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성폭력학칙제정운동을 어떻게 전개할 것인가

   성폭력학칙제정운동에서 '학칙'은 두 가지 측면을 포괄한다. 하나 는 교수사회와 대학본부를 포괄한 법률에 준하는 학칙이며 다른 하 나는 학생 공동체 내에서의 자치규약이다. 학칙제정투쟁과 자치규 약제정운동, 이 둘은 어느 하나로 환원될 수 없는 독자적인 의의를 갖고 있으며, 그에 따라 운동의 방식도 달라져야 한다.

31. 학칙제정투쟁

   학칙제정투쟁은 사실상 교수, 교직원에 의한 성폭력에 대한 투쟁 의 과정이다(주23) . 그들은 학생 공동체에 대해 외부인이며, 학생에 대 해 절대적인 권력을 행사하고 있다. 강의실과 대학원실에서 그들의 폭력이 가능한 것은 이러한 그들의 위치와 직접적으로 관련된다. 그들이 폭력을 행사하고도 또다시 권력의 우위를 바탕으로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이미 대화의 상대가 아니다. 오직 비타 협적인 투쟁만이 그들의 폭력을 소멸시키고 학칙을 제정할 수 있는 기반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학칙제정투쟁은 직접적으로 권 위사회로서의 교수사회와 대학본부에 대한 공세적 운동이다. 이 점 에서 성폭력학칙제정운동은 여타의 자치운동과 교육운동, 대학원자 치회와 연대할 수 있으며 또한 그래야만 한다.
   현재까지의 성폭력학칙제정운동은 주로 위와 같은 학칙으로서 제 기되고 진행되었다. 이것의 중요성은 다시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 다. 학칙의 제정은 그 실질적 활용 가능성과 상징적 의미에서 전례 를 찾아 볼 수 없는 여성운동의 일대 성과가 될 것임에 틀림없다. 법은 현실의 반영이기도 하지만, 사회변동을 불러오는 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특히 우리나라와 같이 오랜 관행이 법으로 정착하기보다는 법을 만듦으로써 관행을 바꾸는 경향이 큰 사회에 서는 법의 중요성이 더욱 크다.
   그러나 성폭력학칙제정운동의 과제를 이것만으로 설정하는 것은 다소 위험하다라는 점을 꼭 짚고 넘어가야 한다. 이는 앞서 말한 성폭력학칙제정운동의 급진적 가능성을 상당 부분 삭감시킬 것이 다.
   첫째, 학칙제정투쟁은 냉정하게 말해 대중의 대규모적인 동원이 가능하지 않다면 실현될 수 없는 성질의 것이다. 이것은 장기간의 준비 기간을 필요로 하며 짧은 시간 폭발적인 동력을 이끌어내어야 만 한다. 이는 학칙 제정이라는 목표에 지나치게 종속되는 운동과 정을 낳을 수 있다. 학칙제정투쟁 과정에서도 자치규약제정운동은 진행되어야 하며 운동의 과정 자체가 성과를 남기는 것이 되어야 한다.
   둘째, 학칙제정투쟁은 불충분한 여성운동이다. 기존의 성폭력 담 론을 해체하고 여성의 언어로 이를 재구성하는 것은 공동체 내의 구체적인 인간관계 속에서, 권력관계가 흐르고 있는 개개인의 내부 에서의 투쟁을 필요로 한다. 따라서 학생사회를 여전히 공백으로 남기고 있다는 점에서 학칙제정투쟁은 성폭력 담론의 지형 자체를 변혁하기에는 불충분하다.
   셋째, 학칙제정투쟁만을 강조하는 것의 가장 치명적인 이유는 이것에 가려 자치규약제정운동이 지체되거나 해소될 가능성이 대단 히 크기 때문이다. 십 년여의 학내 여성운동의 역사 속에서 여성운 동은 항상 다른 운동의 도구로 전락하거나, 계속해서 지연되어 왔 다(주24). 자치규약제정운동이 함께 진행되지 않는다면 학칙제정의 의 미는 반감될 것이 분명하다.
   넷째, 법률이 가지는 고유한 성격으로 인해서 왜곡될 소지가 있 다. 학칙제정투쟁은 명백히 반성폭력 운동이지만 입법투쟁이기도 하다. 따라서 법률의 논리가 필연적으로 결합될 수밖에 없으며 이 는 경우에 따라 운동을 저해하는 요소로 나타날 수도 있을 것이 다(주25). 따라서 법률 자체에 대한 문제제기는 반드시 함께 이루어져 야 하며, 동시에 자치규약제정운동이 진행되어야만 한다.

