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Note on the Presumption that
"Third Wave" Designates an Age-Generation Cohort
"제 3 물결"이 일정 시대-세대 집단을 지칭한다는 가정에 대 한 언급


    이 논문은 제 3 물결(the Third Wave)에 속하는 젊은 여성 들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러나, 나는 이것이 한 시대 집단으 로 제한되어 있지 않다고 말할 수 있는 구체적인 근거를 가지고 있다. 일정한 문화적 시기의 산물로서 "제 3 물결 페미니즘"은 역사적으로 위치 지워져있거나(situated) 혹은 한정되어 있다. " 제 3 물결"이란 명칭은 페미니즘이 후기 자본주의 포스트모던 세계 안에서 근본적으로 변화했다는 것을 인식시키면서도 여전 히 긴 지속의 역사를 반영한다. 종종 제 2 물결의 전성기 동안 혹은 그 이후 "시대에 출현한" 이들의 세대 집단으로 범주화되 지만, 나는 이에 이의를 제기하면서 제 3 물결이 좀 더 복합적이 고 다층적인 것이라는 주장을 하는 쪽에 동감한다. 역사적 특정 성과 세대적 특정성간에는 중요한 차이가 존재한다. "제 3"은 역 사적 특정성을 지칭한다. 제 2 물결에서 "제 2"가 의미하는 것과 같이 이것은 단순한 세대적 계승을 뜻하는 기호는 아니다. 우리 가 자동적으로 "제 3"이 특정한 세대를 지칭한다고 추정할 때 우리는 페미니스트, 더 구체적으로 제 3 물결 페미니스트로 불리 는 수많은 중첩되어 있고 다양한 집단들이 실재(presence)하고 기여하고 있다는 사실을 지워버리는 것이 된다. 더욱이 "제 3 물 결 페미니즘"은 다양한 사람들에 의해 서로 다른 방식으로 공명 된다. 젊은 여성들에게 이 공명은 특별히 강력한데 이는 우리의 역사 의식이 제 3 물결 페미니즘이 표면화되고 형태를 갖추게 되는데 기반이 되는 바로 그 동일한 역사적 조건들에 귀속되어 있기 때문이다. 또한 많은 세대와 연령 집단이 이 역사적 시점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젊은 여성"들만으로 제 3 물결을 제한하 는 것은 다른 페미니스트들은 제 3 물결의 정치학을 주장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게다가 "제 3 물결"의 태동은 최소한 제 2 물결에서 시작된 급진적인 유색인종, 하층계급, 레즈비언 여성 에 의한 정치적이고 지적인 작업과 직접적으로 접합되는 "여성" 범주의 획일화(homogenizaton)에 대한 비판에 기인한 것이다. 제 2 물결 안의 백인 페미니즘의 지배에 대한 이들의 반대는 1960 년-70년대 여타의 집단, 운동, 사회 구성체와 함께 이루어진 여 성 운동 내부에서의 인종 및 계급 차별주의, 이성애주의에 대한 비판과 관련이 있다. 이미 주어진 단일한 운동 모델의 흔적보다 는 현재 페미니즘에 대한 페미니스트 비평이 제 3 물결 페미니 즘의 기원의 한 부분이 된다는 것은 확실하다.

    단일한 주체로서의 여성에 대한 주장에서 전환된 여성들 또 한 서로 같지 않으며 같아야 하지도 않다는 인식은 1990년대 들 어 젊든 젊지 않든 대부분의 페미니스트들에게는 당연시되고 있 다. 물론, 이것은 차이라는 쟁점이 해결되었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러나 차이는 제 3 불결의 핵심적 요소이다. Chela Sandoval― "미국 제 3 세계 페미니즘"을 이론화한 사람―은 인종적 분리 뿐 아니라 현 여성 운동 진영 내에서 새로운 인종적 연합의 가 능성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나는 미국 제 3 세계 페미 니즘과 제 3 물결 페미니즘간의 피상적인 혹은 동질적인 (homologous) 상호 관계를 제안하는 것은 아니다. Sandoval은 전자의 용어를 젠더 범주인 "여성들"과 이항대립쌍인 "남/여 (male/female)" 인종, 문화, 계급, 섹슈얼리티가 그들에게는 젠더 와 분리되어 있거나 이보다 덜 주요한 사회적 범주가 아니라는 사실을 문제화하는 유색인 페미니스트들을 지칭하는 용어로 사 용한다. 그녀는 희망하는 연대와 동시에 특정한 지지자를 가리 킨다. 나는 제 3 물결 페미니즘에 관한 토론에서 "미국 제 3 세 계", "제 3 세계" 그리고 "제 3 물결" 간의 반복되는 차이와 부 딪침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구분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며 절대 이러한 용어들을 없애거나 혼동하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

Postmodernity, Oppositional Consciousness, and Feminist Networking
포스트모더니티, 저항 의식 그리고 여성 네트워크


             나는 공간들과 정체성들이 융합되고  개인의 몸과 
          몸의 정치학 안 경계들이 상호 침투함을 암시하는 이
          데올로기적인 네트워크 이미지를 선호한다."네트워킹
          "은 페미니스트 실천이자 다국적  기업의 전략이기도 
          하다―이를 엮는  것(weaving)은 저항적  사이보그를 
          위한 것이다. 
               ― Donna Haraway, " A Cyborg Menifesto, " 1991.
   
