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군 : 가장 행복했던 연애요?
나 독일에 있을 때(희군은 교환 학생으로 1년간 독일에 있었다), 하루 동안의 연애.
참 잊을 수 없는. 폴란드에 갔다가 알게 되었는데, 언어 장벽을 넘을 수가 있구나 라
는 걸 깨닫게 해준 사람.
베를린에서 폴란드까지 한 시간 반 밖에 안 걸리거든요. 거기 친구 만나러 갔었어요.
폴란드의 겨울은 상상을 초월해요. 영하 30도.
한 게이 친구가 나랑 친하게 지냈는데, 얘는 영어를 하고 얘 애인은 영어랑 불어를 하
니까 막 섞어가면서 얘기할 수 있었죠. 얘가 일을 했거든요. 하루 종일 나랑 같이 있
을 수가 없어서 자기 친구(역시 게이죠)가 바텐더로 있는 호프집같은 펍pub으로 데리
고 갔어요. 독일어 잘 하는 친구여서 걔랑 이야기하고 있어요. 그런데 걔 친구로 사료
되는 애가 딱 옆에 앉는 거야. 바에. 그 바텐더 친구가 걔도 게이라고 말해줬어요. 그
래서 하이, 하고 인사했는데, 영어를 못 알아들어.
밤이 되니까 갑자기 손님들이 많아지는 거야. 바텐더인 친구가 막 바빠졌어요. 그래서
나랑 이야기를 할 수가 없는 거야. 아무도 말이 안 통하잖아요. 내가 폴란드어를 할
줄 아는 것도 아니고. 혼자 가만히 앉아 있었어요. 보니까, 옆에 있는 애도 심심하잖
아요. 그래서 아주 천천히 영어로 말을 걸었거든요. 못 알아들어요. 실망하고 있는데
얘가 날 보더니, 너 러시아어 할 줄 아냐고 물어요. 아니아니, 노,노,노. 다시 침묵의
시간. 걔는 맥주500을 다섯 잔 마셨어요. 계속 마시는 거야. 할 말이 없으니까. 나도
계속 마시고.
너무너무 심심했어요. 생각해봐요. 폴란드에 놀러왔는데, 밖에 나가자니 너무 추우서
못 나가겠고, 나갈 수도 없고, 펍 안에서는 할 일도 없고. 술을 마시다가 딱 쳐다보는
데, 눈이 마주쳤어요. 그래서 내가 바디 랭귀지를 써 봐야겠다 결심을 했죠. 그러고
있는데 갑자기 걔가 가방 속에서 노트를 꺼내는 거야. 사람 모습을 그리더니 야렉이라
고 쓰데요. 자기를 가리키면서, 야렉. 으음, 나는 야렉이다. 어! 나도 그 옆에다가 사
람을 그리고, 희군. 나는 희군이야. 어! 그런 다음에 제가 스마일 딱 그리고 만나서
반갑다...
재밌잖아. 그래서 계속 그림으로 얘기 했어요. 몇 시간 동안을. 그 때 노트 거의 다
썼어요. 자기는 점원이다. 수퍼마켓에서 일하는 점원이래요. 집안이 가난해서 학교를
중퇴하고 일을 해야 했대요. 그래서 영어도 못 하고 러시아어도 잘 하는게 아니래요.
난다 : 그 복잡한 것도 알아들었단 말야.
희군 : 기본적인 단어는 아니까. 잉글리쉬, 러시안... 그런 거 쓰고, 그림 그리고, 손
짓발짓 다 해서 알아듣게 된 거죠. 나는 베를린에서 공부를 하고 어쩌구저쩌구 한국에
서 왔다. 아, 꼬레안스키! 너무너무 좋았어요.
호텔에 들어가야 할 시간이 왔어요. 그런데 거긴 너무너무 길을 찾기 힘들어요. 눈이
많이 와 가지고 굉장히 미끄럽고 위험하거든요. 가겠다고 했더니, 얘가 갑자기 탁 일
어서서 독일어 잘 하는 바텐더 친구에게 뭐라고 뭐라고 얘기를 하는 거야. 바텐더 친
구가 씩 웃으면서 독일어로 통역해 줬어요. "얘가 그러는데 밖은 춥고 미끄럽고 위험
하니까 자기가 바래다 주겠대." 나는 속으로 기뻤지만, "그럴 필요 없는데...." "아냐
, 가야된대, 위험하다고." 진지한 표정으로 그러는 거예요. "아유, 뭐 그래주면 고맙
지."
그래서 같이 나왔어요. 무지무지 내가 추워했거든요. 생각해봐요. 영하 30돈데. 얘가
손을 탁 잡는 거예요. 아, 정말 이루어지나보다 생각했는데, 내 손을 잡아서 지 주머
니에 집어 넣고 자기 손은 빼더라구요.
호텔 앞까지 와서 올라가서 커피나 하자 그랬죠. 추운데 어떻게 그냥 돌려보내요. 올
라와서 두 어시간 더 얘기했어요. 그런데 얘가 갑자기 그래서 뭐라 그랬는지 알아요.
"유", 그러면서 나를 가리키더니, "뷰티풀". 하하하 왓! "유, 뷰티풀". 좋아한다는 걸
표현하고 싶었나 봐요. 아는 단어가 없으니까 말이 그렇게 나온 거죠. 그러더니, 얘
가 막 울려고 그러는 거야. 나도 니가 좋아, 라고 말한 다음에 그럼 좋은 거지, 그랬
는데 자기는 애인이 있대요. 너무너무 무섭대요 .너무 무서워서 자기를 막 때리고 그
런대요.
기분 전환도 할겸 해서 디스코 텍에 갔어요. 거기고 게이 디스코 텍이 있더라구요. 그
카톨릭 국가에도. 가서 진하게 키스도 하고. 그리고 다시 또 집 앞까지 걔가 바래다
줬어요. "다음 주에 또 올께", 약속했어요. 그 때 학기 중이었거든요.
다음주에도 갔어요. 금요일날. 얘가 마중 나오기로 했는데, 없는거야. 가방을 들고 역
에 서서 한참 기다렸죠. 얘가 뛰어 오더니, 자기 남자 친구가 못 가게 해서 늦었대요.
그런데 이 친구가 나를 보자고 했대. 좋다고 가자고 했죠. 얘는 안 된다고, 그냥 둘
이 놀자고 그랬지만, 왠지 가야할 것 같았어요. 얘가 곤란해질 거 같아서. 나도 물론
만나기 싫었지만. 버스를 타고 가다가 한 시간 쯤 늦었어요. 멀리서 걔 남자 친구가
보이는데, 나를 보더니 가운데 손가락을 들고 "fuck you" 그러는 거예요. 그러더니,
돌을 던지더라.
그날 걔에게 그만 만나자고 하고 돌려보냈어요. 걔를 위해서, 어쩔 수가 없더라구요.
돌도 던지는 앤데, 무슨 일을 못하겠어요. 내가 앞으로 폴란드에 안 나타면 되지 않겠
냐고...
독일에 돌아와 도서관에서 폴란드 문학을 찾아 읽었어요. 다시는 걔를 만날 일이 없겠
지만, 폴란드에 대해 알고 싶었거든. 앞으로는 폴란드 문학을 공부해서 비교 문학을
하고 싶어요. 이것이 제 가장 행복했던 연애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