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성폭력학칙제정운동, 그 깃발을 올리자!
우리는 성폭력학칙제정운동의 중요성과 가능성을 그것의 여성운
동의 측면, 대중운동의 측면, 자치운동의 측면에서 바라보고자 한
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것이 성폭력학칙제정운동이 전개되는 과
정에서의 필요조건도 충분조건도 아니라는 점이다. 즉 성폭력학칙
제정운동이 이러하지 않다고 해서 그것의 중요성이 사라지는 것은
결코 아니며, 성폭력학칙제정운동만이 이러한 가능성을 구현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말 그대로 가능성이며 가능성은 언제나
운동의 과정 속에서 현실화되어야 할 것일 뿐이다.
21. 성폭력학칙제정운동은 여성운동이다
'성폭력학칙제정운동은 여성운동이다'라는 명제가 단순한 동어반
복이 아니기 위해서 우리는 무엇이 진정 여성운동이며 지금까지의
학내 여성운동은 어떠했는지를 돌이켜보고자 한다. 여성운동은 첫
째, 여성을 정치화하는 운동이며 둘째, 여성적 목표를 위한 운동이
며 셋째, 여성적 방식의 운동이다. 물론 이 세 가지 여성운동의 양
태들을 모두 온전히 구현하지 못했다고 해서 그동안의 여성운동의
성과들이 결코 간과될 수는 없다. 다만 여기서 지적하고자 하는 것
은 이러한 세 가지 양태들을 포괄하지 못한다면 여성운동의 급진성
은 적지 않게 퇴색할 것이라는 점이다.
87년 이후 학생회의 건설과 함께 등장했던 총여학생회는 현재 활
동력을 많이 상실한 상태이며, 많은 대학에서는 이미 존재를 감추
었다. 총여학생회의 해소의 원인 중 하나는 그것이 단지 여성을 운
동을 위한 동원의 대상으로 사고한 운동이었다는 점이다. 여성들이
운동에 동원되는 과정에서 운동 패러다임의 남성성은 조금도 전화
되지 않았다. 공적인 영역에서 여성은 철저히 남성화되어야 했으며,
사적인 영역에서 여성은 철저히 전통적 여성상을 구현해야 했다.
그것은 여성을 정치화하는 운동이었지만, 그 속에서 여성은 남성으
로서 정치화되었을 뿐 여성으로서 정치화할 수는 없었다. 또한 여
학생회라는 조직형태는 지극히 관료적이고 남성적인 것으로서 여성
운동을 담지할 조직으로는 바람직하지 않다. 이후에 제기된 여러
활동에서는 여성적 목표가 드러나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 역시 여
전히 중심운동에 종속되어 있어야만 했다. 여성운동은 그 자체로
자신의 정당성을 주장하기 이전에 중심운동의 패러다임에 기반해서
자신의 존재근거를 찾을 수 밖에 없었다(주15).
작년 서울대 약대 구교수 사건을 비롯한 교수의 학생에 대한 성
폭력에 대한 성폭력교수퇴진투쟁은 학생대중에게 커다란 반응을 불
러일으켰다. 물론 이러한 운동이 촉발된 것은 정확히 그것이 성폭
력이기 때문이었으며,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학내 여성운동조직의
활발한 활동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이 대중에게 받아들여
진 것은 그것이 여성운동이기 때문은 아니었다. 그것에 동조한 대
중은 그 사건이 남성적 관점에서도 명백한 성폭력이었다는 점에서
한 명의 악질적인 교수를 처단하고자 했을 뿐이다. 한 명의 악인과
그렇지 않은 대중과의 전선, 혹은 교수와 학생간의 전선만큼 여성
적 관점에서의 성폭력과 반성폭력의 전선은 전면화되지 못했다(주16).
학생대중은 여전히 성폭력과는 무관한 사람들로 남아있었다. 이러
한 점에서 교수퇴진이라는 운동방식은 대중의 삶에 침투해야만 하
는 여성적 방식의 운동에 미치지 못했다 할 것이다.
성폭력학칙제정운동은 그 일차적인 주체와 조직이 결정적으로 여
성에게 달려 있다. 또한 성폭력학칙제정운동은 성폭력에 대한 여성
적 관점의 정의를 대중적으로 관철시키고 그것의 근절을 목표로 한
다는 점에서 정확히 여성운동의 목표와 일치한다. 그리고 성폭력학
칙제정운동은 삶의 모든 영역에서 인간과 인간의 관계, 인간 내부
를 관통하는 성폭력과 반성폭력의 전선을 전면화시켜야 한다는 점
에서 여성적 운동방식을 채택한다. 이러한 점에서 성폭력학칙제정
운동은 여성운동의 발전적 전화를 위한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22. 성폭력학칙제정운동은 대중운동이다
대중운동이라는 말만큼 많이 오염된 말도 없을 것이다. 남성적
대중운동에 대한 여성운동의 비판을 다시 논하지 않더라도, 기존
대중운동의 폐해에 대한 비판은 이미 충분히 넘쳐나고 있다. 이러
한 비판들의 초점은 주로 대중을 주체가 아닌 대상을 하는 대중운
동, 관료적 수직적 동원라인으로 표상되는 대중운동에 맞춰져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정당한 비판이 현실에서는 대중운동 자체를 폐기하
는 효과를 가져오고 있다. 여성운동의 경우, 기존 대중운동에 대한
반발은 여성운동을 특유의 써클주의(주17)와 문화주의로 경도하게 했
다. 써클주의는 여성운동을 담론적이고 자족적인 수준에 머물게 했
다(주18). 문화주의는 기존의 집회를 퍼포먼스로 대체하고 문화상품에
대한 분석을 더했을 뿐, 여성과 대학생의 삶의 문화 전반에 대한
문제제기와 그것의 변혁에로 나아가지 못하게 했다. 물론 이러한
상황이 여성운동에 국한된 문제는 결코 아니다.
