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글

나와 엄마와 엄마의 엄마


헤마


풍경 1.

   아이는 곗날 외출한 외할머니를 기다린다. 돈 많이 받아와서 맛난 거 사주겠다는 약속은 할머니가 돌아올 시간이 한참 남았는데도 아이를 마냥 들뜨게 만든다. 어느덧 아이의 기다림이 초조해지기 시작한다. 배가 고프다. 이제나 저제나 대문 바깥으로 들락날락, 무슨 일이 있나... 할머니가 데리고 간 동생만 맛난 거 사주고 있는걸까. 자다가 일어나 봐도 할머니는 보이지 않는다. 아이의 본능은 무섭다. 아이는 어디선가 밥을 꺼내고 간장을 꺼내어 눈물과 함께 비벼 먹는다. 비빈 밥이 짜다. 그래도 끝까지 먹는다. 먹는 걸 마치자 할머니가 들어왔다. 할머니는 마루 바닥에 그대로 뻗어버린다. 풍겨지는 술냄새.

풍경 2.

   보름에 한 번 정도는 엄마와 외할머니가 싸웠다. 조용한 날이 한 달 이상 갈 때면 아이는 무섭도록 초조해졌다. 엄마의 엄마는 알코올중독. 아이는 때때로 쌀을 퍼서 동네 선술집에 가서 막걸리를 주전자째로 사와야 했다. 눈빛이 흐릿해진 사람들의 시선. 쫓기듯 얼굴이 빨개져서 술집을 나온다. 주기가 돌아올 때 쯤 할머니는 하루 세끼를 술로 떼웠다. 취기가 오르면 아이들을 때리기 시작한다. 겁에 질린 아이. 아이는 하루 종일 엄마만 기다린다. 일터에서 돌아오면 엄마는 자기 엄마와 싸우기 시작한다. 하지만 처음부터 말이 안되는 싸움이다. 알코올중독자와 도덕주의자의 싸움. 도덕주의자는 울기도 하고 알코올 중독자를 쥐어박기도 하고 온 동네가 떠나가라 싸운다. 알코올 중독자는 퀭한 눈으로 나중에 니 딸년들이 니한테 어떻게 하나 보자고 악다구니를 쓴다.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저주.

풍경 3.

    엄마와 딸. 그 가학과 피학의 관계. 자신의 엄마와 남들같이 따뜻한 모녀관계를 맺어보지 못한 엄마는 자신의 딸도 두렵다. 전화로만 연락을 하는 사이. 엄마는 나를 만나기 싫어하는 것 같다. 전화선 너머로 엄마의 짜증과 불안이 들려온다. 따뜻함을 전해받고자 했던 시도는 다시 좌절된다. 딸은 재빨리 냉냉해진다. 이제 서로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엄마가 자신의 집에 오는 것이 싫으면서도 막상 한 번도 와보지 않는 독함에 부딪히고는 그걸 트집삼아 못살게 군다. 엄마는 끝내 전화를 끊어버린다. 서로 요구사항으로만 연결되어 있는 사이. 딸의 전화는 항상 무엇이 부족함에 대한 보고-그래서 무엇이 필요하다는 압력으로만 되어있다. 딸에게 부족함이 없을 때, 그녀가 행복할 때는 오랫동안 전화가 두절된다.

풍경 4.

   갱년기를 맞았다는 엄마. 나는 끊임없는 그녀의 발전주의적 성향이 싫다. 이제 그녀는 자주 집에 혼자 있게 된다. 그 시간을 '보람있게' 보내기 위하여 컴퓨터 1급 시험을 신청했다. 시험을 신청한 다음부터 항상 컴퓨터에 앉아 있다. 중년의 아줌마들이 껴안고 산다는 TV는 그녀의 경멸대상일 뿐. 그녀는 하나의 시험을 정말 '완벽하게' 준비한다. 운전면허 필기시험도 한 일주일 동안을 두문불출하고 준비했나보다. 상처받으리라는 걸 알고 한마디 내뱉고 만다. '놀러나 다니지. 어디에 쓴다고 그걸 배워.'
    외할머니는 극도로 퇴보하는 삶을 살았다. 그녀는 술에, 담배에, 노름에, 춤에 집착했다. 한 가지 이러한 그녀의 원칙에 어긋나는 행동이 있었는데 그것은 그녀가 끊임없이 쓸고 닦았다는 것이다. 딸과 사위가 자신을 내쫓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은 그녀의 손을 잠시도 가만두게 하지 않았다. 그러나 늙고 술에 취해 힘이 빠진 그녀의 손은 헛손질일 때가 더 많았다.
    갱년기의 어머니가 그의 어머니를 생각한다. 할머니가 자신의 나이 때쯤, 가슴이 왜이리 허하냐고 하소연했을 때 엄마는 '저 주정뱅이, 또 시작한다'고 생각했단다. 엄마는 이제 자신의 딸에게 그 말을 한다. '가만 있어도 눈물이 나고 세상 모든 것이 허무하다'고. 그러나, 역시 이해하지 못하는 그녀의 딸.

