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남성이 변해야 가정이 변해요
누구나 행복한 가정을 원하지만, 그 근원 가운데 하나가 `평등한 부부관계'라는 사실은 망각하기 쉽다. 특히 일에 치인 남성들은 가정이 `편히 쉴 곳'이라는 생각만 할뿐, 자신의 역할을 뒤돌아보기 힘든 형편이다.
한국가족상담교육연구소(회장 유영주)가 지난달 4차례에 걸쳐 실시한 가족생활향상 프로그램 `가족을 사랑하며 함께 사는 삶'에 참가한 남성들의 자기진단과 변화과정은 그래서 더욱 흥미롭다.
대상은 8명. 젊은 세대는 비교적 평등의식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나이든 층은 의식변화가 어렵다는 점에서 초등생 자녀를 둔 40살전후의 남성들로 한정했다. 회사원에서부터 자영업, 교수까지 다양했다.
우선 왜곡된 남성다움의 고정관념을 벗어나기 위해 `남성다움' 가치관 경매에 들어갔다. 사내대장부 컴플렉스, 성 컴플렉스, 만능인 컴플렉스 등 대표적인 7가지 컴플렉스를 14장의 만화로 만들어 `가짜'경매를 실시한 것이다. `설겆이 등 여자 일을 하면 남자답지 못하다'는 사내대장부 컴플렉스가 높은 `호응'을 얻었다. 100만원을 건 40살의 남성도 있었다. 하지만 토론 말미에 한 남성은 “신문에 언젠가 낮일 잘하는 남자가 밤일도 잘한다는 기사가 실렸는데 제발 그런 얘기 좀 안했으면 좋겠어요. 그런 사람이 얼마나 된다고…”라며 남성다움에 대한 고정관념이 남성 스스로를 위축시키고 있음을 확인시켰다.
2단계날. 여성에 대한 이해를 위해 `아줌마'하면 연상되는 것 적어오기를 과제로 냈다. “편안하다”“생활력이 강하다”등 비교적 긍정적 이미지보다는 “되는 대로 산다”“염치가 없다”는 부정적 인식이 강했다. 이는 아내에게 순종적이거나, 집안의 사소한 것에 좀도 신경써 주기를 바라는 경향으로 연결됐다.
3단계에 들어 남성들이 스스로 평가한 가족내 역할을 점수화했다. 평균적으로 남성들은 자녀사회화 및 교육과 친척관계유지 역할을 중요시했다. 이에 비해 성 및 애정역할과 가사역할은 낮은 점수가 나왔다.
똑같은 질문지를 아내에게 주어 점수화하여 그림을 그려보면 부부 인식의 차이가 분명히 드러난다. 한 남성은 이 결과를 보고 “할만큼 한다며 살아왔는데 이렇게 차이가 나다니 비참하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평등한 부부상을 모색해보는 마지막 단계까지 끝난 뒤 다시 조사한 결과 남성컴플렉스 점수는 떨어지고 부부역할 수행의 점수는 대부분 올라간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나 여기에 참여한 남성들 가운데도 3명은 끝내 아내에게 변화를 다짐하는 편지쓰기를 거부했다. 특히 평등한 부부요건 가운데 `재산공유'에 대해선 “그렇게 삭막해서야…”라며 부정적인 반응이 많았다.
연구팀장 송말희 책임연구원은 “남성대상 상담이 늘어나고 `좋은 아버지되기'등 자녀와의 대화를 강조하는 흐름은 늘어가지만, 부부관계에 눈돌리는 프로그램이 적어 이같은 연구를 실시하게 됐다”며 “참여자들이 비교적 가족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었음에도 변화는 기대에 못미쳤다”고 말한다. 특히 불규칙한 직장내 연장근무로 1주일에 한 차례 2시간반 정도 실시하는 프로그램에 처음에 참여했던 6명이 `중도탈락'했다며 아쉬워했다. 송씨는 한국사회에서 근무시간의 단축, 융통성 확보등 직업체계의 변화가 전제돼야 남성의 가족내 역할도 달라질 수 있다며 이러한 성격의 프로그램이 사원연수에 활용돼야 할 것이라고 강조한다.
연구결과는 26일 1시 프레스센터19층에서 열리는 학술대회에서 발표된다.
김영희기자do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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