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여성적인 것에 대한 재사유
서양철학이 여성적인 것으로 구성해 놓고 그것을 가치절하한 것에 대한 페미니스트
반응의 한 가지는 여성적인 것이 재가치화되어야 함을 주장하는 일이다. 내가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예를 들어 보편적인 것보다는 특수한 것을, 정신보다는 육체를,
공적인 것 보다는 사적인 것을, 이성보다는 감정을 더 강조한다는 점에서, 페미니스트
윤리학은 문화적으로 여성적인 것에 대하여 도덕적 우선성을 부여하는 것과 관련된다
.
페미니스트 윤리학을 여성적인 것의 가치를 회복하는 것이라고 해석하는 일은 여러
가지 이유에서 문제가 있다. 그 중 하나는 "여성적", "남성적"이라는 용어가 둘 다
다중적인 의미를 지닌 말이라는 점이다. 각기는 남성과 여성의 경험적 특질을 지시할
수도 있고(경험적 연상), 남성과 여성에 대한 사회적 이상을 지시할 수도 있으며(규
범적 연상), 아니면 남자인 것 혹은 여자인 것과 문화적으로 관련된 가치나 속성을 지
시 할 수도 있다.(문화적 연상) 어떠한 것이 이러한 의미 중 하나 혹은 여러가지 의
미에서 남성적인 것이 될 수도 있고 여성적인 것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다른 의미
에서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자선은, 여성의 실제적인 행동은 고려하지
않고 또 여성들이 문화적으로 성적 방종과 동일시됨에도 불구하고, 여성들에 대한 사
회적 이상(理想)이 될 수도 있다. 여성적인 것에 대해 분명한 의미가 상술된다 해도
그것이 지시하는 것은 여러가지일 수 있다. 왜냐하면 남성성과 여성성에 대한 이해가
문화마다 다르고 단일한 사회내에서도 계급, 계층, 인종마다 달라지는 일이 흔히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성적인 것의 가치를 규정하는 모든 프로젝트들은 불가피하게 한
집단의 여성과 관련된 특징이나 이상들에 특권을 부여하게 되며 그와 더불어 이 집
단을 여성성의 전형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페미니스트 윤리학은 여성적인 것에 대한 사회적 구축의 재평가를 수반할 수밖에 없
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히 여성적인 것 자체에 대한 가치규정이 될 수는 없다. 여성
적인 것에 대한 하나의 이해를 다른 것보다 더 우선적인 것으로 채택하게 되면 이는
필연적으로 성별 외부에 있는 기준에 호소하게 되고 그렇게 되면 여성적인 것은 그 자
체에서가 아니라 다른 어떤 이유에서 가치가 매겨지는 것이다. 어떤 페미니스트들은
여성적인 것에 대한 특정한 이해 또는 모든 이해를 비판한다. 그러한 것들은 예속된
집단에게만 합당한 가치들을 증진시키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다른 페미니스트들은
성별 은유나 규범을 전면적으로 제거할 것을 주장한다. 그것들이 여성과 남성의 개
인성을 제약하고 문화적 편견을 구체화하기 때문이다. (위티그, 게릴라들 Le Guerille
res, 1971 ; "One is Not Born a Woman", 1981 ; 오킨, Justice, Gender and the Fam