32. 자치규약제정운동

   학칙제정투쟁이 권위사회에 대한 투쟁으로서의 의미를 갖는다면, 자치규약제정운동은 학생 공동체 내부의 자치질서의 구성을 위한 운동의 과정 자체이다. 전자가 가시적이고 단기적인 목표를 향해 치밀한 전략과 전술을 요구하는 운동이라면, 후자는 공동체의 전화 와 재구성을 위한 항구적이고 지속적인 운동이다. 전자가 성폭력에 관한 여성적 담론을 보편적 가치로 세력화하고자 하는 입법투쟁이 라면, 후자는 그것을 현실에서 구현하고 그것의 가능성을 증명하며 우리 삶의 전변을 바꾸어 나가는 운동이다. 이 두 가지 운동의 경 중과 차후의 문제를 논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이 둘은 충돌되는 것 이 아니라 운동의 과정에서 서로의 공백을 메우고 상승효과를 가져 오는 방식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자치규약제정운동은 직접적으로 여성적 방식의 운동을 요구한다. 첫째, 우리는 개인들과 공동체들의 내부에서의 투쟁을 유도해야만 한다. 우리는 개인과 개인간의 갈등, 공동체와 공동체간의 갈등으로 현상하는 성폭력 사건에 대해서 그러한 현상의 이면에는 각각의 공 동체와 개인에 공통적으로 내재하고 있는 전 사회의 구조적 모순이 존재하고 있음을 폭로해야 한다. 그리하여 개인과 공동체의 끊임없 는 평가와 반성을 촉구하여 스스로 변화해 나아가도록 자극하는 운 동의 방식을 선택해야 한다. 이는 개인과 공동체를 일괴암적이고 통일된 주체로 파악하는 방식의 운동과는 거리를 갖는다. 이를 위 해서는 성폭력 사건의 공론화가 가장 우선되어야 하며, 성폭력에 관한 담론을 여성적으로 재구성하는 과정이 되어야 한다.
   둘째, 우리는 지속적이고 소규모적인 대중적 논의의 장을 펼쳐야 한다. 자치규약은 법률과 달리 그것을 위반했을 경우에 대비한 강 제력은 미약할 수밖에 없다. 자치규약이 담보할 수 있는 강제력은 오직 그것의 제정 과정에서의 대중의 동의수준과 위반한 사람의 자 율에 전적으로 의존한다. 그렇기 때문에 학칙은 그것의 제정만으로 도 큰 의의를 가질 수 있지만, 자치규약은 명확히 그것의 제정 자 체보다 제정을 위한 과정과 제정 이후의 과정이 더 중요하다. 극단 적으로 자치규약이 명문화되지 않더라도 대중적 논의가 충분히 이 루어진다면 그것은 실질적인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셋째, 우리는 대중들의 자발적 문제해결능력을 고양하는 방식으 로 운동을 진행시켜야 한다. 법률적인 문제해결은 문제해결의 권한 을 '객관적'이어야 한다는 이유로 오직 공인된 특정기관에만 집중시 킨다. 그러나 성폭력 사건의 해결과정은 항상 구체적인 개인과 개 인, 공동체와 공동체 사이의 상호주관적인 합의를 쌓아 가는 방식 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문제는 현실에서 그러한 상호주관적인 합의 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며 그럴 수 있는 현실적 여건이 부재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현실은 극복의 대상일 뿐이다. 법률에 의거 한 '객관적'인 자동적인 문제해결 방식은 대중을 여전히 수동적인 위치로 고정시킬 위험이 있다. 대중들이 자신들의 사고와 행위의 주체로 당당히 등장하지 않는 이상, 일상적인 성폭력 모두를 근절 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성폭력학칙제정운동이 대중의 정치화를 직접적으로 요구하는 대중운동, 자치운동이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넷째, 문제해결의 원칙은 공개사과와 재교육이다. 공개사과가 갖 는 의미는 다음과 같다. 첫째, 공개사과는 피해자에 대한 최소한의 보상이다. 성폭력으로 인한 피해의 경우 가해자에 대한 어떠한 처 벌로도 온전한 보상은 불가능하다. 오직 가해자가 자신의 잘못을 인식하고 사과하는 것만이 성폭력에 대한 정당한 평가를 통해서 피 해자의 복권을 앞당길 수 있다. 둘째, 공개사과는 가해자 자신이 스 스로의 행동의 잘못된 점을 깨닫고 이를 반성하며 사회적으로 이에 대해 사죄할 수 있는 유일한 과정이다. 가해자의 진실한 공개사과 를 통해서만이 사회적 성폭력과 그것을 자신의 몸으로 실현했던 가 해자는 분리될 수 있으며 이로써 사회적 성폭력에 대한 정당한 평 가는 시작될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공개사과는 법률적 의미에서 의 '처벌'과 다르다. 처벌은 사회적 성폭력에 대한 반대로 이어지지 못한 채 가해자만을 영원한 범죄자로 낙인찍는 결과를 가져올 뿐이 다. 처벌은 정확히 말하면 가해자 인격에 대한 처벌이 아닌 사회적 범죄에 대한 처벌이 되어야 한다. 우리가 고립시키고 배제시켜야 할 것은 인간이 아닌 사회적 범죄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또한 재 교육은 가해자의 변화를 위해서 필수적인 것이다. 여러 가지의 재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고 시급하다.
   다섯째, 우리는 대안적 소통구조와 문화를 창출하는 데 온 힘을 기울여야 한다. 앞서 말했듯이 가시적인 성폭력의 소멸 자체가 자 동적으로 풍요로운 인간관계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다시 말해서 현 재의 문화, 현재의 공동체를 해체하는 것은 자동적으로 대안적 문 화, 대안적 공동체의 건설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공동체의 해체의 과정과 공동체의 건설의 과정은 정확히 동일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은 실로 항구적인 과정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 것은 대안적 공동체라는 고정된 상이 있고, 그것으로 가는 길이 너 무 멀기 때문은 아니다. 그것은 대안적 공동체라는 고정된 상이 실 로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스스로를 변혁해 나아갈 수 있는 열린 공동체, 대중의 집단적 정치화를 통해 대중 스스로가 공 동체 전화의 과정을 전유할 수 있는 권력을 갖는 공동체만이 현실 적으로 존재할 수 있을 뿐이다. 이는 대안적인 소통구조를 정착시 키고 풍요로운 문화를 건설하는 부단한 노력을 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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