Ⅲ
인간 진화의 저편 :
보노보 - 수컷의 폭력을 견제하는 암컷들
그러나, 유인원 사회가 이러한 관계 구도만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보노보의 경우 수컷의 폭력 기질을 견제하고 집단-패거리끼리의 유혈 다
툼을 극복하는 데 암컷간의 연대가 매우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보노보는 침팬지와 가장 가까운 동물로 외관상으로는 침팬지와 거의
구분이 되지 않는다고 한다. 침팬지와 이들간의 차이는 인류 집단의 개체
들 간의 평균 차이보다도 적다. 수컷이 암컷에 비해 큰 것도(평균 몸무게;
수컷 49kg, 암컷 29kg) 같고, 수컷의 폭력 기질도 비슷하고, 부계 사회로
서 수컷은 집단에 남아있지만, 암컷은 다른 집단으로 이동해 가는 것 또
한 같다.
그럼, 가장 결정적인 차이를 보이는 보노보와 침팬지의 암수 관계를
비교해 보자.
침팬지 수컷들은 그들의 일생을 서열 상승에 바치지만, 암컷은 이러한
욕구가 덜한 듯이 보인다고 한다. 그러므로 공격성도 떨어지고, 수컷이라
면 분노할만한 모욕을 곧잘 견디어 낸다. 따라서 성체 수컷간에는 언제든
지 서열이 뒤집힐 지 모를 긴장이 형성되지만, 성체 수컷들은 성체 암컷
들 위에 의례 군림한다.
수컷들은 그들의 체구가 암컷보다 커지는 순간부터 자기보다 연로하고
사이좋게 지내던 성체 암컷들을 상습적으로 때리기 시작한다. 물론, 이는
암컷을 보호해 줄 성체 수컷이 없을 때에 일어난다. 대게 무리를 짓지 못
하는 암컷들은 이에 당하고만 있다. 게다가 암컷의 수태 능력이 최고에
달하는 시기(생리 주기의 2-3일 간)에 항문-성기 부분이 외관상 크게 부
풀기 때문에 이 시기에는 수컷들 간의 공격적인 경쟁이 두드러지게 나타
난다. 수컷의 강압으로 교미가 성립하는 침팬지 사회에서 이러한 외적 신
호는 암컷을 시달리게 하는 요인이 된다. 정도가 지나친 수컷의 공격과
경쟁으로 먹지도 자기 새끼를 돌보지도 못하게 되므로, 생리 주기에는 집
단에서 사라지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물론, 이 때 대게는 보호자 수컷을
동반하는데, 결국에는 이 동반 관계를 유도하기 위한 수컷의 강압이 평소
에 지속되는 결과만 초래한다. 침팬지 암컷들은 그 기질과 집단 안에서의
역할 그리고 관계 형성의 유형으로 볼 때 학대와 폭행으로 점철된 삶에서
헤어 나오기 힘들다.
이에 반해 보노보 집단에서는 암수가 동등하다고 할 수 있다. 우두머
리 암/수, 그리고 밑바닥 암/수는 동등하다. 이들 사이의 지위는 암수 성
이 아니라 그가 누구인가, 누가 자신을 도울 것인가 하는데 있다.
침팬지 수컷이 자라면서 연로한 암컷들 위에서 군림하고자 폭력을 행
사하는 것과는 다르게 보노보 아들들은 어미에게서 거의 떨어지지 않는
다. 일생을 함께 살면서 늘 같은 무리에 속한다. 아들의 입장에서 이는 다
른 수컷과의 경쟁에서의 승리에 어미의 도움이 절대적이기 때문이다. 어
미가 생존해 있는 수컷은 대게 높은 서열에 있다. 어미가 죽으면 서열이
떨어지는 수컷을 목격한 연구도 있다. 그리고 어미의 서열이 바뀌면 아들
들의 서열도 함께 바뀌는 예가 있다. 반면, 침팬지 어미는 아들의 지위 형
성에 거의 도움을 주지 못하므로 수컷 침팬지가 어미를 따라 다니는 일은
거의 없다.
그렇다면, 암컷 보노보들은 어떻게 그들의 세력을 형성하는가?
그들은 수컷이 하지 않는 방법으로 서로 협동한다. 보노보 사이에서
어미와 아들 관계는 암수 관계 중에서 가장 밀접하다. 어떤 어미가 도움
을 요청하며 소리를 지르면 다른 암컷들이 이에 반응을 보인다. 어미의
암컷 집단이 지위 보호와 안전 보장의 역할을 한다. 이 집단 시위의 효과
는 강력하여 암컷이 승리하게 되어 있다. 이와 반대로 수컷들은 서로간의
유대가 없다. 따라서 최고 우두머리 수컷이라도 암컷이 뭉쳐서 달려들면
질 수밖에 없다고 한다.
보노보 수컷에게서 관찰되는 상대적인 부드러움은 암컷의 이러한 강력
한 힘에 있다는 결론을 내려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물론, 수컷이 암컷을
공격하는 일도 있으나, 동성간 공격 횟수의 절반 정도로 빈도가 낮으며
일단 공격하면 암컷 패거리에 내쫓길 각오를 해야 한다. 그리고 암컷 보
노보들이 거드름을 피거나 거친 수컷을 공격하는 것도 종종 관찰된다.
