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주의의 파괴력 /Havoc of Nationalism

개인적으로, 뿌리를 박탈당한 정체성으로 고통을 느끼고 난민이 되는 것이 나에게 영원하고 불가피한 상황으로 남게된 계기가 있다. 어떠한 노력으로도 그것을 바꿀 수 없었다. 나는 1947년 분단 중에 지금의 파키스탄으로부터 강제적으로 추방된 펀자브인 가족 출신이다. 나의 가족이 내가 태어난 도시인 델리(Delhi)에서 정착하는데 오랜 기간이 걸리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이 사실은 누군가가 나에게 "어디 출신이요?"라고 물어볼 때마다 일정한 불편함과 고통의 근원이 되어왔다. 그것은 나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기본적인 요소로서 간단하지만 중요한 질문인데, 나는 진정한 답을 갖고 있지 않은 것이다. 나의 답변은 대답보다는 나의 뿌리 뽑힌 지위에 대한 설명과 같은 것이다 : "나의 아버지는 Lahore에서 태어났고, 나의 어머니는 Peshawar에서 태어났고, 나는 Delhi에서 태어났어요."

나는 단지 Delhi에서 태어났다고 할 뿐, Dilliwali라고 나 자신을 편안히 불러본 적이 없다. 왜냐하면 진정한 딜리와리 사람들(Dilliwalas)은 나를 그들의 일원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단지 거기에서 태어났거나 잠시 살았던 것으로 쉽게 뉴요커(New Yorker)가 될 수는 있지만, Andhra에서 태어났다고 안드라인(Andhraite)이 될 수는 없다. 그것은 이 아대륙의 지역적 정체성의 특별한 뿌리 관념과 관계가 있다. 나는 라호레인(Lahori)이라고도 페샤와리인(Peshawari)이라고도 주장할 수 없다.

그러나, 나는 파키스탄을 보고 동경하며 자랐다. 학교에서 가장 가보고 싶은 장소에 관한 에세이를 쓰라고 할 때마다, 나의 친구들은 이국적인 다른 나라들에 대해 썼다. 그러나 나의 에세이는 항상 파키스탄 방문에 대한 욕망을 담고 있었다-특히 Lahore와 Peshawar. 그러나 최근 Lahore에 잠깐 체류하게 되었을 때, 나는 커다란 감정적인 고뇌를 겪었다. 아마도 다른 외국에 방문한 것과는 다르겠지만 나는 외국에 있었다. 이런 주장은 나의 인도인 정체성에 의한 것은 아니다. 나는 내가 그럴 권리도 없는 자들에 의해 쫓겨났던 고향으로 돌아온 펀자브인이라고 느꼈다. 힌두인들이 현재는 파키스탄이라고 불리는 그들의 고향을 그리는 것이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못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 모든 세월동안 출구를 찾지 못했던 예상치 못한 분노가 끌어 올랐다. 나는 아마도 힌두 난민들이 잃어버린 고국을 그리워하고 슬퍼할 권리조차 박탈당한 전 세계에서 아주 드문 집단 중의 하나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Lahore에서 참가한 파키스탄-인도 친선 포럼에서, 많은 파키스탄 대표들이 독선적으로 인도인들은 파키스탄의 사상과 화해하려 하지 않기 때문에―우리가 여전히 Akhand Bharat(분단되지 않은 인도)에 대한 은밀한 환상을 숨기고 있고 그들의 mulk(국가)에 대한 제국주의적 기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인도를 두려워한다고 말했을 때, 나의 영혼은 반발하고 있었다. 테러와 폭력, 살인, 강간과 약탈에 의해 수백만의 힌두인들과 이슬람인들을 그들의 집에서 내쫓고 영구적으로 나의 지역적 정체성을 빼앗은 분단을 나는 기꺼이 받아들일 수는 없다.

그러나, 내가 분단을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말할 때, 또 다른 전쟁을 통해 원 상태로 만들자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힌두인과 이슬람인이 두 개의 공동체가 아니라 서로 분리되어 조화될 수 없는 국민성을 가진다는 잘못된 생각에 기초하고 있다. 실제로, 나는 대부분의 민족적 정체성이 위험스럽고 유해하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최근의 출생지에 대한 유해한 신조들의 창궐과 더불어 전세계적으로 거대한 유혈 참사를 일으켰다. 유럽에서는 인종 청소가 수천만의 사람들을 고국에서 축출하는 이러한 국제적인 살인적 전염병을 지칭하는 새로운 용어가 되었다.

우리에게 1947년에 일어난 일은 단지 이러한 유럽의 질병의 한 예일 뿐이다.
우리 아대륙에서, 힌두인과 이슬람인이 국토를 공유하며 공동 거주하는 두 개의 종교적-문화적 공동체라고 믿는 한, 그들은 언어, 마을, 문화와 같은 공통된 다른 층위의 정체성들에 기초하여 함께 사는 훌륭한 전통 규준을 수월하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인종주의, 세속적 민족주의라는 바이러스가 서구로부터 우리에게로 침입해온 그 때, 종교적 차이는 세 속적 정치학의 영역에 말려들기 시작했고, 획일적 집단 형성 기반으로 이용된다. 그 후에, 다층적인 정체성들은 이러한 단 하나의 탐욕스런 정체성에 보조적인 것으로 되었고, 정치인들은 이슬람인과 힌두인들이 평화적인 공존을 할 수 없는 적대적인 일원화된 공동체들이라고 확신시킬 수 있었다. 수백만이 그들의 집과 그들 자신의 것이라고 생각했던 토지에서 축출 당했고, 우정과 오래된 관계들, 역사적인 뿌리들, 전통들, 이웃들, 기억들, 그리고 다른 것으로 대체할 수 없는 많은 것들을 잃어버렸다. 분단의 경험에도 불구하고, Kashmir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처럼 우리가 사람들을 난민으로 만드는 똑같은 불행한 길을 걷고 있다는 것은 비극이다.



[ 링크 모음  |  목 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