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학칙제정운동, 그 깃발을 올리자!]



글쓴이 : 지음

0. INTRO

   현재 각 대학에는 수많은 여성운동조직이 건설되어 성폭력 근절 의 위한 지속적인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18개 대학 여성운동조직 이 결합되어 있는 [학내 성폭력 근절과 여성권 확보를 위한 여성연 대회의]가 주관한 한 설문조사에서 성폭력학칙을 제정해야 한다고 답변한 사람들을 여성과 남성 각각 96%를 웃돌았다.(주1) 서울대의 지난 해 41대 총학생회 선거에서는 여섯 개 선본 모두가 당락에 관계 없이 [관악여성모임연대]와 함께 성폭력학칙제정운동의 일주체로 설 것임을 공동공약으로 내세운바 있다.
   그러나 이러한 긍정적인 모습들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성폭력학칙 이 제정된 단위는 아직 단 한 곳도 존재하지 않으며, 성폭력학칙제 정운동의 주체와 흐름이 보이는 곳도 많지 않다. 오히려 대학문화 의 전반적인 쇠락과 학생운동의 총체적인 침묵으로 인해서, 사회에 만연한 성폭력적 문화는 대학사회를 더욱 노골적으로 관통하고 있 는 것으로 보인다.
   현실은 이러하다. 성폭력 근절은 하나의 당위이며, 그 당위에는 누구나 동의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것이 운동으로 드러날 때 그것은 두 개의 거대한 벽에 부딪힌다. 하나는 성폭력을 우연한 개인의 문제로, 보수적인 윤리의 문제로, 여성의 '정조'의 문제로, 사소한 문제로 인식하는 관점과 행위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성 폭력 근절의 목표와 의의에는 동의함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바로 지 금 여기서 시작하는 것에는 반대하는, 혹은 주저하는, 혹은 무기력 한 대중들 그리고 운동 그 자체이다.
   사실, 이 두 가지는 앞서 말한 성폭력학칙제정 96% 찬성과 선거 공동공약이 너무도 쉽게 얻어진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동시에 이는 성폭력학칙제정운동이 지금까지 이름만으로 존재했어야만 했 던 이유이기도 하다. 바로 이 두 가지의 벽은 항상 구체적인 현실 에서는 운동을 짓누르는 완강한 권력관계 그 자체로, 또 하나의 철 저하고 뿌리깊은 성폭력으로 현상한다.
   성폭력의 근절이라는 당위를 위한 운동이 또다른 성폭력으로 저 지당하는 모순된 현실. 이 글은 정확히 이러한 현실 위에 서 있다. 이 글의 목표는 다음과 같다. 첫째, 이 글은 학생사회를 구성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성폭력학칙제정운동을 즉각 시작할 것을 주장하고 촉구하고자 한다. 이 글은 명백히 여러 여성운동조직의 운동을 적 극적으로 지지하는 입장에 서 있다. 둘째, 이 글은 이와 동일한 맥 락에서 그동안의 학내 여성운동에 대한 나름의 평가와 반성 그리고 여성운동이 내재한 가능성을 바탕으로, 여성운동의 급진적 전환에 기여하고자 한다. 셋째, 이 글은 성폭력학칙제정운동의 가능성과 운 동 과정 중의 유의점에 대해 논함으로써 그것의 올바른 방향을 선 취하는 데 일조하고자 한다.

1. 성폭력에 관한 담론은 여성의 언어로 재구성되어야 한다

   반성폭력 운동은 성폭력의 개념을 확장하고, 성폭력에 관한 성폭 력적 담론을 해체하고 이를 여성의 언어로 재구성하는 것에서 출발 한다. 성폭력 사건은 언제나 그 사건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에 앞 서, 그 사건이 성폭력이냐 아니냐라는 '성폭력'의 개념과 지칭을 둘 러싼 논쟁이 먼저 이루어진다. 성폭력은 보편적으로 가장 극악한 폭력으로 인식되어 있지만, 이 때의 성폭력의 범위는 너무도 협소 하기 때문이다. 현 사회의 성폭력에 관한 담론은 그 자체가 지극히 성폭력적이며 여성배제적이다. 따라서 성폭력의 근절이라는 목표는 이미 사회적으로도 성폭력으로 인정되는 행위에 대한 처벌에서 그 칠 수 없는 것이다. 성폭력 개념의 범위를 넓혀 나가며, 일상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모든 종류의 성폭력에 반대하는 운동이 필요한 이유 가 바로 여기에 있다.

