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글

어머니를 좋아하세요?


설탕


누가 내게 "어머니를 좋아하세요?"라고 물으면, 나는 매우 난처해진다. 다행히 이러한 질문은 "엄마를 좋아해?"라는 질문과 마찬가지로 그리 자주 듣게 되는 것은 아니다. 아련한 기억이긴 하지만, 내가 대답하기 어려운 또 하나의 질문은 "엄마가 더 좋아, 아니면 아빠가 더 좋아?"라는 것이었다. 대개는 그냥 우물거리면서 딴 소리를 꺼내거나 "글쎄요"라는 말도 버무 리고 말지만, 굳이 내가 "정확히" 대답을 한다면 "사실 내가 좋아하는 인간 은 아니에요. 하지만 좋아해야 한다고 생각하죠. 그녀를 특별히 좋아해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을 내가 아는 이상, 딸인 내가 좋아하지 않는다면 누가 좋아하겠어요?" 정도가 될 것이다. 금방 눈치를 챘겠지만, 이런 대답 을 하는 사람은 결코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렇다고 우리 어머니가 괴팍하거나 폭력적이거나 이른바 성질이 더럽거 나 깍쟁이거나 속이 좁거나 그런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우리 어머니는 주변의 어떤 아줌마와 비교를 해 본다고 하더라고, 참으로 이해심이 많고 (나는 동네 사람들이 다 싫어하는 아줌마의 유일한 친구가 우리 어머니라 는 사실을 알고 매우 놀랐다), 게다가 50대 중반인 나이에도 신문에 아름 다운 시나 글귀가 적혀있는 것을 발견하면 하나하나 가위로 오려 스크랩을 하는 참으로 낭만적인 사람이다. 딸이 그런 남편감을 얻기를 바라지는 않 으면서도, 주말 드라마에서 신분 차이로 인해 결혼에 어려움을 겪는 남자 를 보면 금새 방울같은 눈물을 흘리면서, "사람이 착하면 되지, 돈이 뭐가 문제가 된다고 저렇게 잔인하게 할 수가 있어? 나같으면 결혼시킨다, 시 켜"라고 외치는 귀여운 아줌마다. 그런데 왜 나는 그런 어머니를 "좋아하 지" 못하는 것일까?

어머니는 아주 영특한 소녀였다. 국민학교 때부터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 까지 항상 수석 입학, 수석 졸업이어서 그 때마다 지방 신문에 사진이 실 렸다. 지금도 어머니의 동창들을 만나면, "너의 어머니가 얼마나 공부를 잘 했는 줄 아니? 우리는 그때 감히 친구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어"라고 말한다. 물론 나이가 들고 다들 아줌마가 되자, 화제는 "잘 나가 는" 남편과 자식들이 되고, 우리 어머니는 그 안에서 더 이상 영웅이 아니 다.

원래 어머니는 법대를 가고 싶어했다. 당시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딸을 대학까지 보낸다는 것은 웬만한 집안에서는 불가능한 일이었지만, 기독교 적 지식인이었던 외할아버지는 작은 읍에서 가구점을 하면서 셋째 딸인 어 머니를 비롯 6남매를 모두 대학까지 보냈다. 하지만 법대생의 꿈은 실현되 지 못했다. 외할아버지는 "여자가 무슨 법대냐?"고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국에서 가장 들어가기 어렵다는 대학의 "독문학도"가 되었다(아직도 우 리 집에는 너덜너덜해진 괴테의 『파우스트』니 루이제 린저의 책이 꽂혀 있다. 어머니는 언젠가 이 책들을 버리자고 하셨지만,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나는 언젠가 읽어보리라고 결심을 하고 있던 차여서 움라우트와 β로 뒤범 벅되어 있는 누렇게 뜬 그 독일어 책들을 따로 보관해 두었다).

내가 생각할 때, 우리 어머니의 비극은 아버지와 결혼을 하면서부터 시 작되었다. 난 아주 가끔 어머니에게 "왜 아버지와 결혼했어?"라고 물어보 는데, 어머니의 대답은 항상 변한다. 제일 처음 들었던 답은 "잘 생겨서"였 는데, 나는 매우 놀랐다. 물론 그 때까지 아버지가 그다지 잘 생겼다고 생 각해 본 적이 없다는 것도 한 가지 이유였겠지만, 그보다는 이 대답을 들 었던 중학교 2학년 당시, 나는 잘 생겼다는 것이 결혼의 이유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 이후에 들었던 대답들 역시 별반 다르지 않았다. "너희 아버 지가 7살 차이에서 천재가 나온다면서 꼬시잖아. 그래서 결혼했지". "해마 다 탄생석을 사 준다고 했는데, 한 번도 사 준 적이 없어". 어떤 이야기든 지, 적어도 내가 보기에는, 결혼의 이유와는 전혀 상관이 없었다. 결국 내 가 내릴 수 있는 결론은, 어머니는 별 생각 없이 그저 외할아버지의 뜻에 따라 결혼을 했을 뿐이었다.

[ 게시판  |  링크 모음  |  목 차  |  웹마스터   |  과월호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