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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일차원적 정체성들 Unidimensional Identities
어떤 개인이나 집단이 하나의 특정한 정체성으로 다중적 정체성들을
종속시키기 시작할 때, 특히, 그 정체성이 자기 표현이나 문화적인 내적
결합에 쓰이는 것이라기보다는 정치적으로 획득되거나 다른 집단에 대한
반대 위치에서 본래적 민족성으로서 주장될 경우, 내전이나 사회를 분열시
키는 집단 내 대립이 확실한 처방이 된다. 이 점에 있어 이와 같은 운동을
이끄는 자들이 종종 그들 공동체의 문화의 중심에 있지 않다는 것은 시사
하는 바가 있다. 더욱이 진나와 아드바니(Jinnah and Advani ; 역주 - 파
키스탄 건국 지도자들)와 같이 서구화된, 문화적으로 뿌리를 잃어버린 소
외된 사람들이 이처럼 다른 집단을 중상하면서 자기 정체성을 강요하는
제로섬게임에서 리더 역할을 하는 경향이 훨씬 많다.
초-영국화된(super-Anglicised) 진나의 경우 파키스탄 건국 이후에도
좀더 오래 살았었다면 런던으로 이민을 갔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파키스탄
은 이슬람교도들을 위한 진정한 낙원을 제공하기보다는 하나가 된 "힌두
지도자들"보다 한 수 위에 있고자 하는 그의 집착에 의해 건국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순수)파키스탄인을 위한 영토의 건국이라는 명분 하에 힘
을 실어 주었던 그 군부 독재자들과 종교적 근본주의자들의 체제에서 생
존할 수 없었을 것이 분명하다. 이런 과정에서 그는 "힌두 지배"로부터 보
호받기 위해 주장해 왔던 그 정체성을 지닌 수 백만 이슬람교도들의 신변
의 안전과 복지를 위험에 빠뜨린 것이다.
오늘날, 전체 인구의 12 퍼센트를 차지하는 인도의 이슬람교도들은 분
리 전 인도에서 인구의 25 퍼센트 가량을 차지하는 이슬람 공동체가 엄청
난 협상력을 지녔었던 것과는 반대로 위험에 노출되어 있으며 인도의 소
수자로 오인되고 있다. 분리 배후에는 이슬람교도들이 힌두교도가 다수를
차지하는 인도에서 살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있었다. 그러나, 진나에
의해 고안된 분리에도 수백만의 이슬람교도들이 파키스탄이 된 영토의 힌
두인들에 대한 인종 청소가 거의 마무리된 후에조차 파키스탄에 흡수되기
보다는 인도지역에서 생활하고 있다. 간디와 같은 지도자들이 진나가 주장
하는 것과 같은 정체성과 세계관을 받아들였었다면 더 많은 이슬람교도들
이 같은 방식으로 힌두인들의 보복 대상으로써 뿌리를 박탈당하고 살해되
었을 것이다.
파키스탄의 요구에 대한 가장 열렬한 지지자인 인도 내 우르두어를
하는(Urdu-speaking) 이슬람교도들이 실질적으로 파키스탄 내의 다른 민
족 공동체에 대해서와 마찬가지로 그들이 만든 이 국가와 교전하고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들은 여전히 모하지르Mohajirs출신 이민자들로 불
리는 데 이는 그들이 여전히 파키스탄 안에서 소외자로 취급을 당하고 있
으며 적의와 혐오를 불러일으킨다는 것을 시사한다. 1940년에 분리를 요구
했을 때 모든 다른 정체성들을 지배한 것은 다름 아닌 이슬람교 정체성이
다. 이어 모두가 이슬람교도인 상황에서 파키스탄의 다른 집단에 대한 살
육을 자행하면서 그들이 내세운 것은 인도로부터의 이민자로서의 정체성
이었다. 우리는 파키스탄과 세계의 다른 많은 지역에서 인종 청소 과정이
본질적으로 확고한 것이 아니란 것을 목격했다. 파키스탄의 이슬람교도들
은 신디인Sindhis, 모하지르인Mohajirs, 발루치인Baluchis, 펀잡인Punjabis,
쉬이테인Shi'ites, 수니인Sunnis 등 부가적인 다양한 정체성들을 설정하는
다른 기준들로 여타 이슬람 집단으로부터 자기 집단에게 가해지는 위험들
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영구적인 분열 과정의 시작이다. 인도에서
는 BJP의 힌두트바바드Hindutvavad가 힌두 내부에서 카스트 정체성에 대
한 훨씬 공격적인 주장을 펴고 있다.
