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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은이    
    흠흠, 다국적 멜로에서 한국의 '페미' 관음 영화, '넌센스'(굳이 판단하라면 부정적 의미 아님)-포느로 스타 전기물로의 다소 굼뜬 이동을 하고 있는 가운 데, (이런 미미한 흐름을 굳이 강조하는 게으른 글쓴이-나를 책하시오/책하면 관심으로 알고 T_T!) '달딸' 이번 호의 영화는 소위 글램 록 퀴어 영화라고 하는 <벨벳 골드마인>입니다.

1. 호언 장담 : 우리는 이 영화를 즐겼다.

    이런 낯선 수식을 봐도 알 수 있듯, 이 영화는 완결된 실사-네러티브 영 화이기 전에, 한 시대를 풍미했던 스타일, 문화의 집결체이기도 합니다. 물론, 그 스타일이란 것이 특정 지역-혹은 문화 집단에 국한된 것이었으므로, 외부 인인 우리가 영화의 각 쇼트마다 넘치는 정보들에 다소 부담을 느끼거나, 혹 은 압도!당하거나 했다 해도 무리는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영화 잡 지들이 이 영화에 대해 말하기 위해 1970년대 초 영국의 글램 혹은 글리터 록 을 개괄하고, 글램 록 스타 계보를 읊어댔겠지요. 영화에서 노골적으로 짜집기 했다 해도 과언이 아닌 원형들에 대한 열거. 이름도 생소한 데이빗 보위와 '지 기 스타더스트', 이기 팝, 브라이언 페리, 루 리드, 록시 뮤직. . . 그런데, 이렇 게 잡다한 자료들이 과연 이 영화를 '즐기기' 위해 필요한 것인 가요?
    하긴, 이 영화 상영과 함께 영미권에서는 글램 패션이 잠시 유행하고, 글 램 공동체가 활기를 얻었다고 합니다. 위의 계보는 바로 이런 수용자―향유자 에게나 의미 있는 것이겠지요. (그렇다면 이 주소를 찾아가 보셔요. <www.sirius.com> <www.redpets.com>) 하지만 여느 때와 다르지 않게 극 장을 찾았던 것뿐인 우리들은 이 영화가 선사하는 세계―영화에서 그토록 강 조하고 있는 그야말로 '허구'의 세계―를 보고 듣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유쾌합 니다. (아니라? 그럼 당신은 글램 팬, 매니아, 하위 문화 구성원, 록커 중 하나 가 될지 모를 길로 들어선 것입니다. 그것도 아니라고 부인한다면, 잡학 박사 증후군이 있던지. 나처럼) 게다가, 우리 '달딸' 독자(흐흐, 독자를 제한하는 본 색을 드러내고 있군. 소외되고 있는 '천연덕스런' 소년들에 심심한 사의를)들 은 이렇게 너무나 멀리 있는 문화적 배경이 없이도 나름대로 이를 즐길 수 있 는 맥락이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2. 독자 제한 : 소녀들

    뭉뚱그려 단도직입적으로, '소녀적'인 맥락이라고 하죠. 소녀 시절이란 것을 경험해 본 독자라면, 이 영화에서 친밀 한 혹은 아련한(이런 감상도 용서가 되죠) 쾌감을 가질 수 있으리라 감히 말 하겠습니다. 물론, '소녀'란 말은 '여자'란 말처럼 '지당'하다고 인식되므로 문제 를 더 복잡하게 만드는 것이긴 합니다. 이 얘기는 담에 하고, 다음의 문구를 보면 어떠한 반응이 생기는 지 볼까요?
    세심하게 선택된, 예쁜 것들만 모여서 만들어진 '팬시'한 세상, 
    그 안의 아름다운 나 그리고 미지의 멋진 그. ― ??? 사~ ~랑 ? !!
    
