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대 논쟁 시타씨 첫번째 글

 

    



『서울대학교 통신 연구회-총학과함께 (go SCCR)』 3469번
제 목:[시타/빌린ID] 논쟁참여의견입니다.
올린이:연세총여(연세총여) 98/09/17 05:23 읽음: 25 E[7m관련자료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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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저는 연세대학교에 있는 beyond라는 여성모임에 속해있는 "시타" 라고 합니다. 이 게시판에서 관악 인문대 사건에 대한 논쟁이 진행중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찾아왔다가, 논쟁에 참여하고 싶어서 몇자 적습니다. 주로는 선물가 게님에게 드리는 의견이 될 것 같지만, 비판은 편가르자고 하는게 아니라는 생각,

그리고 이 문제는 성정치위원회와 선물가게님만의 문제가 아니라 바로 나의 문제이 자 동시대의 "미친 대학" (이 표현 맘에 들더군요 ^^) 에서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문제라는 생각으로 저의 솔직한 의견을 적어 보려고 합니다.

다소 난삽한 글이 되겠지만, 몇가지로 나누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1. 선물가게님이 성정치위원회를 오해하셨다고 생각되는 두 가지.

하나는 "부대 내 성적 평화가 기지촌 때문이라니?" 라는 오해입니다. 제가 성정치위원회의 글을 읽기에는 전혀 다른 뜻으로 쓰셨던데요. 이를테면, "엄격한 규율로 인하여 미군 부대 내에서 '평화'가 얻어진다고 하더라도, 그들이 바깥에서 (기지촌에서) 아무런 죄의식 없이 성폭력을 저지른다면, 부대 내의 평화를 진정한 '평화'라고 할 수 없다"라는 뜻으로 읽었습니다. 여기서 "진정한 평화"라고 제가 표현한 것은 무슨 낭만적인 생각이 아니라 "성폭력 근절"이라는 "목적"에 비추어 볼 때 '진정하다'는 의미입니다. 즉, "부대 내에서의 평화가 왜 부대 밖으로 까지 연장되지 않는가?"에 대한 문제제기인 셈이지요. "부대 내에서의 평화는 아무 의미가 없다"가 아니라요. 제가 독해한 것이 맞다면, 선물가게님과 성정치 위원회의 입장에 본질적인 차이는 없다고 보입니다. 그런데도 성폭력과 매매춘을 연결시키는 잘못된 인식 - 정말 광범위하지요 - 의 혐의를 성정치위원회에 거는건, (그것이 아무리 만전을 기하려는 노력에 기인한다 할지라도) 좀 과한 것 같습니다.

두번째는 "민족문제가 겹쳐져 있다고 해서 성폭력에 대한 기본적 논의 자체를 뒤집으면 어떻게 하는가?"라는 비판입니다. 이 부분은 정말 '추측성 혐의'인 것 같습니다. 성정치위원회의 글에서는, 한총련 친구들이 기지촌 여성 문제를 다룰 때 흔히 보이는 오류 - '미국인이 한국인에게'가 아니라 '남성이 여성에게' 가하는 폭력임에도 불구하고 거꾸로 생각하는 것, 따라서 한국군이 타국에서 벌이는 똑같은 성폭력에 대해서는 침묵하는 것 - 는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2.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던간에 일단 성폭력만 하지 않으면 됩니다." ???

글쎄요...이부분을 읽고는 깜짝 놀랬습니다. 이전에 선물가게님이 쓰신 글을 보고는 "성폭력" 문제에 대해서 정말 단호하고 전투적인 분이구나...하고 굉장히 반가웠 는데, 이 귀절은 솔직히 ... 뭐랄까요, 출발점이 다르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제 생각을 간단히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어떻게든 성폭력을 하지 않게 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속으로도 다른 생각을 하지 않는 것, 즉 성폭력에 대한 욕구 자체, 가능성 자체를 버리는 것이어야 합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선물가게님은 '낭만적'이라거나 '공동체에 대한 환상' 이라거나 '너무 먼 미래에 대한 이야기'라고 말씀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제가 의도하는 것은 다른 지점입니다. 작은 예를 들어보죠.



이것은 지난 6월 제가 겪었던 일입니다.
과방에 있는데 5명의 여중생들이 '학과탐방'을 왔습니다. 그들은 미리 질문과 녹음기를 준비해왔었고, 질문 중에는 "장래 희망"을 묻는 것이 있었습니다. 과방에 있던 한 남학우는 인터뷰를 하다가, 장래희망은 작가가 되는 것이라는 말 끝에 농담조로 "포주가 되고 싶다, 오스카와일드 의 말에 따르면 작가의 가장 좋은 부업은 포주라고 했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그 말은 (주위에 있던 그의 친구들의 히히덕거리는 소리와 함께) 그대로 녹음되었고, 여중생들은 아무 말 없이 돌아갔습니다. 그 장소에 있었던 저는 "진심으로 한 말이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진심이면 어쩔거고, 아니면 어쩔거냐?"라고 묻더군요. 제가 그런 말은 성폭력에 해당된다고 말했더니, "그러면 당신 앞에서만 안하겠다. 됐느냐?" 라고 말하고 나가버리더군요. 열받은 제가 자보를 붙이면서 일이 커졌지만, 특별한 소득 없이 흐지부지 (방학과 함께) 끝나버리고 말았습니다.


