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러한 자존심 싸움은 왜 생기는 것일까요? 우선 개방 전 중국이 사회주의 국가였다는 것을 생각해 보세요. 알고 보면 사회주의 국가라는 중국도 권력을 많이 가진 사람이 더 많은 부를 가지긴 했지만, 적어도 한 마을 안에 사는 농촌 사람들은 서로 비슷한 수준의 삶을 누릴 수가 있었어요. 공동으로 집단 노동을 하고, 가족 수나 노동의 정도에 따라 분배받는 체제 속에서, 누구 집은 아주 잘 살고, 누구 집은 아주 못 산다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했죠. 그러나 80년대 후반, 개방이 되면서 중국의 상황은 급격하게 바뀌었어요. 한 집 두 집 한국으로 나가서 "떼돈"을 벌어온 사람들이 생기고, 또 90년대 이후에는 친척 방문이나 외국인 노동자 취업 기회를 통해서 한국에 나가 돈을 벌어온 사람들이 꽤 되었죠. 이제는 마을에서 "갔다 온 사람들"들과 "갔다 오지 못한 사람들" 사이에 하늘과 땅 같은 빈부 차가 생겼어요. 그리고 "갔다 오지 못한 사람들"은 이전과 달리 점차 극대화되는 상대적 빈곤감에 삶의 의욕을 잃어가고 있죠.

    한 국에 갔다 온 사람들은 칼라 TV라든지, 냉장고와 같은 가전 제품을 구비하고, 또 무엇보다 기존의 흙집을 허물고 기와집을 새로 짓고 살지요. 반면에, 한국을 갔다 오지 못한 사람들은 아직 퀘퀘한 흙집에서 살아야 하고, 전화도 없고, 자식들에게도 한국제 샤프 하나 사 줄 수가 없어요(우리에게 일제가 선호되듯이 중국 학생들에게는 한국 학용품이 매우 인기가 좋답니다).

    집 을 새로 짓는다고 하니까, 도대체 조선족들이 한국에 나가서 얼마나 벌어오길래 이런 어마어마한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지 궁금해지죠? 중국에서 기와집을 한 채, 그것도 집 넓이만 약 50-60평 되는 집을 짓는 데에는 보통 8만원 정도의 돈이 들어요. 이것은 한국 돈으로 약 1000만원 정도의 액수지요. 한국에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저렴한 값이지요. 이것은 중국의 재료값 뿐 아니라 일용 노동자 임금이 낮기 때문에 가능해요. 이른바 건축 노가다 판에서 하루 일을 하는데 노동자들이 받는 임금은 20원에서 30원인데, 한국 돈으로 하자면 2500원에서 4000원 정도의 돈이죠. 그러나 칼라 TV나 냉장고와 같은 가전제품은 한국에서 사는 것과 값이 거의 같아요. 아직 중국의 공업이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전 제품은 대중화가 되지 않았고 그만큼 고가품이기 때문이지요. 그럼 한 번 총 결산을 해 봅시다. 어떤 사람이 기와집을 새로 짓고 칼라 TV와 냉장고를 샀다면 모두 얼마가 들까요? (이해되기 쉽게 한국 돈으로 환산해서 생각해 볼께요) 집을 짓는데 1000만원, 칼라 TV가 50만원, 냉장고가 100만원이라고 해도 모두 1150만원이네요. 그렇다면 한 명의 조선족이 한국에 와서 몰래 불법으로 취업을 했을 때 얼마를 벌 수 있을까요? 만일 그 사람이 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초반에 와서, 한국의 3D업종 인력난 속에서 상대적으로 후한 대접을 받고 일을 했다고 한다면, 한 달에 80만원을 받는다고 해도 1년이면 약 1000만원, 3년이면 3000만원 이상을 벌게 되지요. 물론 이 액수는 이 사람이 아는 사람이 있어서 숙식을 해결할 수 있거나, 사업자 측에서 숙박 시설을 제공해 줬을(대개 생활 환경이 아주 좋지 않은 지하나 반지하 방이죠) 경우예요.

    더 욱 놀라운 것은 그 다음이에요. 만일 어떤 조선족 한 사람이 한국에서 5년 정도 일해서 6000-7000만원을 벌어 중국에 간 뒤, 이것 저것 살 것을 다 사고 5000만원이 남았다고 합시다. 앞으로 이 사람은 평생동안 놀고 먹어도 중국에서 넉넉하게 살 수 있어요. 어떻게 가능하냐구요? 중국에는 고리대금업이 아주 널리 퍼져 있어요. 보통 1년이면 싼 이자가 3푼인데, 3푼이라고 해도 만일 5000만원을 누구에게 빌려줬다면 이 사람은 해마다 1500만원 씩 공돈을 벌게 되는 셈이지요. 비싼 이자는 5푼도 있는데, 그럴 경우에는 해마다 2500만원씩 받으니까 2년이면 금새 원금의 두 배로 불릴 수가 있어요. 해마다 1300만 원 씩만 이자를 받는다고 해도, 이 돈은 중국 돈으로 환산하면 10만원인데, 한 번 비교해 보세요. 아까 제가 일 년 동안 농사를 지으면 얼마가 남는다고 했죠? 기억나나요? 2000원이에요. 한국에서 몇 년 벌어온 돈으로 중국에서 돈놀이를 하면 일 년 내내 죽어라 일한 것에 무려 50배의 돈을 벌 수 있는 거라구요. 정말 놀랍죠?

