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많은 순간에 난다는 레스비언이 되고 싶어했다. 현재의 부르주아적인 가부장
질서에 대해 가장 드라마틱하고 근본적인 저항이 바로 레스비언이라는 존재로 체화되
는 것이 아닌가,라는 다소 관념적인 생각을 한 적도 있었고, 그녀에게 불안함과 막막
함을 느끼게 하는 남자 친구들과 달리, 오래 머물고 싶게 하는 따뜻함을 느끼게 하는
여자 친구들과의 교감을 더 깊이 지속시키고 싶어서 레스비언을 꿈꾸기도 했다. 그것
이 불가능하다고 느낀 적은 없다.
한번은, 당당하고 눈부셨던 한 레스비언 친구 덕분에 그것이 아주 간단하게 느껴졌었
다. 난다는 쉽게 그녀에게 반했고 그녀와 사랑에 빠지는 것이 어렵지 않을 것 같았다.
사람 일이 생각대로만 되지는 않는 거라서 결국 그녀의 애인이 되지는 못했지만, 살
아가는 동안 동성 친구를 사랑하게 되는 일이 한번이라도 없을 거라고 당신은 장담할
수 있는가. 나는 없다.
그래서 난다가 레스비언 친구들과 같다고, 언제라도 커밍아웃 할 수 있다고 쉽게 결론
내리려는 것은 아니다. 그 친구들의 자부심, 절박함, 딜레마, 괴로움과 같은 것을 난
다는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분명히 난다는 많은 레스비언 친구들과 다르다. 그러나,
우리 모두가 어쩌지 못하는 사랑이라는 약한 피부를 갑옷으로 몸에 두르고 싸우는 레
스비언-게이 액티비스트들에게 난다는 자주 감동과 존경을 느낀다. 그것이 그녀-그들
과 같은 난다의 마음에 공명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난다가 "가장 행복했던 연애"를 물었을 때 희군이 들려준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움직였던 것도 바로 그
같은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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