11. 성폭력은 전 사회와 모든 개인에 내재한 일반적인 폭력이다

   성폭력은 우연한 한 순간의 문제가 아니다. 성폭력은 그 구체적 인 순간은 물론이고 그 이전과 그 이후에도 여성에게 끊임없는 공 포와 고통과 허무와 절망과 좌절을 강요한다. 또한 성폭력은 어떤 일부의 여성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성폭력은 태어날 때부터 자신의 몸, 자신의 성적자율권을 갖지 못한 모든 여성들의 존재를 위협하 는 문제이다. 따라서 모든 여성들은 그들간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전 생애 모든 순간에 걸쳐 잠재적인 그리 고 직접적인 성폭력의 피해자이다 .(주2) 여기에는 어떠한 은유도 없다.
   성폭력이 우연한 사건이 아니라는 점은 가해자의 경우에도 마찬 가지이다. 성폭력은 어떤 특정한 선천적인 악인에 의해 자행되는 우연적인 행위가 아니다. 성폭력은 성적분할, 성적배제를 바탕으로 성억압과 성폭력을 구조화시키고 있는 현 사회가 전면적으로 재구 조화되지 않는다면 언제 어디서나 누구에 의해서도 누구에 대해서 도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성폭력 사건이 일어났을 때 일반적으로 이는 특정인들만 의 우연한 문제로 고립된다. 성폭력은 여전히 가장 공론화되지 않 는 문제들 중 하나이다. 그리고 어렵게 공론화가 되었을지라도 이 는 항상 피해자와 가해자를 고립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피해자는 '정숙하지 못한 여성'으로, '몸을 버린 여성'으로 고립되는 가장 두 려운 형태의 성폭력을 경험한다. 가해자 역시 정당한 평가 이전에 고립된 범죄자로 낙인찍힌다. 성폭력 사건과 그 피해자 및 가해자 를 고립시키는 것은 옳지 않다. 이는 성폭력 자체는 온존시키는 대 신에, 가해자와 피해자를 인격적으로 철저히 배제시키는 결과만을 가져올 뿐이다 (주3)

12. 정조 보호의 문제가 아닌 성적자율권 확보의 문제이다

   전통적으로 강간은 남성이 강제력을 행사하여 여성의 정조를 파 괴하는 범죄로 간주되었다. 따라서 정조 관념이 희박하다고 판단되 는 여성의 경우는 강간죄가 성립하지 않았다. 이러한 맥락에서 '법 은 보호할 가치가 있는 정조만을 보호한다'라는 말이 정당화된다. 또한 같은 이유로 성폭력의 피해자 역시 여성 자신이 아니라 부모, 남편, 그리고 그 여성의 몸에 대한 소유권을 가진 공동체로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인식은 여전히 우리 사회에 깊숙히 뿌리박고 있 다(주4)
   정조의 개념은 여성의 몸을 여성의 것이 아닌 여성이 귀속되어 있는 공동체의 소유물로서 인식에 기반해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성폭력을 범죄로 간주하는 것은 그것이 여성 자신의 몸에 대한 자 율권을 침해했다는 것이 아니라, 여성의 재생산적 신체를 소유한 공동체의 소유권을 침범했다는 데 있다.
   그러나 정조의 보호란 관점에서 성폭력을 반대하는 것은 여성지 배를 더욱 더 공고히 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이러한 관점은 성폭 력의 피해자인 여성을 정조를 상실한 여성 (주5) 으로 낙인찍으며, 영원 히 성폭력의 피해에서 헤어나올 수 없게 만들뿐이다.
따라서 우리는 정조의 보호의 측면에서가 아니라 여성이 자신의 신체와 성적자율권을 가진 당당한 존재라는 측면에서, 성폭력에 반 대한다는 점을 명확히 해야 한다. 모든 사람은 자신의 몸에 대한 침해할 수 없는 권리를 갖고 있으며, 이러한 개인의 성적자율권을 상대방의 동의없이 침해하는 모든 행위는 성폭력이다. 성폭력에 대 한 보수적 윤리는 그것이 형식적으로는 성폭력에 반대한다 할지라 도 또 하나의 전복해야 할 성폭력에 다름 아니다.