    물 론 지금까지 제가 한 이야기는 여러 가지 부수적인 상황들을 다 빼고 생각한 것이에요. 어떤 사람의 경우는 불법으로 일을 하다가 직장에서 쫓겨나서 몇 달 동안 길거리에서 돈을 쓰면서 보내야 할 수도 있고, 또 어떤 사람은 예상치 못한 사고로 다쳐서 치료비를 내야 할 경우도 있어요. 그러나 최악의 경우만 발생하지 않는다면, 즉 불법 체류자로 잡혀서 본국으로 송환되지만 않는다면, 적어도 조선족들은 5-6년 간 한국에서 "노예 같은" 생활을 한 후에 본국에서 평생동안 "왕처럼" 보낼 수가 있죠.

    한 국에서 조선족과 관련된 가장 커다란 사회적 문제는 "작업장 이탈"인 것을 아시나요? 조금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원래 계약되었던 작업장을 떠나 다른 곳으로 도망치는 조선족들. 어쩌면 여러분들에게 이런 사람들이 잘 이해가 되지 않을 지도 모르겠어요. "아무리 더 돈을 많이 준다고 해도 그렇지, 당장 도망가면 불법이 되고 또 일자리를 잃을 수도 있는데 그렇게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더 돈을 많이 주는 곳으로 달아나야 할까? 차라리 좀 돈을 적게 주더라도 한 곳에 머물러서 꼬박꼬박 모으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그러나 현실적으로 조선족들은 "빨리" 돈을 "많이" 모아야만 한답니다. 그래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이들 대부분이 엄청난 빚을 지고 한국에 나온 사람들이기 때문이에요. 앞서 고리대금업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지만, 중국에서 빚을 진다는 것은 곧 순간순간 엄청난 이자가 붙고 있다는 것을 의미해요. 그러니 "천천히" "꾸준하게" 돈을 모으는 것은 심정적으로 불가능해요. 보통 중국 돈으로 5만원에서 7만원 정도(한국 돈으로 650만원에서 1000만원)의 돈을 내고 한국에 오는 이 사람들에게, 원금만 생각한다면 한 달에 40-50만원 받는 공장 일로도 1년 반이면 빚을 갚고 그 다음부터는 순수익을 벌어들이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겠지만, 실제로 일 년이 지나고 나면 이미 빚은 엄청나게 불어나 있어서 그 빚을 다 갚으려면 2년이 넘도록 일을 해야만 돼요. 게다가 한국에 온 조선족들의 대부분이 1년 밖에 한국에서 법적인 보장을 받을 수 없도록 계약이 되어 있어서, 오래 머무르다가는 언제 불법체류자로 잡혀서 본국으로 송환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자리잡고 있죠. 따라서 조선족들은 가능하면 "빨리", 그리고 위험을 감수해서라도 "더 많이" 주는 곳으로 달아나만 한다고 생각해요.

    제 가 중국에 가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이렇게 엄청난 돈을 들여 불합리하게 조선족들의 취업이 이루어지는 맥락 뒤에는 여러 가지 것들이 숨어 있어요. 하지만 오늘은 그에 대한 이야기는 쓰지 않으려고 해요. 왜냐구요? 그렇지 않아도 글이 복잡해졌는데 그 이야기까지 쓰면 글이 너무나 혼란스러울 것 같고, 또 이 글의 목적이 그러한 불합리적인 제도를 비판하고자 했던 것이 아니니까요.

    예 상외로 이야기가 너무 산만해진 것 같아 걱정이 되네요. 웹진에 이런 글이 과연 괜찮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요. 하지만 여러분들에게 우리 주위에 살고 있는, 그러나 "소외되어 있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보여주고 싶었어요. 이 이야기는 그런 것들 중 한 가지예요. 우리가 생각하고 경험하는 것과 다른 맥락과 경험들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같은 공간 속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말이에요.

    다음 번엔 "중국집 이야기" 시리즈의 두 번째로 "중국 여성들의 생활과 삶"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려고 해요. 그들의 일상적인 경험, 감정, 그리고 호호아줌마 본연의 주제인 "성생활"에 이르기까지. 그럼, 다음에 만날 때까지 모두들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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