기존의 대중운동에 대한 문제제기는 원칙적으로 정당하다. 그러
나 그것이 효과적이기 위해서는 그리고 현실적으로도 정당하기 위
해서는, 직접적으로 지금까지와는 다른 대중운동을 과감하고 복합
적으로 실천하는 활동이 전제되어야 한다. 그것은 결코 대중운동
자체의 폐기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 사실상 모든 운동은, 사회적 과
정에서 배제되어 침묵하고 개별화되어 무기력한 대중의 집단적 정
치화를 직접적인 목표로 한다는 점에서 정확히 대중운동일 수밖에
없다.
성폭력학칙제정운동은 그 성격상 여성운동이 더 이상 써클주의와
문화주의에 갇혀 있지 말 것을 요구한다. 성폭력학칙제정운동은 명
백히 소수의 사람들의 입법투쟁이 아닌 대중의 집단적 정치화를 요
구하는 지속적인 대중운동으로서 자리매김되어야 한다. 또한 여성
운동이 지니고 있는 남성적 대중운동에 대한 비판력과 여성적 방식
의 운동에 대한 끊임없는 고민은 성폭력학칙제정운동을 통해서 대
중운동이 소멸한 시대에 새로운 대중운동의 중요한 전형을 창출할
수 있을 것이다.
23. 성폭력학칙제정운동은 자치운동이다(주19)
지금까지 자치운동은 언제나 구호로서만 혹은 억압에 대한 즉자
적인 저항으로서만 존재해 왔다. 어느새 자치는 선거 때마다 항상
등장하는 주요한 레테르가 되었다. 그러나 과연 학생자치권이 어떠
한 것인지, 그것이 어떻게 실현 가능한지는 논의된 바가 없다. 자치
는 본부와 교수, 공권력에 의한 탄압이 현실화되었을 때만, 이전의
'학원 자주'의 대용으로써 등장했을 뿐이다. 학생은 자신의 자치권
을 언제나 침탈을 통해서만 깨달을 수 있었다. 자치는 동원을 위한
도구로 사용되는 부드러운 단어에 불과했다. 이와 함께 '민주주의의
본래적 의미로서의 자치'의 개념은 지속적으로 형해화되어 왔다(주20) .
자치를 위한 저항 그 자체, 저항으로서의 자치운동은 진정 단 한
순간도 포기될 수 없는 것임이 분명하다. 그것이 없이는 자치가 없
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지금까지 학생운동이 보여준 저항으로서
의 자치운동이 즉자적이고 수세적이었다는 데 있다. 즉자적이고 수
세적인 자치권 수호의 한계는 명확하다. 열린 공동체 내부의 자치
를 현실화시키기 위한 구성원리, 구성으로서의 자치운동이 부재한
상황에서 즉자적이고 수세적인 자치운동은 공허해지고 만다. 우리
는 수호해야 할 자치권이 무엇인지 모르며, 왜 그렇게도 자치권이
소중한지조차 알지 못하는 것이다. 자치권은 수호될지언정 구성되
거나 주장한 되지는 못했다. 외부의 파시즘을 상대로 한 투쟁은 항
상 내부의 파시즘으로 인해 저지되고 약화된다. 사실 외부의 파시
즘과 내부의 파시즘은 정확히 동일한 것이다. 저항으로서의 자치운
동은 구성으로서의 자치운동과 함께 진행되어야 하며 그렇지 않는
다면 힘을 갖지 못할 것이다(주21) .
성폭력학칙제정운동은 대중적 논의에 기반한 공동체 내의 자치규
약의 제정과 공동체문화의 건설이라는 측면에서 구성으로서의 자치
운동이 현실화되는 첫 번째 실험이 될 것이다. 성폭력학칙제정운동
은 대중이 직접적으로 사회적 권력을 전유하는 가운데, 모든 폭력
과 파시즘을 소멸시키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는 공동체의 성원들
이 자유로운 소통을 통해 자신들의 권리와 의무를 자신들이 구성해
내며, 자신들의 능력을 확인하고 신장시키는 과정 속에서만 온전히
진행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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