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48 번 글: 평등한 언어 사용을 위하여.. |
| 글쓴이: 독서토론 |
글쓴날: 2002년 12월 21일 11시 14분 |
읽은수: 4948 |
우리 여성들은 평소 어떤 언어를 쓰고 있는 걸까? 우리는 여성으로써 바른 언어를 사용하고 있는 걸까? 이런 의문들은 여성으로 태어난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해 봤음 직한 생각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여성 명사와 남성 명사라는 것이 따로 있지 않지만, 프랑스와 같은 경우는 명사에 남성과 여성이 있다. 프랑스하면 자유의 나라라는 생각을 많이 했었기에 프랑스에서 그런 성 차별적 언어를 쓰고 있는지는 미쳐 생각지 못했다. 사실, 고등학교 때는 남성과 여성 명사를 외우는 것에만 급급했지 그런 것에 대해 생각해 보지 못했다. 결국, 대학 때 와서야 '프랑스어'라는 과목을 들으면서 일본은 남성이고 한국은 여성인 것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또한, '우리 사회에서 우리도 모르게 쓰고 있는 여성 비하 적인 언어들은 무엇이 있을까'에 대해서 생각해 보다가 문득 나의 경우를 생각해 보게 되었다. 내 주위에서 쓰여지고 있는 언어들을 먼저 돌아보려고 한다.
우리 집에는 딸이 셋이 있고, 내가 마지막이다. 물론, 아버지는 내가 아들이길 바라셨다고 한다. 그래서 인지 유독 나에게 집착하시는 아버지를 자주 발견하곤 한다. 내가 유치원 때의 일이다. 아버지는 술에 취하셨고. 내가 보이지 않으셨던 모양이다. 아버지는 어머니를 향해 당신이 아이를 낳겠다며 아들을 부르짖고 계셨다. 정말 그건 절규해 가까웠다. 나는 지금까지 그 일을 잊지 못하고 있으며, 내가 남자가 아니라는 자격지심을 항상 안고 살아왔다. 그래서 인지 남자들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내 맘에 꽂힐 때가 많았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나는 아버지의 기대 속에 고 3을 보냈고, 그런 부담감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재수를 하고 말았다. 기숙사에 들어간 나는, 그 곳에서 30명 정도의 남자, 20명 정도의 여자학생으로 구성되어 있는 반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 곳에선 1년 동안의 고달픈 삶을 나름대로 즐겁게 보내기 위해 다른 아이들의 별명을 부르거나 아이들의 단점을 놀리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우리 반에는 외모가 그렇게 예쁘지 않은 여학생이 있었다. 그 학생을 남학생들은 '북한'이라고 놀려대고는 했다. 나는 그 학생의 진심을 보지 못하는 그 아이들이 끔찍하게 미웠지만, 나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당사자가 항상 아무 말도 하지 않는데, 내가 나설 수는 없는 일이었다. 결국, 별로 심각하지 않은 일에 그녀를 무시하던 한 남학생이 그녀를 '개 같은 년'이라고 욕하였다. 하지만, 그녀는 또 말이 없었다. 난 정말 화가 나서 그 남학생에게 똑같이 '개 같은 놈'이라는 욕을 퍼부었다. 그 후로는, 남학생들이 나를 별나라 사람처럼 보기 시작했다. 결국, 나 또한 남학생들의 놀림감이 되었다. 그 때가 되고 나서야 나는 왜 그녀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는지를 느꼈다.