그래서 진나 식의 정체성론은 수많은 힌두인들에게 해를 입힌 만큼
이슬람교도들에게도 유해한 결과를 낳았다. 불행히도 이러한 정체성론의
이데올로기는 상 파리바the Sangh Parivar의 정치학의 도움으로 힌두 공
동체 사이에서 합법성을 얻어내고 있다. 그들의 힌두트바 캠페인은 단순히
이슬람교도에 대한 공포와 혐오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에 힌두인들은 거기
에서 긍정적인 어떤 것도 얻을 수 없다.
예를 들면, VHP-RSS-BJP의 지도자들이 이슬람 침략에 의해 파괴된
것으로 추정되는 람 만디르Ram Mandir 지역 교화의 명분으로 아요드햐
Ayodhya의 바브리 마스지드Babri Masjid를 헐어 버리는데 대해 기뻐하는
반면에 누구도― 마스지드에 인접한 람 자남스탄 만디르Ram Janamsthan
Mandir조차도―아요드햐의 람 만디르에 예배를 드리러 간다든지 헌금을
하지는 않는다. 사실, 그들은 바브리 마스지드 철거 과정에서 시타 키 라
소이와 같은 고대의 신성한 사원들을 파괴했다. 그들이 이슬람 사원 철거
후 보여준 폭동은 그들이 실제로는 람바크티Rambhakti에 고취된 것이 아
니라 이슬람교도들을 모욕하고 해하고자 하는 욕망에 자극된 것임을 보여
준다. 이것이 그들의 힌두 민족주의가 인도 정치에서 지독한 분열론을 내
세우고 있는 이유이다. 그들은 힌두 공동체가 힌두 정체성에 자부심을 갖
도록 고취한다. "Garv se kaho hum Hindu hain" (우리가 힌두인임을 자
부심을 갖고 말하라) 가 그들의 슬로건이지만, 그들의 '혐오' 캠페인이 많
은 힌두인들을 수치스럽게 만든다. 그들의 정치학은 위험스런 방법으로 우
리 국가를 양극화하고 파편화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어떤 이가 정체성을 주장하는 것이 그들 집단에 대한 과
잉 찬사로 부담을 지우는 경우, 경합과 상호 보복이 국가의 정체성 통합과
정치적 투쟁을 진작시키는 실질적인 요소가 되는 경우, 우리 지도자들이
우리 정체성의 특정한(카스트, 종교, 젠더, 언어 혹은 지역에 기반한) 국면
을 주장하는 가운데 타자들에 맞서 우리를 편집증적 혹은 호전적으로 만
들고자 하는 경우 언제나 우리는 이와 같은 사상과 지도자들을 철저히 분
석하고 우리가 타자에 의한 위험을 상상하도록 종용받는 것이 아닌 지, 이
에 객관적인 근거들이 존재하는 지를 검토해야 한다. 어떤 지도자들은 정
당한 이해관계보다는 그들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우리를 선동하여
타자들을 괴롭힐 가능성이 있다. 어떤 주장들은 누구에게도 실질적인 이로
움이 없이 분열과 내전의 심화를 가져온다. 그리고 우리가 다른 집단에 반
대하는 선전에 압도되는 그 순간 잠시 멈춰 서서 자기 반성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왜 우리의 자신에 대한 의식은 단지 그들이 우리와 다르다는 이
유만으로 타자를 두려워하고 증오해야할 필요를 느낄 정도로 취약한 것
일가? 타자에 대한 부정적인 인종중심주의적 감수성의 지배는 분명 취약
하고 파편화된 뿌리뽑힌 정체성의 표시이다.
타자에 대한 증오는 보통 자기 경멸을 나타낸다. 그들 자신과 진정으
로 같은 자들은 그들 자신에 대해 만족하며, 타자에 대해 혐오를 드러내거
나 침해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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