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라는 슈퍼우먼이 되어야 했다.
] -입센의 '인형의 집'을 읽고
"여자와 노예는 사람이 아니므로 그들은 사람의 즐거움을 위해 봉사하도록 태어났다"
엄청난 남성 우월 주의자가 아닌 이상 이 말을 들은 사람마다 위의 말을 한 사람, 정말 돌 맞아 죽어도 할 말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럼 이 말은 또 어떤가. "여성은 남성을 즐겁게 해주기 위해서만 존재한다. 그들은 스스로 무엇을 판단할 능력이 없기 때문에 항상 여성은 아버지나 남편의 판단을 따라야 한다." 이 말 한 사람 역시 아까 그 말 한 사람과 같이 돌 맞아 죽을만한 인물이라고 생각 할 것이다.
그런데 이 말을 한 사람은 각각 고대의 내노라 하는 철학자인 플라톤과 인간 해방을 주장했던 자유주의 교육자 루소이다. 우리가 윤리 교과서며 기타 수많은 책에서 진리처럼 받들어 모시는 그 플라톤과 교육 서적이라면 빼놓지 않고 등장해서 암기거리를 더해주는 그 루소 말이다. 혹자는 그들이 산 시대가 여성을 인간으로 취급하지 않는 시대였기 때문에 당대의 석학이라고 해도 어쩔 수 없는 일 아니냐고 말할지 모른다. 그렇다.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하는 바이지만, 문제는 요즘에도 이러한 사상이 존재하고 있으며, 또 교묘히 포장되어 있다는 점이다.
<여기 한 부부가 있다. 남편은 곧 은행장으로 취임할 착실한 변호사이고 부인은 세 아이를 기르며 집안 살림을 꾸려나간다. 크리스마스 전 물건을 사 가지고 돌아온 부인에게 남편이 "거기서 조잘대는 건 내 종달새인가?"라고 묻자 부인은 "네 그래요 "하고 즐겁게 대답한다. 그러나 남편이 사 온 물건에 대해 절약하지 않았다고 설교를 하자 부인은 좀 풀이 죽는다. 그런 부인을 달래며 남편이 생활비를 건네주고, 부인은 돈을 받으며 곧 마음이 풀어진다.>
이 부부가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다음의 부부에 대해서는 어떤 느낌일까
<여기 한 부부가 있다. 부인은 곧 은행장으로 취임할 착실한 변호사이고 남편은 세 아이를 기르며 집안 살림을 꾸려나간다. 크리스마스 전 물건을 사 가지고 돌아온 남편에게 부인이 "거기서 조잘대는 건 내 종달새인가?"라고 묻자 남편은 "네 그래요 "하고 즐겁게 대답한다. 그러나 부인이 사 온 물건에 대해 절약하지 않았다고 설교를 하자 남편은 좀 풀이 죽는다. 그런 남편을 달래며 부인이 생활비를 건네주고, 남편은 돈을 받으며 곧 마음이 풀어진다.>
처음 부부에게서 문제점을 찾지 못한 사람은 두 번째 부부의 모습에서도 아무런 문제점을 발견하지 못해야만 성 역할의 고정관념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사람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남자들이 두 번째 부부를 보면서 " 남편이 돈을 못 벌어서 기를 못 펴는군. 혼자 남자 망신 다 시키네. 남자는 죽어도 나가서 돈을 벌어야지 안 그러면 여자한테 꽉 쥐어서 산다니까" 라고 말할 소지가 크다. 여자는 또 어떤가! "남자가 얼마나 무능하면 집에서 살림을 할까. 내 남편은 돈도 잘 벌고 능력 있는 사람이면 좋겠어." 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두 경우 모두 처음 부부에게서는 별다른 문제점을 못 느낄 것이다. 여기에 현대 여성의 문제가 숨어 있는 것이다.
흔히 가정에서의 남녀 차별이라고 하면 남편이 부인에게 폭력을 행사한다거나 강압적으로 대하는 모습을 떠올릴 것이다. 처음 부부의 경우 이와 같은 문제는 전혀 나타나 있지 않고, 남편은 부인을 매우 애지중지하며 사랑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한 꺼풀만 벗겨 생각해 보면 부인은 남편에게 종달새 같이 재롱을 떠는 존재이고 남편은 아내에게 돈을 주면서-경제적인 구속- 혼냈다가 달랬다가 하는 우월적 존재이다. 이는 평등한 부부관계가 아닌 주인과 하녀의 관계, 아니 주인과 인형의 관계이다.
여기에서 부인은 바로 입센의 「인형의 집」에 살고 있는 노라이다.
