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OUTRO - 기다릴 것인가, 바로 시작할 것인가

   본질적으로 지속적인 운동을 급박한 정세라는 이유로 끊임없이 부차적인 것으로, 차후적인 것으로 왜소화시킨 학생운동의 역사는 지금까지만으로 충분하다. 더 이상 이러한 오류를 반복하지 말자. 지금 바로 여기서 시작하자. 성폭력학칙제정운동, 그 당당하고 자랑 스런 깃발을 올리자!

<각주 설명>

1. 1997, 여성연대회의, {대학 = 성폭력 박물관} 14p.

2. 성폭력의 대상은 '성적 매력을 갖춘 여성'뿐이라는 일반적인 생각은 잘 못이다. 실제로 성폭력은 유아에서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에 게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행해진다. 즉 성폭력의 원인이 피해자가 '야한 옷을 입고 있어서', '정숙하게 행동하지 않아서', '조심하지 않아서' 라는 말은 가당치 않다.

3. 가해자가 학생인 경우, 특히 공동체의 중요한 일원인 경우 성폭력 사건 은 대부분 은폐된다. 가해자가 사회적으로 배제, 더 리얼하게는 매장될 수도 있다는 것이 이러한 은폐를 정당화한다. 같은 맥락에서 여성운동이 주장하는 실명 공개사과에 대한 반대 입장 또한 강력하다. 그러나 이러 한 입장은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명백히 잘못된 것이다. 첫째, 성폭력이 은폐되었을 경우, 그리고 심지어는 정당하게 평가되고 가해자가 처벌되 었을 경우에조차도 사회적으로 '매장'당하는 쪽은 피해자이다. 둘째, 여성 운동이 주장하는 사건의 공론화와 가해자의 공개사과는 성폭력 근절의 첫출발이며 이는 특정인의 매장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셋째, 가해자의 실명 공개사과가 이루어졌을 경우 그를 매장시키는 것은 정확히 말하면 바로 위와 같은 입장을 가진 사람들이다. 그러한 입장은 은연중에 이미 가해자의 변화가능성을 부정하고 있다. 이는 가해자가 자신의 잘못을 ㄲ 닫고 반성하며 그것에 대해 사회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기회를 박탈하는 것이며, 이는 필연적으로 가해자를 일반인과는 무관한 성폭력 범죄자로 낙인찍는 결과를 가져온다. 가해자가 자신의 실명을 걸고 떳떳 하게 사과를 함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그를 자신과는 다른 성폭력범죄자 로 인식하는 것은 명백한 잘못이다. 물론 이러한 인식을 갖고 있는 대중 에 대한 공격 역시 여성운동의 몫이다.

4.이러한 정조 개념의 현재적 양태는 이러하다. 대부분의 경우 성폭력 사 건에 대해 분노하는 사람들은 직접적으로 피해자와 관련이 있는 공동체 내부의 사람들이다. 이러한 사람들은 공동체 외부의 사람들에 의한 공동 체 내부 사람에 대한 성폭력에는 폭발적으로 분노를 터뜨림에도 불구하 고, 공동체 내부에서 성폭력 사건이 일어났을 때는 '공동체를 위해서', '가해자의 체면을 봐서' 이를 무마시킨다. 이것이 피해자는 물론이고 공 동체를 위해서도 가해자를 위해서도 결코 바람직하지 않은 일임은 명백 하다. 이 때의 공동체는 가족과 친족은 물론이고, 학생사회의 공동체도 포함된다.

5.여성의 몸을 공동체의 재생산적 신체로 이해한다면, 정조를 상실한 여 성은 더 이상 소유할 가치, 여성으로서의 가치를 상실한 것이 된다. 이러 한 관점은 대중들에게 뿌리깊게 육화되어 있다. 이것이 바로 성폭력의 가해자는 쉽게 용서되고 오히려 부추김을 받는 반면, 피해자는 영원히 배제되는 기가 막힌 현실을 가능케 한다.

6. 한국성폭력상담소의 상담 사례 분석에 따르면 성폭력 피해자 중 남성의 비율이 점차로 증가하는 추세에 있다. 피해자는 주로 어린이와 청소년층 에 집중되어 있으며, 가해자는 주로 직장 상사나, 학교 상급생, 군대 상 관 등 남성이 대부분이었다. 이러한 사실을 희화화되어서는 안 될 것이 다. 현실적 권력관계에서 일반적으로 남성이 우위에 있다는 점을 생각한 다면 '남성에 대한 성폭력'은 사실 형용모순이다. 또한 이를 바탕으로 동 성애와 폭력성을 연결시키는 것은 명백한 잘못이다. 중요한 것은 성폭력 이 대상의 특성과는 무관한, 고립된 권력관계의 산물이라는 점이다. 그것 으로 인한 피해는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치명적이다.