   내가 외할머니의 피를 느낀 것은 스무살이 되어서였다. 당시의 여인들로서는 드물게 디오니소스적이었던 사람. 술을 먹고 어디에나 뻗어버리는 할머니에겐 세상에서의 책임이라는 것도 자신의 삶을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는 것도 전혀 존재하지 않았다. 그녀에게 계획적인 삶이란 아주 없었다. 그녀는 그 순간의 쾌락을 위해 다음 순간을-어쩌면 영원이 될 지도 모르는-저당잡히고야 마는 사람이었고, 따라서 절망은 그녀의 삶 깊은 곳에서 몇 십년 동안이나 그녀를 옭아매고 있었다.
    대학에 들어와서 선배가 주는 첫 잔을 입에 가득 머금고 있다가 화장실에 가서 버렸다. 내게 술은 단순한 취향이 아닌 정신없이 삶을 절망으로 몰고 갈 수 있는 거대한 악마적인 힘. 외할머니의 삶을 망쳤고, 엄마의 삶을 망쳤고, 어린 우리들의 삶까지 망쳤던 저주. 어렸을 때, 군것질이나 흐느적거리는 자세, 늦잠, TV, 주머니에 손넣기, 쓰레기 버리는 것, 빨강불일 때 횡단보도를 건너는 것, 글씨 갈겨쓰기 등 바르지 않거나 낭비하는 모든 것이 금지되었다. 하지만, 스무살의 어느 날 새벽, 누구네 방인지도 모르는 낯선 방에서 머리가 깨어질 듯 아프고 속에서는 역겨운 기운이 계속 올라오던그 날, 엄마가 정해 놓았던 금기의 벽이 무너지고 나는 엄마를 배반하고 줄곧 외할머니를 생각했다.
   언제부터였을까. 삶이 중독의 연속이라고 느껴진 것이. 아이 때부터 쓰던 이불에 중독되어 있었다. 천을 만질때면 세상의 모든 행복과 안식이 나를 찾아왔다. 천을 만지면서 혀를 빠는 습관. 이불과 있으면 끝이 행복하게 끝나는 책을 읽는 일 밖에는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다. 다음에는 커피중독. 고 3때부터 조금씩 마시기 시작한 것이 어느새 공부를 하거나 책을 읽거나 글을 쓸 때, 사람을 만나서 이야기 할 때, TV볼 때 등 어느 때고 손에 들어야 안심이 되는 약물이 되었다. 수면 중독, TV 중독, 강박적 생각 중독... 어디에서건 불필요하고 낭비적인 것에 과도하게 욕망을 투사한다. 할머니...
   엄마는 금욕적이고 도덕적인 사람이지만 그의 금욕과 도덕은 타인에게 어떻게 보일까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이를테면 내가 무슨 행동을 (그녀의 기준에서) 바르게 하지 못했다면 '다른 사람들이 뭐라고 하겠니'라고 말하는 것이 그녀의 습관이다. 사실 나는 안다. 엄마의 이런 위선이 어디서부터 기원했는지를. 자식을 다섯이나 낳고도 엄마 하나만 살아남았다는 할머니를 어미로 둔 새끼의 본능이라는 것을. 이웃과 싸우거나 이웃에게 손가락질을 받던 자신의 어머니가 '정상적인 사회'로부터 배제되는 광경 속에서 엄마는 할머니를 옹호하기 보다는 차라리 손가락질 하는 쪽이 되는 것이 훨씬 덜 힘들었을거라는 것도. 엄마에게는 정말로 남에게 어떻게 보이는가가 사회적 삶을 영위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중요한 갈림이었을거라는 것 역시.
   글쎄. 엄마는 나같이 이상한 딸을 만나지 않았다면 훨씬 더 좋은 엄마가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가끔 한다. 엄마와 잘 맞는 딸. 그녀의 소녀같은 허영과 세속적인 명예의식과 현실감각에 동의하는 누군가가, 그를 존경하고 사랑하는 누군가가 정말로 그녀 곁에 있어 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엄마를 속여온 것이 너무 오래됐다. 직접적인 거짓말을 했다기 보다는 보여줄 것만 보여주면서 지냈다. 