    너무 추상적이긴 하죠. 하지만, 금방 형태가 잡히고 채색이 되기 시작한 분들도 있겠고, 아마, 눈살을 찌푸리는 분도 계시겠죠. (설마, 너무나 생소해 서... 타입은 없겠지요?) 우리 소녀 시기는 이 이미지를 맘속에 받아들이는가 혹은 거부하는가하는 선택들에 의한(물론, 한번의 선택이 평생을 좌우하는 것 은 아닙니다. 선택은 수시로 일어나죠.) 다채로운 경험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백마 탄 왕자' 신화 혹은 '공주병'으로 대표되는 온갖 종류의 이야기, 이미지 들이 '여자'들을 둘러싸고 있는 세상에 아무런 대비 없이 태어난 순간 우린 이 런 선택의 장에 던져진 셈이죠.
    <벨벳 골드마인>의 이미지는 바로 이러한 신화를 총천연색 입체 영상으 로 구현하고 있습니다. 또한 그의 네러티브를 이루는 골자는 바로 이러한 이 미지-신화의 화신이 되었던 한 인간의 욕망과 선택에 관한 것이었다고 해도 좋겠습니다. (낯뜨겁게 선언적이지만, 사설을 위해 잠시 지켜봅시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 인간은 소년입니다. 이것을 고려해 보면, 황홀경에 도취되었던 우리들이라도 (우리라는 명칭이 거슬리는 분도 포함하여) <벨벳 골드마인>이 어떤 이들에게는 불편함이나 당혹감을 줄 수 있다는 의견에 수긍하게 되겠지 요.
    불편함이라... 이 영화가 정치적이라고 하시는 분들이 틀리지만은 않습니 다.

3. 게임으로 들어서기 : 다소 어지러운 'VG' 스타일 탐색기

  3-1. ************** 게임이 끝나고.


    (보충: 오프닝―타이틀 시퀀스[오스카 와일드, 잭 페리의 어린 시절을 담고 있죠.] 록스타 브라이언 슬레이드의 암살쇼, 이후 팬과 언론의 분노에 대한 숨가쁜 보고들이 '체스 쇼트'[킹이 먹히는 바로 그 컷] 와 함께 일단 마무리됩니다. 기자 아서 스튜어트의 브라이언 슬레이드 취재 이전 부분들의 진행 속도는 설명이 벅차다 못해 구차할 정도로 빠르고도―명확합니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시선이 꼬마들과 교복 입은 소녀, 젊은 히피를 차례 로 비춥니다. 아이들은 그 하늘의 뭔가를 지긋이 응시하고, 소녀들은 눈을 감 고 음미하죠. 젊은이들은 자기들끼리 웃고 이야기합니다.

    '모든 게 완벽하고도 독소와 같은... 섬세한 향수와 기묘한 꽃들이 가득한 세상이 있었다.'

    이 장면에 덧붙여진 나레이션이 이들의 다양한 반응 속에 존재하는 세계 를 함축적으로 이야기합니다. 히피의 성개방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글램―패 거리의 성적 도발들, 호모섹슈얼의 '유행'(!) 그리고 결국 암살쇼와 함께 끝나 버린 한 록스타와 글램 록에 대한 정신없고 피상적인 언론의 보고들(알고 보 니 뉴욕 헤럴드사의 뉴스릴이죠.)의 과열된 흐름에 끼워진 이 전지적 시점의 나레이션은 이 모든 쇼와 대비되는 관조적인 분위기를 띄며 우리를 환기시키 고 있습니다.
    외계로부터 부여받은 극적 운명, 타인과 구별되는 독특함, 이를 드러내는 미적 취향―스타일에 대한 스타/팝아이돌의 전설이 결국엔, 모두의 마음에 존 재하는 완벽하고도 위험한 세상의 이미지로 수렴되는 것이죠. 아이와 소녀들 은 이에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마치, 그 운명을 타고 난 스타들과 같이. 하지 만, 그것은 마음속에만 있는 것이죠.

   3-2. ***************게임 시작
    세실(브라이언 슬레이드 전 메니저)과 맨디(그의 전 부인)의 인터뷰에서 :
       "he....walking arm in arm with lie."


