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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브라이언의 게임의 종결을 보았습니다. 비참하죠. 순간 비관적이 됩
니다. 칙칙한 전경, 박정희식(조잡한 공립 학교의 건물에 신물이 난 나는 이렇
게 부른답니다) 기능주의 건축물의 시각 폭력과 다를 바 없는 그림을 제공하
는 1984년 뉴욕시와 꼴불견 토니 스톤 그리고 약간 서글픈 비굴함과 무기력함
을 지닌 순진한 그의 팬들. 커트는 이에 대해 이야기하죠.
Curt : "We set out to change the world...
ended up just changing ourselves."
Arthur : "What's wrong with that?"
Curt : "Nothing!" ― "If you don't look at the world." (번역 생략 ^.^)
그럼. 다시 돌아가. 영화의 게임은 어떻게 끝이 날까요? 그저, 커트와 아
서의 관계를 통해 스타와 팬 사이의 이상을 꿈꾸는 것으로 만족하죠. 스타에
대한 동경은 사랑을 통한 자기 인식으로 바뀌어 갑니다. 브라이언의 쇼와 환
상에서 빠져 나온 커트는 아서에게 이야기하죠. 인생은 이미지고. 자유라고.
자신을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쇼맨인 브라이언은 이러한 인정을 위한 최소
한의 거리 마저 잃어렸지만, 이러한 거리 두기와 선택의 자유. 진정한 이상향
이 팬의 위치에서 형성됩니다. 그래서 와일드의 브로치는 팬에게로 들어오게
되지요. 소비에서 해방을 모색하는 90년대 문화 이론의 지향점에 대한 영화적 표 현이라고 해도 좋겠지요. 극장에서 빠져나온 여러분. 1999년 한국의, 달딸에 들어가보고, 이렇게 길 고 장황한 영화평을 끝까지 훝어보고 하는 젊은이(단순히, 몸의 나이를 이야 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평가에는 꽤 까다로운 조건이 있지요. 뭔지는 스 스로가 잘 알 것입니다.)들로서 우리는 사회, 문화와 어떤 관계망을 엮어가며 거기에서 얼마간의 거리, 여유를 가지고 있습니까? 나는 우리에게 비록 록스 타의 운명과 광휘를를 넘길 용기가 있는 반성적인 스타는 없다 해도, 이 못지 않은 꿈을 갖고, 타인의 상처 입은 시선을 관용으로 넘겨주고 스스로를 길거 리에서 가정에서 게의치 않고 드러낼 수 있는 욕망과 잠재성이 있을 거라고 꿈을 꿔 봅니다.
꿈이 모이면ㅡ현실이 되지요.
그리고 현실은 '달딸'의 공간에도 잠재합니다.
같이 춤이나 출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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