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정치위] 재비판에 대한 재답변

 

    김진희 씨의 재비판에 대한 답변.



   김진희 씨의 재비판 글은 잘 읽었습니다.
   우선, 통신을 통한 논쟁의 특성상 서로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많은 한계 가 있는 것 같아서 안타깝습니다. 김진희 씨의 재비판에 대한 우리의 입 장은 많은 부분 앞의 답변에서 이미 했다고 생각합니다. 김진희 씨를 비 롯한 이 글을 읽으시는 여러 분들은 앞의 답변 글을 다시 한번 읽어주시 면 감사하겠습니다. 직접 논의할 수 있는 기회가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첫째, 첫 번째 대자보가 우리의 생각을 뒤집고, 혹은 감추고 쓴 것은 아 닙니다. 1차 대자보가 이번 성폭력 사건 자체에 대한 비판 이전에 대학본 부가 보여준 무지와 오만, 성폭력에 대한 성폭력적 담론에 대한 비판을 먼저 했다는 점에서 많은 무리가 있었고 몇 가지 표현상의 실수가 있었다 는 점은 이미 앞에서 인정하고 반성하며 사죄를 드렸습니다. 그러나 이것 은 말그대로 전술상의 미숙함이지, 우리가 대중을 비난을 의식해서 우리 의 생각과 다른 글을 썼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하고 싶은 말을 두서없이 했을 뿐입니다.
   그리고 일반적인 대자보의 경우에도 역시 대자보를 쓰는 사람이 대중의 비난을 의식해서 자신의 생각과 다른 글을 쓴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생각 합니다. 다만, 대자보라는 매체의 특성상 대상이 복합적이고 불분명하다는 한계를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또한 상대의 비난을 두려워한다는 의미 에서가 아니라, 상대방의 입장과 처지를 의식하지 않고 말한다는 것은, 입 장의 통일성이라기 보다는 언어 폭력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둘째, 우리는 '성폭력 범죄자 개인을 단호하게 처벌하는 것만으로, 성폭 력이 척결될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라는 말이 어쩔수 없이 '성폭 력 범죄자를 처벌하지 말자'라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것으로 귀착된다면 애초에 말을 꺼내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김진희 씨가 열거하신 다 른 여러 예들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언급은 그 '처벌'이 어떻게 되어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 중요한 함의를 갖는다고 생각합니다. 김진희 씨의 예를 그대로 받자면, 재벌이 재벌해체만으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는 것은 직접적으로 재벌해체를 하지 말자는 말로 통한다고 해도, 재벌해 체를 주장하는 사람들 내부에서 재벌해체가 갖는 함의와 '어떻게' 재벌해 체를 해야 경제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논의는 정말 충실하게 논의해야 하는 주제라고 생각합니다. 마찬가지로 어떻게 성폭력 사건을 해결해야만 성폭력을 근절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논의와 실천은 충분 히 이루어져야 합니다. 우리는 논쟁의 핵심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호한 처벌을 해야되느냐 아니냐'가 아니라, '어떻게 성폭력 사건을 해결해야 성 폭력이 근절될 수 있을 것인가'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셋째, 우리는 '처벌'이 갖는 세 가지 효과에 대해서 앞의 글에서 답변할 때, 처벌이 갖는 대중에 대한 '위협'에 대해서 분명히 말했고, 이것 역시 회의적이라고 밝혔습니다. 그 때의 문장을 길지만 인용하겠습니다. "성폭력 범죄자가 성폭력을 저질렀을 경우 처벌받는다라는 사실을 모른 다거나, 그를 처벌할 수 있는 처벌규정이 없기 때문에 성폭력을 저지르는 것은 아닙니다. 문제는 성폭력 범죄자가 자신의 경우는 성폭력이 아니라 고 굳게 믿고 있거나, 혹은 피해자가 쉽게 고발할 수 없는 현실이라는 것 을 정확히 알고 있다라는 데에 있습니다. ...... 이러한 '공개화로 인한 제 2, 제 3의 성폭력에 대한 공포'와 '이중의 잣대'가 성폭력 범죄자의 처벌을 통한 대중의 교화로서는 없어지지 않습니다. 그것은 지금까지의 모든 성 폭력에 대한 도덕적인 훈계와 처벌에의 위협이 조금도 해결하지 못한 과 제이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미군부대 내에서 가시적인 성폭력이 적다고 가정한다 치더라도, 그 미군부대 내의 평화가 그 밖의 기지촌에서 극악한 형태의 성폭력을 낳 았다면, 그 평화는 아무런 가치도 없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넷째, 우리는 지난 번 답변과 함께, [성폭력학칙제정운동, 그 깃발을 올 리자]라는 글을 메일로 보내드렸습니다. 그 글에는 분명히 '성폭력학칙제 정운동을' 방법론적인 측면에서 크게 '자치규약제정운동'과 '학칙제정투쟁' 으로 구분했을 때, '학칙제정투쟁'이 교수사회에 대한 투쟁이라고 했지, '성 폭력학칙제정운동'이 그렇다고 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말한 배 경에는 학생사회라면 성폭력 가해자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성폭력 자 체에 대한 공동의 투쟁이 가능한 반면, 교수사회는 학생과의 권력 차이에 의해서 그들이 성폭력을 저지르고도 그에 대해 조금도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는 점에서 '학칙제정투쟁'은 사실상 권위사회에 대한 투쟁이라는 우리 의 판단이 들어있습니다. 우리 역시 학생에 의한 성폭력이 교수에 의한 성폭력보다 드물다거나, 정도가 덜하다거나, 학생이니까 좀 봐주자거나 하 는 판단은 결코 하고 있지 않습니다. 이미 충분히 반복했다시피 우리는 1 차 대자보에서 결코 가해자를 감싸지 않았습니다.

