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에 만나고 싶은 사람 :
신간 <열세가지 이름의 꽃향기>를 낸 작가 최윤 씨



난다는 인터뷰를 하기 위해 <저기 소리없이...>를 다시 뒤적였다. 그러면서 이 작품에 대한 당시의 논쟁들을 떠올렸다. 몇 년의 테스트를 거친 지금에 와서는 어떤 것이 옳으냐라고 하는 첨예했던 문제가 뒤로 밀려나고, 그것이 단지 이 작품집을 감싸는 풍경으로만 떠오르는 것을 느꼈다. 물론 그 논쟁들은 당시 문학 창작의 방법론에 있어 유의미한 많은 문제들을 제기 했었지만 또한 독자로 하여금 팽팽한 긴장으로 책을 들게도 했었던 것 같다.

난다 : 첫번째 창작집을 발표하시던 때와 지금은 문학적 지형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그런 변화가 창작을 하시는데도 영향을 미치나요?
윤 : <저기 소리 없이...>는 그 당시의 첨예한 주제들, 소재면에서 역사적이라고 이 야기할 수 있는 것들이 많이 있었는데, 이번 <열세가지 이름의 꽃향기>에서는 대부 분 일상적인 부분을 다루고 있죠. 표제작인 <열세가지...>처럼 하나의 창조적인 것 이 얼마만큼 물질 사회에서 혹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아주 쉽사리 마모되고 결국은 창조성 자체가 어떻게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가에 관한 이야기에서부터 20세기에 있 었던 수많은 전쟁의 기록같은 것, 전쟁의 개인적인 경험, 그 나머지는 물질과도 연 관이 되는 우리의 소비 사회의 괴로운 젊은 커플들이 많이 등장을 하죠.
그런데 나는 궁극적으로 큰 변화를 못 느낍니다. 사실은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이고 역사적인 거죠. 누가 그 얘기를 했나, 아마 브레이트가 한 이야기인 거 같은데. "민중시가 완성되는 것은 작가가 썼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불리워 졌을 때 거기에서 완성이 된다"고 했죠. 마찬가지로 나는 역사적인 사건이 중요하고 그것 에 대한 귀기울임은 가장 기본적인 것이되, 그것이 어떻게 개개인에게 확산되어 있 는가,가 역시 굉장히 중요한 것 같아요.
그렇기 때문에 나는 역사와 일상이 구분되는 거라고 한번도 느껴본 적이 없고, 실제 로 그렇게 해석하지 않죠. 이번 작품에는 아주 정말 간단하게 행복해질 수 없을까 를 꿈꾸는 젊은 커플들이 많이 등장하는데, 그 커플들의 가장 단순한 욕망을 방해하 는 것들, 그것을 일상의 갈피에서 좀 들여다 봤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나는 변화를 못 느끼겠는데요? 그러나 표상적인 변화는 있겠죠. 소재가 일상에서 촛점이 맞추어 졌다, 이런 이야기를 할 수는 있겠으나, 사실 소재는 아무 것도 아니에요. 거의 모 든 소재가 의미심장하죠.
난다 : <저기 소리없이...>를 읽고 나서 가졌던 작가의 이미지가 <속삭임, 속삭임> 에서는 좀 달라졌다는 걸 느꼈습니다. 좀 더 명랑하달까, 화사하달까. 그 사이에 어 떤 내적인 변화가 있었나요?
윤 : 첫번째 작품은요, 이런게 있어요. 작품을 내 속에서 세상으로 내보낼 때, 작가 가 꼭 쓰고 싶은 작품이 있습니다. 그것이 더 중요해서가 아니라, 작가의 기억 속에 숨어 있는 야생화들, 한번은 꼭 선보이겠다 싶은 그런 소재들이 있죠. 그 소재들은 좀 급하게 나오죠. 그래서 작품의 전열에 서게 되는데. 꼭 써야 된다기 보다 쓰고 싶은 욕구를 느끼는 작품들, 그런 작품들이 <저기 소리없이..>라면, 그 다음 작품들 은 시대와의 민감한 대응도 있고, 조금은 나의 모습을 다양하게 보이고 싶은 그런 재미도 있고. 작가가 작품을 쓰다보면 어느날 거울 앞에서, 최윤, 너 왜 이렇게 지 루하게 생겼어,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거든요. 그런 때에 조금씩 벌이던 나와의 내 면적인 투쟁이랄까. 그래서 좀 파노라마가 다양하죠, <속삭임, 속삭임>은. 그러나 근본적으로 내가 세상에 대해 보는 시선의 일관성은 있지요.
난다 : <속삭임,속삭임>을 읽고서는 따님이 있는지 정말 궁금했어요.
윤 : 글쎄, 그걸 다들 물어요. 요새 은하 잘 있어, 하고. 그런데, 아들래미가, 아주 어린 아들이 있고, 그 때에는 아이가 없었어요. 모델이 된 건 나의 조카이지요. 실 제 이름도 은하이고.
난다 : 어머, 딸이 없으시다니! 꼭 있으실 줄 알았어요.
윤 : 하하, 딸이 없어도 소설 속에 딸을 만들 수가 있답니다. 소설가는 그러니까 대 단한 거짓말장이들이지요. 그렇게 들어가지 않으면 작품이 안 나오죠. 정말 딸이 있 는 것처럼 생활을 하니까.