    그러나, 이 운명이 손짓하기 이전에 이미 그것을 탐하던 한 새침떼기 소 년이 있었습니다. 런던 고모의 뮤직 홀 구석에서 무대의 광채에 흠뻑 빠진 그 의 관심을 다른 곳에 돌릴 만한 것이라곤 아름다운 자신의 모습밖에 없는 소 년. 모토바이크, 히피 문화도 있건만, 그는 이들의 비루함(동물적 본능이라고 하는 뜨끈뜨끈한 저속함, 노출증, 자연에 대한 순진한 의존 등등)을 비웃으며, 다소 절제된, 세련되고 냉정한 취향을 그 자신의 아름다운 외모로 육화한, 패 션의 선두주자 '모드족'(the Mods)이 됩니다.
    실제, 60년대 전성기를 구가한 런던 모드족의 대명사는 주로 상점 점원으 로 일하는 '원룸' 아파트 소녀들이었죠. 소년들은 19세기 말 오스카 와일드란 '스타'에 의해 센세이션을 일으킨 댄디즘(이러면 명확할까요? 초록색 카네이션 이 꽂힌 단추구멍, 무릎 팍에서 홀친 벨벳 반바지: 오스카 와일드 스타일―물 론, 그가 창시자는 아닙니다.)의 전통과 더불어 좀 덜 대중적이고(더 제한적이 고 독특했겠지요) 덜 양성화(더 위험스레 보였을 겁니다)되어 있었다고 합니 다.
    그의 세련된 스타일의 유지를 위한 생활 방침 : 
    소녀의 콤펙트―몇 분의 키스 / 소년의 금줄 시계―한번의 잠자리 
    
    그럼 모드족 브라이언을 '원형적' 글램 스타 잭 페리와 비교해봅시다. 잭 페리는 드랙 퀸 쇼걸(!)과 같은 '언더그라운드' 스타일(전위적이라고 치켜줄까 요?)을 가지고 있습니다. 모드족의 미묘한 보수성, 사회와의 타협 능력(적어도 가죽 자켓과 드래곤 문신 폭주족보다는 덜 위협적인 존재로 분류되었겠지요. 심지어 정도에 따라서는 중산층 패션의 귀감이었으니까)이 어느 정도 남아 있 었던 브라이언에 비해 잭은 호텔 바나, 사교 클럽의 총아이자, '괴물' '외계인' 이었죠.
    얼마 전부터 우리에게 소개되고 있는 동성애를 다룬 영화 속의 드랙 퀸 (속칭 여장을 즐기는 남자)들을 보신 적이 있겠지요? (<프리실라>가 대표적 이죠. <버드케이지>라도 보셨다면 . . ?) 그들을 보면 역설적으로 여성성 혹은 여성적 스타일이 무엇인지 확연히 들어오게 되죠. 그들의 몸에 각인되지 않아 (몰론, 드랙 퀸이 아닌 사람들 눈에 그렇게 보인단 말이죠) 오히려 두드러 지 는 말투, 몸짓, 옷차림 그리고 감정들에 의해서 말입니다. 그들의 주 향유 공 간인 나이트 클럽과 각종 사교장들은 폐쇄적이고 일상과 거리를 둡니다. (그 들의 미학과 일상의 폭력이 빚어낸 결과죠) '언제나 함께 하길!~' 수줍고 섬세 하고도 푹 빠져버리는 사랑의 꿈과 신화에 대한 은근한 열정의 코드 그리고 이를 예술 혹은 연예 행위로 승화시키는 춤과 립싱크 노래, 공연들, 그리고 쾌 락을 향한 잉여적인 삶. 뭐 이런 것들이 나 같은 非드랙 퀸이 보는 그들의 대 한 단상입니다.
    이는 (잠재적) 아내, 어머니가 아닌 여성들에 대한 가부장적 시선에 의해 볼 때, 매춘부와 다를 바가 없는 것이죠. 공적인 영역 안에서 배제되면서도, 엄연히 남성의 쾌락을 위해 존재하는 이런 여성성의 '음지'를 그들의 삶의 거 처로 쓰는 (그리고 능동적으로 향유하기도 하는) 이 사람들에게서 단지 점잖 빼는 당혹감 만을 느꼈다면, 자기 의식 점검을 해보는 것도 좋을 겁니다.     어찌됐든, 모드족 브라이언은 잭 페리를 알게 된 후 거리 생활을 청산하 고 클럽을 주무대로 삼게됩니다. 록스타 신화와 젠더에 제한되지 않는 '글래머 러스'glamorous 스타일을 추종하면서 도수 높은 어휘를 속사포처럼 쏟아내는 수선스런 사교계 총아, 그의 아내 맨디의 힘도 크지요. 이후 그는 드랙 퀸적인 과장 취향보다는 태생적인 '우아함'으로 언더에서 한 몫을 차지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의 모습이서 잭 페리와 같은 위험성이 드러나지는 않지요. 녹 색 하이라이트를 받아 반짝이는 긴 머리를 흩뜨리고 어깨선에 살짝 걸쳐진 프 록을 입고선 앞가슴을 풀어헤쳐 희고 단단한 살결을 과시하면서 미소를 흘리 며 노래하는 모습. 통통한 게이 아저씨들이 '창녀', '예쁜 정부', '호모섹슈얼' 등 등으로 그를 일컬으며 수다를 떨 동안 세실은 그의 스타성을 직감하고 메니저 계악을 하게 됩니다. (근데, 훌쩍 지나가는 비디오 화면에는 브라이언과 그가 침대에서 놀고 있었죠)
   [미래를 믿었고, 히피 세대의 위선을 비판했다. 그의 혁명은 성에 대한 것 이었다.]
    록커로서의 브라이언을 세실은 이렇게 평합니다. 하지만, 그의 성혁명? 벨 벳 드레스와 나풀대는 긴머리, 포크송 같은 맥빠지는 음악. 이래저래 '예쁘장 한' 정부 이미지를 통해? 그랬다면, 이미 몇 백년 전에 혁명은 완수되었을 겁 니다.
    그의 도발은 커트 와일드의 만남을 통해 비로소 시작됩니다.
    부풀린 성기를 드러내고 거침없이 날뛰는 그의 공연. 철저히 관객으로서 브라이언은 황홀경에 들어섭니다.