제가 이 예를 든 이유는 "당신 앞에서만 안하겠다" 라는 부분에 있습니다. 이것은 결코 특이한 예가 아닙니다. 많은 남성들이 이런 식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주위에 '페미니스트'로 "찍힌" 여성이 있을 때, 그녀들 앞에서만 입조심, 몸조심을 하는 겁니다. 단지 위에 든 예에서는 좀더 뻔뻔하고 노골적으로 그 생각을 "표현"했을 뿐이지요. 많은 페미니스트 여성들이 이런 경우에 맞닥뜨리고 좌절합니다. 자기 앞에서 성차별적 언어를 쓰지 않겠다고 하는데 왜 좌절할까요? 선물가게님이 말씀하신 대로 "일단 성폭력은 행하지 않은" 셈인데 말이죠. 제 경우는 이렇습니다. "그들이 전혀 변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좌절합니다." 이것은 비단 그들이 '나 없는 곳에서는 똑같은 짓을 하겠지'라는 생각만은 아닙니다 (물론 그런 것도 당연히 있지만요!). 내가 화를 내는 이유, 내가 수치스럽고 모욕감을 느끼는 이유, 나에게 그것이 '폭력'인 이유를 그들이 전혀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여전히요. 여성주의자로서 제가 바꾸고 싶어하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것은 가부장제에 얽힌 모든 것입니다. (그리고 성정치위원회는 이것을 "사회구조"라고 표현하셨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위의 예와 같은 상황에서는, 바꾸고 싶었던 것이 전혀 바뀌지 않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좌절하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선물가게님의 생각과는 전혀 달리 저에게는 "목적달성율 0%"인 셈이죠.(약간의 과장법입니다만...) 선물가게님의 말씀대로라면 "일단 성폭력을 하지 않게 되었으니까" 목표는 달성된 것이구요. ... 뭐, 다소 과장한 것 같긴 하지만, "출발점이 다른 것 같다"는 생각 에는 변함이 없군요. 아직까지는요.

3. "한국 대학의 술문화 = 성추행 문화"라는 주장에 대하여.

이에 대해서 대학 문화 일반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저는 성폭력과 관련된 부분에 대해서만 의견을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선물가게님이 말씀하신대로, 술자리/MT/수련회 등은 성폭력이 발생하는 주요한 시공간입니다. - 물론 성폭력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습니다만. 그리고 이에 대해 보다 치밀한 개입과 프로그램들이 만들어져야 한다는 생각은 저도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술자리는 "조건"이지 "원인"은 아닙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수많은 성폭력이 술자리에서 발생한다는 것, 저도 알고 있고 많이 경험도 합니다. 그리고 이에 대한 단호한 개인적/집단적/제도적 대처가 있어야 한다고도 생각합니다. 하지만 여전히 술자리는 성폭력의 "원인"은 아닙니다. 따라서 '술자리/술문화를 없애야 한다'는 선물가게님의 주장은 잘못된 결론인 것 같습니다. 쉬운 예를 들어 봅시다. 가령 여성들끼리의 술자리 같은 것 말이죠. 같은 술자리인데 왜 여성들끼리 의 술자리에서는 성폭력이 일어나지 않을까요? 반대로, 왜 남성과 여성이 어울리는 자리에서는 성폭력이 빈번히 발생할까요? 술자리/술문화의 문제가 아니라 분명히 성별 권력구조, 가부장제의 문제입니다. 문제를 해결하려면 정확히 그 "원인"을 조준하여 싸워야 하는 것이겠구요. (대학문화에 대한, 술문화에 대한 다른 비판은, 별개의 토론을 요하는 다른 문제인 것 같습니다. 그것이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지 않구요. 다만 지금 이 문제의 핵심은 그것이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4. 사소한 문제 하나.

적극적으로 학교와 연대해야 한다, 라고 말씀하셨던 부분에서 든 생각인데, 저는 평소에 "믿을 놈 하나도 없다"라는 생각을 자주 하거든요. 성폭력 사건을 신고하러 갔을 때의 경찰도, 연대사태때 집단 성추행을 자행하던 전경/공권력도, 철저히 가해자중심적인 법도, 법정도, 심지어 좌석버스안에서 성추행을 당해서 가해자와 싸우고 있을 때 신경질내며 '내려서 싸워라' 이러는 기사아저씨들도 말이죠. 이 긴 목록에 "신정휴교수를 처벌하지 않는 서울대 학교당국"이라는 항목을 추가할 수 있지 않을까요? 물론 제도의 위력을 무시하는건 아닙니다만...

5. 선물가게님과, 이 논쟁에 관심있는 모든 분들께.

단호한 비판과 진지한 논쟁에 대해 우선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이 논쟁이 관악 및 모든 대학 내에서의 성폭력 근절에 도움이 되리라는 것을 의심치 않습니다. 다만, 이런 부연을 해도 괜찮다면,

"비판에 그치지 말고 함께 싸우자"

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비판과 논쟁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그런 열정과 노력과 아이디어로 함께 싸우는 것이 더 좋지 않은가, 라는 다소 소박한 생각이예요. 이를테면 선물가게님도 그런 단호함과 맹렬함과 풍부한 지식들을 (성정치위원회를 비판하는 데에만 쓸 것이 아니라) 정작 아무 생각없이 성폭력 저지르고 다니는 인간들한테 사용하면 효과 100배가 아닐까-하는 생각입니다. 그리고 제가 말하는게 '함께' 싸우자는 것이 같은 모임에 속해야 한다거나 무슨 행사를 같이 한다거나 하는 좁은 의미만은 아닙니다. 관점과 입장을 같이할 때, 하나의 문제에 대해서 각자의 방법, 각자 더 옳고 효과적이며 잘 할 수 있는 방법으로, 각자가 선 자리에 서 싸워 나간다면, 그게 '함께 싸우는' 거 아닐까요.

그럼 이만... 계속 논쟁에 관심을 가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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