7. 범죄 행위에 대한 정당한 처벌로 인한 피해는 이에 포함되지 않는다. 사실 그것은 '피해'라고 말해질 수 없다. 뒤에서 다시 언급하겠지만, '가 해자의 피해'를 '피해자의 피해'보다 우선시하여 강조하는 것은 성폭력 문제의 본질을 흐리며 그 해결을 거부하는 결과를 낳을 뿐이다.

8.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 바라보는 것과는 반대쪽 편향으로 여성을 신비화 시키는 경향도 많다. 그러나 이 두 시각은 사실 다르지 않으며 항상 공 존하기 마련이다. 이 두 시각 모두 여성을 소통할 수 있는 주체로 보지 않는다는 점에서 정확히 동일하며 각각의 여성에게 동일한 억압과 배제 를 수행한다.

9. 실제로 가정에서 권력을 온전히 행사할 수 있는 남성은 사회적 권력과 자본을 소유한 자에 한정된다. 일반화해서 말하기엔 위험한 측면도 있지 만, 자본주의 하에서 강간은 이미 상품화된 성을 정당하게(?) 구매할 수 없는, 경쟁에서 낙오된 왜소한 남성들의 비참한 현실의 한 단면이다. 또 한 사회적 권력을 상실한 노년기에 남성은 여성에 비해 훨씬 고독하다. 그들이 배운 인간관계는 권력의 일방적 행사가 전부였기 때문에, 권력의 상실은 직접적으로 모든 인간관계의 상실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10. 물론 이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피해자 여성의 인권 보호는 사건 해결 과정에서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되어야 할 사항이다.

11. 여기서 나열한 여러 수식어들은 지극히 일반적인 것들이며 각각이 뿌리깊은 이데올로기와 현실을 함축하고 있다. 즉, 생물학주의와 남성이 성 욕이 강하다는 속설, 데이트 강간, 성폭력의 원인이 여성에게 있다는 편 견, 여성의 'no'는 'yes'라는 오해, 부정적 의미에서의 공동체주의, 성에 대한 지독한 무지함, 등등.

12. 성폭력의 가해자는 보통 사람과 구별되는 특수한 사람이 아니다. 가해 자는 '범죄자'라는 고립되고 통일된 인격체가 아니다. 성폭력의 개념을 올바르게 확장한다면 사실상 현 사회구조에 편입된 모든 사람은 잠재적 인 성폭력의 가해자이다. 가해자는 사회가 구조화하고 있는 성폭력적 행 위, '사회적 성폭력의 담지자'로 이해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관점을 택한다고 하더라도, 가해자에게 면죄부가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극단적 인 경우, 명령에 의한 성폭력을 수행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일차적인 책 임은 그에게 있다. 가해자는 원래부터 '범죄자'라서가 아니라, 이 극악한 사회가 수행하는 구조적 성폭력을 자신의 육체를 통해 현실화했다는 점 에서, 이 사회의 모순에 저항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자신의 행위에 대한 일차적인 책임을 갖는다. 다시 말하면, 그는 현 사회의 명령을 따르지 않 아서가 아니라, 저항없이 따랐기 때문에 잘못한 것이다. 가해자에게 면죄 부를 부여하는 것은 오히려 그가 갖고 있는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는 권리와 능력을 박탈하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만이 가해자에게 가해지는 부당한 피해를 방지할 수 있으며, 사회적 성폭력 자체에 대한 투쟁, 모든 사람에 내재한 성폭력에 대한 투쟁을 전개할 수 있다.

13. 97년에 나온 [서울대학교 여학생부의 성적 괴롭힘에 대한 정책안]을 보면 성폭력에 관한 관점 자체의 문제점은 차치하고라도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거기에는 성폭력 문제 자체보다, 그것 의 '공정한' 재판 과정과, 처벌의 '객관성', 법적 형식이 훨씬 강조되어 있 다.

