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은이

기획 의도

'번역문' 첫 기획으로 1호부터 3호에 걸쳐 소개될 3편의 글들은 컴퓨터 네트워크의 일상화, 사이버 스페이스의 출현에 의해 변모되는 페미니스트 쟁점의 최근 경향을 짚어 볼 수 있는 것이다. 이 글들은 서로 다른 페미니즘 사조를 대표하고 있다는 의미에서도 흥미롭다.

우선 이번 호에 실릴 '컴퓨터 네트워크 상의 젠더 논쟁은 1993년, 캐나다 국제 자유 네트워크 회의에서 발표된 논문으로 컴퓨터 통신과 관련한 초창기의 쟁점들을 짚어 보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이 글에서는 새로이 조성되는 조직, 시스템 안에서의 여성 참여 문제와 의사소통과 재현에 있어서의 성희롱과 포르노그라피 범람 등의 성문제를 중심으로 컴퓨터 통신 환경이 차차 사회 생활의 중요한 조건으로 떠오르면서 생기는 문제점들을 간략하게 소개하고 있다.

이 글이 기존 자유주의적 페미니스트들의 성평등 운동 골격을 그대로 차용하여 논하고 있다면 2호에 실릴 '사이버 페미니즘들'은 이 새로운 환경이 가까운 미래에 현실 공간의 논리를 대체할 전복적인 힘을 지니고 있다는 신념을 전제로, 사이버스페이스와 이 환경 안의 작인인 사이보그가 이루어내는 가상 현실의 비젼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현재의 페미니즘 논의를 근본부터 다시 위치지으려는 시도들에 대해 논하고 있다. 이 글에서 언급, 인용되는 도나 헤러웨이, 앤 발사모, 도린 매시 등은 바로 이 부분의 선구자적 학자들로, 이들 주장의 핵심을 파악하는데 다소나마 도움이 될 것이다. 사이버 페미니즘은 근대 주체의 통합성, 단일성, 그리고 타자의 존재를 필연적으로 동반하는 이원론적 논리를 거부하는 포스트 모더니즘과도 긴밀한 관계가 있을 뿐 아니라 포스트 모더니즘과 페미니즘 담론을 접목 시키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반면에, 3호에서 소개될 '과학, 젠더, 그리고 여성 해방 : 포스트 모더니즘에 대한 반론'에서는 이와 같은 접목 시도를 강력하게 비판한다. 엄연히 존재하는 현실 사회 구조 안에서 성차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이에 대한 실질적인 관심과 개입이 더더욱 필요하며 이에 과학과 젠더 개념은 폐기되어서는 안된다고 역설하고 있다.

'사이버 페미니즘'은 웹진 '페미니스타' 최근호에서, 그리고 '과학, 젠더, 그리고 여성 해방'은 여성학 국제 포럼(Women's Studies International Forum) 98년 제 2호에 실려있는 글들로 그의 주장과 형식이 그것이 속한 매체의 특성을 잘 드러내주고 있다라는 사실이 또한 주목해 볼 만한 점이다. 그러나, 이 두 주장을 보수, 진보의 틀로 분류할 수는 없으며 급변하는 환경에 대응키 위한 대표적인 양 대 흐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여성학에 관한 상당한 연륜과 권위를 갖고 있는 '여성학 국제 포럼'의 학문적 엄밀성과 현실구조와의 밀접한 연관성 그리고 웹진의 상대적으로 유연한 형식과 자유분방하고 전복적인 사고가 대비되고 있다.

각기 다른 입장을 지닌 글들을 함께 소개하는 이유는, 컴퓨터 네트워크에 의한 가상 공간이든 현실 사회 구조이든 여성과 성, 젠더에 관련한 모든 사안과 쟁점에 대해 열린 논의의 장을 마련한다는 우리 모임의 취지를 드러내기 위함이다. 물론, 그 해방의 상은 각기 다르겠지만, 컴퓨터 네트워크 환경은 여성 해방을 위한 좋은 기회임이 틀림없다. 여성 해방 운동은 이미 정치, 경제 전선을 넘어 인간의 모든 현실적 조건에 걸쳐 전개되고 있다. 사회 구조가 하나의 원리, 틀로 이해되고, 유지될 수 없듯이, 사회 구조 전체를 아우르는 여성 해방 논의 또한 어느 한편으로 환원될 수 없음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번역글로 가기 : 네트워크 상에서의 젠더 문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