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91 번 글의 답장글: RE: 씁쓸한 백화원 초대소 사진 |
| 글쓴이: 허난설헌 |
글쓴날: 2000년 06월 14일 12시 07분 |
읽은수: 611 |
왜 그게 불쌍해 보였나요?
전 두 내외분이 너무나 당당하고 자랑스러웠어요.
오히려 불쌍 한 건 생의 반려자 하나 없이 삐딱하게 서있던 김정일의 모습이였어요.
손명순이라면 몰라도 이희호 여사를 들먹이는 건 용납 할 수 없군요.
지금의 김대중 대통령을 만들어 내신 여자 대통령 버금가는 분을...
: 갈려다 다시 왔어요. 아직도 얘기하고 싶은게 남은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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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야기는 어제 모두들 보셨을 백화원 초대소 사진에서 시작합니다. 모두들 분단을 넘어서는 회담에 열광하고 있을 때 제눈엔 엉뚱한 것만 보였습니다. 열 대여섯명이 늘어서 있는 사진. 거기에 단한명의 여성이 있었습니다. 김대중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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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의 북한방문 자격은 전혀 법적 지위가 부여되지 않는 아무개의 부인입니다. 정상회담 관례상 대체로 정상 내외를 초청하지만 북한은 그것이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대통령의 부인이라는 '억지'를 써서 동행하게된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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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사진에서 당신은 무엇을 보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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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사진뿐이 아니죠. 이제 하루종일 화면을 가득채우며 등장한 인물들의 면면을 보셨습니까? 방문단도, 그걸 취재하는 기자들도, 또 방문단을 맞는-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제국의 시대를 향해 돌진하는 히틀러의 초상과 같은-쪽의 사정도 같았습니다. 모두 남성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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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성들은 보조자의 보조자로 나타나고 있었습니다. 꽃을 들고 나와 남성을 돋보이게 하는 정도의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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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마터면 난 울뻔 했습니다. 단 한명, 최고회의장을 안내하던 '이현상의 따님'이 나오지 않았다면 말입니다. 아-, 그나마 그녀의 이름이 기억나지 않습니다. 단지 이현상이라는 걸출한 남성게릴라의 딸이라는 사실밖에는. 그리고 그것이 강조되어 전달되어야하는 세상때문에 또 한번 울뻔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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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들은 그런데도 자꾸 세상이 왜 이렇게 되었느냐고 따지려고만 합니다. 어떻게하면 바꿀 수 있는가를 따지려고만 합니다. 왜 따지는 거죠. 바꾸고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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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닙니다. 당신이 따지는 이유는 바꾸고 싶어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당신의 태도에서 '여성들이 문제를 삼으니까' 그것마저 포용하여 지배해내려는 교활함을 읽혀집니다. 어쩌면 저도 그런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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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불평등의 뿌리는 역사에도 사회에도, 물질에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건 바로 나 자신속에서 존재합니다. 당신이 불평등에 문제를 느끼고 사회를 바꾸려고 하는 순간, 불평등은 새로운 이름을 부여받으며 생명을 이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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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이순간 당신의 마음,태도, 생활방식을 저 불평등의 3-7만년의 역사를 거슬러올라가 二異不二(다르지만 둘은 아니다)의 자세로 구별도 차별도 없이 온전히 세우면 그만입니다. 여-여,여-남,남-여,남-남 구별없이 배려하고 존중하는 것 말입니다. 그럼 그순간 당신에게는 차별의 세계가 사라집니다. 아니 당신에 의해서 짓밟혀온 영혼들의 목소리에 진정으로 귀를 기울이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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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사진 얘기로 돌아가 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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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나 어색해 보이던가요. 아무개의 부인 ***여사. 남성들의 틈에 자신의 지위마저도 없이 끼어있어야 하는 '독립적 주체가 아닌 한 남자의 부인'말이죠. 난 그여자가 불쌍해서 또 한번 울뻔 했습니다. 나라의 최정상에 있는 여성이 그럴진대 당신 바로 옆에 있는 여자는 지금 이순간도 얼마나 힘들게 끼어살고 있을지 생각해 보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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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발 부탁드립니다. 너무 따지지 마십시오. 평등이네 뭐네 하며, 지배네 뭐네 하며 따지지 마시길 부탁드립니다. 그 남성의 개념을 가지고 주장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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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도 기어코 당신들이 남성의 언어를 쓰기를 원하신다면 그래,
: 난 차라리 지배받고 싶습니다. 아니, 난 남성들이 여성들에 의해, 모성에 의해 지배받아야 한다고 믿습니다. 모성에 의한 지배는 결코 지금 우리가 경험하였던,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그 '지배'가 아니라 그저 여성의 언어로 '낳아 기르는'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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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한번 부탁드립니다. 언제까지 사회탓, 역사탓 하고 계실 요량입니까?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고 말씀하시는 것이 오히려 솔직하다고 생각치 않으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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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 자신으로부터 비롯하지 않는 문제는 하나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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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때려도 보고, 타일러도 보고.....우, 이제는 진짜 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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