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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어머니가 되지 않고 싶지만, 또한 어머니가 되려고 한다 *


차차 *


   문득문득, 내가 어머니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기분이 좋다. 애를 '내 배 아파서' 낳는 생물학적 의미의 어머니가 되든, 인간을 키우고 돌보는 사회적 의미의 어머니가 되든, 어머니, 엄마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이 현재 어찌됐건 많은 조건을 가지고 있다는 것 말이다. 이건 물론 엄마가 안 될 선택권도 있다는 전제하에서이다.
   슬픈 일은, 내가 어머니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 내가 어머니가 '되어야 한다'는 이유가 되거나, 남들이 내게 '어머니적인' 자질을 요구할 이유가 될 때이다.
  사회는 정상적인 성인여성이라면 미래의 어머니로서 언제나 보살핌이란 걸 당연히 제공해 줄 것으로 기대하곤 하는 것 같다. 이런 기대는 가족과 있을 때뿐 아니라 어떤 모임이나 공동체에서든 나타난다. 그 기대를 채워주지 못 할 땐, 드러내놓고든 아니든 비난받게 되고.

  얼마 전에 재미없는 영화를 봤다. 별달리 중요하지 않은데 기억에 남은 장면이 있다. 아무도 기억하지 않을 만한 장면. 세 명의 변호사가 변호 준비를 하기 위해 한 사람의 집에서 밤샘을 하게 되었다. 집 주인은 자기집엔 먹을 게 없으니, 알아서 먹을 것은 가져오자고 제안했다. 그런데, 그날 밤 모인 셋 중 먹을 것을 챙겨 온 사람은? - 아차, 여기서 밝혀야 할 것. 한명의 변호사는 데미무어였고, 나머지 두 명은 남자였다. - 역시 데미무어만 풍성한 닭튀김을 안고 등장했다. 다른 남자들은 입만 가지고 왔다. 데미무어는 그 작은 그룹에서 그들을 돌보는 사람이 된 것이었다. 영화 속의 그녀는, 노동을 하기 위해서는 재생산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중요함을 알았으며 그것을 준비하는 노동을 할 줄 알았다. 하지만, 그녀라고 해서 그런 노동을 하는 것이 덜 지치는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사실 여자들끼리 밤을 세워 놀면 서로 먹을 걸 싸오기도 하고 음식도 만들어가며 논다. 거기서 좀 음식을 못 만들면 청소라도 하고. 서로가 서로의 엄마가 되는 기분이랄까.

  늘 당연하게 여겨지는 것들이 있다. 핸드폰의 음성사서함이나, ARS 전화, 지하철의 안내음성은 왜 항상 이쁘고 부드러운 여성의 목소리일까. 간호사는 왜 대부분 여자들일까. 집안에 노인이 있으면 왜 여자가 돌보게 될까, 회사에서 경리로 뽑는 이들은 왜 다 여자들일까. 신문을 돌리는 건 남자애들이 많은데, 야쿠르트 아줌마는 왜 여자일까. 유치원선생님은 왜 대부분 여자일까.
  어떤 일에는 여자들이 더 많다. 물론 다른 이유들도 복잡하게 얽혀 있지만, 우리에게 어머니의 이미지로서 부여되는 것들... 그러니까 부드럽고, 친절하고, 자기 희생적이고 머.. 등등의 약간 닭살돋는 환상의 역할이 크지 않을까. 여성이 출산하기 때문에 병자를 간호한다거나 노인을 돌보거나 안내하는 직종에 종사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건 말이 안 되는 게 뻔한데도 말이다.

  남녀가 섞여 있는 동아리에서 나는 대모(代母)로 취급받았다. 후배들을 챙겨주는 동아리의 어머니 말이다. 때론 내가 후배들말고도 동기나 선배들에게도 대모인가 싶기도 했다. 그들이 말하는 보다 '중요해보이는', 보다 '공적인' 일들(동아리의 대표라든지 행사의 사회자라든지)보다는 난 신체나 공간을 유지시키는 데 필요한 '잡일'들(회의 후 담배재를 치우거나, 동아리방에 시간표를 만들어달거나 후배들의 고민을 들어주거나 - 물론 나는 이 일들이 결코 덜 중요하다거나 잡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그렇게 여겨져 왔다는 것이다.)을 더 많이 하곤 했으니까.
  회사다닐 때는 정말 그런 일이 많았다. 일례로, 우리 회사에서는 일찍 오는 사람들이 컵을 씻기로 했다. 공동의 컵 뿐 아니라 각 개인들의 컵까지도 그렇게 하기로 했다. 그런데, 아침마다 화장실에서 컵을 달그락거리게 되는 건 늘 여자들이었다. 더 일찍 왔어도 남자사원들은 컵을 씻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그런 제도는 없애는 것이 낫겠다고 얘기했다. 좋은 취지에서 시작했는지는 모르지만(니것, 내것 구분없이 서로의 일을 다정하게 해주자는), 차라리 삭막해도 각자 자기 컵을 씻자고. 여사원끼리 쓰는 컵이었다면 아마 정해놓지 않아도 어느정도 골고루 돌아가며 씻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 누군가가 계속 씻었다면 적어도 미안해했을 것이고.

   지금 여사원들끼리 쓰는 화장실에는 돌아가면서 치약을 가져오고 있다. 어차피 각자 가지고 다녀할 치약을 공동으로 준비하니까 좋다. 남녀가 같이 화장실을 썼다면 아마 치약을 가져오게 되는 것도 여사원들만 하는 일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걸 준비하는 건 모성을 가진 섬세한 여자들만 하는 거니까. 그랬다면 나는 차라리 각자 알아서 해결하는 걸로 하자고 했을 것이다. 그러나 여자들끼리 있을 때 우리는 좀 더 편하게 서로를 배려할 수 있는 것 같다. 물론 여자들끼리도 서로에 대한 섭섭함이나 미움이 있기도 하다. 그래도 그 안에 당연함의 논리나 권력관계가 없다는 것이 문제를 해결할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이유 아닐까.

   이런 이야기를 쓰면서 나는 솔직히 찔린다. 내가 다른 여자친구들에 비해 옆사람을 보살피는 일에 많이 소홀하다는 것이 자꾸만 떠오르기 때문이다. 그런 일을 우리만 하는 것이 부당하다고 생각한 나머지 나는 어쩌면 그런 일을 점점 부정하게 되어왔던 것이 아닐까. 늘 평등하게 나누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차라리 각자 도와주지 말자라는 생각들.
  우리들이 그런 노동을 때때로 거부하는 것은 너무나도 정당하다. 그렇지만, 공동체를 유지하는 노동은 또한 분명 소중하다. 그런 직접적인 경험들 속에서 더욱 내가 커나갈 수 있는 가능성을 애써 나에게서 몰아내고만 싶지는 않다. 물론 그것이 누군가의 강요에 의한 것이거나, 누구에게만 불평등하게 지워지는 의무가 아닐 때이다. 서로가 평등한 관계가 될 때 이러한 능력은 새로운 사회에 대한 비전으로서 나타날 거라고 나는 믿는다.
  난 강요되는 어머니는 끊임없이 부정할 것이지만, 또한 이제부터 자유로운 어머니가 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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