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역사 4 - 19세기 편』를 읽고

 

이소연 (여해그림)

    0. 어떤 페미니스트의 의문

   브레히트는 그의 시 '어떤 책 읽는 노동자의 의문'에서 역사를 건설하는 데 참여했 던 많은 사람들이 정작 역사의 기록에서 배제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 시는 이렇게 시작한다. '성문이 일곱 개나 되는 테베를 누가 건설했던가? 책 속에는 왕의 이름들만 나와있다. 왕들이 손수 돌덩이를 운반해 왔을까?...' 굳이 '지금까지의 역사는 지배계급의 역사였다'라는 오래된 문구를 들먹거리지 않더라 도, 현재까지의 역사가 이름없는 많은 '사회적 소수'들을 배제해 왔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에 그동안의 많은 페미니스트들은 역사에서 사라진 이름없는 "여성들"에 주목해 왔다. 하여, 우리는 어쩌면 이미 역사적 평가가 끝나버린 많은 사실(?)들에 대하여 다시 물음을 던질 수 있게 된 것이다. 그것은 이런 물음들이다 : '여성들에게도' 프랑스 혁명은 자유의 혁명이었는가? 혹은, 수많은 '남성' 화가들이 불후의 명작이라 일컬어지는 그림들을 완성시켜 나갈 때 '여성들은' 무엇을 그렸는가(그릴 수나 있었는가)? 혹은, 산업혁명이 일어나고 그에 뒤이어 노동운동이 불붙을 때 '여성' 노동자는 어디에 있었는가? ..............

     1. 『여성의 역사』- 여성의 눈으로 역사읽기

   『여성의 역사』는 끝도 없이 이어질 듯한 이런 질문들에 대한 차분하고도 자세한 대답이다. 이 책은 지금까지의 역사는 '남성들의 역사'이며 - 'history'라는 단어가 암시해주지 않는가? - 그 뒤켠에 그동안 제대로 주목받지 못했지만 엄연히 존재해 왔던 '여성들의 역사'가 있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 책이 다루고 있는 '여성의 역사'를 단순히 '잃어버린 반쪽의 역사'로 이해해서는 곤란할 것이다. 오히려 '여성의 역사'는 잃어버린 반쪽의 역사를 복원한 보다 "총체적인" 역사로서 이해되어야 한다. 총서문에서 편집자들이 밝힌 것과 같이, 여성의 위치, 여성의 '조건', 여성의 역할과 권한을 이해하려는 역사는 근본적으로 "관계사적"일 수 밖에 없고 따라서 이 때 여성의 역사는 필연적으로 남성의 역사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책을 페미니즘 혹은 여성운동의 역사로 파악하는 것도 이 책이 가진 미덕을 축소시키는 것이다. 『여성의 역사』는 단지 '여성의 역사'(보다 정확하게는 '양성간 관계의 역사')에 관한 책이며, 그 어떤 주장도 담고 있지 않다. 그동안 볼 수 없었던 이야기를 담고 있으나, 다양한 해석적 스펙트럼은 열려 있다. 때문에, 이 책은 스스로 밝히고 있듯이, 단지 '남녀가 평등하다는 아주 기본적인 의미에서' 페미니즘적일 뿐이다. 『여성의 역사』는 68명의 여성사가들이 참여하여 고대부터 현대까지의 시기에 걸 친 여성사를 다루고 있는 방대한 노작이고, 그 중 『여성의 역사 4』가 가장 먼저 출간되었다. 즈느비에브 프레스와 미셸페로가 책임편집을 맡은 제 4권은 1789년 프랑스 혁명부터 1914년 제 1차 세계대전까지의 시기 - 19세기 -를 다루고 있다(이는 흔히 100년을 기준으로 한 세기를 구분하는 데 비해 1789년부터 1914년까지를 시대적 일관성을 가지고 있는 19세기로 규정하는 것이 더 타당하다는 관점에 기반한 것이다). 책은 총 5부로 구성되어 19세기 여성의 역사를 구체화한다. 제 1부 '정치적 단절과 담론의 새로운 질서'에서는 프랑스 혁명이 가져온 정치적 단절이 여성들이 자유롭게 집단생활에 참여할 수 있는 영역을 터놓음과 동시에 여성들을 시민생활에서 배제하는 것을 정당화하는 이중적 역할을 수행했음을 보여준다. 법률(민법전)은 딸들에게 동등한 권리를 부여했지만, 또한 여성의 예속을 신성화시켰다. 즉, 단절은 여성에게 이중적 의미로 다가왔고, 이 시기의 담론에서 '여성성'은 중요한 주제로 부상하였다. 의학, 사회학, 정신분석학, 미학, 철학이 결합하여, 여성성의 본질을 정의하려 하였다. 제 2부 '여성(성)의 생산, 상상과 현실'은 '여성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피조물로서의 여성)'와 '여성은 무엇을 생산하는가?(창조자로서의 여성)'의 두 가지 물음에 대답하고 있다. 즉, 여성은 예술과 문학에서 어떻게 표상되었는가, 어떻게 교육받았는가, 어떤 이미지들이 여성에게 덧씌워지고 강요되었는가 - 에 대한 대답이 제시되고, 동시에, '이미지로서의 여성'과 구별되는 '실제의 여성'은 어떻게 행동했으며, 무엇을 읽고 무엇을 썼는가를 보여준다. 제 3부 '여성도 시민이다,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은 19세기 들어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의 분리가 분명해지고, 남성을 공적 영역과 여성을 사적 영역과 등치시키려는 이른바 '두 영역 이론'이 여성에게 어떤 의미를 가졌는가에 대한 것이다. 영역의 분리와 그 고착화는 여성의 육체, 성, 노동, 독신 등 다양한 부분에서 여성을 특별한 이미지로 고정시키고 그 이미지로부터의 일탈을 규제하였다. 제 4부 '현대(성)'은 19세기에 드디어 하나의 흐름으로 등장한 페미니즘의 상(像)을 보여준다. 어떤 상황이, 누가, 어떤 목소리들이 존재하였는가? 물론 이 당시의 페미니즘적 변화는 극히 제한적인 것이었으며, 이런 변화에 대한 강력한 저항이 존재하였다. 즉, '<낡은 아담>은 <새로운 이브>에 용감하게 맞섰다'! 제 5부 '여성의 목소리'는 '여성은 독립을 주장해서는 안된다'는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는 수많은 편견들을 무시하고 시대의 일부가 된 두 여성의 목소리를 담는다. 제르멘느 드 스타엘 의 「문학적 재능을 닦았던 여성들에 대해」와 루 살로메의 「여성의 인간성」이 그것이다.

