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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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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다림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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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쁠 때 꼭 다림질을 해야 하는 옷이 입고 싶고, 그래서 다림질을 해 입으면, 꼭
그날 비가 온다. 그래서 나는 다림질이 필요한 옷을 입고 싶어하지 않기로
결심했었다. 그런데 친구가 오늘 좋은 것을 알려주었다. 쌀쌀한 날 집에 돌아와서,
아, 방이 춥구나, 라고 생각할 때, 그럴 때 다림질을 하면 아주 따뜻해진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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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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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개월 동안 라면을 세 번인가 끓여먹었다. 집을 나오면서 각오가 제법
비장했던 거다. 엄마, 아빠 없이도 '제대로' 살겠다고. 그런데 왜 라면을 끓여먹기
시작하면 끝장이라고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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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비상식량은, 라면이 아니라, '소면'이다. 밥을 해먹기 싫을 때, 소면은 아주
유용하다. 보통은 멸치와 다시다로 국물을 내어 잔치 국수를 만들어 먹지만, 이도
저도 귀찮으면 김치찌게든지 된장국이든지 호박국이든지 뭐든 남아 있는 것을 한참
끓인 다음 소면을 넣어 먹으면 된다. 별미이다. 국 같은 게 안 남아 있으면 야채나
고기 같은 걸 쓸어모아 카레 가루나 김치, 고추장 등으로 양념을 하고, 잠깐
끓여낸 소면을 같이 볶아 먹어도 맛있다. 이건 그냥 내 취향인데, 나는 소면을
끓인 다음 찬물에 씻는 것보다 그냥 먹는 게 더 좋다. 질감과 온도의
문제이겠지만, 왜 그런지는 정확히 모르겠다. 단순히 덜 귀찮기 때문에 그것이 더
맛있다고 믿어 버리는 것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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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으로 '자취생의 벗'이라고 생각하는 음식은, 참치캔이다. 맛있고, 조리가
간편하니까. 나는 참치 통조림을 발명한 사람을 전구를 발명한 사람 다음으로
존경한다. 나는 모든 자취생이 이런 의견을 가졌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얼마 전
친구에게 물었더니, '자취생의 벗'이라면 뭐니뭐니해도 '미역'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보관이 용이하고, 맛있고, 영양가가 풍부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조리법도
다양해서, 간단하게 물에 불려서 초고추장에 찍어먹을 수도 있고, 국을 끓여먹을
수도 있고, 초무침을 할 수도 있고, 하여튼 많은 것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도 당장 '미역'을 구해놓았다. 과연, 여러가지를 간편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은 좋았지만, 왠지 자꾸 먹게 되지는 않았다. 왜 그런가 생각해봤더니, 미역은
주로 냉동실에 보관하기 때문인 거 같다. 일단 냉동실에 들어간 음식은 그것이
무엇이건 자꾸만 잊어먹고 꺼내지 않게 된다.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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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무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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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집에서 일한다. 작업 공간과 주거 공간이 분리되지 않는 것은, 아침에
지하철을 타지 않아도 되니까 좋긴 하지만, 여러가지 다른 불편함이 많다.
무엇보다 기분 전환을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작업 시간과 휴식 시간, 재충전
시간이 잘 분리가 안 되어, 낮에 하던 생각을 밤까지 도저히 멈출 수가 없어 잠을
못 잔다. 비슷비슷한 나날이 이어지다 보면 오늘이 어제인지 내일인지 잘 구별도
안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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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나는 생활의 리듬을 주기 위해 조깅을 시작했다. 남들이 퇴근을 하는
시간에 조깅을 하여 나도 퇴근 비슷한 것을 하자는 것이었다. 나처럼 생각하는
아줌마들이 참 많은 모양으로, 내가 뛰는 학교 운동장에는 저녁 설거지를 마치고
퇴근한 아줌마들로 북적북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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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참 좋은 생각인 것 같았다. 잠도 잘 오고, 밥도 잘 먹고, 무엇보다 뛰는 게
