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에 만나고 싶은 사람 :
신간 <열세가지 이름의 꽃향기>를 낸 작가 최윤 씨



난다 : (인터뷰 하려고 녹음기 설치하면서) 요새도 녹음기 자주 사용하세요?
윤 : 하하, 요새는 좀 덜 해요. 그...조금 예의가 없죠. 그런데 예전에는 많이 사용 했고, 사실 지금도 많이 해요. 운전할 때도 쓰고, 주변 사람 인터뷰할 때도 쓰고, 재밌는 소리도 녹음하고.

주변 사람들의 목소리를 녹음기에 채집하는 <벙어리 창>의 주인공,
취직 인터뷰를 하러 찾아간 주인공 이학과의 대화를 녹음기에 담아도 괜찮겠냐고 묻 는 <겨울, 아틀란티스>의 최모를 비롯해 최윤의 소설에서는
'녹음기를 든 인물들'이 많이 등장한다. 심지어,
장편 <너는 더 이상 너가 아니다>의 끝에 붙은 '작가의 말'에는
이와 같은 유쾌한 대목도 나온다.
" ...제 혼자 생각에 만약 그 생생함을 정말로 전달하기 위해서라면 작품의 재미있 는 부분을 읽어 테이프에 녹음해서 책에 부착하는 것은 어떤가도 생각해보았습니다. .."

난다 : 저는 언제나 선생님이 가장 자연스럽게 '사진 찍히는' 작가 중의 한명이 아 닐까 라고 생각해왔어요. 책 날개를 봐도 그렇구요. 사진에서 예쁜 악세서리 같은 걸 하고 나오신 걸 보면, 비교적 몸에 대해 자유로운 분이 아닌가, 어떤 조화의 감 각을 가지고 계신 분이 아닐까 싶어요.
윤 : 악세서리, 많죠, 철없을 때 많이 했죠. 사진 같은 경우는 운이 좋았던 거 같아 요. 좋은 사진 작가들을 만났다고 할 수 있죠. 나를 잘 알고 자연스러운 환경에서 찍을 줄 아는 작가들을 만난 거죠. 제가 그렇게 몸과의 관계가 조화로운 관계만은 아닌데 그런 느낌을 주는 건... 아마 어렸을 때 연극을 해서 그런 거 같아요.
난다 : 아, 언제요? 어쩐지 선생님의 글에는 '연극적인' 분위기가 있는 거 같아요.
윤 : 대학 때요. 뭐, 짧아요. 그 때는 재밌다고 생각해서 했지요. 그리고 어차피 강 단도 무대잖아요. 내가 농담으로 늘 무대에 올라간다고 말하지요. 슬프거나 불쾌한 일이 있어도 젊은 친구들 앞에서는 내색할 수 없으니까. 일종의 자기 통제라는 점에 서.

/ 정신과 육체의 완벽한 균형을 취하는 사람은 거의 존재하지 않으며 설령 존재한다 해도 그 균형은 순간적인 것이라 너는 어떤 완벽한 균형도 영원한 것으로 믿지 않는다. 대부분의 사람은 비록 5퍼센트 혹은 10퍼센트 정도가 정신 혹은 육체 쪽에 더 가까이 가 있다. 너는 어떤 쪽인가 하면 몇 퍼센트 라도 육체 쪽에 기울어진 사람을 더 쳐주는 편이다. 몸은 아주 솔직하기 때문에. / (최윤, <집, 방, 문, 벽, 들, 장, 몸, 길, 물> 중)

난다 : 어디선가, 문학 때문에 목숨을 건진적이 있다고 쓰신 것을 읽은 기억이 나요 . 은유인가요.
윤 : 하하, 그게 직유일 리는 없죠?
나만의 경험은 아닐 거예요. 정말 내가 와해되는 듯한 느낌이 들 때.
뭐, 젊었을 때는 특히 더 그렇지만, 왜냐하면 인생의 통제 능력이 없으니까, 그게 또 아름다움이기도 하지만. 젊었을 때는 죽음을 스쳐지나가는 경우가 굉장히 많잖아 요. 나는 유혹에 약하기 때문에 상당히 많은 경우 탈선을 할 수 도 있었고, 나의 성 격의 즉흥성 때문에 내가 원하지 않은 어떤 모험에 나도 모르게 몰입할 수도 있었고 , 함정이 굉장히 많았어요, 지뢰밭 같이. 그 때 나의 가장 중요한 인생관, 세계관, 내가 믿는 그 어떤 자유의 정도, 이런 것들을 알려준 게 문학인 거 같아요. 늘 강력 한 지침이 되어 주었죠.
난다 : 어렸을 때도 책을 많이 읽으셨어요?
윤 : 뭐, 많이 읽었죠. 잡식 동물 이었죠. 성장기에, 중 고등학교 때, 그 때는 무식 하게 읽었죠. 많이 읽으면 무조건 부자인 줄 알고.
난다 : 특별히 어느 작가를 좋아하셨어요?
윤 : 많이 좋아했어요. 도스토옙스키, 고리끼도 좋아했고, 프랑스 작가들도 많이 좋 아했고, 독일 작가들, 카프카, 토마스 만...우리나라 작가들은...체계적으로 읽은 거 같아요, 중학교 말 때쯤. 이상을 읽으려고 했던 기억이 나네요. 30년대 작가들을 굉장히 좋아했어요. 그런데, 그 당시에는 시를 많이 피했어요. 문학 소녀적 취향이 싫어서요. 문학은 그 이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나중에야, 시와 소설을 같이 쓰 는 작가들을 통해서 시를 알았던 거 같아요. 참 후회합니다. 참 시를 어려서 정도로 알았으면 참 좋았을 것을. 나한테 많은 도움을 주었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난다 : 시를 발표한 적은 없으시죠.
윤 : 나는 절대 시인이 아니에요. 시를 쓰긴 쓰지만 늘 한 가지 주제, 한가지 기능 이지요. 시인들은 절대로 그렇지 않거든요.

