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9 번 글: 군대, 그 잊어버리고 싶은 기억들... |
| 글쓴이: 땅개 |
글쓴날: 2001년 04월 29일 13시 35분 |
읽은수: 2313 |
군대에 대해 "또"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페미니스트들은 무지 무지 지겨울것이다. 그래, 우리도 군대가면 될거 아니냐는 반응에서부터 징병제 반대, 군대의 개혁까지 그 반응은 무지무지 다양할 것이다. 하지만 그 지겨운 군대 이야기를 해야겠다.
이런 이야기를 이런 보드에 하면 싫어할 것은 알지만 나로서는 나의 지나간 일들에 대해 정리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군가산점문제나 기타 문제들로 여성주의 보드에 공격을 하는 것은 대상이 잘못 되었다고 생각한다.
난 후방부대의 소위 '땅개(보병)'로 근무를 했었다. 숨이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훈련소 생활을 마친 후, 자대에 배치를 받았고 그곳에서 제대할 때까지 복무를 했다. 한 일은 별로 없었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맞을 듯 하다.
우리는 작업을 하고 하수도를 청소하고 등등 그런 일들을 했지만 우리 부대에서는 누구도 우리가 나라를 지킨다고 생각을 하지 못했다...
눈에 보이는 적이 없다 보니 고참들은 밑에 새로운 애들 들어오면 괴롭히는 것이 일이었다. 누구라도 군대 생활을 한 사람은 겪었을 만한 그런 더러운 일들이 나에게도 있었다. 구타에 잘못된 것들을 보고도 저항하지 못하는 길들여진 비겁함들...
심지어 난 내 동기가 고참에게 맞아서 씩씩거릴 때 네가 소원수리하면 남아있는 사람들 괴로우니까 소원수리 하지말라고 이야기한 적도 있었다.
난 고참들 그리고 후참 녀석들 해서 한 100여명정도의 신상을 대강 알고 있다. 일병달고 어느 정도 적응이 되었을 무렵부터는 여러 가지 전에는 사소하게 보이는 일들에 눈을 뜨게 되었다. 내가 부대에서 아는 놈들 중에 대부분의 아버지는 농사나 고기잡거나 구멍가게경영이나 백수 등등을 한다.
텔레비젼이나 다른 데에서 보면 판사나 교수나 의사나 기자들이 차고 넘치는데 내가 아는 땅개들의 아버지는 왜 대부분 술을 퍼마시고 무식하고 어머니와 아들 잘 패고 하는 빵점짜리 아버지인지 난 고민해야 했다. 그리고 왜 그 땅개들은 과반수가 고졸아니면 전문대나 지방대 출신인지도 고민해야 했다.
티비를 켜면 언제나 서울대, 연대, 고대생이 넘치는데 말이다...
최근에 군대 병역 비리의 문제로 어떤 원사가 오랜 수배기간 끝에 잡혔다. 그래 그 사람 벌을 주면, 그 사람한테 뇌물 주고 자식 군대 안 보낸 사람들 다 잡으면 내 속이 후련해질 것인가?
그 대답은 아니다 라는 것이 정답이다. 지금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군대를 안간다.
요즘 강남의 잘 사는 동네에서는 군대를 가는 아이가 있으면 친구들이 너희 부모는 친부모가 아닌가봐 라고 이야기를 한다고 한다.
이제는 뇌물을 굳이 안 주어도 외국 유학등을 통해서 군대를 안 갈 수 있는 시대가 왔다. 그래 그것도 능력이니 다 봐주어야 하는 것일테지.
하지만 그것을 인정한다면 한편으로 가난하고 못사는 사람들도 나라를 지키지 않아도 될 권리를 주어야 한다. 아니 나라를 지킨다는 명목으로 26개월 잡아두며 인간성 파괴시킬 수 있는 그 일들을 거부할 권리들을 주어야 한다. 나라는 누구에게 국방의 의무를 뷰여해야 하는가?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라곤 매일 때리거나 술 먹고 난장판 부리던 기억, 사회가 준 것은 삼류인생이라는 딱지 밖에는 없는 스무살 갓 넘은 아이들, 아니면 아버지가 그 잘난 국회의원이고 의사고 판사고 대기업간부인 아이들인가?
국방의 의무는 누구나 져야 하는게 맞다. 하지만 최소한 어떤 사회이던지 그 지도층에게는 지도층 나름대로 지켜야 할 의무가 있다.
영국의 왕자는 왜 포틀란드 전쟁에서 나서서 전투에 참가했어야 했나? 영웅주의에 물든 놈이라서 그런가? 왜 2차 대전에 죽은 사람들의 이름들을 이튼 스쿨 앞에 써놓는가? 그 학교 출신 잘 나가는 사람 말고 말이다..
왜 미국 대통령들은 하나같이 월남전때 뭘 했나가 중요한 이슈가 되는가?
최소한 지도층이면 지켜야 할 최소한의 의무가 있다. 그런 것 하지 않는 사람들이 나라걱정하는 척 하고 국민들의 희생 요구하고 파이를 키우자고 하면서 언론 플레이하는 것에 난 지친다.
물론 못사는 사람들이라고 면죄부가 있는 것은 아니다. 가난한 남성들 그들 대부분이 여성들에게 그리 욕먹는 무례하고 성폭력을 휘두르고 그 인간성에 있어서 잔악한 인간들이다.
잘 사는 사람들은 한층 여유가 있기 마련이고 대부분의 경우 우아한 친절을 베푸는 데 덜 인색한 듯 보인다.
하지만 사람들이 한 일들은 미워해도 그 사람자체를 때려 죽일 이론을 갖는 것은 힘든 일임을 알아야 한다.
그 사람을 때려 죽이려면 그 사람의 삶을 전부 들여다 보고 그 사람의 그 지독한 어둔 그늘들을 똑바로 볼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한다.
난 고등학생 때까지 서울의 이곳 저곳 판자촌에서 살았었다. 내 친구들을, 나를 돌이켜 보면 그 어두운 일들을 돌이켜 볼 수 있다.
갓 중학교 들어간 피도 안마른 남자 여자 아이들이 많이 성경험을 가지고 있었다. 내 친구들에게 성이라는 것은 유일한 쾌락이었을 뿐이었다. 성은 나쁜 것이 아니어도 왜 그들에게는 '성' 밖에 없었는가?
난 여기 저기 구석에 처박혀 포르노보고 자위행위나 일삼는 그런 머리에 피도 안마른 싸가지 없는 놈이었다.
난 내 친구들에게 프리 섹스니 어쩌고 저쩌고를 붙이는 일들은 웃기지도 않는거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아무리 잘 봐줘야 삶의 희망을 잃어버린 아이들일 뿐이었다.
그들에게 무엇보다 가까이 있었던 것은 폭력들이었다. 일상적인 폭력들, 소위 말하는 양아치들의 그것 말이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어떤 이론들이 아니라 조그마한 삶의 희망일지 모른다.
난 우리 사회가 많이 달라지길 바라지 않는다. 그건 과욕이다.
나는 최소한 잘 사는 사람들 많이 배운 사람들이 조금만 더 똑똑해졌으면 좋겠다. 그렇게 하면 우리 사회가 유지될 것 같아...?
하긴 바보들에겐 약도 없는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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