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1 번 글의 답장글: 좋은 친구 딸기의 진정한 딸기 얼굴 |
| 글쓴이: 난다 |
글쓴날: 2000년 03월 28일 14시 19분 |
읽은수: 1436 |
참.
딸기가 아래글에 '대단한'영화라고 예의있는 코멘트를 했지만
사실은 좋게도 나쁘게도 대단하지 않은 작고 단순한 영화입니다.
첫날 아침 제가 하도 간만에 카메라를 잡아서
결정적인 실수를 한 나머지 한 씬을 통채로 다시 찍어야 했지 뭐예요. 너무 쪽팔리고 미안해서 의기소침해졌어요.
다시는 영화찍지 말아야지 중얼거리면서 대강대강
오케이 하다가
딸기가 피범벅으로 머리감는 장면을 뷰파인더로 보는데,
카메라를 잡은 팔에 싸아하고 느낌이 오더라구요.
엔지난 것도 아닌데, 대여섯 테이크나 찍었어요.
자기 목에서 피 흐르는지도 모르고
순종적인 자세로 무표정하게 머리감는 여자가
내 친구 딸긴데
그리고 그거 내가 시킨 건데
첨 보는 사람이 첨 보는 일을 하는 것처럼
묘하게 신선해서 그걸 오래 보고 싶어서.
영화 찍는 일은, 언제나 느끼는 거지만
누군가를 착취하는 일이고, 그건 혼자 카메라 들고
길거리를 나가도 마찬가지고 그래서 언제나
마음에 걸리지만, 하나를 끝내면 꼭 다음 걸 찍고 싶고
왜 그런지 몰라요. 욕심 때문이겠죠.
그래서 주위에 있는 친구들에게 너무 미안하고 고마운데,
찍은 게 볼만하면 그래도 덜 미안하겠지만
늘 꾸리한 것만 찍어서 더 쪽팔려요.
가끔 깜짝 놀랄 정도로 딸기는 좋은 친구입니다.
내가 어떻게 해야 딸기처럼 좋은 친구가 될지 모르겠어요.
그나저나 그날
딸기는 얼굴이 벗겨져서 빨갛게 되어서
정말 딸기처럼 되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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