없는 것이었기 때무이다. 바로 이런 강조가 김명순 더 나아가 신여성에 대한 비판을 `성적담론'으로 옮겨놓을 수 있는 꺼리를 제공한 것이다. 봉건제적 가족에 대한 이같은 도전은 추상적이고 지엽적인(중산층에 기반한) 현실 파악에 기반한 한계를 지니는 것이었지만, `문학'이라는 당시의 파급적인 동일기제를 통해 주장한 것이기에 심각하게 받아들여졌다. 일제말기 봉건제 사회는 김명순에 대해 `방탕하다'는 낙인으로 맞섰다. 이명온은 「흘러간 여인상」에서 김명순이 현실에서도 사랑을 갈구하느라 방탕했음을 여러 장에 걸쳐서 강조하고 있다. " 김명순은 일찍 어머니를 잃고 계모 밑에서 불행한 소녀 시절을 보내다가 당시 동향인이며 평양의 부호 화백인 김유방의 도움으로 서울에서 이화학당을 다니며 문학에 전념한 것인데, 그가 외로운 환경에서 발견한 것이 문학이요 그 보호자의 역할을 한 사람이 김유방이었다.‥‥이러한 문학소녀와 처자가 있는 김유방은 끝내 동거생활까지 했었다. 김명순은 김유방에게 순수한 사랑을 바쳤으나 김유방은 자유주의자요 한 여성에게 자기의 생활을 전부 바치는 남성이 아니었다. … 이렇게 배신을 당한 김명순은 동경여자전문학교에 입학했고 김유방의 부탁을 받고 동경에서 그를 도와준 …임노원과 친숙하게 되고 사랑하는 사람이 되었으나 … 이때부터 김명순은 그의 사랑을 충족시켜줄 상대자를 찾아 해매게 되었고 귀국한 후 … 남성 문인들과 어울려 방종한 생활을 계속하다가 사생아까지 낳고 " 또한 김동인은 김연실 즉 김명순을 서구적 자유주의 사상을 아무 비판없이 잘못 받아들이고 한국적 여성의 미덕을 전적으로 거부하고 방종한 생활을 한 데서 온 비극의 희생자로서의 선구사상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런 인물들을(자각한 신여성을 의미) 가정 안에 벌써부터 넣어버린면 이 사회운동은 누가 해놓을는지요. 조선의 가족제도가 좀 웬만할 것 같으면 결혼은 하고도 일을 못할 바 아니지만…아마 우물에 빠져서는 우물물을 치지도 못하고 제방을 다시 못할걸요. 좀더 사회에 내놓아보시지요.
여성이 사회운동을 해야할 필요성과 여성의 자각을 강조한 그녀의 말은 소설상의 강조된 모티브(통상적 의미에서의 불륜관계)와 그녀의 개인적 삶에 대한 왜곡된 부각으로 인해 합당한 주장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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