             저항 의식의 구별되는 형태로 재현되는 미국 제 3 
          세계 페미니즘 실천(praxis)은 사회적 주변성의  경험
          을 통해 짜여졌다(is threaded). 이것은  또한 포스트
          모던 딜레마로종종 언급되고 있는  문화적 불안 속에
          서 나타나고 있으며, 점점 더 많은 시민들이 겪고 있
          는 후기 자본주의 조건들의  위기 속에서의 경험들의 
          직조물과 교직되고 있다. 그러므로 내가 제안하는 접
          합은 극단적이다. 이는 백인 페미니즘과 인종, 민족성 
          그리고 주변성에 관한 연구들의  목표들 그리고 최근
          에 생겨난 저항 의식 (oppositional consciousness)
          의 이론과 방법론에  관해 공감s하면서  맺은 새로운 
          관계 속에서 서로를 가로지르고  화합하는 문화에 관
          한 포스트모던 이론들과 미국 제  3 세계 페미니즘의 
          실천들이 연결되는 장(location)이다. 
                      ― Chela Sandoval, "U.S. Third World 
                                           Feminism," 1991.

    이질적인 의식과 후원자들, 이데올로기와 실천들의 양식을 교 직하는(weaving/threading)이미지는 위의 두 구절들을 서로 묶어 내면서 헤러웨이가 주창한 네트워킹 개념과 샌도벌이 우리의 특 정한 역사적 정치적 시기에 필수적인 저항의 양식으로 내건 접 합(juncture)의 양식을 함의하고 있다. 이와 같은 저항의 형식들 을 보고 인식하기 위해 우리는 문제가 되어 온 공간들의 바깥, 너머, 혹은 그 심부에 있는 "경험의 직조물(the fabric) 속"을 자 주 들여다 보아야 한다. 가정 폭력을 경험했으며 과거 스트립퍼 였었던 한 비키니 킬의 리드 싱어 Kathleen Hanna는 이렇게 쓰 고 있다. "저항은 어디에나 있다. 언제나 그래왔고 언제나 그럴 것이다. 어떤 이가 당신과 같은 방식으로(채식주의자, 레즈비언, 정치 조직의 일원 되기 등등) 저항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들이 저항하지 않고 있다고 할 수 없다...." 한나는 이어 관습화된(따라 서 "인식 가능한") 저항의 형식들에 도전하는 다른 예들의 목록 을 보여준다. 특정한 매체에 의한 스펙타클이 저항 의식을 창출 하는 새로운 기회를 제공하기도 한다. 이러한 현상의 가장 강력 한 사례는 1991년 10월 Anita Hill-Clarence Thomas 성희롱사건 심문이 TV로 보도된 것이다. 이것은 미국의 많은 젊은 여성들이 "우리는 포위된 채 살고 있다는 인식"을 하도록 만들면서 큰 반 향을 일으켰으며 이들이 이에 대항하도록 동기 부여했다. 젊은 흑인 여성 Rebecca Walker는 이렇게 역설했다. "나는 이에 저항 하겠다. 나는 내가 상상할 수 있는 것보다 더한 억압된 분노를 들추어내고 해방시켰다. 22년이란 정신 없이 흐른 시간 속에서 나는 점차 급진적이고, 정치화되고, 깨어나게 되었다. 나는 다시 소리를 내었다. 이번에 내 목소리는 타협적이지 않다." (pp. 146-147)

    제 3 물결의 "포스트모던"적 특성을 보여주는 또 다른 특징 은 이것이 이질적이고 다양한 운동, 문화를 구성하는 서로 다른 여성 집단 사이의 네트워킹에 의존한다는 것이다. 이 집단들은 선구자들에게 빚지고 있지만 동시에 불경스럽기도 하다. 그들은 모두 객체인 "여성Woman"과의 동일화를 어떻게 거부할 것인가 하는 것과 함께, 1990년대 미국과 세계 속의 "여성들 women"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내고자 하는 관심사를 공유한다. 저항적 주체인 "여성들 women"을 만들어내는 데 주력했던 제 2 물결 초기 다수의 백인 페미니스트들과 달리 제 3 물결에 있어 이 "여성들 women" 이란 형상은 단일한 주체라고 할 수 없다. "Beyond Bean Counting"이란 글에서 이지연씨는 이렇게 언급한 다.