/ 이애, 우리가 한몸일 때 그랬던 것처럼, 네게 해줄 속삭임이 이다지도 많은데, 이 제는 어떻게 그 얘기를 해야만 할까. 울음처럼, 웃음처럼, 옛날 이야기로 혹은 미래의 이야기로, 기체의 이야기 아니면 액체의 이야기로? 이애, 햇볕이 아직도 이렇게 따가운데... 우리가 예전에 한몸이었을 때처럼, 그렇게 얘기해 볼까. / (최윤, <속삭임, 속삭임> 중)

난다 : 저는 개인적으로 <파편자전:...>시리즈를 굉장히 좋아합니다. 작가가 직접적 인 얼굴을 처음으로 보여준 경우기도 하고 독자에게 또다른 즐거움을 주지요.
윤 : 한 사람의 일생을 누가 전통적인 자전처럼 그렇게 일관적인 시선으로 포착할 수 있겠어요. 내가 이미 나의 삶에 대해서 자전적으로 생각할 때 이미 타인이 되어 버려요. 내가 나를 생각할 때 그것은 조각으로, 몇가지 중요한 문을 통해서 오더라 구요. 그것이 언젠가는 합쳐지겠죠. 내가 즐거웠던 시간이라든지, 내가 좋아하는 물 건이라든지, 공간이라던지. 그래서, 아 이거는 내가 한번에 쓸 수 없구나. 매번 작 품집을 낼 때마다 한 작품씩 파편 자전을 쓰자, 그렇게 장기 기획에 들어갔던 거지 요.
난다 : 아마 독자가 즐거워 했듯이 작가도 쓰는 것을 즐기셨을 것 같아요.
윤 : 즐거이 운동하고 난 다음에 잠시 쉬듯이 그렇게 쓰는 작품이죠. 그러나 더 조 심하게 되는 부분도 있어요. 가령 모든 종류의 자전들이나 사적인 요소들은, 특히 현대 사회와 같은 시뮬래이션의 시대에는 작가를 신화화하는데 일조할 수 있기 때문 에 굉장히 경계하죠. 질색이거든요.
난다 : 선생님의 소설에 대한 평가 가운데 눈에 띄는 것 중 하나는 페미니즘적 접근 입니다. 남성적 주제를 여성적 방식으로 다루었다 라든지, 여성의 내면적 목소리를 발견했다 라든지. 이런 평가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윤 : 나는 근본적으로 여성이에요. 그리고 여성의 능력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고, 여성이 앞으로 할 일도 아직 많다고 생각하죠. 페미니스트 운동가인가?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나의 여성됨, 내가 여성이기 때문에 열리는 문이 있고, 여성 이기 때문에 더 민감하게 포착되는 현실이 있고, 여성이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다가 갈 수 있는 세계들이 있는 것 같아요. 그것을 최대한의 장점으로 쓰고 있는 작가이 지요. 운동을 못하는 건 시간이 없기 때문일 수도 있고. 그러나 그런 필요성을 인정 하기도 합니다.
내가 쓰고 있는 작품들, 하나 못해 가장 역사적이라고 생각되는 <아버지 감시>나 혹 은 <회색 눈사람>, <저기 소리없이...>와 같은 작품도 여성이기 때문에 그런 제시가 가능했다고 생각해요. 사실 이런 경우도 있죠. 여성이면서도 남성 이상의 남성관을 가지고 있는 경우. 그것은 나에게 적용되지 않아요. 몇몇 비평적 시도가 내 작품을 페미니즘과 연관시키는 건 너무 당연하겠죠.
누가 했는지 기억은 없지만 제3 세대 페미니즘 문학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 데, 나는 그런 인식은 없고, 단지, 내가 여러가지 알죠. 문학이 운동이 될 때 문학 이 잃는 점, 그런 부분을 굉장히 민감하게 인식하고 있고. 개인적으로 분명하게 문 학은 어떤 주의 이상이라고 생각을 해요. 그리고 꼭 여성 주인공 뿐만이 아니라, 남 성...남성 중에서도 여성 못지 않게 여성적인 세계관을 가지고 있는 친구가 있어요. 그런 친구 아니면 친구가 안 돼지요. 그렇기 때문에 나는 그것을 생물학적인 성별 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늘 그것을 여성적 세계관이라고 얘기를 해요. 우정의 양식, 관계의 양식, 세상을 보는 방식의 특이함, 이런 것들이 앞으로 점점 더 많은 구원을 하러 오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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