     2. 19세기 역사의 "양면성"

   19세기는 여성에게 있어 이중적 의미를 지니고 있는 시기이다. 즉, 19세기는 "여성의 삶이 엄밀하게 규정되고, 사회적으로 정교하게 정해진 일련의 규칙에 종속되어 있는 개인사의 전개과정"으로 개념화되는 '여성의 절대적 종속의 시기'임과 동시에 '페미니즘의 탄생을 목도한 세기'이기도 하다(p. 25). 여성에게 있어서 항상 '제한'과 '가능성' 은 함께 존재하였다. 이 시기가 여성들에 대해 가지는 의미는 몇가지 요소를 중심으로 고찰이 가능하다. '역사주의', '산업혁명' 그리고 '민주주의'가 그것이다(pp. 26-27). 역사주의는 (인류가 역사를 갖고 있다면 당연히) 여성이 역사를 갖고 있다는 결론을 내옴으로써, '여성적인 것'은 영원한 본질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 과거, 현재, 미래에 걸친 여성의 역사를 고찰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였다. 산업혁명은 여성을 아버지와 남편에게 속박시켰던 경제적·상징적 종속의 끈을 제거하였다. 그러나 이런 해방은 양면적인 것이었다. 여성의 노동은 해방의 기회였던 만큼이나 초과 착취의 원인이었고, 여성은 정치 영역으로부터 오랫동안 배제되었던 것이다. 민주주의의 시대 역시 '여성들에게' 민주주의를 가져다 주지는 못하였다. 민주주의의 시대는 여성들을 가사의 영역에 국한시켰고, 공적 영역에서 배제하였다. 그러나 동시에 민주주의 체계는 여성에게 평등을 위한 도약의 기회를 부여하였고, 이는 서구전역에서 양성의 평등을 성취하기 위한 페미니즘 운동을 낳는다. 요컨대 19세기를 구성하는 핵심적 요소들은 양성의 관점에서{{. 어쩔 수 없는 이 책의 한계이지만, 이 책에서는 계급이나 지역 범주 등은 크게 고려에 넣지 못하고 있다. }} 접근했을 때, 주로 '남성들의 것'이었다고 결론내려도 될 것이다. 산업혁명의 중심에는 남성 노동자가 서 있었고, 민주주의에서 시민이란 일반적으로 남성시민을 의미하였다. 또한 19세기를 구분짓는 두 사건 - 프랑스 혁명과 세계대전 - 은 '여성들을 이처럼 중요한 일에 끌어들였지만 더 이상 필요없다고 생각하는 순간 즉시 여성들을 추방시켜 왔다. 이처럼 국사와 민족의 중요한 일에 여성을 끌어들이는 것과 거부하는 것, 포함과 배제간의 상호작용은 아주 미묘한 것으로'(p. 26) 여성의 역사에서 드러난다. 즉, 『여성의 역사 4』는 (적어도 19세기에 한해서는) 여성의 눈으로 역사를 보았을 때 역사는 "양면적"일 수 밖에 없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인간(즉, 남성들)에게 좋았던 것이 꼭 여성들에게도 좋은 것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많은 역사적 사건은 여성들에게 해방의 가능성을 제공했던 동시에 억압의 연속선상에 위치시켰다. 과거에 관한 서술은 객관적인 성격이 아니라 구성적 성격을 가지고 있는 하나의 '이야기story'이며(p. 618), 지금까지의 역사 서술은 남성들의 이야기였던 것이다. 같은 사실에 대해서도 수많은 이야기들이 구성될 수 있고, 이제 바야흐로 '여성들의 이야기'가 쓰여질 차례이다.

