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활의 지혜 -내가 만드는 살림 사전     
  • 이난다

    9. 보일러

    추운 겨울 아침, 일어나기 싫을 때, 그때 듣는 보일러 소리가 얼마나 좋았는지. 내가 자는 동안 밤새도록 자기 혼자 돌아갔던 보일러.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방바닥을 울리는, 그 저음을 듣고 있으면, 거대한 지구가 돌아가는 소리를 듣는 것 같다, 나 같은 게으름뱅이에게도 아침을 주려고.

    10. 쓰레기

    쓰레기는 모여도 걱정, 안 모여도 걱정이다. 쓰레기를 줄이려고 노력하면서도, 오래된 쓰레기를 집에 쌓아두고 있으면 영 찜찜하다. 오늘 과일들을 한 짐 사서 지고 올 때, 그것을 먹는 기쁨에 곧바로 이어, 이걸 다 먹고 나면 음식물 쓰레기 한 봉투 채워 버리겠지, 라는 생각에 기분이 좋았다.

    그렇지만 왜 나는 쓰레기와 함께 살기를 힘들어 할까. 결국은 내가 그걸 다 만들고 있으면서. 그것들도 한 때는 쓰레기가 아니었는데. (1101)

    11. 일기

    나는 오늘 빨래를 하고, 청소를 하고, 설거지를 했다고, 음식을 만들어 먹고, 가스레인지 옆의 기름때를 벗겨내고, 변기 청소를 했다고, 어렵게 어렵게 쓰레기를 모아 버리고, 지난 계절의 옷들을 접어넣고, 이불을 걷어 햇볕에 널었다고, 나날의 내 일기는 기록하고 있다. 나는, 날마다 계속되는 이 자질구레한 일들을, 무슨 새롭고 중요한 모험이라도 되는 듯이, 하나도 빼놓지 않고 기록하고 싶어한다. 왜냐하면 바로 이 하찮아 보이는 일들이야말로 내 생활을 떠받치고 있는 헤르메스의 기둥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이것들은 나 자신과 내 주변에 대한 의무이다. 내가 몸이 아프고 피곤하고 우울하다는 이유로 이 일들을 게을리하기 시작하면, 내 주변의 것들이 모두 병들고 결국 나에게로 돌아와 무거운 짐이 되어버린다는 것을 나는 배웠다(내가 무릎이 아파서 청소를 못하는 동안 참혹한 전장이 되어버렸던 집안을 보는 심정이란!). 억지로라도 몸을 일으켜 주변의 것들을 돌보는 동안 나는 자주 마음의 평안을 얻었다. 내가 살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이것들이 나를 '살리고' 있다고 생각되는 때가 많았다.

    나날의 자질구레한 살림살이는 내가 살아가는 동안은 끝도 없이 계속될 것이고, 거기에는 도달할 수 있는 완벽성이 없다. 목적성이 있지만 그것은 명확하지 않고 기능을 하고 있지만 정의될 수는 없다. 그래서 나는 이것들을 적고 싶어한다. 이것들을 의미있게 하기 위해, 그냥 흘러가서 사라지지 않게 하기 위해, 그것들을 '살리기' 위해. (1109)

    12. 전화

    일부러 그러는 것이 아니냐고 사람들이 묻곤 한다. 일주일에 한번 가는 부모님 집에, 자주 전화기를 두고 온다. 내가 사는 곳에는 따로 전화가 없기 때문에 처음에는 기분이 이상했다. 문이 꼭 닫힌 조그만 상자같은 집에 누구에게 연락할 방도도 없이 갇혀 있구나, 라는 기분.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더라도 아무도 모를 것이다.

    그렇지만 전화기 없이 지내는 몇 주일 동안 나는 '정말로 조용'한 게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우리가 전화기를 갖고 있을 때, 전화를 의식하진 않더라도, 언제라도 전화가 올 수 있다는 것을 우리의 무의식이 알고 있다는 것은, '정말로 마음을 조용'하게 해줄 수 없다. 없으면 생활이 단순해진다. '정말로 중요'한 연락은 사실 그리 많지 않고, 그것이 '정말로 중요'하다면 어떻게든 오게 된다.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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