  
    브라이언 : "그들은 그를 경멸했어." 
    맨디 : "모욕이었지. 너라면―" 
    브라이언 : "하지만, 그게 무슨 의미든 난 받고 싶어" 
    맨디 : "그래, 넌 그걸 사랑하게 될 거야."
    하지만 조심스런 브라이언. 그는 절대 커트처럼 할 수는 없습니다. 커트가 벗었다면 그는 더욱 화려한 가면을 덧씌웁니다. '맥스웰 데몬'이라 명명된 이 가면은 심지어 '지구 밖 출신'(얼마나 강력한 가면입니까? 그의 교묘함에 경배 를!) 임을 강조합니다. 더 큰 경멸과 막나가는 욕망의 도가니를 끌어내기 위해 그는 세실을 배반하고 쇼비지니스계로 들어섭니다.
    짧게 친 금발 머리, 타이트한 자켓과 바지. 중화된 스타일, 전자기타, 밴드 (이름이 '모피를 두른 비너스' Venus in Furs 라니, 근데, 이거 레오폴드 폰 라히-마조흐 소설 제목인데? 이런 긴 이름을 어떻게 아냐면, "마조히즘" 때문 이죠)가벼운 리듬의 노래. 그를 대표하는 것은 금박 롱부츠와 반짝이 아이섀도 입니다.

    '록은 매춘부. 음악은 가면. 내 치장한 메시지를 봐라'

    이 냉랭한 자학의 수사가 오히려 타인에 대한 더 큰 경멸일 지도 모르지 요. 하지만 사람들은 이를 원했고 가면을 쓴 매춘부는 점차로 권력을 갖게 됩 니다. 곧 그 권력을 이용해 그가 동경했던 커트도 옆에다 앉히고. (그와 커트 의 관계는 "브라이언이 커트를 시궁창에서 건진 이야기"로 소녀들 인형 놀이 의 로맨틱한 소재가 됩니다.) 그의 공식 뮤즈(보충: 시의 정령. 시상을 떠오르 게 하는 대상, 연인)가 된 커트는 이렇게 이야기하지요.

    'The world is changed because you are made of ivory and gold. The curves of your lips rewrite history.'
    : 세상은 뀌고 있어 이건 네가 상아와 금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이지. 네 입 술의 곡선이 역사를 다시 쓸 거야.

    브라이언 슬레이드의 상징 금박 부츠와 반짝이 화장은 곧 성적 도발들로 압도됩니다. 공공연한 커트와의 키스, 커트의 기타를 물어뜯는 브라이언의 쇼, 그리고 무대 뒤의 혼음 파티(c.f. 이것을 우리의 극장에서는 볼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을 선정적으로 만들 줄 아는 프로듀서 디바인 씨와 미적 소신(?)으로 점철된 아내 맨디 그리고 빤짝이 쇼패거리들은 이를 최고의 쇼쉽이자, 미적 발언이라고 생각하며 가볍게 즐깁니다. 맨디는 '우린 우리의 꿈속에서 살았다' 고 말하죠.

