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여기서 알 수 있듯이 "조선족"이란 우리가 생각하는 "조선 민족"과는 상당히 다른 개념이에요. 조선족들을 취재한 프로를 보면 대개 "조선족"이 마치 중국에 사는 "우리 핏줄, 가족"인양 그리고 있는데, 이것은 정말 그들의 중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무시한 "아전인수"격 잣대인 셈이죠. 물론 그들 중 60세 이상은 대부분이 한국이나 북조선에 "고향"을 두고 있고, 자신의 정체성을 "중국인"보다는 "한국인"이나 "북조선 사람"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이들은 대개 광복이나 6.25의 혼란 중에 "여러 가지 이유로"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한 사람들이지요. 하지만 40대 이하만 되어도 한반도에 대한 기억이 없을 뿐만 아니라 모택동 지배하의 "사회주의 중국인"으로서 교육받았기 때문에 "한국인"이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아요. 즉 이들의 "조선족"이라는 정체성은 "56개의 중국 민족 중 하나로서의 조선족"일 뿐이에요. 이들 대부분에게 있어 "한국" 혹은 "북조선" 역시 같은 핏줄로 이루어진 "다른 나라"일 뿐이지, 결코 "조국"이 아니고요.

  

가 거주한 조선족 마을은 모두 270가구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마을 사람 거의 다 농사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었어요. 그리고 마치 한국의 농촌을 보듯이 비슷한 현상들을 많이 찾아 볼 수 있었어요. 예를 들어 이 마을에서 20대는 거의 찾아볼 수가 없었는데, 거의 다 도시로 일하러 나갔기 때문이에요. 개방 이후 한국 기업들이 줄줄이 도시로 들어오면서 조선족들의 도시 취업은 더욱 급격해졌죠. 무엇보다 "조선말"을 할 수 있는 조선족 여자들은 중국 회사보다 "좋은 봉급 조건으로" 취업을 할 수 있게 되었어요

(조선족 처녀들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 기회에 더 자세히 소개하도록 하지요). 이들은 대개 상가나 음식점, 기업체의 종업원, 통역원, 안내원 등으로 취업을 해요. 반면 남자들은 이러한 서비스업의 취업 기회가 상대적으로 적은데다가 농사를 지어야 하고 또 부모를 모셔야 할 의무 때문에 아직 농촌에 남아있는 사람들이 있어요. 특히 30대 후반의 총각들이 꽤 있었는데(10명 가까이) 이들은 점차 농촌 처녀들이 도시로 나가서 신랑감을 찾게 됨에 따라 신부를 얻지 못하고 남아있는 경우였죠.

    선족들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나가서 돈을 벌려고 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아무리 열심히 농사를 지어도 "먹고살기 빠듯하기" 때문이에요. 일년동안 모내기에서부터 가을걷이까지 꼬박 일을 해도 중국 돈으로 2000원을 남기기가 어려운데, 2000원이면 한국 돈으로 약 26만원이죠. 반면 한국 상가에 종업원으로 취직을 하면 한 달에 800원(한국 돈으로 약 10만원)을 벌 수가 있어요. 그래도 2000원이라는 돈이 얼만큼의 돈인지 감이 잘 안 잡히죠? 보통 중학생을 공부시키기 위해서는 일 년에 1500원의 돈이 들어요. 그리고 대학 입학금은 20000원이 있어야 하죠. 버스를 타면 거리에 따라 차이가 나긴 하지만 5원의 돈이 들죠. 괜찮은 화장품을 사려면 적어도 50원이 있어야 하고, 음식점에서 친구들에게 술을 한 번 사려면 적어도 100원은 있어야 해요. 그러니까 일 년에 2000원이라는 돈은 아주 적은 돈이죠. 쉽게 말해, 다음해 농사를 짓기 위해 필요한 종자와 물품을 사는 것만으로도 모자라요. 그런데 어떻게 굶어죽지 않고 살 수 있냐고요? 그건 중국에서는 식료품의 값이 아주 싸기 때문에 가능해요. 소고기는 한 근(500g)에 5원(한국 돈으로 약 650원)이고, 수박은 한 개에 1원(한국 돈으로 약 130원)이고, 하여간 모든 채소와 육류들을 몇 원만 주면 살수가 있죠. 게다가 모든 집이 약 20평 이상 되는 마당을 가지고 밭을 일구기 때문에 대부분의 채소는 자급자족할 수가 있어요. 농민들의 수입이 지나치게 적은 것도 쌀값이 턱없이 낮기 때문이죠. 쌀 1Kg를 수확해도 시장에서 1원 40전(한국 돈으로 약 180원) 밖에 받지 못해요. 그러니 결국 해마다 빚지는 농사를 하는 셈이죠.

    지만 조선족들이 한국으로 나가려고 하는 배경에는 "상대적인 빈곤감"이 더 크게 자리잡고 있어요. 단적으로, 이웃 한족 마을 사람들은 비슷한 상황 속에 살면서도 조선족들처럼 한국에 나가서 돈을 벌지 않고도 돈을 모으는 방법을 알고 있어요. 그것은 "끔찍하게 아낀다"는 거예요. "한족들은 100원이 생기면 장롱 밑에 넣어두고 그것을 다시 꺼내지 않는다"고 말들을 하지요. 이들은 이렇게 모은 돈을 기반으로 장사를 해서 점차 불려나가요. 하지만 조선족들의 경우 한족들처럼 아주 아끼면서 산다는 것이 힘들어요. 왜냐하면 그렇게 사는 사람이 드물고, 또 그렇게 사는 것은 사회에서 뒤처지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에요. 예를 들어, 남자 친구들이 함께 놀다가 한 사람이 술을 사기로 했다고 합시다. 그러면 다음에는 얻어먹은 사람이 술을 사야만 "치사한 놈"이라는 소리를 듣지 않을 수 있어요. 한국에서 돈을 벌어 온 사람에게 술값 100원은 "껌 값"이겠지만 농촌에서 농사만 짓는 사람에게 그 돈은 엄청난 거죠. 여자들도 마찬가지예요. 한 아줌마가 옷을 하나 사서 좋다고 자랑을 하면, 일 년에 2000원 수입 밖에 없는 다른 아줌마도 그에 질세라 몇 백 원이 되는 옷을 자기도 하나 사는 거죠. 일종의 자존심 싸움인데, 결국은 "뱁새가 황새 쫓아가다 다리 찢어질" 수밖에 없으니 가난한 사람들은 점차 빚만 불어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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