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딸의 선택 ―취약한 위치에서 벗어나기     
  • 묘루

    연상 2

    지식인 Vs. 여자

    그녀는 '산다는 것'에 붙는 조건들에 대해 초연하고 싶으며 그녀가 원하는 단 하나에 집중하고 그것을영원토록 향유할 수 있는 삶을 원한다. 그녀가 책을 통해 알기로는 이미 많은 지성들이 그렇게 살아 왔다.'나는 무엇이고, 세계는 무엇인가?' 유년을 지나면서 갖게 된 이 한가지 화두를 풀기에도 인생은 모자란다.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그저 벌고 먹고 자면서 시간을 보내는 지 모를 일이지만 한편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이미 이 문제에 대한 무수한 저작을 남겼으며 그런 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하루는 빠듯하다.

    그러나 여자란 명칭을 부여받은 순간 그녀는 시대에 따라 그 모양새는 변했어도 여전히 사철 발벗고 허리굽힌 아내들의 자세를 갖도록 종용받고 있다는 느낌을 갖는다. 다양한 가전 제품으로 가득한 도시의 작고균일화된 아파트에서조차 하루의 먼지와 먼지 묻은 옷가지 등등은 대게 그녀들이 관리해야 할 몫이다.
    게다가 언제 탈이 날지 모를 아기라도 있음 그리 호락호락할 리 없다. 여성들은 편이를 극대화하는 단단하고다소 거칠기도 한 문명의 틈새를 특유의 타인에 대한 부드럽고 섬세한 배려들로 채우도록 기대된다. 그러나그 틈새는 결코 완전히 채워지지는 않는다. 결국 그녀들은 '언제나' 그 자리에 대기하고 있어야 한다. 고로밀도를 높인 시간의 흔적들, 그것이 사회 속에서 매듭지어지는 가치들, 이를테면 교양 수준을 뛰어 넘는기념비적인 공적, 공연, 출판 등등은 그녀의 자리에서 어림도 없다.

    실제로 휴일, 방에서 뒹굴며 보내는 가족들 틈에서도 어머니의 노동은 끊이지 않는다. 그리고 힘든 어머니의보조는 어차피 그녀처럼 살게 될 딸내미들 몫이다. 딸은 가족 안에서 어머니의 1순위 예비역이다. '너도언젠가는...' 이란 단서를 때때로 상기시키는 가족들. 그 속에서 그녀는 어느 순간 눈을 떠야 한다는 것을인정한다. 언젠가는 어머니처럼 살게 될 지도 모를 일이고,모두들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아무도 원치 않는 일들이 모여 어머니에게 떨어진다. 어머니는 알아채지 못하게 그 일들을 해내신다. 게다가누구도 알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냥 고마운 맘을 가지면 된다. 때 되면 보양해 드리면 되는 것이다. 하긴그건 오빠 몫이지. 이렇다 보니 그녀는 불합리를 감당할 힘도 맞설 의욕도 없다. 그냥 아빠와 오빠에편승하여 생활하면 내 겉잡을 수 없는 욕망을 실현시킬 확실한 단 한 가지!에만 집중할 수 있는 여유가주어지는 것이다.

    이러한 편승이 가능한 것은 어머니가 되는 것 이외의 선택 여지를 가져 본 적 없었던, 그래서 다른 욕망들을포기해야 했던 한 맺힌 기억을 지닌 어머니 덕분이었다. 다른 것은 몰라도 학교 공부라고 하면 딸자식에게도이런 책임을 면제해 주기 때문이다.

    학교는 어머니들에게도 참여가 허락되었던 몇 안 되는 사회 집단의 하나였다. 학창 시절 당시 정숙함,부지런함, 어느 정도의 생활비는 벌 수 있는 능력 등등을 의미하는 여교사-교수의 이미지는 어머니들에게있어 선망의 대상이었고, 고등 교육에서 배제되어 온 여자들에게 있어서 학력은 그 가정의 현대화, 부유함의정도, 사회 속의 자기 수준을 가늠해 볼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척도였다. 어머니들이 그녀의 딸들이 다른직업을 갖기보다도 학교에 남는 것에 대해 유난히 관대한 것은 이런 배경이 있다고 그녀는 추정해 본다.

    하여튼 어머니 덕에 그녀는 학창 시절 아버지처럼 오빠처럼 게으르면서도 짐짓 깔끔 떨며 편안하게 살아갈수 있었다. 또한 소위 전 국민 평준화 교육 체제에 적응하는 데는 도가 텄다. 극도로 단순화된 방법론이있고 성과에 따라 즉각적이고 가시적인 보상을 해 주는 그런 일에는 남다른 소질을 보인 것이다. 좋은학교에 들어간 것. 시험과 같은 경쟁에서 절대지지 않는 것. 면제 사유로 충분하다.

    면제받은 자의 평안함 속에서 그녀는 꿈을 꾼다. 그 꿈은 다음과 같은 진술과 함께 원동력을 얻는다. 이진술들 사이의 모순에 대해 그녀의 맹목적인 욕망은 생각의 여지를 주지 않는다.

    1. 어머니란 천성을 만들고 유지시켜 주는 이 체제는 존속시켜야 할 행복의 근본이다.
    2. 이러한 행복의 발판을 소유한 그녀의 목표는 일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3. 나의 경우 일하는 사람이 아닌 어머니가 되는 것은 일종의 낙오다.


    그녀에게 어머니가 되기를 거부하는 것은 꿈을 언제나 인식하고 자기를 각성시키는 매우 확실하고 구체적인방법이 되었다.

        

    [ 링크 모음  |  목 차  |  게시판   |  웹마스터  |  과월호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