ily, 1989)
5. 여성의 관점에서의 윤리학
서양 도덕철학이 남성의 체험을 규범적인 것으로 상정한다는 비난에 대한 응답으로
몇몇 서구 페미니스트 윤리학은 여성의 체험을 출발점으로 삼고자 한다. 그러한 프로
젝트 중 가장 잘 알려진 예가 보살핌의 윤리학이다. 보살핌의 윤리학은 특수한 타자
를 양육하는 여성 특유의 체험으로부터 생겨나는 도덕적 관점을 설명한다. (길리건,
다른 목소리, 1982 ; 노딩스, Caring, 1984) 몇몇 이론가들은 어머니노릇의 실천에서
생겨난다고 상정되는 판명한 도덕적 관점에 일차적으로 초점을 맞춘다. (헬드, Fem
inist Morality, 1993 ; 루딕, Maternal Thinking, 1989) 여성체험으로부터 윤리학을
도출해 내려는 프로젝트가 일반적으로 보살핌의 윤리학과 관련되기는 하지만 어떤 페
미니스트들은 보살핌의 윤리학이 양육이나 어머니 노릇만을 강조하는 것을 거부하고
여성의 도덕적 체험의 다른 측면으로부터 윤리학을 도출하려 한다. 예를 들어 사라 호
글랜드는 레즈비언들의 삶을 성찰함으로써 새로운 가치의 기원을 찾는 것을 목표로 한
다. (호글랜드, Lesbian Ethics, 1988) 윤리이론과 도덕적 체험을 연관시키는 것은
매우 가치있는 일이다. 그러한 연결은 철학적 이념이 경험적으로 획득될 수 있어야 한
다는 자연주의적 신념을 반영한다. 도덕적 인식론에 적용될 때, 자연주의는 도덕이론
가들이 윤리이론과 도덕적 실천 사이에 놓여 있는 명백한 괴리를 의미없는 것으로, 예
를 들어 인간적 오류가능성이나 의지의 박약함의 한 예로 취급하는 식으로, 대강 처리
해 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이에 덧붙여 페미니스트 관점은 이제까지
도덕적 행위자로 가치절하된 여성들의 능력을 인정하고, 그들을 어린아이나 자연에 더
가까운 존재로 정형화한 것에 맞서기 위해 여성들만이 가지고 있는 판명한 도덕적
체험에 특별히 더 주목할 것을 요구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윤리학에
대한 자연주의적 접근은 그 특성상 도덕적 위험을 수반한다. 한 가지 위험은 관행주
의(conventionalism)인데, 그것은 용인되는 가치들이나 사유방식들을 자기정당화로 간
주한다. 관행주의와 연관된 것은 상대주의이다. 상대주의는 상이한 도덕공동체마다
도덕적으로 허용되는 것이 다르다고 주장한다. 페미니즘은 관행주의와 상대주의 양쪽
모두 문제가 있다고 본다. 모든 형태의 남성지배를 타협 없이 도덕적으로 반대하는
페미니즘과 이 두 입장은 갈등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도덕적 체험으로부터 윤리이론을 도출하는 것은 방법론적으로도 문제가 있다. 한
편으로는 "도덕적 체험"이라는 용어가 너무 광범위하기 때문에 그것이 무엇을 포함하
는지가 분명하지 않으며, 혹은 그것을 어떻게 탐구해야 하는지가 분명하지 않기 때문
이다. 다른 한 편으로는 잘 알려진 대로, 사람들이 도덕성에 대하여 말하는 것이 그
들의 행위에 대해 믿을 만한 지침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여성과 같이 가지각색의
사람들로 구성된 거대한 집단의 도덕적 경험을 일반화하는 것에 대해 경험적 타
당성을 찾아내는 것은 특히 어렵다. 비록 스스로가 여성인 철학자들에 의해서라 해도
마찬가지이다.
