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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나라에서 글쓰기 - 나는 세계의 속살을 만진다(2)
 
후텁지근하다. 이런 날씨가 여름의 단점이다. 온몸이 바싹 마를 듯한 더위는 소독하는 셈치고 참을 수 있다. 하지만 물기를 가득 머금은 이런 날씨는 정말 싫다. 바람이 불고 지나갈 때마다 온몸에 끈적이를 묻혀놓고 가는 것 같다. 12시를 넘어갈 때쯤 한참 손님이 많은 시간을 정신없이 보내고, 물건도 다 들어온 후에는 함께 일하는 남자아이와 번갈아가며 창고에서 눈을 붙일 정도의 여유가 생긴다. 어제 날이 새도록 술을 마셨다는 남자아이는 일을 시작할 때부터 피곤한 듯 눈을 부벼대며 오늘은 자신이 쉬어야함을 강조한다. 그래 들어가라, 태연한 척 고개를 끄덕이지만 속이 부글거린다. 누가 쉬는가, 누가 먹는가, 등의 생존적인 문제에서 생면부지의 사람에게 양보를 하는 것은 양심과 상관없이 화가 나는 일이다. 여하튼 나는 느긋하게 카운터를 보며 음악의 볼륨을 올리며 밤의 냄새를 들이 맡는다.
'후두둑'
갑자기 무언가 빠르게 떨어지는 소리가 난다. 놀라 밖을 내다보니 사람들이 뛰고 있다. 비가 오나 보다. 하루 내내 물기를 머금고 있더니 이제 급기야 그 무게를 견디지 못했나 보다. 갑작 스런비. 상쾌하다.
상쾌함을 느끼는 것도 잠시, 비 피할 곳을 찾지 못한 사람들이 이내 들이 닥친다. 급한대로 우산을 사는 사람도 있고, 차마 우산을 사기는 억울한지 라면을 먹으며 투덜대는 연인도 있다. 30분쯤 지났을까. 정말 지나가는 소나기였던지 비는 그친다. 그리고 사람들도 제 갈 길로 간다. 나는 사람들이 저들의 흔적인 양 과장스럽게 뿌려놓고 간 빗물들을 걸레로 훔쳐낸다. 막상 혼자 있자니 무섭고 외로워진다. 순간적으로 비가 한번 더 와서 가게가 북적대길 기대해 본다. 바보 같으니라고. 생판 모르는 사람들에게 위로를 받으려하다니. 살짝 머리를 쥐어박는다. 그러던 차 며칠전 그 여자가 들어온다. 머리를 흠뻑 비에 적시고 옷에서 물을 뚝뚝 떨구고. 나는 놀라움과 당황스러움이 반쯤씩 섞인 표정이 된다.
"잠깐 있다가도 되죠?"
비에 젖은 그녀의 머리칼과 옷가지처럼 그녀의 표정은 젖어있다. 목소리도 침울하다.
"네."
나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군다. 그렇게 하는 것이 그녀를 위한 것인 듯도 하다.
"뜨거운 커피 드실래요?"
과잉친절일까? 아니다 이 정도는 괜찮지 싶다.
"……."
감격 받았다는 듯한 그 여자의 표정에 나는 순간 아차 한다. 이렇게 틈을 보이면 안되는데. 언제부터 이렇게 사람들을 상대로 인위적인 거리 두기를 해 왔던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커피를 뽑아다 손에 쥐어주자 그 여자는 눈물을 글썽일 것만 같은 표정으로 나를 본다
"고마워요. 정말 친절하시군요."
"뭘요."
"비가 오는데 우산은 없고, 택시를 잡으려고 뛰어가면 날쌘 사람들이 나를 밀치고 차를 집어타
더라구요. 걷다보니 옷은 비에 다 젖고, 비도 그치고 그랬는데 나만 혼자 비에 다 젖어서는,
너무 춥더라구요."
그녀 특유의 웅얼거림이 시작된다.
"아, 네."
"어느새 걷다보니 여기까지 왔어요. 뭘 좀 먹어야 되는데. 어지러워서 원. 뭐 좀 같이 먹을래
요?"
여자는 어느새 식료품 진열대 앞에 있다.
"아니, 저, 저는 근무시간이라서..."
내 이야기는 듣는 둥 마는 둥 이다.
"오늘은 좀 바삭한 걸 먹고 싶은데."
여자의 눈은 생기로 빛난다. 계산을 마친 여자가 먹는 양을 지켜보며 어떤 목메임을 느낀 것 같기도 한데. 모르겠다. 먹는 내내 여자는 중얼댄다. 내용과 상관없이 그 중얼댐이 주는 묘한 분위기에 이끌린다. 그 과장스러움 속에 숨은 막막함. 구멍이 숭숭 뚫린 무우처럼 막막한 바람소리가 들린다. 그 순간 느낀 감정이 왜 동정이나 안타까움이 아닌 어떤 동질감 이었는지.
"부산에서 왔어요. 여기 서울에 온 지는 1달 정도 되었고요. 지금은 12시간씩 옷가게에서 일해요. 그리고 오늘 사귀던 남자와 헤어졌어요."
비대한 몸으로 옷가게를 헤집고 다닐 그 여자를 상상해 본다. 왠지 믿어지지 않는다.
"그 남자는 ……"
말을 잊지 못하는 여자. 나는 난감해 진다.
"저 근데 어디쯤에 사세요?"
나는 화제를 돌린다.
"아, 요 앞 건널목 건너서, 골목따라 가다보면 있어요. 혼자 살아요."
"그렇군요."
더 이상 돌릴 화제가 없을까. 나는 여자의 헤어진 남자의 이야기를 듣고 싶지 않다. 진심으로. 순간 여자의 눈이 반짝 빛난다.
"일 몇 시에 끝나요?"
"네? 아, 저, 4시요."
"몇 분 안남았네요. 우리 집에 가요. 맛있는 거 사가지구 가서 같이 자요."
무슨 소리인지. 당황스럽다. 어떻게 해야하나. 무례하기까지 한 여자의 요구에 적당히 대처하지 못하는 내 모습에 더 화가 날 지경이다.
"그러죠, 뭐."
그 여자의 말보다 더 당황스러운 대답이 내 입에서 흘러나간다. 뭐에 홀린것 처럼 대답을 해 버리고 좋아라고 먹을것들을 주섬거리는 여자를 보며 망연해진다. 확실히 자기 통제가 안되는 날인 듯 하다.
30분쯤 남은 근무시간 동안 나는 함께 일하는 남자아이를 깨운다. 그리고 그 여자는 시간이 부족하다는 듯 몇 번이고 시계를 들여다 보며 분주하게 먹을 것들을 주워섬긴다. 창고에서 부시시하게 나온 남자아이는 열중하며 뭔가를 고르는 그 여자를 턱짓으로 가리키며 거만하게 묻는다.
"쟨 뭐야?"
재수 없는 폼에 따귀라도 갈겨주고 싶다.
"내 친구야, 오늘 쟤네집에 가서 잘거거든"
남자아이는 뭐 저런 게 친구냐는 듯이 콧방귀를 뀐다. 왜 난 이럴 때 저 자식 면상에 침이라도 뱉지 못하는 것인지.
퇴근시간이 되어 나는 앞치마를 벗어 놓고 가방을 챙겨든다. 유리문 밖에서 무언가가 가득 담긴 비닐봉지를 양손에 들고 나를 기다리고 있는 그 여자에게 다가간다.
"오래 기다렸죠?"
남자아이의 시선을 의식한 나는 부러 친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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