     3. 역사는 지속되는가? - 19세기와 지금

  사회에서 여성의 존재는 여러 측면에서 여전히 불안정하다. 그저 즐기기만 하려는 욕망이 여성의 정신을 어지럽히고, 이성은 오히려 애매모호함을 더할 뿐이다. 여성이 성공을 거두건 이와 반대로 실패하건 모든 것이 제멋대로이다. --- 제르멘느 드 스타엘(1802), 「문학적 재능을 닦았던 여성들에 대해」 中. (p. 796)
놀라운 것은 19세기에 존재했던 여성에 대한 편견들, 여성을 배제하는 전략들이 21세기를 목도하고 있는 지금까지 여전히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남성과 여성간의 관계의 역사가 가지고 있는 뿌리깊은 차별성을 보게 되고, 양성간 평등의 역사를 만들어가기 위해서는 아직 갈 길이 멀다는 가슴 아픈 확인을 하게 된다. 적어도 "여성의 역사"를 보았을 때, 19세기와 지금은 너무나 많이 닮아있고, 따라서 불행하게도 여성의 현실은 그다지 나아진 게 없는 셈이다. 예컨대 여성의 이미지에 관하여 볼 때, 과거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이분법이 사용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19세기에 여성에 대해서 성모나 천사(주로 성모 마리아의 이미지로 대표되는), 아니면 악령이라는 등식이 적용되었다(p. 194). 사회는 모성이 넘치는 여성의 이미지를 찬양하고 그에 대립되는 악녀의 이미지를 창조함으로써 여성을 통제하려 하였다. 때문에 여성(의 이미지)은 우상이었고 그 우상은 남성중심 사회를 유지하는 강력한 도구가 되었다(발자크의 지적은 매우 예리하다. '여성은 노예나 진배없다. 하지만 그럴듯한 명분을 찾아내 이들을 왕좌에 앉혀야 한다' : p. 195). 여성 통제, 그리고 남성지배 유지의 도구였던 여성에 대한 이런 이분법적 표상은 현재에 와서도 조금씩 변주될 뿐 여전히 유효하다. '어머니' 아니면 '창녀'. '요조숙녀' 아니면 '노는 계집'. 몇몇 사람은 수준 낮은 메일 쇼비니스트가 몇 년전 출간했던 『창녀론』이라는 책을 떠올릴 수 있을 지도 모른다. 이렇게 여성의 이미지에 관하여 비슷한 전략들이 반복되어 나타나고 있음은 특별히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미지는 남성들이 여성을 인식하는 메커니즘, 여성 본인이 여성을 인식하는 메커니즘과 연관된 것으로, 여성의 역사에 있어 고유한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여성은 이미지 없이는 존재하지 않으므로 여성의 역사는 항상 상징적 차원을 수반한다. 이러한 이미지는 항상 함정이고, 여성들은 바로 이러한 이미지를 변화시킴으로서 스스로를 변화시킬 수 있다(p. 30). 때문에 여성을 둘러싼 상징 전략, 그에 대한 대항 전략의 구상은 현대에까지 이어져 제기되는 과제가 된다. 19세기와 지금의 유사성은 이미지의 영역 뿐 아니라, 노동, 예술, 사상 등 매우 광범위한 영역에 걸쳐 있다. 그 연속성을 파악하는 것은 현대의 여성이 처한 현실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4. 새롭게 여성의 역사 만들기

   결국 『여성의 역사』를 독파하는 행위가 우선적으로 제공해 주는 것은 '지금' '우리'의 현실에 대한 통찰력이며, 앞으로 씌여질 새로운 여성의 역사에 대한 전망과 지향이라 해야 할 것이다. 19세기 [인형의 집]에서 인형이 아니기를 선언하고서 집을 뛰쳐나간 노라는 어떻게 되었을까? 21세기를 바라보는 지금 또 다른 노라가 집을 뛰쳐나간다면 어떻게 될까? 이 두 문장의 간극이 하나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하여, 우리는 마지막으로 이렇 게 자문해 볼 수 있다 : 여성의 역사에서 여성의 운명은 얼마만큼의, 어떤 방향으로의 변화를 겪었는가? 이 물음으로부터 우리는 새로운 여성의 역사를 어떻게 써야 할 것인지의 단초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책은 기본적으로 '서구' 여성의 역사에 대한 것이고, 또한 계급, 인종, 지역 등으로 인해 일어나는 '여성들간의 차이'에 대한 상세한 고찰까지는 이르지 못했음을 언급해둔다. 물론 그러한 사실이 이 책이 가지고 있는 가치를 감소시키지는 못한다. 오히려 그것은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이야기'가 무엇인지를 보여준다고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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