어떻게 여성의 도덕적 체험의 특성을 규정할 것인가에 대한 많은 페미니스트 논쟁에
는 방법론적 문제가 가로 놓여 있다. 이러한 문제들이 특히 분명하게 드러나는 곳은
보살핌의 윤리학에 대한 논의에서이다. 보살핌의 이론가들은 양육이나 어머니 노릇과
같이 여성적 체험으로 간주되는 것들이 정의의 윤리학 전통 속에서 지배적이었던 가
치들과는 다른 가치를 증진시키며, 자아와 도덕성에 대한 다른 개념의 형성을 고무한
다고 주장한다. 또한 보편적인 원칙에 호소하기보다는 특수한 상황에 대한 즉각적인
도덕적 지각에 의존하는 도덕적 사유의 양태를 발전시켜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한 지각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관심, 감수성, 동정심, 공감, 상상력 등과 같이 여
성들 특유의 능력이라고 생각되는 것들이다. 그러나 여성과 남성의 도덕적 사유에
체계적인 차이가 있다고 말하는 모든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적어도 서구 현대사회에
서는 여성과 남성 모두가 처해 있는 삶의 상황이 계급과 인종, 민족, 세대에 따라 크
게 다르기 때문에, 모든 또는 대부분의 여성이 모든 또는 내부분의 남성과는 다른 도
덕적 관점을 공유한다는 것은 의심스럽다. 보살핌 이론가들의 주장의 경험적 타당성에
대한 연구들은 실제로, 성별과 보살핌 사이의 연관성을 확인하는데 빈번히 실패하
고 있다. 교육과 직업에 주제가 맞추어지면 도덕적 발전의 정의지향 실험에서 여성
들은 남성들과 거의 동일한 점수를 얻는 것이 흔히 있는 일이다. 집에서 일하는 여성
들은 보살핌의 관점의 주된 여성 대표자로 남겨진다. 더구나 여성과 마찬가지로 많은
남성들도 보살핌의 사고 방식을 채택한다는 것이 발견되었는데, 예를 들어 아프리카
전통사회의 구성원들(하딩, "The Curious Coincidence of African and Feminist Moral
ities", 1987), 미국 북부에서 남부로 이주한 아프리카 미국인들(스택, "The Cultu
re of Gender : Men and Women of Color", 1986)과 일부 원주민 미국인들이 그러
하며, 소위 뉴에이지 남성들은 말할 것도 없다.
보살핌의 윤리학에 대한 최근의 옹호자들은, 어떤 여자들은 정의에 관점에서 생각하
고 어떤 남자들은 보살핌의 관점에서 생각한다는 사실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그럼에
도 불구하고 그들은 여전히 보살핌을 여성들에 관련시킨다. 그 이유는 그들이 보살
핌의 관점을 사회화과정, 어린이 양육, 노인 보살피기, 좋은 가정환경의 유지, 간호
와 같이 현대 서구사회에서 주로 여성들이 하는 실천의 형태에서 생겨나는 것으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마릴린 프리드먼은 보살핌의 윤리학이 여성적이라는 것은 경험적
인 의미에서보다는 여성이 남성보다 더 감정이입적이며 이타적, 양육적이고 민감하다
는 문화적 기대를 표현하는 상징적이고 규범적인 의미에서라는 대안적 논변을 제
기한다. (프리드먼, What Are Friends For?, 1993, 123-4) 죠안 트론토는 보살핌의
윤리학이 성별뿐 아니라 인종이나 계급과도 관련된다고 주장한다. 그는 보살핌의
도덕적 관점을 육체적 기능을 뒷수습하는 작업들과 연결시킨다. 그러한 과제들은 서구
역사에서 일차적으로 여성들에게 위탁되어 왔지만 모든 여성에게 혹은 여성에게만 맡
겨진 일은 아니었다. 보살피는 일은 여성뿐 아니라 노동계급, 특히 대부분의 서구사
회에서는 유색인종들이 수행해 왔다. (트론토, Moral Boundaries, 1993) 보살핌의
사고가 만들어진 사회적 기원에 대한 그러한 분석은 로렌스 블룸의 주장, 즉 정의의
윤리학은 진정 남성적인 법적 행정적 관점, 특히 전문직 행정직 계급의 관심사를
반영한다는 주장과 잘 들어맞는다. (블룸, "Kant's and Hegel's Moral Rationalism",
1982) 트론토와 블룸의 논변은 모두 정의의 윤리와 보살핌의 윤리가 동시에 성별화
인종화 계급화되어 있다는 사실을 제시해 준다.
