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세되고 전이되는 공포

결론적으로, 페미니즘에 대한 남성의 공포는 거세된다. 그것은 우선 페미니즘에 일탈적이고 위험스러운 것으로서의 이미지를 가미함으로써 가능하다. 이제 페미니즘은 정상이 아닌 것, 부자연스러운 것이 되었다. `정상적인 것'으로서 남성지배와 가부장제는 건재하다. 공포의 대상, 금기의 대상으로서 페미니스트는 마녀이다. 현대의 마녀는 못생기고, 기세고, 너무 잘나서 피곤한 여자들이다. 마녀로서 배제되지 않은 여성들의 일부는 순응한다. 사회에서 요구하는 바람직한 여성상을 수용하고, 그에 부합하려 노력한다. 물론 많은 노력들은 무의식적으로 습득된 것이다. 그녀들은 바람직한 여성, `귀여운 여인'이 된다. 그녀들은 성모마리아다. 그녀들은 전혀 위험하지 않다. 마지막으로 공포의 대상이 되지도 않고, 사회가 요구하는 여성의 틀에 자신을 끼워맞추고 싶지 않은 여성들은 "명예남성"이 된다. 그녀들은 마녀로서의 부담감을 덜고, 공적 영역에서 배제되지 않는 대가로 `여성이 아니'게 된다. (흔히 하는 말로 "쟤가 여자냐?"라는 말을 상기해 보라) 그녀는 남성과 동등하게 되었다. 그녀는 남성의 지위를 위협하는 존재가 아니라, 남성이기 때문에 공포스럽지 않다. 그녀는 이제 `그'들 편에 선다.

거세된 `그'들의 공포는 이제 `그녀'들의 공포로 전이된다. 그녀들은 공포스러운 존재가 될 것이냐, 말 것이냐 하는 선택의 기로에 선다. 선택의 가짓수는 몇 개 안 된다. 많은 그녀들은 현재의 부당한 여성의 지위에 대해 언급하면서, 조심스럽게 덧붙여야 한다. "나는 페미니스트는 아니지만..." 그녀들은 위험한 존재로서의 이미지가 공포스럽다. 페미니스트가 되고자 하는 여성은 끊임없이 갈등한다. `귀여운 여인'으로 남을 것인가, 공포스러운 이미지라는 부담을 짊어질 것인가.

나는, 우리는, 부담을 짊어지고 가기로 했다. 다만, 그 부담이 조금씩 조금씩 벗어지기를 꿈꾸기로 했다. 조금 더 용감해지기로 했다. 용감해지지 않으면 아무 것도 바뀔 수 없을 것 같다. 세상이 작게나마 바뀌었다면, 그것은 용감한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