13. 성폭력의 피해자는 모든 인간이며, 여성운동의 주체도 모든 인간이어야 한다

   현 사회의 성폭력적 구조는 여성과 남성, 그리고 모든 성적소수 자들을 막론하고 전 구성원에게 차별적 박탈을 수행한다. 이러한 박탈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결단코 없다. 첫째, 성폭력의 대 상에서 모든 사람은 자유로울 수 없다(주6) . 둘째, 성폭력 가해자 역시 성폭력의 피해자이다(주7) . 성폭력을 행했다는 사실은 가해자 인격의 파탄을 증명한다. 또한 성폭력에 대한 단죄가 항상 성폭력 그 자체 가 아닌 성폭력범죄자 개인에 대한 처벌로 현상하는 현실에서, 가 해자는 사회적 배제를 경험할 수밖에 없다. 셋째, 다른 시각에서 본 다면 잠재적인 성폭력의 가해자로서의 모든 남성은 오히려 가련한 존재이다. 남성은 따뜻한 인간관계가 무엇인지를 교육받지 못했다. 경쟁을 위해서, '남자답지 못하다'는 이유로, 대부분의 남성은 그것 을 거부하도록 강요당했다. 남성은 여성을 소통할 수 있는 인간으 로서 대하지 말고, 오직 성적 대상과 육체로서만(주8)대하도록 교육받 았고 그럼으로써 자신 역시 속물화되고 말았다. 그는 자신의 한 줌 도 되지 않는 권력을 여성에게 폭력적으로 행사하면서 그것에 만족 해야 한다. 그리고 그에겐 더 많은 권력을 위한 경쟁만이 남는다(주9) 따라서 반성폭력 운동은 피해여성의 인권을 보호하는 운동에서 그칠 수 없다(주10) . 그것은 성적분할, 성적배제를 바탕으로 성억압과 성폭력, 인간관계의 기형화를 구조화시키고 있는 현 사회에 대한 전면적인 문제제기이며 대안적 사회를 구성하고자 하는 운동이다. 이러한 운동의 주체는 너무도 당연하게 모든 사람이 될 수 있으며 또한 그래야만 한다.

14. 가해자의 관점이 아닌 피해자의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성폭력은 명백한 하나의 폭력이다. 그러나 동시에 성폭력은 매우 특수하고 철저한 폭력이다. 어떠한 폭력도 피해자에게 사건의 책임 이 전가되지는 않는다. 어떠한 폭력도 그 해결 과정에서 피해자에 게 또다른 폭력이 가해지지는 않는다. 어떠한 폭력도 다른 여타의 이유로 인해 폭력 자체가 정당화되지는 않는다. 어떠한 폭력도 '가 해자의 피해'가 '피해자의 피해'보다 강조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성폭력의 경우에는 다르다. 성폭력의 원인은 항상 여성의 무책임성으로 되돌려 진다. 그리고 피해자는 '정조를 잃은 여성'으 로 낙인찍힌 채 내부의 자책과 외부의 따가운 시선을 받으며 일생 을 살아가야 한다. 성폭력의 피해자는 침묵해야만 한다. 성폭력을 폭로하는 것, 그리고 그것의 해결을 위해 그것이 폭력이었음을 주 장하는 것은 항상 그녀의 몫이며, 그 자체가 참을 수 없는 성폭력 이기 때문이다. 성폭력은 그 앞에 항상 수많은 수식을 달고 다니며 그것은 성폭력 그 자체보다 항상 우위에 선다. 즉 '어쩔 수 없는 성 욕 때문에', '사랑하니까', '유혹에 못 이겨', '그녀도 원했다고 생각 해서', '분위기 때문에', '몰라서' 등등의 수식어는 항상 성폭력을 은 폐하고 정당화한다(주11). 성폭력에 대한 정당한 평가와 해결은 항상 '가해자도 피해자다', '그것은 가해자에 대한 폭력이다'라는 완강한 반발에 부딪혀 좌초하고야 만다. 실제로 대부분의 성폭력의 해결 과정은 피해자에게 더 많은 피해가 돌아간다.
   원인이 무엇이었던지 간에, 상황이 어떠했던지 간에, 의도가 있었 는지 없었는지 간에 성폭력 그 자체에 대한 명확하고 정당한 평가, 그리고 가해자에 대한 적절한 조치는 이루어져야 한다. 중요한 것 은 피해자가 성폭력으로 인한 고통을 겪고 있다는 사실 자체이며, 그것의 일차적인 책임은 가해자에게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 다(주12) . 이것이 원칙이다. 물론, 가해자의 피해를 인정할 수는 있다. 성폭력에 대한 잘못된 인식으로 인하여 가해자에게 돌아가는 부당 한 피해는 최소화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가해자에게 자동적으로 면죄부가 부여될 수는 없으며, 그것으로 인해 성폭력에 대한 정당한 평가가 저해되어서는 안 된다.