보살핌의 윤리학이 일정한 의미에서 여성적이라는 사실이 그것을 페미니스트인 윤
리학으로서 확립시키는 것은 물론 아니다. 왜냐하면 페미니즘은 관습적으로 여성적인
것에 대하여 전형적으로 비판적이기 때문이다. 페미니즘에 적합한 윤리학은 무엇보
다도 공적 삶과 사적 삶 모두에 존재하는 남성 지배를 비판하기에 적합한 개념적
자원을 제공해야 한다. 나를 비롯하여 일부 페미니스트들은 보살핌의 윤리학이 이러
한 과제를 수행할 능력이 있는가에 대해 회의적이다.
많은 페미니즘 철학자들이 우려하는 것은 보살핌의 윤리학이 여성 특유의 도덕적
실패라고 할 수 있는 자기 희생에 대해 충분히 민감하지 못하다는 사실이다. 몇몇
페미니스트들은 보살핌을 노예도덕으로 규정한다. (카드, "Gender and Moral Luck",
1990) 그들은 예를 들어 자신을 혹사하는 사람들에 대한 보살핌은 덕스러운 것이라
기 보다는 도덕적으로 병적인 것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또한 노딩스가 다른 사람을
보살필 자신의 능력을 유지하기 위한 도구적인 관점에서만 자기 자신에 대한 보살
핌의 책임을 정당화하고 있다는 점이 이런 맥락에서 지적된다.
다른 문제들은 보살핌의 특성이 소규모의 상황의 특수성, 특히 특수한 개인들의 필
요에 초점을 맞추는 데 있다는 점에서 생기는 문제들이다. 보살핌의 이론가들이 전
망했듯이, 도덕적으로 문제가 되는 상황에는 전형적으로 매우 소수의 개인들이 관련
되어 있고, 또한 이러한 상황에서는 행위자가 다른 사람에게 반응할 때 그들을 구체
적 특수성 속에서 이해하고, 공감과 염려를 가지고 대응할 것이 요구된다. 이러한
도덕적 합리성의 모델이 행위자가 알고 있는 특수한 타인들에게 편향되는 것을 피할
수 있는지는 분명하지 않으며, 또한 보다 큰 규모의 사회적 거시적 문제들에 이 모
델이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지도 분명하지 않다. 보살핌의 협소한 초점은 도덕적 복
합성과 개인적 책임의 인식을 고무한다는 점에서는 가치가 있다. 그러나 그것은 개
인적 만남의 맥락을 구성하는 거시 상황에 대한 이해를 모호하게 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그것은 개인들이 행하는 둔감하거나 윽박지르는 행동들을 지각하는 것을 용
이하게 할 수는 있으나, 그러한 행동들을 정당화하는 사회적 특권 구조로부터 도덕적
관심을 떼어내어 다른 곳으로 돌리게 한다. 그와 유사하게, 양식, 거처, 편안함,
같이 있어주는 것에 대한 개인의 즉각적인 필요를 보살펴주는 것은, 그러한 욕구를
창출하거나 충족되지 않은 채 남겨두는 구조들에 대한 면밀한 도덕적 검토에 집중하
지 못하게 한다. 그래서 때때로 그것은 도덕적 문제에 대한 임기응변, 혹은 사회사업
적 접근이라고 불리는 것을 장려하게 되는데, 이는 도덕적 문제를 제도적으로 풀어내
려는 노력과 사회적 변화를 통해 도덕적 문제를 예방하려는 노력에도 반대된다.
