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정치위 답변에 대한 재비판

 

    



『서울대학교 통신 연구회-총학과함께 (go SCCR)』 3432번
제 목:[반론] 성정치위의 두번 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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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실한 답변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저는 주로 하이텔을 이용하는데, 아무리 총학이나 정치단체의 대자보를 비판해도 답변이 없더군요. 알고보니 나우누리쪽에서만 활동을 하니 그런 모양입니다. 바쁘시더라도 가끔가다 하이텔쪽에도 글을 올려주셨으면 합니다.
   그럼 성정치 위원회에의 답변에 대한 제 나름대로의 생각을 적어보겠습니다. 주로 비판하는 입장에 서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성정치 위원회가 바라는 것이라 믿습니다.

   1. 우선, 김진희 씨의 주장은 다음과 같은 지점에서 우리와 정확히 일치합 니다.

하나, 성폭력은 대단히 일상적으로 벌어지고 있다.
둘, 성폭력의 척결은 다른 어떤 목적의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로서 중 차대한 목적으로 사고되어야 한다.
셋, 가해자 역시 피해자다라는 말을 함부로 써서는 안된다.
넷, 성폭력도 하나의 범죄이다.
다섯, 성폭력 문제가 공개된다는 것은 피해자에게 엄청난 피해를 초래 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성폭력 사건의 해결 과정에서 보안의 유지는 가 장 중요시되어야 한다.

   정말입니까? 이 정도면 아예 입장이 같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네요. 특히 제가 저번 글에서 가장 강조했던 것이 '가해자란 말을 함부로 쓰지마라.' 와 '성범죄도 범죄다.'라는 것을 익히 알고 있는 듯 합니다. 당연할 것입니다. 성문제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곳에서 이를 모를리는 없겠지요. 그런데 왜 대자보에는 이를 뒤집는 말을 하셨습니까? 비유적 표현으로 전술을 잘못 썼다고 하셨지만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저는 학교에 붙은 대자보 는 모조리 읽습니다. 그것이 개인적으로 이득이 오는 것도 아닌데 열심히 쓰고 붙이는 사람들에 대한 예의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대자보를 계속 읽고 또 대자보를 쓴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다보면 생각과 글이 일치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생각하는 대로 쓰지 않고 이것을 학우들이 어떻게 생각할까에 대해 너무 신경을 쓰다보니 진리가 왜곡되는 것입니다. 성정치 위원회와 저와의 견해 차이도 바로 이 부분일 것입니다.

   2. 우리는 성폭력 범죄자 개인을 단호하게 처벌하는 것만으로, 성폭력이 척결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물론 이 뒤에 그렇다고 성폭력 범죄자를 처벌하지 말자는 것이 아니라고 언급하기는 했습니다. 하지만 이 두 문장이 과연 매끄럽게 이어질 수 있 는 것입니까? 재벌들이 요즘 뭐라 그럽니까? 재벌개혁만으로 경제위기를 헤쳐나갈 수 없다고 합니다. 이 말이 의미하는 것이 재벌개혁을 하지 않 겠다는 것 아닙니까? 다 이런 식입니다. 서울대 해체하자고 하면 서울대 해체만으로 교육개혁이 될 수 없다고 하고, 공기업 개혁하자고 하면 공기 업 개혁만으로 정부부실을 해결할 수 없다고 합니다. 경제위기 주범을 처벌하자고 하면 처벌만이 능사가 아니라고 합니다.

   ' 개인을 단호하게 처벌하는 것으로 성폭력이 척결될 것이라 생각하지 않 는다.' 당연한 말 아닙니까? 이런 당연한 문장은 쓸 필요가 없습니다.

   문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호한 처벌을 해야되느냐 아니냐에 있는 것이지요.

   3. 범죄자 처벌이 기대하는 효과는 크게 다음의 세 가지입니다. 첫째는 범죄자를 교화하는 것이고, 둘째는 피해자에 대한 보상이며, 셋째 는 처벌이 공개화되었을 때 얻을 수 있는 대중의 교화입니다. 그러나 우 리는 처벌을 통해 기대되는 위의 세 가지 효과에 대해서 회의적입니다.

