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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나라에서 글쓰기 - 나는 세계의 속살을 만진다(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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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낮은 밤의 지배를 받지 못한다. 하지만 날이 어슴푸레 해질 무렵이 되자 어쩐지 마음이 뒤숭숭해지면서 일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 나는 욕먹을 것을 각오하고 일하는 곳에 전화를 하여 하루를 쉬겠다고 말한다. 함께 일하는 남자아이는 짜증이 가득 섞인 목소리로 알겠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 부드럽고 연한 밤에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 잊어도 될만한 혹은 잊어야 할만한 일을 저질러야 할 것인가. 나는 잠시 갈등을 하다 수화기를 든다. 그에게 전화를 한다.
그 남자와 관계를 갖기로 마음을 먹고 여관을 찾아든다. 나는 일부러 구석진 후레한곳으로 들어가자고 그를 졸랐는데 그건 좀 더 사건을 비극적으로 만들어 기억에서 잊혀지지 않도록 하고 싶었던 무의식의 요구였던 것 같다. 섹스를 전제로 하지 않은 잠자리를 우리는 여러 번 가져왔다. 돌발적인 사건이 일어날 법하지 않았던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그의 애무보다 그의 팔베개가 더 좋았고 머리를 어딘가에 대기만 하면 잠이 들어버리고 마는 습관마저 가지고 있어 그는 늘 그런 나를 내려다보다가 지쳐 잠이 들곤 헸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내가 그와 아직 관계를 가지지 않은 것은 나의 순결 의식이라던 지 도덕성 때문이 아니라 순전히 그럴 마음이 없었기 때문이라는 사실이다.
어떤 이유로 여관을 찾아들건 그건 집에 못 들어간다고 전화를 해야하는 일 만큼이나 불편스러운 구석이 많다. 여관 입구에 들어설 때부터 그 불편함은 시작된다. 살집이 디룩디룩한 나이 먹은 여관 주인은 '너같은 딸년이 있었으면 콱 죽여버렸다'는 경멸의 눈빛으로 나를 바라본다 - 여기서 주목할 사실은 순전히 나만을 그렇게 바라본다는 것이다. 그건 참 수치스러운 일이다. - 아직 한번의 불편함이 더 남아있는데 그건 그가 돈을 치를 때이다. 그 돈이 나의 돈이던 그의 돈이던 나는 무조건 그에게 돈을 치르라고 하는데 그럴 때마다 정말 창녀가 되는 기분이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그 기분이 불편하긴 하지만 무작정 나쁘지만은 않다. 인간에겐 모두 추락의 욕구가 있는 듯하다. 그런 불편함을 모두 견디고 나면 이젠 어색함이 기다리고 있다. 뭐 사실 어색함이랄 것까지도 없지만 오늘은 좀 그러하다. 내가 작정을 하고 시작한 일이니. 사실 난 그저께 시집간 언니 집에 가서 언니가 잠시 집을 비운사이 화장대 서랍에서 콘돔 한 박스를 발견했다. 그건 신선한 충격이었다. 섹스가 생활이 되었다는 명백한 증거. 그것은 묘하게 나를 충동질했다. 나는 그 중 하나를 꺼내 나의 백 속에다 넣어두었다. 그렇게 만반의 준비를 갖추었다는 사실을 그는 모를 것이다. 그건 잘 된 일인지도 모른다. 돌발적인 건 언제나 충격을 준다.
그가 텔레비전을 켠다. 그건 어색함을 없애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나는 슬쩍 콘돔이 들어있는 화장품 케이스를 탁자 위에 올려놓는다. 무슨 심야 토론인 듯한 프로그램이 여기저기서 방송된다. 나는 그에게 다른 곳을 틀어보라고 말한다. 채널을 돌리다가 그의 손은 화면의 한 부분이 모자이크로 처리되 방송되고 있는 한 프로그램에 고정된다. 내가 생각하기에 그의 손이 그 채널에서 멈춘 건 내용을 알게 되어서 가진 흥미라기보다 순전히 화면의 반을 가득 채운 모자이크 때문인 것 같다. 그러고 보면 진술자의 신변을 보호하기 위해 마련 되었을법한 모자이크나 음성변조는 보고있는 사람에게 어떤 진실에 도달하게 된다는 은밀함을 주는 것으로 더 적절하게 사용되는 것 같다. 모자이크의 주인공은 실루엣만으로도 10대임을 명백히 알 수 있게 하는 여자아이이다. 변조된 음성은 그녀를 여섯살 정도의 아이로 착각하게 한다.
"죄책감 같은 거 안 들어요? 생명을 죽인다는 생각 안 해봤어요?"