   3-3. ************ 게임 마무리 : "언제나" 미적한 끝

    하지만, 이것은 쇼일 뿐입니다. 끝나기 마련이고 다음 것을 준비할 밖에.     그런데, 브라이언은 그럴 수 없었나 봅니다. 이 쇼가 끝나지 않기를 바랬 고, 결국 이를 종결지으려는 커트는 크게 다툰 후 그를 떠납니다. 뮤즈 커트, 쇼 안의 광휘를 받은 커트, '관념과 이미지'로서의 커트를 지속시키고자 한 그 의 욕망과 허영은(일반인에게도 흔히 볼 수 있는 증상으로 흔히 달뜬 사랑의 백일몽이라고 하죠.) 실제의 커트에 의해 무참히 부서집니다. 그러나, 이미 쇼 안에서의 생명까지 커트에게 바친(오스카 와일드로부터 전래되어 브라이언이 잭에게서 훔친 브로찌말입니다. 그것을 커트에게 주었죠) 브라이언은 회복할 수 없게 되죠. 현실의 폭력이 가면 속의 그를 짓밟았습니다.
    그러나, 각성이란 이름으로 변모해야 할 운명의 스타는 이를 견디지 못하 고 더 큰 폭력으로 응수합니다.
    '지상 최대의 거짓―쇼'
    맥스웰 데몬을 내세운 암살쇼로 그의 글램 인생은 막을 내립니다. 이에 커트는 이렇게 이야기하죠. '그는 자기가 멕스웰 데몬이라고 생각했고 맥스웰 데몬은 자기가 신이라고 생각했다' 고 말이죠. 브라이언이 애써 짊어진 가면의 무게. 그는 자살로 가면을 벗고자 합니다.
    '그게 무슨 의미든 난 받고 싶어.' 
    그의 욕망도 이 정도라면 만족했겠지요. 
   4. 거리두기
      스타일과 윤리 : 정치학의 점증하는 모순으로부터―

    맨디는 세상의 진화를 가속화할 예술가, 전위적 인물로서의 록스타를 꿈 꿉니다. 커트는 브라이언이 역사를 다시 쓸 것이라고 말합니다. 브라이언 스스 로도 이전의 히피 세대의 과오를 넘어 미래를 위한 성혁명에 대한 얘기를 했 다고 전해지죠. 기존의 젠더 이분법(남성적/여성적인 것의 구별 말이죠)에 대 한 그들의 도전은 한순간 대중의 가슴을 사로잡은 듯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 은 스타일, 유행 놀음으로 나타납니다. 이에 대한 변론이라고, 윤리와 정치학 을 냉랭하고 세련된 유희로써 비웃는 소위 유미주의, 데카당의 것을 가져다 낭독하는 그들이 어떻게 역사다 전위다 하는 것(순전히 그들의 맥락 안에서 달라진 개념으로 썼다면 몰라도 말이죠)을 말할 수 있었을까요? 게다가 맥스 웰 데몬이란 신의 가면을 쓰고서?
    앞의 의문은 소위 스타일이 관념을, 허구가 실재를 앞질러간다고 주장하 는 포스트모더니스트 꼬리표를 단 제 1세계 관념 유희자들의 주장을 배경 삼 아 풀어볼 수 있겠습니다. 이 때는 대중 문화와 소비에 내재한 저항적 함의를 끄집어내는 낙관적 문화 이론도 도움이 되지요. 하지만 브라이언 슬레이드가 역사의 전위라는 것이 오인인 확실한 이유는 바로 그가 대중을 대한 방식에 있습니다. 암살쇼가 스타―팬, 대중 관계의 극단적인 왜곡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였지요. 예쁜 것들의 모음, 자기 몸에의 각인, 과시 이런 것과는 다른 원리 로 존재하는 죽음과 삶이란 명징한 현실을 한순간의 쇼로 만들면서 일말의 예 고도 변명도 없는 그러한 폭력. 이것은 현실에 대한 폭력일 뿐 아니라 예술과 유희, 문화 자체에 대한 폭력이기도 합니다. 유희의 속성을 파괴하고 현실에다 거짓으로 이식해 놓은 것, 극단의 왜곡이 여기에 도사리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당연히 이를 알게 된 순간 맥스웰 데몬을 처벌합니다. 이미 그 자신과 데몬을 구분하지 못하는 브라이언은 이를 최대한의 자학으로 생각하 죠. 그리고 10년 후 그는 더 치명적인 거짓의 가면으로 대중의 삶 속에 자리 잡습니다. 스타와 스타를 만드는 산업자본의 닳아빠진 귀결.