   진복세력이라 불리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다보면 이런 식의 문장을 많이 사용합니다. 앞에도 말했지만 너무 당연한 말만 한다는 것입니다. 위의 처벌 에 대한 효과는 성범죄뿐 아니라 거의 모든 범죄에 대해 적용되는 것입니다. 처벌한다고 해서 범죄자가 자신의 죄를 뉘우치기란 힘든 것이고 그렇다고 피해자가 보상을 받는 것도 아니고 대중이 교화되기도 힘듭니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해서 처벌을 하지말자고 주장하시지는 않겠지요. 처벌의 효과를 너무 거시적으로만 접근하기 때문에 처벌에 대해 회의적 태도를 갖게 되는데 저는 처벌의 효과를 그런 식으로 보지 않습니다. 즉 처벌을 한다고 해서 가해자가 뉘우칠 것이라는 낭만적인 생각은 아예 머리속에 들어 있지도 않습니다. 처벌의 효과는 단지 범죄 예방에 있는 것이지요.

   이런 점에 성범죄와 다른 범죄와 구분되는 점입니다. 절도같은 경우는 처벌 을 한다고 해도 재범이 일어나는 확률이 많지만 성범죄는 한번 처벌받으면 다시는 저지를 엄두도 못냅니다. 그리고 그 처벌이 인지되면서 다른 구성원 들도 각성하게 됩니다. 그들이 무슨 대단한 성에 대한 의식이 있어서가 아니 라 단지 무서워서 못한다는 것입니다. 혹시 성희롱에 대한 미군군법을 보신적 있으십니까? 전 대학생활하면서 거의 한달에 한건씩 성추행 사건을 들었습니다. 그것도 제 주위에서 말입니다. 물론 거의다 쉬쉬하며 넘어갔습 니다.
   그런데 군생활 2년동안 딱 한건만의 성추행사건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미군 애들이 사회적 성폭력에 대한 투철한 의식이 있어서가 아니라 워낙 철저하게 규제하고 있는 성폭력에 대한 법조문 때문입니다. 술 마시자고 3번만 강요해도 성추행이라고 법조문에 정확히 나와 있습니다. 그리고 여성 앞에서 쓸데 없이 옷을 벗는 행위, 여성을 뚫어지가 쳐다보는 행위 등 수십개의 구체적 사례가 법에 규정되어 있고, 그래도 모자라는지 마지막 행에는 이러한 행위 외에도 여성이 성희롱을 당했다고 생각되는 모든 행위 가 성희롱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처벌 또한 대단히 엄해서 대개 군복을 벗어야 하고 심한 경우는 감옥행입니다. 기지촌에서는 성폭력을 일삼는 미군들이 부대내에서는 엄두도 못내는 것, 대학에서는 성폭력을 일삼는 카투사들이 역시 부대내에서는 엄두도 못내는 것, 이는 단호한 처벌 때문입니다.

   아마 미군법을 서울대학교에 적용하면 수천명의 학생들은 대학이 아닌 감옥에 있어야 할 것입니다. 술만 마시면 여성의 손을 잡고 성적 농담을 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독일의 법이 얼마나 엄한지는 아마 여러번 들으셨을 것입니다. 하이델 베르그 대학은 학생들이 자치 운영하는 학생감옥까지 있었습니다. 하이델 베르그 대학에서 성추행을 한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것입니다. 처벌만 강화하면 학생들이 교화되지는 못한다해도 성추행의 빈도는 현저히 즐어들 것입니다.

   4. '성폭력 범죄자에 대한 단호한 처벌이 없기 때문에, 성폭력 범죄자가 우글거리고 있다'라는 방식으로 이해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성폭력이 대단히 일상적이라는 판단의 온전한 의미는 정확히, 현재 성폭력적 사회구조가 견고하게 재생산되고 있고 그러한 사 회구조가 사회 구성원 개개인을 통해 철저하게 관철되고 있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이 문장은 제가 전혀 동의할 수 없습니다. 역설적이게도 우리나라 의 진보주의자들은 한국이란 나라를 마치 선진국인양 착각하는 경우가 많 습니다. 특히나 여성학을 전문적으로 공부하는 사람들에게서 이런 오류가 많이 발견됩니다. 냅다 외국서적만 읽어나가다보니 여성이란 우리나라뿐 아니라 프랑스나, 미국에서도 역시 차별받고 있구나 하는 식의 생각을 한다는 것입니다. [피고인]이란 영화를 보면서 성추행이란 모든 곳에서 존재하는 보편적인 것이라 여깁니다. 하지만 한국 대학내의 성추행은 상식 이하입니다. 세상에 어느 나라 어느 대학에서 이렇게 성추행이 빈번 하게 일어나며 그냥 덮어두고 넘어갑니까?