   다섯쨰, 우리는 지난 답변에서 사회구조를 그 개인과 독립되어 있는 것 으로 생각하지 않으며, 개인이 자신의 육체에 각인되어 있는 성폭력적 사 회구조에 저항하지 않는다면 사실상 그는 성폭력의 가해자라고 말했습니 다. 그리고 그러한 점에서 모든 저항하지 않는 개인은 비판받아야 하며, 자신의 행위에 마땅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우리는 결코 모 든 것을 사회 탓으로 돌리며 개인에게는 아무런 처벌도 해서는 안된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예로 드신 술자리나 엠티에서 벌어지는 성폭 력이 많은 경우 가해자나 피해자가 의식하지조차 못하고, 의식한다 해도 '공동체'를 위해서 제거되지 못한다는 점에서 정확히 성폭력이 사회구조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단호한 처벌'이 능사가 아니며, 모든 개인에 내재한 성폭력적 사회구조에 대한 공동체 구 성원 모두의 투쟁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김진희 씨는 우리가 그러한 부분에 대해서 문제제기하지 않았다고 했지만, 조금만 둘러보시면 성정치위원회와 관악여성모임연대가 지금까지 해왔던 일은 대부분 그러한 일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으실 겁니다. 그러한 활동이 역부족이었다는 것 은 우리도 통감하고 있지만, 그것은 여러분들이 우리만을 탓하실 것이 아 니라 여러분들 스스로가 같이 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여섯째, 우리는 성폭력의 해결이 철저한 성의 억압이 아니라 성해방의 과정 속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개인의 자유로운 관 계맺음에의 자연스러운 욕구로서의 성이 발현되는 것, 그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그것이 발현되는 즉시 성폭력과 포르노로 변질시키는 사회구조, 현재의 우리들의 삶의 양식이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지금 과는 다른 방식의 관계맺음 다른 방식의 공동체 문화가 필요하다고 생각 하지, 개인이 고립되고 공동체가 소멸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철저한 성의 억압과 철저한 처벌을 통해서 가시화된 성폭력이 소멸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것은 결코 긍정적인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엠티에서 서로 살을 맞대며 느끼는 공 동체적 유대감, 새벽까지 술을 마시며 얻게되는 선후배간의 돈독한 정'이 여성의 피해를 통해서 얻어지는 것이라면, 결단코 거부해야 하는 것이며 사실 그것은 공동체적 유대감도 아니고 돈독한 정도 아니라고 생각합니 다. 하지만 우리는 그렇지 않은 방식의 '공동체적 유대감과 돈독한 정'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며, 그러한 대안적인 관계맺음과 공동체 문화가 지금 여기서 성폭력 자체에 대한 투쟁과 함께 구성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일곱째, 김진희 씨가 마지막에 주장하신 두 가지 중 첫 번째 것, '해당 과학생회'에 대한 사실은 우리가 잘 몰랐던 일입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우리가 무책임했다는 점을 인정합니다. 앞으로 해당 과학생회와 인문대 학생회에 문제제기하고 함께 논의할 것을 약속드립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말씀드리겠습니다. 김진희 씨의 비판의 목적과 이 논쟁의 목적에 대해서 생각해봅시다. 이 논쟁이 단순한 '자존심 대결'이나, '흥미있는 말싸움'이라면 이 논쟁은 계속될 필요가 없다고 생각 합니다. 만약 우리가 단순히 힘이 부족하다거나, 활동 상에서 미숙한 것이 문제라고 한다면, 우리가 좀더 힘을 내고 김진희 씨를 비롯한 여러 분이 직접 도와주시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우리가 성폭력을 근절시킬 의 지가 부족하다거나, 우리의 의지를 믿지 못하시겠다는 것이 문제라고 한 다면, 김진희 씨와 김진희 씨와 뜻을 같이 하시는 분들이 우리를 대신하 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지난 번의 답변 글에서 말한 다섯가지 점에서 우 리는 김진희 씨와 정확히 입장을 같이 하며, 대자보를 비롯한 모든 글에 서 우리는 김진희 씨와 스스로를 속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우리들은 성 폭력 근절에의 의지가 없다면 이 힘들고 고단한 일을 계속하고 있을 어떠 한 이유도 없습니다. 이 두 가지 점에서 김진희 씨가 우리를 믿지 못한다 면 논쟁은 더 이상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김진희 씨가 자신의 입장 과 자신의 열정으로 우리를 대신하는 것이 어떠한 면에서 보더라도 나은 일입니다. 논쟁과 논의는 이러한 전제에서만이 계속될 필요성이 있습니다. 상대방의 말을 믿지 못하고, 상대방의 말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없는 논쟁 만큼 지리하고, 고단하고, 소모적인 것은 없습니다.

   김진희 씨의 다음 글을 기다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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