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0 번 글: 내, 혹은 당신의 코리안 패키지 |
| 글쓴이: 모기 |
글쓴날: 2001년 04월 30일 12시 37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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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솔직히 이렇게 학교에서 사는 게 불편하지는 않다. 원래 잠자리 잘 안 타고, 지저분해서 씻는 거 잘 안 하고, 어차피 돈 벌어봐야 빼앗기거나 누군가 몰래 돈을 들고 가버리기 때문에 잃어버려도 아깝지 않을 정도의 최소한의 생활비만 벌어서 사는 것.
대학 졸업장 따위는 없다. 당신들은 여전히 아까와하지만, 어디까지나 가운데를 빼고서 생각하는 거니까. 대학 졸업장 하나를 위해서 일하는 기계로서만 3년을, 인생에 대한 어떤 비전도 없이 내가 누구인지 내 꿈이 무엇인지 모든 것을 잃어버린 채로 살았었다. 대학생, 혹은 대학 문화라는 건 좋긴 좋다. 학교에서 산다는 건 어쩌면 그에 대한 동경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매해 비슷한 고민들이 반복되서 조금 지겹다는 생각도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지금의 내가 잃어버린 무언가를 가지고 있는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이 즐겁다.
대학 졸업장을 위해서가 아니라, 무언가 정말 배우고 싶어서 대학에 들어갈 지도 모른다. 언젠가는. 지금은 아니다.
집. 처음엔 무척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완전한 나만의 공간. 편히 쉴 수 있는 공간.
그러나, 어디든 어느 공간이든 내가 완벽하게 쉴 수 있는 공간은 없다라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집, 차, 무언가. 생기면 생길 수록 나는 거기에 더 얽메이게 된다. 집을 유지하기 위해, 공과금, 보증금 등등을 벌기 위해 나는 더 많이 돈을 벌고 더 많은 시간을 거기에 할애하지 않으면 안 된다. 나는 그렇게까지 집이 소중한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 시간에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친구들과 세미나하고, 원래 배우고 싶었던 프로그래밍 공부하고, 그러는 편이 훨씬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돈을 열심히 벌때도 미래에 대한 확실한 비전은 없었다. 내가 그 미래엔 고생을 좀 덜 하겠지 하는 확신도 없었다. 미래도 여전히 똑같이 돈 버느라, 제 날짜에 세금내느라 빡빡하겠지 라는 생각밖에 안 들었었다.
가끔,
가끔 미래에도 나 이렇게 정말 행복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기는 한다. 가끔, 내 안의 15%(테스트에 15%의 대한사람이라고 나왔었다.)의 코리아가 자꾸 나를 괴롭게 하고 있기 때문에 직장은, 나이제한선은, 학력은, 돈은, 옷은, 오늘의 잠자리는... 고민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내 힘, 내 나약한 힘과 나약한 의지가 한없이 서글퍼질 때도 있다.
내게 필요한 건,
그러니까 진작에 돈을 더 열심히 벌지 그랬니, 진작에 학교를 졸업하지 그랬니, 진작에 좋은 남자와 약혼을 하지 그랬니 라는 식의 말이 아니다.
내게 필요한 건,
가끔 흔들리기는 해도 거의 행복한 내 상태에 대해 인정해 주는 것 뿐이다. 롤러 코스터의 노래처럼, 참 잘했어요 라는 이야기가, 가끔 흔들릴 때 필요한 것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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