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31(수) 19:19
[성폭력] 피해자 "인격살인"...평생 악몽에 시달려
24시간 위기센터-재활도울 장치 등 사회적 지원 시급
초등학교 때 이웃집에 사는 오빠 친구에게 성폭행당한 주부 A(50)씨는 40여년간 고통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 오빠 친구는 학교까지 찾아와 “말하면 죽이겠다”고 그녀를 협박했다. 어린 가슴에 두려움을 묻고 지내던 그녀는 세월이 한참 흐른 지난해 12월에야 언니와 여동생도 그 오빠 친구에게 모두 성폭행당한 사실을 알게 됐다. 세 자매는 사과를 받으려고 그 남자를 찾아갔지만 그는 미안한 기색조차 보이지 않았다. 성폭행범의 공소시효는 7년이기 때문에 법에 호소할 수도 없었다. 그날 밤 세 자매는 지난 세월이 하도 억울해 밤을 새워 흐느껴 울었다.
B(28)씨는 어렸을 때 부모가 이혼해 아버지, 삼촌과 함께 생활했다. 초등학교 시절 그녀는 삼촌으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 삼촌은 “아버지에게 이야기를 하면 죽인다”며 계속 성폭행했고, 괴로움을 이기지 못한 그녀는 고교때 가출했다. 꿈도 웃음도 잃어버린 B씨는 가출후 남자친구와 동거하는 등 문제 청소년으로 변해갔다. 그리고 지난 5월, 15년 만에 생모를 찾아간 B씨는 한없이 눈물을 흘렸다. 지난 시절을 되돌리고 싶다는 B씨는 아직도 삼촌이 협박하면서 말한 “말하면 죽여버려”라는 환청에 시달리고 있다.
힘있는 남성들은 직장과 가정, 마을에서 여성들을 ‘별생각 없이’ 성폭행하지만 피해자들은 평생 고통을 가슴에 묻고 있다. 이들은 정상적인 결혼생활을 하지 못하고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 또 ‘기억하기 싫은 경험’은 그들에게 삶에 대한 의욕을 송두리째 꺾어 놓는다. 상담기관에서는 “성폭력은 인격적 살인행위”라고 말한다.
성폭력 범죄는 매년 증가하고 있지만 우리사회는 이를 예방하거나 피해여성을 보살피는 사회적 시스템이 거의 없다. 더구나 최근 증가하고 있는 아동과 장애인 성폭력 피해자를 위한 대비책은 전무하다시피하다. 현재 성폭력 피해자들이 ‘위험’을 호소할 상담창구는 전국에 50여개. 대부분 민간단체에서 운영하는 이 상담소들은 그러나 열악한 재정 등으로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인력이 모자라 야간에는 응급신고를 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성폭력상담소 최영애 소장은 “미국과 같이 정부가 지원하는 24시간 운영 ‘성폭력위기센터’의 설립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신경정신과 의사 이나미씨는 “내성적인 여성이 폭행을 당했을 때 피해정도가 훨씬 크다”며 “무엇보다 성폭행을 당한 여성이 정신적으로 재활할 수 있도록 이들을 감싸안는 사회적 분위기가 아쉽다”고 말했다.
(안석배기자 : sbahn@chosun.com)
(최원석기자 : ws-choi@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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