신이 났다. 그러나 나는, 생각을 멈출 수 없었던 것처럼 뛰는 것도 잘 멈출 수가
없었고, 그래서 뛰기 시작한지 한달도 채 안 되어(신기록을 세운지 며칠 안 되어),
무릎이 맛이 갔다. 무릎은 거의 한달동안 낫지 않고 있는데(뛴 날보다 더 아플
셈인가 보다), 이것 때문에 여러가지 곤란을 겪게 되었다. 저녁 퇴근을 못 하는
것이나, 횡단 보도 빨간불이 깜빡거려도 뛸 수 없는 것이나, 지하철 계단을
몇번씩이나 쉬면서 올라다녀야 하는 등의 바깥 일들도 그렇지만, 집에 있어도
난감하기는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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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릎이 아프기 전까지는 무릎이라는 게 있는 줄도 몰랐는데(어디 부딪힐 때
빼고는), 주부에게는 무릎이란 아주 필수적인 신체기관이었던 것이다. 무릎이
없다면, 어떤 자세로 걸레질을 할 것이며, 손빨래를 할 때 어떻게 쭈그려 앉을
것이며, 설겆이를 할 때 무엇으로 씽크대 앞에 몸을 지탱할 것인가? 쓰레기를
버리거나 널려 있는 물건들을 치우거나 이불을 정리하거나 기억도 안 나는
자질구레한 일들을 하기 위해 주부는 하루에도 수십번씩 무릎으로 지탱하여 온몸을
일으킨다.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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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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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살림을 시작한 이후로, 일찌기 헬렌 켈러가 그러했던 것처럼, 놀라움 속에
'물'을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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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물로 시작해서 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나는 물로 쌀을 씻어 물을 부어
밥을 하고 물로 국을 끓이고 물로 그릇을 씻고 물로 세수를 하고 물로 변을 내리고
물로 청소를 하고 물로 걸레를 빨고...물로...물로...물로... 물은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모든 것을 돌아가고 흘러가게 하고 있었다. 내 작은 한 몸을
건사하기 위해 쓰는 엄청난 물의 양을 생각하면 기분이 이상했다. 나는 물이 거의
성스럽게 여겨지기까지 해서, 물을 먹고 난 뒤 컵을 물로 씻는 것 까지
죄스러웠다. 내가 물을 먹은 하찮은 행위가 컵을 씻는 만큼의 순결한 물을
요구한다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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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내가 이사온 첫달에 수도세가 12만원이 나왔다! 변기가 새는 것 같았다.
임시방편으로 변기를 고치자 수도세는 7만원이 나왔다. 새는 곳을 막은 것이 5만원
어치였다. 샤워기를 손보고, 변기를 바꾸고, 수도 새는 곳을 발견하여 주인집과 긴
실랑이를 벌여 공사를 마치기까지의 4달 동안, 나는 물을 아끼는 것의 전문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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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물을 한번 쓰고 버리는 경우가 없도록 주의했다. 세수를 한 물로, 발을 씻고,
발을 씻은 물로 걸레를 빤다. 세탁기에서 나온 물로 화장실 청소를 하고, 여기저기
허드렛물을 모아 변기를 채운다(이건 변기가 고장난 기간 동안만 그랬다)... 만약
예전의 내가, 남의 집에 가서 내가 한 것처럼 물을 아끼는 걸 봤다면, 무서운
사람이다, 저런 사람이랑 친하게 지내면 안 되겠다,고 경계했을 정도이다. 돈이
문제가 아니라 물이 문제였다. 올 봄의 긴 가뭄 통에 우리 집에서 흘러나갔을,
우리 집보다 더 클 물의 양을 생각하면(고치기 직전 나왔던 수도세는
33만원이었다, 33만원 어치가 얼마나 될지 상상할 수 있겠는가!), 잠이 안 왔다.
내 베개 밑으로 물이 흘러가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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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달 수도세 고지서를 기다리는 동안 성적표라도 기다리는 것처럼
조마조마했다. 만약 또 어디선가 물이 새고 있다면, 당장 방을 뺄 것이라고
생각했다 마침내 6350원이라는 고지서를 받았을 때, 나는 그걸 크게 확대해서 벽에
걸어놓고 싶었다. 기뻐서 엄마와 친구들에게 전화를 하기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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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나는 아직도 물이 금같다. 내가 물을 아끼는 것은, 미학적이고 종교적이고
이념적이기도 한 행위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물은 아름답고 신비롭고 물을
낭비하는 것은 죄의식을 불러 일으키고 나는 환경친화적인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 그건 좀 너무 나가는 것 같고, 그냥 그건 삶에 대한 태도, 혹은 그에 대한
주의력과 관계 있는 거 같다. 물을 함부로 쓰는 사람을 보면, 우리들의 삶을
지탱하고 있는 하찮은 것들, 안 보이는 것들, 흘러가는 것들에 대해 그 사람이
얼마나 둔감한가를 생각하게 된다.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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