결국 보살핌 윤리학의 최종적 문제는 어떠한 보살핌의 반응이 도덕적으로 합당한지
를 결정할 지침이 결여되어 있다는 점이다. 보살핌 이론가들은 보살핌의 지각이그 자
체로 정당화된다고 상정하거나, 혹은 보살피는 사람과 보살핌을 받는 사람 양쪽에
의거하여 적어도 합당한 보살핌이 무엇인지를 밝힐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확실히
이러한 생각은 근거가 없다. 도덕적으로 합당하지 않은 행동이 행위자나 그것을 받
는 사람들 양쪽에 의해서 보살핌이라고 합리화되는 일이 빈번히 일어난다. 그러한 행
동의 실례로 과도하게 응석을 받아주는 것, 버릇을 나쁘게 하는 것("spoiling"), 상
호의존을 들 수 있고, 가정폭력과 근친강간(근친상간)까지도 그것에 속한다. 보살핌
의 전통이 합당한 보살핌과 합당하지 않은 보살핌을 구별할 수 있는 개념적 자원을
포용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아직까지는 도덕적 정당화에 대한 적절한 설명을 개발하는
데에는 실패했다.
여성의 관점으로부터 윤리학을 개발하려는 프로젝트는 방법론적 원칙에서뿐 아니라
도덕적 실천에서도 문제가 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프로젝트는 서구 도덕철학
에 존재하는 수많은 도그마와 맹점들을 폭로해 왔으며 그러한 도그마와 맹점의 많
은 것들은 정론에서 여성의 경험과 관심을 배제한 데에서 기인한다.
VI. 페미니스트 윤리학 논의의 한 범례: 평등의 사례
나는 성적 평등의 문제를 둘러싼 현대 페미니스트 논쟁을 개관하는 것으로써 이
야기의 결론을 맺고자 한다. 왜냐하면 이 논쟁이 현대 서구 페미니스트 윤리학의
어떤 특징적인 모습을 탁월하게 그려주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 페미니즘의 핵심적 통찰은 의심할 여지없이, 가끔은 모순적이기는 해도 항상
개인들의 활동을 그들의 생물학적 성에 따라 규제하는 도착적인 사회적 규범 체계로
서 성별(gender)을 인식해 왔다는 점이다. 그래서 성이 남자인 개인들은 남성성에 대
한 지배적 규범에 순응할 것이 기대되고, 반면 성이 여자인 개인들은 여성성에 대한
지배적 규범에 순응할 것이 기대된다. 1970년에 파이어스톤은 "성계급은 보이지 않
을 정도로 깊다"는 말로 그의 고전인 성의 변증법을 시작한다. 현대 여성운동이 시작
된 10년간 페미니스트들은 "성계급" 혹은 사회적 성별을 가시화하는 데 헌신했다. 그
리고 그들은 모든 개인의 삶 속에 있는 성별규제의 깊이와 범위를 밝히고 거부하는
데 헌신하였다. 그들은 사회적 성별규범이 옷차림, 직업, 성(sexuality)에 영향을 줄
뿐만 아니라 몸가짐, 말하는 방식, 먹는 습관, 그리고 지적 정서적 도덕적 신체적
발전에까지 영향을 준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성별규범은 남성의 여성에 대한 지배를
실제적으로, 그리고/또는 상징적으로 강화하는 방식으로 이러한 모든 것에 영향을 끼
쳤다.
신체적 성차(sex)와 문화적 성별(gender)의 개념적 구별은 페미니스트들이 의미있는
다양한 통찰을 명료히 하는 것을 가능하게 했다. 그러한 중요한 통찰에는 다음과 같
은 인식이 포함된다. 즉 예외적인, 다시 말해 "남성적인" 여성들을 피상적으로는 차
별없이 받아들이는 것이 "여성적인 것"에 대해 보편적으로 문화적 가치절하를 하는
것과 양립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또한 실제로 그러한 가치절하를 전제하고 있다는 인
식이다. 성차와 성별의 구별은 또한 페미니스트들로 하여금, 남성성으로서의 문화적
규범에 대한 비판적 성찰과 실제 남성에 대한 적대감을 분리할 수 있게 해준다.