처음에 노라는 남편에게 사랑을 받고 사는 것이 행복이라고 느끼며 열심히 청소하고 즐겁게 식사 준비를 했으며 아이들을 길렀다. 그러나 남편의 병 때문에 몰래 빌린 돈이 문제가 되자 남편은 그녀를 비난하며 "아아, 이제야 알다니. 8년의 세월에 나의 기쁨이요, 자랑이었던 여자가 위선자요, 거짓말쟁이요, 범죄자라니, 아 저 속에는 말할 수 없이 더러운 것이 숨겨져 있어"라고 외친다. 그러나 노라가 친구의 도움으로 그 문제를 해결하자 남편은 "자 이제 모든 것이 끝났소. 난 살았어. 노라 … 참으로 아늑한 가정이로군. 내 작은 종달새, 이젠 나의 억센 날개 밑에서 쉬어요. 무서운 매의 발톱 밑에서 구출 해다가 작은 비둘기처럼 당신을 지켜줄 테니까." 라고 말하며 다시 노라의 보호자를 자처한다
이 부분에서 나는 노라가 "좋아요, 여보. 과거는 잊고 다시 행복하게 살아요"라고 말하면서 남편 품에 안겼더라면 120년이 지난 지금에도 달라진 것은 아무 것도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혹자는 꼭 그렇게까지 집을 나가야 했느냐고 말하고 또는 그렇게 집을 나간 노라는 어느 집 하녀로 빈곤하게 살거나 아니면 능력 없는 여자가 할 수 있는 최후의 일, 즉 창녀가 되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나는 여행 가방을 들고 " 우리의 공동 생활이 진정한 결혼 생활이 되면 돌아오겠다"며 " 그럼 안녕"을 외친 노라를 절대적으로 지지한다. 노라가 그렇게 집을 나가 하녀나 창녀가 되었다 해도 최소한 그녀는 밥과 청소를 해주고 임금을 받았을 것이고 또 섹스를 제공하고 그 정당한 대가를 받았을 것이다. 그것은 가정 내에서 밥과 청소, 그리고 섹스를 하고 남편에게서 생활비를 받는 것과는 다른 일이다. 남편은 그 대가로 그녀를 소유했다. 노라가 하녀로 일하는 그 집, 또 창녀로 생활하는 그 곳에서는 대가가 흡족하지 않거나 고용주나 손님이 횡포를 부리면 그만두거나 손님을 받지 않을 자유가 있는 것이다. 어느 누구도 그녀를 소유할 수 없다.
나는 절대로 페미니스트가 아니다. 나는 휴머니스트이다. 물론 이 단어는 나만이 규정한 뜻으로 쓰인다. 남자와 여자로 규정짓기 전에 모두 인간으로 보자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남녀 차별의 희생자는 비단 여자뿐만이 아니다. 여성이 여성다움을 강요당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남성에게는 여성다움이 비웃음거리가 되고 강한 남성상만이 요구되는 것이다. 이것은 인류에게 너무 큰 희생이다. 여성성이 강한 남성은 그 여성성을 발휘할 수 있어야 하고 남성성이 강한 여성 역시 그 남성성을 살리는 것이 사회에 더 큰 도움이 될텐데 남성의 여성성은 억눌러지고 얼마 되지 않는 남성성만을 키우도록 교육받는다. 여성의 남성다움은 일찌감치 잘려진다.사실 남성다움이니 여성다움이니 하는 언어 자체도 나는 거부한다. 부드러움, 세심함, 혹은 강인함, 진취적인..과 같은 단어는 여성이나 또는 남성을 규정짓는 말이 될 수 없다. 다만 누구는 부드럽고 또 다른 누구는 진취적일 수 있다. 그 '누구'는 여성이 될 수도 있고 남성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과거에는 남성이 여성에게 여성스러울 것만을 요구했다. 그러나 남녀 평등이 실현되었다고 아니 오히려 여성 상위 시대라고 주장하는 요즘은 똑같이 경제적인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백 번 옳은 말씀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여성에게 그 경제력과 더불어 아직 여성스러움까지 요구하고 있다.
노라의 집을 읽으면서 나는 내 자신이 이러한 이중적인 사회 구조 속에서 살고 있는 것을 느꼈다. 나는 내 자신의 능력 신장을 위해 공부하고 고민한다. 그러면서도 '할 줄 아는 요리가 하나도 없냐'는 남자친구의 핀잔에 나도 요리를 잘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이 시대를 사는 거의 모든 여성의 고민일 것이다. 남자들과 어깨를 나란히 해야 한다는 달콤한 남녀평등의 세계와 말도 사근사근하게 하고 애교도 잘 부리며 요리와 육아도 척척 해내는 전통적인 여성 영역의 세계! 이 두 세계에서 모두 승리하는 방법은 아마도 노라처럼 여행가방을 싸서 이 사회 밖으로 걸어나가거나 무한 능력의 슈퍼우먼이 되는 수밖에 없는 것 같다.
나는 오늘 하루종일 TV를 보면서 거의 모든 드라마에서 여자들이 아침 밥을 하는 장면을, 그리고 깔끔하게 양복을 차려입은 남자들이 식탁에 앉아서 차려진 밥을 먹는 것을 보았다. 너무 많이 보아서 익숙한 광경이었다. 나는 왜 남자가 앞치마 두르고 밥하는 것은 나오지 않을까 생각했다.(나는 휴머니스트이기 때문에 만일 모든 드라마에서 남자가 밥을 한다면 왜 남성으로 하여금 가사일을 전담하도록 하고 있는지, 그것이 그릇된 성 고정관념을 형성시킬 수 있을 것이라며 항의할 것이다). 그러나 모든 여성 운동에 강력한 면역 체계를 형성해버린 이 사회는 오늘도 나로 하여금 슈퍼우먼이 되는 방법을 연구하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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