14. 자본주의 체제는 끊임없이 상품 아닌 상품들과 욕구 아닌 욕구들을 창 출함으로써만이 지속적으로 재생산될 수 있다.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 성 은 이러한 상품 아닌 상품들, 욕구 아닌 요구들의 대표적인 예이다. 어떠 한 것이 상품으로 현상하기 위해서 이는 필연적으로 고립과 물화, 박탈 과 독점의 과정을 거친다. 그러나 자연스러운 인간관계에의 욕구로서의 성은 애초부터 상품화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상품화된 성은 이 미 성이 아니다. 따라서 성의 상품화는 필연적으로 모순을 내포하며 성 에 대한 끊임없는 왜곡된 이미지를 창출한다. 자본은 끊임없이 성에 관 한 비상한 욕구를 규정하고 강요한다. 현실에서 성은 무엇인지는 잘 모 르겠지만 누구에게나 결핍된 것, 나는 소유하고 있지 못한 어떠한 것으로 드러난다. 대신 상품화된 성만이 '이것이 성이다. 이것을 소비하라'고 주장할 뿐이다. 따라서 우리는 보편적이고 본능적인 성.성욕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할 수 없다. 어떤 행위를 어쩔 수 없는 성욕 때문 이라는 말로 정당화하는 모든 담론은 이러한 이유로 부정되어야 한다. 한편, 상품화될 수 없는 것을 상품화하려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성은 자 본의 약한 고리로 현상할 가능성이 있다.

15. 정신대 문제와 미군부대 기지촌 여성 문제,그리고 여성노동자 문제를 둘러싼 활동들은 이러한 관점에서 재정립될 필요가 있다.

16. 94년 우조교-신교수사건은 이와는 조금 다른 양상을 가졌다. 그 때의 논쟁 지점은 성폭력교수를 어떻게 할 것인가가 아니라, 신교수가 성폭력 교수이냐 아니냐였다. 이 사건은 대중적으로 일상적으로 개인의 구체적 인 행위 하나 하나에 대해서 그것이 성희롱이냐 아니냐라는 치열한 논쟁 을 불러일으켰다는 점에서 구교수 사건과 구분되는 중요성을 가진다.

17. 대다수의 여성운동조직은 상대적으로 높은 여성비율과 남성적 조직에 대한 반발에서 기인한 독특한 구성원리를 갖고 있다. 대표의 권위는 강 하지 않으며, 조직 분화도 뚜렷하지 않다. 구성원들간의 관계에 있어서의 평등성이 강조되며, 조직에 앞서 개인의 삶을 우선적으로 보장한다. 이러 한 여성운동조직의 특성은 기존의 조직에 비해 긍정적인 것으로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써클과 써클주의는 다르다.

18. 그것 자체의 유의미성이 간과될 수는 없다. 자신의 공간을 갖지 못한 여성들에게 이러한 모임은 그 자체로서 커다란 유의미성을 갖는다. 다만 이러한 모임이 성폭력문제를 대중적으로 해결해 나아가는 데 있어서 걸 림돌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19. 여기서는 논의 전개를 위해서 임의로 '저항으로서의 자치운동'과 '구성 으로서의 자치운동'을 구분하고자 한다. 사실 이 둘은 정확히 같은 활동 의 두 가지 측면으로서 드러나야 한다. 이 둘이 본질적으로 구분되는 활 동이 아니라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20. 자치가 '학생'이라는범주에 갇힘으로써 그 급진성이 퇴색되어 버린 현 실에 대해서는 {Critic} 4호의 [학생운동, '학생'에 갇힌 운동]에서 자세 히 서술하였다. 사실상 선거에서 '학생자치'라는 이름 아래 제시되는 공 약들은 그것을 '학생 복지'라는 이름으로 대치하여도 큰 무리가 없을 정 도이다.