페미니즘에 성별개념이 유용하기는 했지만, 최근의 페미니스트 성찰은 페미니스트들
이 처음에 그 개념을 명료히 했을 때 보였던 것처럼 그것이 그렇게 단순한 것이 아
니며 문제가 없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일부 페미니스트들은 섹스와 성
별에 대한 초기의 명백한 구분에 대해 다음과 같은 점을 들어 도전하고 있다. 즉, 신
체적인 성차가 사회적 성별규범의 발전에 영향을 미쳐 온 것과 마찬가지로(비록 불
가항력적으로 규정하지는 않았지만), 문화적 성별배치는 어떠한 이차적인 성적(sexual
) 특징의 생물학적 진화에 영향을 미치고, 더 나아가 성차 즉 생식 그 자체의 척도를
규정하는 데에 영향을 미쳤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한편 다른 페미니스트들은 성별
을 인종이나 계급과 같은 다른 사회적 범주들과 구별하는 것에 대해 도전한. 여성에
대한 페미니스트들의 주장이 주로 백인 중산층 여자와 같은 상대적으로 작은 집단의
경험으로부터 잘못 일반화되었다는 것을 인정하는 지난 15년 동안 페미니스트들은
성별이 상수가 아니라 변수임을 강조해 왔다. 성별규범은 다른 문화에서뿐 아니라 없
이 같은 문화 안에서도 계급, 인종, 연령, 혼인상태, 성적 기호 등과 같은 차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모든 여성은 어떤 특정한 연령, 인종, 계급,
혼인상태에 있기 때문에 성별은 하나의 독자적, 독립적 변수조차도 되지 못한다는 것
이다. 다시 말해, 이론적으로 고립되어 계급, 인종, 연령 또는 혼인상태로부터 독립
하여 독자적으로 연구될 수 있는 순수하거나 추상적인 성별은 존재하지 않는다. 물
론 다른 사회적 범주들도 성별로부터 독립하여 이해할 수 없다.
성별에 대한 이들의 정교화된 이해가 증가함으로써 성평등을 포함한 페미니스트들
의 많은 도덕적 사회문제는 더욱 복잡해졌다. 1960년대말 현대 서구 여성운동이 시작되었을 때, 성평등은 비교적 단순한 문제로 보였다. 남녀의 "분리된 영역"에 대한 19세기 페미니스트들의 선호는 남녀의 동등한 법적 권리에 대한 요구 또는 법 앞에서의 평등이라고 불리게 된 것으로 대치되었다. 1960년대말 미국의 대부분의 페미니스트들은 법적 체계가 성차를 두지 않아야 하고, 어떤 의미에서든 여자와 남자를 차별해서는 안된다고 믿게 되었다. 이 믿음은 미국 헌법의 동등권 수정안을 위한 투쟁에서 표현되었는데, 이 수정안이 통과되었다면 어떠한 성특정적 법도 위헌적인 것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1970년대말과 1980년대 초반에는, 법 앞에서의 엄격한 평등이라는 동화주의적(assimilationist) 목표가 적어도 단기적으로는 항상 여성에게 이익이 되는 것이
아님이 명백해졌다. 무과실이혼 합의시 남편과 아내가 가족재산을 분배하지만, 이것
은 예외없이 아내를 남편보다 열악한 경제적 상황에 처하게 하는 결과를 가지고 온
다는 것이 이에 대한 하나의 악명높은 실례이다. 이혼의 "근본적으로 다른 영향"은
여러가지 요인에서 기인한다. 즉 남자와 여자가 노동시장에서 전형적으로 다른 위치를
점하고 있으며, 직업을 얻는 데에서 여자들은 대체로 훨씬 낮은 자격요건과 경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그러한 요인에 포함된다. 이러한 종류의 사례에서, 여성과 남성
을 다루는데에서 (같음으로 해석되는) 평등은 성적 불평등이 증가하는 결과를 초래하