상황-일찍부터 집에서 떨어져서 학교를 다니게 된 것-은 엄마가 이해할 수도 없고 용서할 수도 없는 나를 계속해서 길러냈다. 그러나 난 엄마와 싸우지 않는다. 우리는 서로 싸움을 피한다. 제대로 된 한 번의 싸움이 서로 예의를 지키고 있는 상태마저 처음부터 완전히 박살내버릴지도 모르니까. 우리는 서로의 세계관이 너무나 다르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이건 모두 나의 잘못일까? 엄마는 나에게 속인 것이 없을까?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고서야 엄마와 외할머니의 관계는 회복되었다. 이제서야 엄마는 외할머니에게 많은 것을 묻고 많은 것을 부탁한다. 엄마는 이제서야 그를 위해 눈물을 흘린다. 외할머니와 참으로 닮은 나. 모범적인 어머니를 괴롭힌다는 점에서도 닮았고 무언가에 자주 중독된다는 점에서도 그렇고 따라서 무언가를 생산하기 보다는 낭비하는 것에 더 재주가 있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내가 사람들과 관계맺는 방식도 사실은 놀랄만치 할머니와 닮았다. 어떤 사람을 흡족해 하는 경우가 별로 없고 매우 변덕스럽다. 하지만 이제 엄마가 외할머니를 이해한다면 조금은 나도 이해해 줄 수 있지 않을까.
    엄마와 딸. 엄마는 엄마의 엄마를 배반했고 나는 엄마를 배반했다. 그리고 엄마의 엄마와 나는 놀랄만치 닮았다. 근대를 거부하고 나온 포스트모던이 어떤 지점에서는 정확히 중세와 들어맞는다는 얘기. 외할머니와 어머니와 나의 관계 역시 이러하다는 생각이 든다. 모계의 역사를 복원하고 싶었다. 애초에 복원할 그 무언가가 있었을까에 별로 자신은 없지만 내가 지금 살아가고 있는 방식을 설명할 수 있는 하나의 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굳이 아버지쪽의 역사가 아니라 왜 어머니쪽의 역사였냐고 묻는다면 그것은 외할머니와 함께 살았던 내 경험의 특수성 때문일 수도 있겠고, 내가 딸이라서 어머니와 외할머니에게서 더 영향을 받았기 때문일 수도 있겠고, 혹은 어쩌면 어머니 쪽이 더 훌륭하고 오묘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나는 아직도 엄마가 무섭다. 혹은 내 속의 엄마가 무섭다. 엄마가 쌓아놓은 금지의 벽은 내 무의식 속에서 무시무시한 검열관의 역할을 하고 있다. 현실에서 상처를 주는 쪽은 주로 나다. 그렇지만 내 속의 엄마는 나에게 더 자주 상처를 준다. 현실에서 나는 엄마에게 엄마로서의 역할은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것처럼 행동한다. 난 엄마에게 위로받기를 원하지 않는다. 하지만 내 속의 엄마에게는 너무나 많은 것을 원한다. 따뜻함과 모성과 위대함과 청결함과 힘. 나는 혹시 완벽한 모성을 기대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외할머니도 엄마도 모두 인간이고 그들 역시 어느쪽으로 편향된 성격을 가질 수 밖에 없는데도 완벽하게 딸을 길러낼 수 있는 사람들이기를 바랬던 것은 아닐까. 아이는 보통 부모가 기르지만 스스로도 길러지는 것. 어머니도 외할머니도 그 누구도 아이에게 전적으로 책임이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어머니라는 이름도, 딸이라는 이름도 어느 누구에게 전면으로 호명되었을 때에는 서로에게 끊임없는 불협화음을 만들어내는 것.

[ 게시판  |  링크 모음  |  목 차  |  웹마스터   |  과월호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