    그러나, 글램록과 그 스타일이 가졌던 긍정적인 가능성은 촛점을 팬―소 비 대중이 보여주는 생활의 방식으로 돌릴 때 나타납니다. 대중 안에 역사 또 한 존재하는 것이니까. 브라이언 슬레이드의 공연에 모여드는 관중들의 모습 은 브라이언 만큼이나 인상적입니다. 정도는 다르지만 그의 아이콘, 패션인 메 이크업과 의상, 장신구로 감싼 그들의 몸은 실제로 남자와 여자의 구분을 흐 리게 합니다. 많은 여성 팬 사이에 끼어든 남자는 스타일에 있어 소녀들과 다 를 바가 없지요. 실제로 팬의 대표격으로 나온 또 하나의 주인공 아서 스튜어 트는 바로 이러한 글램 코드와 이미지에 힘입어 이성애적 편견에 의한 자기 검열, 가족 제도의 굴레에서 벗어나 자신의 정체성을 스스로 선택한 문화 안 에서 향유하고자 독립해 나갑니다. 소녀들, 그리고 '소녀적 취향과 정체성'을 선택하고 싶은 소년들을 위한 문화의 자리가 글램 록의 인기와 더불어 조금씩 마련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혁명의 시작이지요. 우리들이 바라는 혁명 의 시작.
    "글램록은 게이 문화에서 
    여성성이 근사한 것으로 통했던 마지막 순간이다."
    (토드 헤인즈 : 씨네 21, 125호. 김혜리씨와의 인터뷰 중)
    
    미덥지 않다면, 글램록의 전성기와 영화 속의 1980년대를 비교해 봅시다. 각종 공영 기관의 후원 하에 특정 대통령 후보를 지지하는 발언을 하며 공연 마다 공공연히 전세계 "30억" 시청자를 운운하는 한심한 기성 팝가수 토니 스 톤과 암살쇼를 벌이면서 사라진 브라이언 슬레이드 사이에 크나큰 간격은 없 습니다. '거짓으로 점철된' 존재. 대중을 우롱, 현혹하는 거짓된 속성은 같다고 하겠지요.
    하지만 그들과 팬과의 관계 속에서 지어진 문화의 장은 엄청난 차이가 있 습니다. 80년대의 팬들의 팝 문화 향유 양태는 마치 찌든 일상의 연속인 듯 보여집니다. 쥐꼬리만큼의 여가 시간 때우기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이죠. 그러 면서도 스타는 일상은 물론, 기존의 거시적 사회 구조를 지지하는 발언까지 서슴없이 하고 있습니다. 백인, 미국인 우월성 천명, 공화당 정책지지. 이러한 이데올로기 효과는 어차피 어디에나 산재한 것이니까, 스타도 그에 따라가는 것에 불과하죠. 유희에 대한 직무 유기라고나 할까. 스타는 점점 멀어지고, 동 시에 팬들은 발랄함을 잃고 찌들었습니다. (이들이 우리 거리의 아저씨, 아줌 마, 그 후보생들과 무슨 차이가 있습니까?) 스타의 환영은 기회주의적으로 적 당한 선에서 일상에 불려들어지고 무시되고 합니다.
    하지만, 브라이언 슬레이드의 팬들을 봅시다. 90년대 한국의 우리들이 보 기에 정말 골 때리는 패션 스타일리스트들이죠. 거기에 소년과 소녀가 구분됩 니까? (아니 소년이 있었나? 하시는 분들. 반짝이 화장에 통굽 힐을 신은 소 녀들 사이 사이 청일점처럼 엇비슷한 용모의 소년들이 배치되었지요. 마치 모 토바이크족 청춘물에 나오는 모든 행동을 과장하는 홍일점 가죽 쟈켓 빽바지 톰보이 소녀와 같이. 하지만 여기에 성희롱은 없습니다. 소녀들은 지극히 자연 스레 소년들을 받아들이죠. 배제하지 않고 노는 법에 있어서는 소녀들이 더 도통한 모양이죠.) 그리고 방송 인터뷰에서 길거리 젊은이들은 양성애적 취향 에 대해 공공연히 떠들어댑니다. 심지어 커트는 진짜 게이 나와봐. 뭐 유행이 랍시고. 거짓 게이가 판을 친다는 불평을 털어놓습니다.
    "지금은 거리에서 싸우고 있지만, 1972년 그때는 춤 같은 것이었지요." 
    (맨디의 동성애에 관한 논평) 
   