는 것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여자들에게 특별한 법적 보호를 제공함으로써 평등을 추구하는 대안은 여자
들에게는 위험으로 가득 찬 것이다. 그것은 19세기초의 보호법안이 보다 지위가 있고
임금이 높은 직업으로부터 여자들을 배제하는 핑계로 이용되었던 것과 마찬가지이다
. 예를 들어 임신과 출산이라는 장애를 위하여 특별휴직을 의무화하는 것은 여성을
남성보다 신뢰할 수 없는 노동자로 여기게 하며, "월경전 증후군" 또는 산후우울증을
한시적 장애상태로 인정하는 것은 여성이 남성보다 책임감이 덜하다고 생각하게 한
다. 포르노를 규제하거나 감옥과 같은 남성기관에서 여성고용을 배제하는 등 법적으
로 여성의 성을 보호하려는 시도는 여자는 본성적으로 남성의 먹이가 된다는 위험한
고정관념을 영속시킨다. 이러한 문화적 신화는 매춘, 성희롱, 여성 강간을 암묵적으로
정당화하는 데 사용된다. 왜냐하면 그것은 이런 행동들이 어떤 의미에서는 자연적이
라는 것을 함의하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경우 용인되는 남녀의 차이에 대응함으로써 남
녀평등을 성취하고자 하는 시도는, 이미 존재하는 차이의 기원이 생물학적이지 않고
사회적이라고 인정되더라도 그 차이를 감소시키기보다는 강화하기 쉬운 것으로 보인
다.
더구나 평등에 대한 이해에서 "성차를 두지 않는" 이해에 반대되는 "성감응적"
이해는 여성들간의 차이를 무시하고 모든 여성을 하나의 동일한 범주에 넣음으로써여
성을 격리시킨다. 이러한 이해는 어떤 여성집단이 보호를 절실히 필요로 한다고 해서
다른 집단에게도 이 보호를 받아들이기를 강요함으로써 그들을 불리하게 만든다.
얼마 안 있어 적절한 성평등 개념을 형식화하려는 대부분의 서구 페미니스트들의
시도는 평등논의의 기본노선이 전형적인 남성적 기준이었음에 대한 인식과 충돌하게
되었다. 캐더린 맥키넌의 비길 데 없이 독특한 표현을 보자.
남성의 생리가 거의 모든 스포츠를 정의하고, 남성의 욕구가 자동차보험과 건
강보험의 적용범위를 규정하며, 사회적으로 설계된 그들의 전기(傳記)가 일터에서의
기대치와 성공적인 경력의 패턴을 정의하며, 그들의 체험과 집념이 공과(功過)를 정
의하며, 그들의 삶의 객관화가 예술을 정의하고, 그들의 군복무가 시민의 자격을 정
의하며, 그들의 존재가 가족을 정의하며, 서로 사이좋게 지낼 수 없는 그들의
무능력이 - 그들의 전쟁과 지배가 - 역사를 정의하며, 그들의 이미지가 신을 정의하고
, 그들의 성기가 성(sex)을 정의한다. (맥키넌, Feminism Unmodifed : Discourses on
Life & Law, 1987:36)
이러한 인식에 일단 도달하고 난 몇몇 페미니스트 이론가들은 맥키넌이 "단일기준"
대 "이중기준"이라고 부른 찬반 논쟁으로부터 전향하여, 성적 차이를 "비손실적으로"
만들 수 있는 광범위한 사회적 변화의 종류는 무엇일까를 숙고하기 시작했다. "승
인으로서의 평등"과 같은 개념을 정교화하는 논의 속에서, 페미니스트들은 평등을 개
인적 성과의 유사성, 즉 조건이나 결과의 균등으로 보는 급진적 해석 쪽으로 옮겨가는
것으로 보인다. 평등에 대한 이러한 해석은 평등을 과정이나 기회의 평등으로 보는
전통적 자유주의 개념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페미니스트들이 이러한 방향으로 전향
한 것은 마르크스가 코타강령 비판에서, 개인들간의 차이가 그들의 성과의 불평등을
초래하기 때문에 권리 평등의 강조를 포기한 사회로 전향한 것에 비교될 수 있다.
