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려다 다시 왔어요. 아직도 얘기하고 싶은게 남은 모양입니다.
이야기는 어제 모두들 보셨을 백화원 초대소 사진에서 시작합니다. 모두들 분단을 넘어서는 회담에 열광하고 있을 때 제눈엔 엉뚱한 것만 보였습니다. 열 대여섯명이 늘어서 있는 사진. 거기에 단한명의 여성이 있었습니다. 김대중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
그녀의 북한방문 자격은 전혀 법적 지위가 부여되지 않는 아무개의 부인입니다. 정상회담 관례상 대체로 정상 내외를 초청하지만 북한은 그것이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대통령의 부인이라는 '억지'를 써서 동행하게된 것으로 보입니다.
그 사진에서 당신은 무엇을 보십니까?
그 사진뿐이 아니죠. 이제 하루종일 화면을 가득채우며 등장한 인물들의 면면을 보셨습니까? 방문단도, 그걸 취재하는 기자들도, 또 방문단을 맞는-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제국의 시대를 향해 돌진하는 히틀러의 초상과 같은-쪽의 사정도 같았습니다. 모두 남성이었습니다.
여성들은 보조자의 보조자로 나타나고 있었습니다. 꽃을 들고 나와 남성을 돋보이게 하는 정도의 말이죠.
하마터면 난 울뻔 했습니다. 단 한명, 최고회의장을 안내하던 '이현상의 따님'이 나오지 않았다면 말입니다. 아-, 그나마 그녀의 이름이 기억나지 않습니다. 단지 이현상이라는 걸출한 남성게릴라의 딸이라는 사실밖에는. 그리고 그것이 강조되어 전달되어야하는 세상때문에 또 한번 울뻔 했습니다.
당신들은 그런데도 자꾸 세상이 왜 이렇게 되었느냐고 따지려고만 합니다. 어떻게하면 바꿀 수 있는가를 따지려고만 합니다. 왜 따지는 거죠. 바꾸고 싶어서?
아닙니다. 당신이 따지는 이유는 바꾸고 싶어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당신의 태도에서 '여성들이 문제를 삼으니까' 그것마저 포용하여 지배해내려는 교활함을 읽혀집니다. 어쩌면 저도 그런지 모릅니다.
모든 불평등의 뿌리는 역사에도 사회에도, 물질에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건 바로 나 자신속에서 존재합니다. 당신이 불평등에 문제를 느끼고 사회를 바꾸려고 하는 순간, 불평등은 새로운 이름을 부여받으며 생명을 이어갑니다.
지금 이순간 당신의 마음,태도, 생활방식을 저 불평등의 3-7만년의 역사를 거슬러올라가 二異不二(다르지만 둘은 아니다)의 자세로 구별도 차별도 없이 온전히 세우면 그만입니다. 여-여,여-남,남-여,남-남 구별없이 배려하고 존중하는 것 말입니다. 그럼 그순간 당신에게는 차별의 세계가 사라집니다. 아니 당신에 의해서 짓밟혀온 영혼들의 목소리에 진정으로 귀를 기울이게 될 것입니다.
다시 사진 얘기로 돌아가 볼까요?
얼마나 어색해 보이던가요. 아무개의 부인 ***여사. 남성들의 틈에 자신의 지위마저도 없이 끼어있어야 하는 '독립적 주체가 아닌 한 남자의 부인'말이죠. 난 그여자가 불쌍해서 또 한번 울뻔 했습니다. 나라의 최정상에 있는 여성이 그럴진대 당신 바로 옆에 있는 여자는 지금 이순간도 얼마나 힘들게 끼어살고 있을지 생각해 보셨나요?
제발 부탁드립니다. 너무 따지지 마십시오. 평등이네 뭐네 하며, 지배네 뭐네 하며 따지지 마시길 부탁드립니다. 그 남성의 개념을 가지고 주장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래도 기어코 당신들이 남성의 언어를 쓰기를 원하신다면 그래,
난 차라리 지배받고 싶습니다. 아니, 난 남성들이 여성들에 의해, 모성에 의해 지배받아야 한다고 믿습니다. 모성에 의한 지배는 결코 지금 우리가 경험하였던,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그 '지배'가 아니라 그저 여성의 언어로 '낳아 기르는'것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한번 부탁드립니다. 언제까지 사회탓, 역사탓 하고 계실 요량입니까?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고 말씀하시는 것이 오히려 솔직하다고 생각치 않으십니까?
나 자신으로부터 비롯하지 않는 문제는 하나도 없습니다!
때려도 보고, 타일러도 보고.....우, 이제는 진짜 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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