   남성 이데올로기를 깨고 사회구조를 바꾸는 작업을 해야 하는 곳은 프랑스나 독일의 여성들입니다. 우리는 유치원에서 배운 것을 실천해 야하는 단계입니다. 그러니 사회구조 어쩌구 하다보면 실질적으로 가장 중요한 문제가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저차원적인 예를 하나 들겠습니다. 엠티같은 곳에서 흔히 하는 남자와 여자를 신문지 위에 올려놓고 계속 접어나가는 게임이 있습니다. 이것은 명백한 성추행입니다. 미군부대나 독일이었으면 그 게임을 강제로 시킨 사람은 범죄자입니다. 그런데 누구 하나 이런 것을 잘못 되었다고 지적하지 않습니다. 특히나 아무것도 모르는 신입생들은 대학은 원래 이런 것이구나, 이런 것이 우리들의 자유구나 하며 넘어가게 마련입니다. 더구나 미국이나 유럽의 개방적 사고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이런 것이 서구문화인지 착각을 합니다.

   성정치 위원회가 해야 될 일들이 바로 이런 것들을 바로잡는 것입니다. 술자리에서 돈독한 선후배의 정 어쩌구하며 벌어지는 성추행들, 몇몇의 주류들이 강요하는 엠티에서의 성추행들, 이런 것을 계속 지적하며 경고를 해줘야 합니다. 한국 대학에서의 기형적인 성추행의 만연은 이런 잘못된 대학문화를, 그것도 통밥으로 묶어서 지배이데올로기니, 사회구조니 하며 논점을 흐리지 말고 개별 사안에 따라 구체적으로 하나하나 짚어나가며 바로 잡을 때에만 시정될 수 있습니다.

   대학의 술자리 문화와 엠티문화가 성폭력의 만연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는 것을 동의하신다면 제 말을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학내에서의 성추행 대부분은 술에 취한 상태에서 벌어지는 것 아닙니까. 그리고 이는 한국 대학만의 특수성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간 성정치 위원회가 쓴 글을 읽어보니 이에 대한 논의는 하나도 없더군요. 더구나 성폭력학칙제정 운동을 성폭력 교수에 대한 투쟁이라 하더군요. 다시 한 번 생각해보십시요. 현재의 대학에서 교수대 학생간의 성폭력이 문제입니까 아니면 학생대 학생간의 성폭력이 문제입니까. 또 어차피 남성 이데올로기라는 점에서 둘의 본질은 같다는 낭만적인 생각은 하지 마십시요. 대학내의 학생간의 성폭력은 이데올로기 차원을 넘었습니다.

   5. 우리는 성폭력 척결의 목적을 위한 하나의 중요한 공격대상으 로서 '성폭력에 대한 성폭력적 담론'을 상정하고 그것을 담지하고 있던 대 학본부에 반대하고자 했던 것이지 결코 그 반대가 아니었습니다

   제 글을 보시면 알겠지만 대학내의 성폭력은 이미 위험수위에 도달해 있습니다. 한 학기에 제 주위에서 일어난 것만 4건입니다. 대학본부의 권위는 이러한 성폭력의 만연에 아주 작은 부분에 불과합니다. 왜 이런 작은 부분에 집착을 하고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는 술자리와 엠티문화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고 있냐는 것입니다.

   제가 자주 쓰는 말 중에 하나인데, 개혁이란 것은 자기 목을 치는 것입니다. 학생운동을 한다면 교수의 목을 치기앞서 학생의 목을 먼저 쳐야 합니다. 물론 대중운동의 관점에서 학생들의 행위에 대해 비판을 하기는 어렵다는 점을 충분히 이해합니다만 학생정치단체와 기존의 정치단체는 분명히 달라야 합니다. 대중들이 듣기 싫은 소리라 해도 계속해서 발언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신정휴 교수와 이번 가해자에 대한 성정치 위원회의 2중적 태도를 의심하 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신정휴 교수 사건 때는 기어코 감옥에 보내겠다는 의지를 보이면서도 왜 이번 사건에는 이토록 가해자를 감싸 안으려 합니까. 신정휴는 교수이고 이번 가해자는 학생이기 때문입니까.