그러한 사회의 조직원리는 "각자의 능력에 따라서로부터 각자의 필요에 따라서로"라
고 할 수 있다.)
몇몇 페미니스트들은 페미니즘에 합당한 성적 평등의 개념을 명확히 하려고 고심
하는 반면, 다른 페미니스트들은 그러한 기도가 희망없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들에
의하면 평등은 전형적으로 남성적인 "정의의 윤리"의 빠뜨릴 수 없는 구성부분이다
. 정의의 윤리는 구체적인 사람들의 특수성과 고유성을 도외시함으로써 인간의 차이를
모호하게 하며, 즉각적으로 지각되는 요구에 직접적으로 반응하기보다는 추상적
규칙을 적용하는 방식으로 갈등하는 이해관계를 해소하려 한다는 점에서 전형적인
남성적 윤리라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말하는 페미니스트들은 책임의 담론
이나 보살핌의 담론이 - 페미니스트 법학까지 포함하여 - 페미니스트 윤리학에 보다
더 적합한 모델을 제공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들은 양쪽 다 상세하게 작업되어
야 할 것으로 남아 있다.
평등과 차이를 둘러싸고 얽혀 있는 논쟁들은 서구 페미니스트 윤리학 담론의 몇가
지 특징적 모습을 예증해 준다. 가장 분명한 것은, 페미니스트 도덕사유에 합의가 결
여되어 있다는 사실을 이러한 논쟁이 보여준다는 점이다. 이 논의들은 또한 빈번히
사적이거나 공적인 것으로 분리되어 왔던 문제들이 여성의 삶에서 교차되어 있는 방
식을 민감하게 느끼는 페미니스트들의 감수성을 예증한다. 덧붙여, 평등에 대한 서
구의 논의는 표면상으로는 성별중립적으로 보이는 사회제도들에 대한 도전이 어떠
한 방식으로 페미니스트들에 의해 주도되는지를 보여준다. 페미니스트들은 실제로 그
러한 제도들이 모든 여성에게 똑같이는 아니더라도 여성지배를 영속화하는 데에 암암
리에 작동해 왔다고 믿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평등에 대한 논의는 여성들의 삶에
보다 현저하게 나타난다고 상정되는 다른 가치들에 비교해 볼 때 평등이념이 과연
도덕적으로 의미심장한 것인가가 페미니스트들에게 의문시되고 있음을 보여 준다.
무엇보다도 이러한 논쟁은 현대 페미니스트 윤리학의 가장 변별적인 특징 중 하나
를 드러낸다. 그것은 말하자면, 성별을 변수로 보지만 성별은 또한 현대의 사회적
삶의 거의 모든 측면을 구조화하고, 그 가운데 항상은 아니지만 매우 빈번히 도덕적
으로 의미있는 개인차를 구성하는, 편재하는 특권의 체계라고 인식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페미니스트들은 개인들을 대할 때 도덕적으로 중요한 차별의 근거가 확실해
질 때까지, 모든 개인들을 똑같이 취급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그 대신에
페미니스트들은 현대의 남성과 여성들이 "유사한 상황 속에 있은" 적이 거의 없다고
주장하며,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볼 수 있을 때까지) 도덕적 논증의 전통적 부담을 제
거한다. 따라서 성평등에 대한 페미니스트들의 논의를 들여다보면, 페미니스트들이
비페미니스트 윤리학과 전혀 다른 출발점에서 그들의 도덕적 성찰을 시작할 때 귀
결되는 실천적 이론적 결과들을 볼 수 있다.
결 론
페미니스트 윤리학과 비페미니스트 윤리학 간의 지속적인 대화는 그런 점에서 아주
풍부한 결실을 가지고 왔다. 페미니즘은 도덕이론에 대해 우선적으로 중요한 것이 무
엇인가를 물었고, 동시에 실천적 윤리에서의 많은 논쟁들을 풍부하게 했으며 또 확대
시켜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