15. 모든 종류의 성폭력에 대한 차별없는 반대를 명확히 해야 한 다

   일반적으로 성폭력은 '객관적'으로 성폭력의 정도가 얼마나 심한 것인지, 성기가 삽입되었는지 아닌지, 어느 정도 삽입되었는지에 따 라서 구분된다. 그러나 이 때의 객관은 객관을 위장한 남성의 주관 에 불과하다. 여기에 여성의 주관과 여성적 사고는 조금도 포함되 어 있지 않다. 남성중심적, 성기중심적인 성인식이 지배적인 현실에 서 여성의 성은 단지 남성의 욕구를 채워 주는 육체적인 대상에 불 과한 것으로 드러난다. 바로 이러한 현실이 수많은 성폭력을 양산 하고 있는 것이다. 성폭력에 대한 앞서의 '객관적' 판단은 이러한 현실의 무비판적 반영에 불과하다.
   성폭력은 성폭력이다. 강간, 준강간, 성추행, 성희롱, 성적 괴롭힘 등등의 성폭력의 정도를 구분하는 용어는 성기중심적 사고에서 비 롯된 것으로서 문제의 본질을 흐릴 뿐이다. 성폭력은 상대방의 동 의 없이 상대방의 성적자율권을 침해한 행위 이상도 이하도 아니 다. 성폭력에 의한 피해는 피해자의 주관에 전적으로 의존한다. 이 것이 양적으로 구분될 수는 없다. 우리는 모든 종류의 성폭력에 대 한 차별없는 반대를 명확히 해야 한다. 우리에게는 반성폭력에 대 한 중요한 몇 가지 원칙과 운동의 방향이 필요할 뿐이다. 성폭력의 정도를 임의로 구분하고 그에 맞는 처벌방식을 도식적으로 끼워맞 추는 것은 우리의 관심 대상이 아니며, 그것은 성폭력의 본질을 은 폐하는 결과를 낳을 뿐이다(주13).

16. 반성폭력은 성억압이 아닌 성해방을 함축한다

   사람의 성적 욕구는 풍요로운 인간관계에의 자연스러운 욕구 이 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러나 현실에서 성은 철저히 억압되어 있다. 인간은 오직 단자화된 개인으로서만 존재한다. 인간은 무한경쟁 속 에서 모든 인간관계를 박탈당했다. 이제 성은 모든 사람들에게 박 탈된 어떠한 것, 자신에게는 애초부터 결핍된 어떠한 것이 되어 버 렸다. 성은 물화되었으며 독점되었으며 고립된 상품이 되어 버렸 다(주14) . 따라서 성은 오직 권력과 부를 소유한 자만이 소유할 수 있 는 어떠한 것이 된 것이다. 모든 사람에 내재하고 있던 풍요로운 인간관계에의 자연스러운 욕구로서의 성은 이제 상품화된 성의 구 매욕, 박탈된 성의 폭력적 전유욕으로 변질되었다. 그리고 그러한 상품화된 성의 구매 행위와 성적 욕구의 왜곡된 표출은 언제나 포 르노와 성폭력으로 현상한다.
   따라서 우리가 명확히 해야 할 것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우리가 반대할 것은 개인이 자신의 성을 드러내는 것, 성적 욕구의 자연스 러운 표출 그 자체가 아니다. 우리는 자신의 성적자율권을 바탕으 로 자연스러운 성의 발현을 통한 풍요로운 소통과 관계맺음을 진정 으로 원한다. 우리가 반대해야 할 것은 성의 발현을 끊임없이 질곡 하며 그것이 드러나는 즉시 그것을 성폭력과 포르노로 변질시키는 현 사회구조일 뿐이다. 우리가 성의 상품화에 반대해야 하는 이유 가 여기에 있다. 성의 철저한 억압은 성폭력을 소멸시킬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것은 직접적으로 모든 인간관계의 단절을 의미한다.

17. 성폭력에 관한 담론은 여성의 언어로 재구성되어야 한다.

   성폭력의 근절을 목표로 하는 모든 운동의 출발점은 이러한 성폭 력에 대한 남성적 담론, 성폭력적 담론에 대한 투쟁이 되어야 한다. 어떠한 행위를 성폭력이라 규정하는 것에서부터 그것에 대해 평가 하는 것 그리고 그것을 해결해 나아가는 것까지, 성폭력을 둘러싼 모든 영역은 직접적으로 투쟁의 장이다. 이러한 투쟁은 지속적으로 전개될 수밖에 없으며, 또한 그러한 복합적이고 다부진 투쟁만이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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