   대학내의 학생 성폭력은 교수문제도 아니고 대학본부문제도 아닙니다. 1차적으로 학생책임입니다. 제발 사회구조란 말 좀 하지 마십시요. 상대적으로 가장 독립되어 있는 대학생이 사회구조탓을 해버리면 누가 사회구조를 뒤바꿀 수 있습니까. 엠티가서 부르스 추는 것이 사회구조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이것은 구조문제가 아니라 의지의 문제입니다. 성폭력을 근절하겠다는 의지만 있다면 근절까지는 몰라도 줄일 수는 있는 것입니다.

   6. 결론을 대신하며

   한국 대학의 성폭력 논의를 보면 뒷북만 치고다는 생각이 듭니다. 성폭력 이 일어날 수 있는 조건들은 계속해서 생산해내면서 사건이 나면 지배이데올 로기 탓을 해버린다는 것입니다. 아름다운 공동체에 대한 환상이 없다고 하셨지만 그런 공동체에 대한 환상이 없는 학생운동가가 어디 있습니까.

   그런 공동체 문화, 정확히 말하면 집단주의 문화, 더 저속하게 말하면 술자리 문화가 학내 성폭력의 주범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 문화를 유지시키는 것은 오히려 학생운동가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학생운 동가들 역시 성폭력의 공범자들인 것입니다. 혹시 정도상의 [그대여 우리 다시 만날 때까지]란 소설을 읽어 보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성추행은 아니지만 정치단체 내에서 일어난 치정 사건을 개개인의 정치적 역량과 공동체를 위해 덮어 버립니다. 그것도 아주 아름다운 문체로 포장 해서 말입니다. 성정치 위원회의 첫번째 대자보도 이와 별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이제껏 학내에서 성폭력 문제는 모두다 이런 식으로 접근되었습니다. 개인이 희생당해서는 곤란하다느니 그것만으로 해결될 수 없다느니 하면서 말입니다. 그러면서 논의를 더 깊이 해야 한다고 합니다.

   지금까지 뭐 하다가 이제부터 논의하겠다는 것입니까. 논의는 충분히 되어 있습니다. 이제부터는 의지가 중요합니다. 엠티에서 서로 살을 맞대며 느끼는 공동체적 유대감, 새벽까지 술을 마시며 얻게되는 선후배간의 돈독한 정, 이런 것들을 희생하면서도 성폭력을 근절하겠다 는 그런 의지말입니다.

   저는 이 부분을 의심하고 있습니다. 이번 대자보는 부분이고 계속해서 대자보를 붙이시겠다고 했지만 지금까지 쓰신 글을 읽어보니 크게 달라 질 것이라 생각지는 않습니다. 정말로 성폭력 척결의 의지가 있다면 이 부분을 집중 다루었어야 합니다.

   첫째, 이번 사건의 가해자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 과내외에서 상습적인 성추 행을 일삼아왔는데도 과 차원에서 어떠한 제제는 커녕, 오히려 버젓이 학생회내에서 정치적 일꾼으로 일해온 점, 이에 대해서 해당 과학생회 를 비판했어야 합니다.

   둘째, 이번 사건 역시 술 때문에 벌어졌습니다. 1학년들이 대학에 들어와서 처음 배우는 게 뭡니까? 정신을 잃어서 비틀거릴 정도로 술 마시는 것 아닙니까? 그리고는 마치 이런 것이 대학의 자유정신인 양 호도하고 다니 는 사이비 운동가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학생회에서 기획하는 행사중에 술이 안올라오는 행사가 하나라도 있습니까? 이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루어야 합니다. 계속 강조하지만 동문회와 학생회의 술문화는 성폭력 의 주범입니다. 이를 소홀히 하고 아름다운 거대담론만 일삼고, 교수와 대학본부에만 책임을 전가하는 달콤한 발언만 하기 때문에 저는 학생들 의 성폭력 근절의 의지를 의심하는 것입니다.

   세상에 공짜란 없는 것이고 개혁이란 달콤한 아이스크림이 아닙니다. 성폭력을 근절하겠다면 그것으로 인해 우리가 포기해야 될 것도 많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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