하지만, 나는 끄떡도 없었다. 그 학원에서는 국사 선생님이 계셨는데, 선생님께서는 지난 시간의 수업내용을 물어봐서 맞추지 못하면 앞으로 불러내 때리시곤 했다. 하지만, 그 대상은 남자 뿐 이었고, 만약 여학생은 자신의 문제를 맞추지 못하면 자신이 맘에 드는 기사를 정해 놓고 이런 경우에 불러내서 그 남학생이 대신 맞곤 하였다. 그리고 나선 그 남학생은 "나는 ○○의 기사다."라는 말을 해야만 한다. 난 정말 그 기사라는 전근대적인 사상이 싫었다. 하지만, 아이들은 모두 다 그것을 즐기는 듯 보였다. 남학생들은 자신이 여학생을 대신하여 맞는 것을 남성의 능력인양 바보처럼 웃어댔고, 여학생들은 그런 남학생들을 보며 자신의 연약함을 뽐내는 것처럼 보였다. 어느 날, 내가 호명이 되었고 나는 문제를 맞추지 못했다. 물론, 선생님은 내 기사를 부르라고 하셨다. 그 당시 난 처음 호명되었기 때문에 기사라는 것이 없었다. 그러자, 선생님은 "네가 맘에 드는 얘를 골라라."라고 하시며 자리 배치도를 내 보이셨다. 하지만 난 "전 기사 같은 거 싫은데요."라고 당당히 말했다. 그 당시 분위기는 말 할 수 없을 정도로 썰렁했다. 하지만, 난 정말 기분이 좋았다. 나에게 솔직할 수 있는 나 자신이 자랑스러웠고, 누구의 눈도 의식하지 않는 내가 당차 보였다. 당연히 그 뒤로도 난 남학생들과 친하게 지낼 수 없었다. 하지만, 그런 것이 나에게 중요한 것은 아니다. 나 자신이 만족할 수 있는 말을 했다는 것이 더 없이 떳떳했다.
남학생들이 평상시에 자주 하는 욕을 들으면서도 여학생들은 그것이 당연한 듯 아무런 느낌이 없는 듯 보였다. 그런데, 여학생이 욕을 하면 왜 그 것이 흉이 되는지 이해 할 수가 없는 일이다. 사실, 욕이라는 것이 남의 기분을 상하게 하기 때문에 되도록 사용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여성과 남성이 써야 할 단어가 따로 있다는 것 자체가 이해 할 수 없는 일이다. 이 것 또한, 학원에서 있었던 일이다. 우리 반에는 굉장히 쾌활하고 밝은 성격의 여학생이 있었다. 그 여학생이 가끔씩 욕을 하긴 했는데, 그것이 다른 사람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종류는 아니었다. 하지만, 남학생들은 그 여학생을 너무 나댄다며 별로 좋게 생각하고 있지 않았다. 다른 예로는, 어떤 남학생이 우리 반의 여학생을 좋아했는데, 그 여학생을 왜 좋아하는지 묻자, "조용해서 좋아."라는 말을 했다. 그 표정이 너무 당당해서 기가 찰 뿐이었다. 그렇다면 그 남학생의 말처럼 여자는 아무 말도 하지 말고, 입을 항상 다물고 있어야 하는 인형이라는 말인가.
문제는 여자들에게 더 많다고 생각된다. 분명히 불공평하다고 느끼고, 기분이 상하지만 대부분의 여성들이 그런 남성들 앞에서 침묵을 지킨다는 사실이다. 물론, 남성들이 먼저 여성 비하 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으면 좋지만, 그 것이 왜 나쁜지를 모르는 남성들도 있다. 그럴 때 앞에 나서서 그런 남성들의 생각을 뜯어고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평소에는 아무 말도 하지 못 하면서 여성이 집단으로 모이면 큰 소리를 낸다. 위에서 든 예 중에서 어떤 남학생이 여학생에게 한 욕을 다른 여학생들도 들었을 때 앞에 나서서 네가 잘못 했다고 지적한 사람은 나 외에 한 명도 없었다. 그저 뒤에서 그 남학생의 욕을 할 뿐 이었다. 나중에 반 분위기가 극도로 나빠졌을 때 반에서 나이가 제일 많은 한 오빠가 나와서 남학생들과 여학생들이 화해를 했으면 좋겠다는 말을 했을 때도 "그 남학생이 여학생에게 사과를 해야하는 것 아닌가요?"라는 말을 한 것도 나였다. 반의 모든 여학생들은 서로를 멀뚱멀뚱 쳐다 볼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들의 그런 태도가 결국, 남녀 차별적인 사회 구조를 만든다는 것을 그녀들은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여성은 언어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차별적 대우를 받는 것이 근절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런 대우를 받기 전에 여성 먼저 앞장서서 그런 사회적 풍습처럼 굳어져 있는 성차별을 뿌리뽑아야 한다. 여성이 앞장선다는 것은 집단 뿐 만 아니라 개인 일 때도 그런 행동을 보여야 하는 것이다. 우리의 앞선 행동이 여성으로서 동등한 대우를 받을 수 있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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