이러한 암컷 유대의 형성과정을 살펴보자.
암컷은 청년기에 이르면 가족을 떠나 새 집단으로 이주하므로 암컷들
간에 혈연 관계는 없다. 그러므로 청년기 암컷에게 가장 중요한 일은 평
생을 함께 해야 할 이 새로운 집단에서 자기 지지 세력 망을 구축하는 것
이다. 이를 구축하는 방법으로 현재 거론되는 것의 하나는 겐이치 아다니
라는 학자가 기술한 것으로 선배 암컷과 후배 암컷간에 일어나는 '호카호
카'라는 애정, 관심 표현의 행위가 있다. 이것은 서로의 음핵부분을 비비
는 것으로, 이에 이르기까지 마치 인간 연인들 사이의 접근, 은근한 눈빛
과 몸짓 등이 지속된다. 보노보의 음핵은 인간이나 다른 유인원에 비해
크고 침팬지에 비해 수평 방향으로 발달된 것인데 카노라는 학자는 이것
이 호카호카의 쾌감을 위해 진화된 것으로 본다.
이러한 행위로 젊은 암컷은 토박이 선배와 유대를 형성한다. 이러한
관계 확립으로 새 집단에 융화가 시작된다고 한다. 수컷과는 달리 이들은
서로에게 거칠게 구는 적인 없고 순종하는 쪽에서 끌끌대거나 비명 지르
는 등의 복종 표시를 하는 법도 없다. 선배 암컷은 자신의 지위에 대해
권위를 부리지 않는다.
물론, 보노보 수컷은 침팬지와 다를 바 없이 서열을 위한 경쟁 속에
살고 있다. 단, 침팬지 수컷이 우두머리를 차지하기 위해 격렬하게 싸우고
상당한 위험을 감수하는 반면, 보노보는 싸우는 횟수, 정도, 해결 기술에
서 떨어진다. 대게 보노보 수컷들의 공격은 신체적 접촉이 없는 과시(비
난)이다. 침팬지에서 정교하게 발달된 지위 인정 표현도 없다. 또한 서열
이 낮은 수컷이 높은 수컷에 의해 교미를 저지 당하는 일도 없다. 이는
암컷의 배란기가 언제인지 알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견해가 있다. 보노보
암컷은 외관이 변하거나 냄새를 풍기는 일이 없다. 수컷 침팬지가 배란일
을 알고 이 시기에 격렬한 경쟁을 하는 것과 대조적으로 수컷 보노보는
언제 경쟁하는 것이 좋은지를 정확히 모른다.
또한 보노보는 성을 단순히 생식을 위한 것으로만 사용하지 않는다.
친구를 사귀는 수단으로, 긴장된 친구를 위로하거나 다툼 후의 화해 수단
으로 이용한다. 성의 상대자는 대게 동성이거나 불임인 어린 새끼이며 성
체 보노보 암수 사이의 성교도 대체로 생식적인 이유가 아닌 것으로 보인
다.
그리고 집단-패거리간의 마찰 해결 방식도 놀랍다. 물론, 작은 집단이
큰 집단을 피해 다니고 싸움이 일어나는 것도 사실이지만, 회합이 잘 이
루어지는 편이다. 집단간의 우호적인 행동은 암컷이 시작한다. 청년기 암
컷들은 다른 집단의 성체 암컷들에 대단한 관심을 갖는데 이는 그 집단으
로 이주할 가능성을 타진하는 것이다. 이들은 서로 다른 집단 암컷과 호
카호카를 하고 심지어 서로 다른 소속의 암수가 교미를 하기도 한다. 이
때 성체 보노보 수컷들은 무심하게 보고 있기만 한다.
이런 식으로 침팬지와 비슷한 조상에서 온 그들은 보노보로 진화하면
서 수컷들의 폭력적 기질이 감소되었다. 이 원인으로 학자들은 암컷 연대
의 견제와 보노보 서식지의 풍부한 식량 조건을 들고 있다. 고릴라가 식
량의 보고를 선점하는 지역에서 사는 침팬지는 끊임없이 헤어져서 먹이를
찾아다녀야 했다. 이에 암컷들이 큰 집단을 이루어 수컷을 견제한다거나
할 수 있는 여건이 되지 않았던 것이다. 또한 유동적인 집단-패거리 사이
의 힘에 불균형이 생기고 싸움이 일어나게 된다. 이러한 식량을 얻기 위
한 이동은 인류 탄생 초기부터 제국주의 현대국가에 이르기까지 계속되는
삶의 패턴이다. 그러나, 보노보의 경우 양질의 식량을 채취할 수 있는 환
경이 그들을 안정된 집단을 이루도록(십 수 마리가 고작인 침팬지보다 큰
80여 마리에 이르는 집단을 형성할 수 있다) 한 것이다. 보노보의 위와 같
은 특성들은 진화의 역사가 약간 달랐더라도 호모 사피엔스의 기질과 사
회의 모양새도 달라졌으리란 것을 암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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