    참을 수 없는 가벼움. 이것이 글램 록의 유토피아. 진저리나게 처지는 일 상에 대한 무기였습니다. 그것이 거짓이고, 쇼라지만 젊은이들은 길거리에서 자신을 확실히 증명하고(그들을 비난하는 아저씨, 아줌마들의 불안을 보셔요) 쇼는 점차 즐거움이 도수가 올라가면서 다른 서사/신화를 만들어 갔습니다.(소 녀들의 바비인형 놀이가 그 예죠. 현대판 로미오와 줄리엣/브라이언과 커트) 글램록의 허무주의와 유미주의에 그 자체로 정치학과 윤리를 비웃는 속성이 존재했고, 브라이언이 그것을 완전히 파괴할만한 '가공할' 가벼움을 대중 매체, 산업을 통해 끌어 모은 결과로 볼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스타일의 가벼움. 매체―산업의 제도 옹호적 원리. 이에 대한 저항적 속성 사이에 그어지는 복잡한 관계망의 단단히 꼬인 매듭에 묶인 (자기가 줄을 엮기 시작했으니, 자기를 정점으로 모일 수 밖에) 브라이언은 그 야말로 벗어날 길을 잃습니다. 90년대 얼터너티브 록커 커트 코베인의 사례 (신화?)에서도 되풀이되고 있는 문제이긴 하죠. (하긴 이론가들도 글로는 허세 를 부려보지만 현실적으로 이런 꼬임을 풀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조심스런 입 장이죠.)
    브라이언과 글램 록은 실패였다고 칩시다. 그럼, 이에 대한 브라이언과 글 램 록을 바라보는 <벨벳 골드마인>의 해결책은 어떤 것이었을 까요? 역시 스 타일 탐색기답게 섣부른 판단이나 선언에 대한 집착은 없습니다. 좀 더 설명 해 볼까요?
    영화는 처음부터 역사와 진실에 대한 거리 두기를 해두고 허구 파티를 시 작하고 있었습니다. 그 당시의 현실, 과거 유물, 진실, 시간의 굴레를 벗어 던 지고 허구가 임의로 조합해 놓은 순간들의 거리낌없는 탐색.
    관객에게도 "거리낌없기"를 기대하며, 준비시키죠.
    "당신이 보게 될 것이 허구라 해도, 최고의 볼륨으로 즐겨야 합니다." 
    "Although what you are about to see is fiction, 
    is should nevertheless be played at maximum volume."
    