21 대학사회의 대의제민주주의는 '민주주의의 본래적 의미로서의 자치'와 는 거리가 멀다. 80년대 당시, 대의제민주주의의 현실화로서의 학생회 건 설 투쟁은 커다란 의미를 갖고 있었음이 틀림없다. 그러나 착각하지 말 아야 할 것은 그러한 의미가 대의제민주주의 자체가 갖고 있는 것이 아 닌, 그것을 의미있게 했던 다음과 같은 맥락 때문이었다라는 것이다. 첫 째, 당시에는 사회가 형식적으로도 대의제민주주의가 정착되어 있지 않 았기 때문에 대학사회는 상대적인 진보성을 가질 수 있었다. 둘째 그것 은 대의제민주주의라는 구성원리를 현실화시키는 운동과정이었기 때문에 의미를 가질 수 있었다. 그러나 87년 운동의 성과로 형식적이나마 정치 영역에서는 대의제민주주의가 현실화되었고, 김영삼의 문민정부를 거쳐 이제는 김대중에 의한 정권교체가 이루어진 상황에서 학원 민주주의의 상대적 진보성은 완전히 박탈되었다. 오히려 갈수록 변질되는 선거의 모 습과 올해 들어 급속도로 퍼져 나가고 있는 본부에 의한 총학생회 불인 정은 대학 내 민주주의가 사회의 그것보다도 못하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 여준다. 또한 학생회의 건설이 완성되고 그것이 더 이상 운동하기를 멈 춘 90년대에 학생회의 대의제민주주의는 이제 그 자체가 변혁되어야 할 대상에 지나지 않는다. 학생회 운위와 단학대회, 전학대회에서의 비효율 적이고 형식적인 논의구조는 대의제민주주의의 허상을 전형적으로 보여 준다. 대의제민주주의가 아닌 민주주의의 본래적 의미로서의 자치, 대안 적 사회의 구성원리로서의 자치를 현실화시키는 항구적인 운동이 절실하 게 필요한 때이다.

22. 많은 성폭력학칙제정운동의 주체들은 이 둘을 혼동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 둘은 하나의 활동에 동시에 녹아 들어갈 수 있는 것이 다. 그러나 많은 부분 이 둘은 충돌할 여지가 있으며 대중들 역시 혼동 하고 있다는 점에서 구분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23. 물론 학생사회 내부의 성폭력에 대해서도 성폭력의 해결에 관한 원칙 들을 정립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을 위해서 법률적인 의미로서의 학칙이 필요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에 관련해서는 뒤 에 자세히 다루도록 하겠다.

24. 여성운동이 항상 다른 운동과 함께 해 왔다는 것은 여성운동의 가능성 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고 마땅히 그래야 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양태는 여성운동과 다른 운동들과의 연대의 수준이 아니라 정확히 여성운동이 포섭되어 소멸한 것이었다. 여성운동이 자신의 전선 을 잃어버리고 단지 동원된 결과만을 낳은 사례는 충분히 많다. 이러한 역사를 또다시 반복해서는 안 된다. 또한 모든 운동을 동시에 전면적으 로 진행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며, 정세적으로 이들을 배치하는 것은 필수 적인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운동의 단절과 배제를 의미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따라서 학생운동이 어떤 뚜렷한 정세적 운동을 벌여 내지도 않 고 있는 상황에서 여성운동을 또다시 지연시키는 것은 부당하다. 사실 현재의 상황에서 성폭력학칙제정운동은 가장 적실한 운동일 수 있다.

25. 법률이 갖는 한계에는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첫째, 법률의 제정은 일 정정도의 타협을 전제로 하며, 한 번 제정이 되면 이후에 문제점이 발견 되어도 수정되기 어렵다. 이는 대중적 논의가 충실히 학칙에 포괄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의미한다. 둘째, 법률은 구체적인 사건에 직면해서는 항상 그 해석상의 차이를 가질 수밖에 없다. 이는 필요 이상으로 복잡한 법적 절차를 요구한다. 이는 사건의 신고율을 급격히 떨어뜨리는 요인이 될 것이다. 셋째, 법률은 기본적으로 신고되는 사건만을 처리한다. 성폭 력 사건의 경우 많은 피해자가 그 사실을 은폐하려고 한다는 점에서 법 률은 성폭력 사건을 해결하는 데 적절하지 못하다. 더군다나 일상생활에 서의 다양한 성폭력에 대한 것들이 일일이 기소되어 처리된다는 것은 기 대하기 어렵다. 넷째, 법률은 권위를 위임받은 특정인, 특정기관만이 사 건의 모든 판단과 해결의 권리를 독점한다. 이는 성폭력에 대한 대중적 논의 대중적 판단을 저해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이는 대중이 자신의 문제를 자신이 해결할 수 있는 권리와 의무, 능력을 갖고 있음을 정당하 게 주장하는 자치운동의 원리와 충돌한다. 다섯째, 법률은 인격에 대한 처벌만을 할 수 있다. 법률은 사회적 범죄와 그것의 담지자로서의 가해 자를 구분하지 못한다. 이는 특히 반성폭력 운동에 있어서는 큰 걸림돌 로 작용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여러 한계들에도 불구하고 반성폭력이 라는 가치를 전면에 내걸고, 성폭력에 관한 여성적 담론을 세력화하며, 성폭력 해결의 중요한 원칙들을 공식적으로 입법화하는 것은 결정적인 가치를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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