기자인 듯 싶은 사내의 음성은 다분히 감정적이다.
"처음에는 그랬는데, 남들 다 그러니까. 어쩔 수 없잖아요."
변조된 음성은 이제 급기야 오리소리 같다. 그나마 대화가 화면으로 나와주는 것은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나는 그들의 대화에 까닭 없이 진지해져 주목한다. 그가 가만히 팔을 어깨에 두른다. 끌어안으려는 듯한 그를 가만히 뿌리친다. 카메라는 어느덧 내레이터의 일부러 무게를 넣은 목소리와 함께 낙태시술을 해 준다는 병원과 조산원 등을 훑어낸다. 시계를 들여다본다. 이 프로그램은 시작 무렵이다. 잠시후 여덟 번이나 애를 떼었다는 한 40대의 주부와 의사와의 대화가 나온다.
" 아줌마는 이 병원에서만 벌써 여덟 번이에요. 주의하셔야지요."
" 일부러 그러는건 아니고......"
모자이크 속의 그녀의 얼굴이 선하다.
" 도대체 피임을 안하세요? 왜 안하시는 거예요? 남편 되시는 분이 싫어해요? 이러다 자궁에 구
멍나면 어쩌려구 그러세요?"
쏟아지는 여 의사의 질문공세. 내가 다 당황스럽다.
화면이 바뀌며 SF 영화에나 울려퍼질듯한 장중한 음악이 이 사회의 비극성을 암시하는 듯 울려 퍼지며 내레이터의 과묵한 목소리를 받쳐준다.
" 이 40대의 주부는 단 한번도 피임을 한 적이 없습니다. 8번이나 애를 뗀 이 주부에게 낙태는
어쩔 수 없는 절박한 상황에서의 마지막 선택이 아니라 피임의 대용물 이었을 뿐입니다."
심각한 경고의 메시지를 담은 듯한 그의 목소리는 자못 위협스럽기까지하다. 나는 잠자리에서 알몸으로 애인에게 피임의 중요성을 진지하게 말하는 그의 모습을 상상한다. 우습다. 피식피식 대던 나는 너무나 우스꽝스러워 침대위로 벌렁 자빠진다. 쓸데없이 진지한 내 모습을 지겨워하고 있었던지 그는 반가운 듯이 왜 웃냐고 말한다. 나는 그 이유를 말하지 않는다. 내 옆에 누운 그는 내 머리에 팔을 들이민다. '당신은 절대 이해 할 수 없어.' 나는 속으로 중얼거린다. 아니다 그도 이해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가 남은 한 팔로 나의 허리를 끌어안는다. 그의 더운 입김이 귀에 와서 닿는다. 그의 허리선 너머로 낡은 탁자가 보이고 그 위로 콘돔이 들어있는 화장품 케이스가 주인을 기다린다. 나의 콘돔은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정말 그러할까? 이상한 의문에 웃음이 나오려는 것을 신음소리로 착각했는지 그는 몸을 밀착해온다. 그의 입술이 귓볼에 닿는다. 아직도 TV는 여성들의 땅에 떨어진 도덕성을 낙태로 압축시켜 질겅거리며 씹고 있다. '맛있기도 하겠군.' 난 여전히 속으로 비아냥거린다. 그를 밀어내며 속삭인다.
" 씻고 와. "
단 한번도 이런 류의 말을 한 적이 없었기 때문인지 그는 당황한다. 하지만 이내 상황을 파악했다는 듯 미소를 띄고 일어나 나를 향해 웃는다. 순간 그가 돼지고기의 비계덩어리처럼 느끼하게 느껴진다. 욕실에서 물소리가 난다. TV는 아직도 질겅댄다. 참 재수도 없다. 하필 오늘, 하필 그런 주제로, 그와 잘 마음이 싹 사라진다. 한쪽에서 낙태 따위를 지껄이는 분위기에서 그를 안고 싶진 않다. 언젠가 이루어 질 지도 모르는 나의 낙태도 그의 무책임한 정자와 상관없이 질겅거림 당할 것이므로. 그건 참 불쾌한 일 이리라. 콘돔에게 미안할 뿐이다. 나는 잠든 척 한다. 그가 내 옆으로 와 눕는다. 예의 한쪽 팔을 머리 밑으로 집어넣는다.
잠든 척 한 채로 그의 팔을 베고 누워 그 여자를 생각한다. 그 여자의 무분별함이 그 여자를 외롭게 한 것이라고, 그러므로 나는 무분별하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외로움은 밤의 속살처럼 여리다. 하지만 어떻게 무분별하지 않을 수 있을까. 온몸으로 빨아들인 듯 붉은 그녀의 외로움이 도리어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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