             요즘, 사람들이 내게 "여자들"이란 말을 할 때마다 
          머리가 백지가 되 버린다.  "여자들"이 뭐지? 당신이 
          말하는 이 "여자들"이란 게 뭐지? 그게 내게 무슨 의
          미지? 이게 우리 엄마, 같은 반 친구들, 옆집 백인 여
          자, 수퍼마켓 계산대 직원, 한국의 이모들, 세계 절반
          의 인구를 말하는 건가? 나는 그들이 대체 무엇에 관
          해 말하는 것인지 확실히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 사
          람들에게 구체적으로 말하라고  요구했다. 그리고 내 
          자신에게도 그들과 같은 기준들을 기억해서 적용하면
          서 일반화할 조금의 가능성도 허용치 않았다. 자매의
          식(Sisterhood)은 세계적인 것일지 모른다. 그러나 누
          가 이 자매에 속하는가? 우리 누구도 다른 이에 관해 
          넘겨짚어 생각할 자격은  없다. "페미니즘"이라 불리
          는 이것은 매우 힘든 일이다. 나는 다음의 특징이 오
          늘날 영페미니스트 운동의 일차적인 변별점이라고 생
          각한다: '우리가 모여 함께 일하는 것이  절대로 자연
          스러운 것도 쉬운 것도 아니란 것을 인식하는 것' 

    이지연과 같이 다른 영페미니스트들도 제 2 물결 및 유색인 여성, 레즈비언, 하층 계급 여성들에 의한 비판들, 1980년대 보수 반동 조류와 그녀 스스로의 경험들, 오늘날 매체 속에서 확산되 는 네오-, 포스트-, 안티 페미니스트 수사들을 통해서 이를 알게 되었다. 그녀가 강조하는 교훈은 젠더는 상호 배타적인 범주가 아니며 페미니스트 정치학은 "여성들"이란 범주를 이루는 다양 한 차이들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이러한 차이들이 페미니스트 정치학의 전부라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네트워킹은 이러한 제 3 물결 페미니즘의 움직임, 인식론과 지형학을 나타내는 핵심적인 개념이다. 샌도벌의 저항적 실천에 관한 중요한 이론화 작업을 거론할 때 이러한 용례는 사이보그 페미니즘과 페미니스트 네트워크에 관한 도나 헤러웨이의 이론 과 Bruno Latour의 "가느다란 전력선 그리고 사회적 목표들과 비인간의 확산을 통해 좀 더 영구적이된 사회들 사이의 지속적 인 혼성(hybridization)을 제외한 어떤 것에도 관여됨이 없이 거 의 어디에나 갈 수 있게 만드는 새로운 테크놀로지"라는 묘사에 의존하고 있다. 내 경우 네트워킹이란 개념은 "테크노논리 (technologic)"―즉, 시공을 초월하여 의사 소통되는 정보의 특정 한 실천, 가능할 것 같지 않은 결합체, 공동체로 만들어진, 일시 적으로 "연합된" 정치적 집단들의 형성, 저항 의식의 강력한 문 화적 표현을 구성하는 다양한 테크놀로지의 결합(예를 들면, 음 악, 문집, 잡지, 악기들, 비디오, 제작 테크놀로지, CD, 팜플렛, 인터넷 등등) 그리고 페미니스트 정치학의 위치 구축(인종, 계급, 섹슈얼리티, 젠더 등등 우리가 거주하는 공간들 사이를 교직하 기)과 연관되어 있다. (pp.149-150)

    "저항적 테크노논리"는 낮은 단계의 기술(low-tech), 아마추 어, 혼성, 대안적 하위문화 페미니스트 네트워크로 짜여진 저항 의 정치적 실천이다. 이 용어는 헤러웨이, 샌도벌, 라투어 그리고 주체 형성과 정치적 의식(미국 문화의 콘텍스트 내에서) 및 커뮤 니케이션과 시각적 테크놀로지 사이의 관계에 관한 나의 고찰들 을 융합시킨 것이다. 제 3 물결이라고 불리는 이 "운동"은 특정 한 테크노논리에 의해 세워진 네트워크이고 Riot Grrrl은 네트워 킹과 연대의 지점을 표시하는 하나의 접점 혹은 접점들의 연속 이다. 라투어는 이에 대해 이렇게 묘사한다. "왕복하기 위해 우 리는 번역 혹은 네트워크의 개념에 기댄다. 시스템 개념보다 더 유연하고 구조의 개념보다 더 역사적이며, 복잡성의 개념보다 더 경험적인 네트워크 개념은 이 교직된 이야기들의 아리아드네 (Ariadne)의 실이다."(p. 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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