난다 : 작가들은 보여지지 않는 작품들도 가지고 있는 거군요.
윤 : 그럼요! 실패한 작품도 있고, 또 좋아하는 작품이지만 꼭 성공적이라고 할 수 없는 것도 있고.
난다 : 쓰신 작품 중에 어떤 작품을 가장 좋아하세요?
윤 : 글쎄, 내가 쓴 작품 중에 제일 좋아하는 작품? 참, 없는 거 같으네요.
만약에 작가가 자기가 쓴 작품에 대해 만족을 하면, 그 다음에 더 게을러 질 거 같 아요.
음... 난 장편, 겨울 아틀란티스를 참 좋아해요. 소설의 가장 기본적인 요소들을 가 지고 그 작품을 만들었거든요. 소설의 특징도 그렇고, 인물도 그렇고. 이야기를 만 드는 드라마도 그렇고. 난 앞으로도, 좋아하면 장편을 좋아할 거예요.
난다 : 작가이기도 하면서 학자이기도 하시잖아요. 이론이 창작에 도움을 주는 경우 가 종종 있나요?
윤 : 어느 부분에서는 그럴지도 모르죠. 그러나 사실은 문학작품과의 부딪힘이 이론 을 만드는 거죠. 실제로 쓸 때는 굉장히 원시적으로 써요. 이론이, 뭐, 거의 생각나 지도 않고, 나를 그렇게 설득시킨 이론도 없고. 이론은 언제나 부분입니다. 문학 작 품에 대한 부분적인 설명이에요. 그러나 내가 독자로서 작품을 읽을 때는 총체적이 지요. 거의 온몸으로 느끼는 것이기 때문에. 어떤 이론이 그런 경험을 해주게 하겠 어요.
난다 : 첫번째 작품집 <저기 소리없이 한 점 꽃잎이 지고>를 내시고, 형식의 파격성 , 다성적인 목소리, 다양한 문체 등으로 주목 받으셨잖아요. 우문이지만, 선생님의 경우에는 스타일이 먼저 쓰기를 이끄는지, 뭔가 말하고자 하는 내용이 먼저 떠오르 시는지 알고 싶어요.
윤 : 거의 동시적인 화학작용과 같은 거예요. 예를 들자면, 광주에 대한 작품을 쓴 다고 하죠.(...) 그 당시의 아픔을 살려내는 여러 방법 중에 직선적인 여러 방법이 있는데, 그런 방법이 아닌 감히 광주 같이 뜨겁고 날카로운 사건에 미학적인 기제가 들어간다는 사실이 그 당시로서는 놀라울 수가 있었겠죠. 그런데 사실 자세히 살펴 보면 그것이 광주를 오래가게 하는 기제입니다. 아까 스타일이라고 하셨는데, 스타 일 이상이에요. 나는 스타일이라는 말이 아직도 무엇인지 잘 모릅니다. 예를 들어 내가 광주에 대한 이야기를 써야 하는 생리적인 필요가 있을 때, 내가 광주를 통해 표현하고자 하는 그 세계관에 가장 가까운 언어가 있어요. 언어의 수준이랄까, 언어 의 지역이 있습니다. 그리고 광주를 이야기하는 나의 방식 속에 광주에 대한 해석이 있어요.
(...) 한 소녀가 있어요. 그 소녀가 광주에요. 그 소녀가 지나가면서 광주의 현실을 알리고 그가 만난 사람들을 변모시키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그것은 여러 목소리로, 즉 변모를 경험한 소녀 주변의 사람들의 목소리로 되돌려 줄 수밖에 없는 것이죠. 그러면서 소녀가 살아나요. 얼마만큼 강력했기에 저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은 소녀는 그가 지나가는 곳마다 광주를 현현하고 지나가는 거죠. 나는 광주를 그렇게 경험했 어요. 소리를 통해서, 기사를 통해서, 내가 상상한 수많은 희생자를 통해서. 정말 광주를 직접 경험한 사람만이 광주를 쓸 수 있다면 광주는 굉장히 빈곤할 수도 있지 요, 문학적인 차원에서. 그러나 나같은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단 지 광주를 간접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가지는 역사적 크기가 한 작가를 변 모시키듯이, 수많은 사람들을 변모시켰을 거라고 생각을 하고, 그것을 그대로 표현 할 수 있는 서사구조 혹은 언어적인 특징을 포착을 하는 거죠, 가장 알맞게. 그래서 스타일이나 구조를 미리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대해 깊이 생각하다보면 생 각을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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