    또한 영화는 네러티브에 있어서도 일정한 관점, 일정한 시간의 결을 따라 (그런데, 영화에 있어서 일정한 시점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문학보다 복잡한 차원으로 시점 다중화가 불가피하지요. ― 또 나중에 . . 란 말을 남기는 게으 른 글쓴이) 진행되는 순차적 이야기 구조보다는 인터뷰를 중심으로 한 이질적 인 시점과 시간의 조합을 취하고, 심지어 음악 특유의 연결 원리로 기존의 영 화적 구성을 변형시키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Baby's on Fire'노래와 함께 나오는 뮤직 비디오 클립(!)은 음악의 동기 변화에 따라 브라이언과 커트의 공 연기/아서의 각성기(자위 행위와 가출)/무대 뒤 혼음 파티/가 시간의 순차성에 구애받지 않고 진행, 반복됩니다. (악! 너무 복잡해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 하 시는 분은 비디오가 나오면 유심히 보셔요. 이 영화에는 얼핏 봐도 온전한 뮤 직 비디오 클립이 서너 개는 발견되니까. 녹화해 보셔도 좋을 듯합니다.
    ['The Ballad of Maxwell Demon'(브라이언과 비쥬 뮤직 디바인씨와의 만 남에서) 'Ladytron'(맨디와의 만남) 'Satellite Of Love'(브라이언과 커트의 연 애) 'Tumbling Down'(외계로 떠나는 글램록) 등등. 조성모(-.-)의 영화 같은 뮤직 비디오보다 휠씬 음악에 충실한 뮤직 비디오 모음이죠 게 중 'Baby's on Fire' 무삭제 판이 제가 볼 때는 최고입니다.])
    이러한 장치를 통해, 90년대 영화는 70년대 초와 80년대 중반이란 시간을 뚝 띄어다 맘대로 '자유롭게' 짜깁기 놀이를 해 보죠. <벨벳 골드마인>은 브 라이언의 글램 가면 게임의 영화판이라고 할까. 영화에 몇 가지 종류의 가면 과 게임 옵션이 있는지 점검해 보는 것도 시간 떼우기로 환상적일 겁니다. (추천) 그리고 동시에 이 놀이가 더 큰 사고 유희를 가능케 하고 있음을 보시 는 분들은 아실 겁니다. (바쁘고 귀찮다고요? 그럼 휘황 찬란한 허구들의 집 성체를 그저 입 딱 벌리고 구경하는 재미만으로도 흡족하겠죠)

    우린 브라이언의 게임의 종결을 보았습니다. 비참하죠. 순간 비관적이 됩 니다. 칙칙한 전경, 박정희식(조잡한 공립 학교의 건물에 신물이 난 나는 이렇 게 부른답니다) 기능주의 건축물의 시각 폭력과 다를 바 없는 그림을 제공하 는 1984년 뉴욕시와 꼴불견 토니 스톤 그리고 약간 서글픈 비굴함과 무기력함 을 지닌 순진한 그의 팬들. 커트는 이에 대해 이야기하죠.
    Curt : "We set out to change the world... 
            ended up just changing ourselves."
    Arthur : "What's wrong with that?"
    Curt : "Nothing!" ― "If you don't look at the world." (번역 생략 ^.^)
    
    그럼. 다시 돌아가. 영화의 게임은 어떻게 끝이 날까요? 그저, 커트와 아 서의 관계를 통해 스타와 팬 사이의 이상을 꿈꾸는 것으로 만족하죠. 스타에 대한 동경은 사랑을 통한 자기 인식으로 바뀌어 갑니다. 브라이언의 쇼와 환 상에서 빠져 나온 커트는 아서에게 이야기하죠. 인생은 이미지고. 자유라고. 자신을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쇼맨인 브라이언은 이러한 인정을 위한 최소 한의 거리 마저 잃어렸지만, 이러한 거리 두기와 선택의 자유. 진정한 이상향 이 팬의 위치에서 형성됩니다. 그래서 와일드의 브로치는 팬에게로 들어오게 되지요.
    소비에서 해방을 모색하는 90년대 문화 이론의 지향점에 대한 영화적 표 현이라고 해도 좋겠지요.

    극장에서 빠져나온 여러분. 1999년 한국의, 달딸에 들어가보고, 이렇게 길 고 장황한 영화평을 끝까지 훝어보고 하는 젊은이(단순히, 몸의 나이를 이야 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평가에는 꽤 까다로운 조건이 있지요. 뭔지는 스 스로가 잘 알 것입니다.)들로서 우리는 사회, 문화와 어떤 관계망을 엮어가며 거기에서 얼마간의 거리, 여유를 가지고 있습니까? 나는 우리에게 비록 록스 타의 운명과 광휘를를 넘길 용기가 있는 반성적인 스타는 없다 해도, 이 못지 않은 꿈을 갖고, 타인의 상처 입은 시선을 관용으로 넘겨주고 스스로를 길거 리에서 가정에서 게의치 않고 드러낼 수 있는 욕망과 잠재성이 있을 거라고 꿈을 꿔 봅니다.
    꿈이 모이면ㅡ현실이 되지요. 
    그리고 현실은 '달딸'의 공간에도 잠재합니다.

    같이 춤이나 출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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